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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토왕
마지막 스크류를 지나 오르다보니 완경사의 얼음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얼음벽의 경사가 누워있을 때, 그 전에 스크류를 하나 더 설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당연한 일이 내게는 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일이었다.
난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지친 몸보다 더 힘든 것이 손과 발의 무감각이었다.
완경사 얼음을 오르고 있을 때, 위에 찍었던 오른손의 부실한 타격이 흔들렸다.
흔들린 것은 얼음이었고, 깨진 얼음 때문에 몸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순간 드는 생각은 마지;막에 설치한 스크류가 내 몸을, 내 몸의 충격을 받아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내 눈앞에서 찰라간에 지나치는 스크류의 모습이 선명하기를 바랬다.
선명한 모습이란 얼음속에 든든하게 박혀있는 모습일 테니까,
하지만 야속하게도 스크류는 내 몸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얼음과 함께 둑이 터지듯 뽑혀나갔고,
내 몸은 중력을 이기지 못해 가속을 더해가며 낙하하고 있었다.
“희상아 추라~악…”
얼음에 몸이 부딪히며 곧 다가올 충격에 정신이 아찔했다.
몇 년 전 바로 이곳에서 테라스로 추락하여 양쪽 발목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던 심광섭이 생각났다.
얼음에서의 긴 추락이란 발목의 큰 충격과 부상을 의미한다.
몸의 충격을 아이젠의 발톱이 얼음에 박히면서 그대로 발목으로 흡수하니 그럴 수 밖에 없다.
놀이공원에서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를 탔을 때, 가장 정점에 다다른 후 떨어지던 바로 그 순간의
스릴을 느끼는 순간, 심폐소생술(CPR) 전기충격기의 효과로 전신의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몸이 떨리며 깨어났다.
설악산에서 돌아온 새벽에 나는 심폐소생술로 인해 살아난 것처럼 아찔한 꿈에서 깨어났다.
사실 하루 전 토왕폭 상단을 오르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곤 했었다.
마인드 컨트롤이란 결국 어려움 앞에 약해지는 자신의 자세를 굳게 하려는 마음의 리세팅(Resetting)이다.
별 것 아니다, 할 수 있다. 넘어갈 수 있다.
라고 마음먹으면서 고빗사위를 그려보고 그 고비를 넘어가는 자신의 동작을 그려 보는 것.
한국 스포츠 클라이밍의 새 지평을 열었던 故고미영은 대회를 앞두고 그러한 마인드 컨트롤을
자주 하곤 했고, 그런 그 녀를 강하게 만든 것은 결국 그 녀 자신과 마음이었다.
타고난 신체와 소질을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한계를 뛰어 넘었던
그 녀의 등반의 세계는 많은 클라이머들의 귀감이었고, 롤 모델로 삼을 만 했다.
항상 쾌활했고 적극적이었고, 그 녀의 그러한 긍정적인 성격도 운동에 몰입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게 했던 근거였으리라.
설연휴 전날 팔봉과 소승폭을 등반하고 2월 둘 째주에 토왕폭 등반을 약속했었고, 그때는 희상도 함께 하기로
다짐을 했었다.
퇴근을 하고 바로 설악산으로 향했다.
원통을 지나 민예단지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서 2~3백미터만 가면 좌측에 준교형의 매점과 집이 있고,
우측으로 들어서면 새로 조성된 마을이 있다. 깨끗한 펜션으로 구성된 마을이다.
거기에 김세준의 빙벽교육 베이스캠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김세준이 해마다 빙벽위탁교육을 실시하는 대만의 클라이머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세준은 그 일대를 돌면서 빙벽교육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나도 토왕폭 등반을 빨리 끝내고 오후에 세준에게 합류하여 빙벽교육을 도와주고, 다음 날 하루 더 머물면서
교육을 도와줄 계획이었다.
그래서 세준에게 미리 연락을 했었고, 세준은 왕준호에게 교육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해놓은 상태였다.
준호는 세준의 오랜 등반 파트너이다.
김세준 왕준호 김태만으로 구성된 거벽등반팀은 아마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대표 거벽등반팀으로
불러도 아무 손색없을 것이었다.
그 만큼 그들은 거벽등반에 필요한 수준급의 스킬과 체력을 갖췄고, 그 보다 더 중요한 항목인 팀웍에서
최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준호가 6mm 비디오 테이프를 몇 개 사다 달라는 전화를 하기도 했지만, 그 부탁이 아니어도
서울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먼저 설악의 품으로 가서 그들과 합류하여 시간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펜션에 들어서니 세준과 준호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세준이 대만 클라이머들과 간단히 인사와 술 한 잔 하고 오자고 제안하여 그 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세준이 그 들에게 나를 소개하는데, 어차피 각자의 모국어로는 대화가 안되고 만국 공통어인
영어를 통해서 대화를 해야 하는데, 피차 유창한 회화 구사가 안되는지라 단문이나 단어로 대화를 한다.
세준이가 나를 Brother 라고 소개했고, 나는 세준의 소개에 덧붙여
I’m a SEJUN’s brother but, younger brother.
라고 마지막 younger 에 힘주어 말을 했다.
대만 클라이머들이 고개를 끄떡거리는데, 그 말을 들은 세준이 부인은 하지 않고 킥킥 웃는다.
왕준호는 못 들었는지 이해를 못하는지 멀뚱멀뚱 앉아 있다.
아마 이해를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 녀석의 표정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세준은 외국원정을 많이 다녀서 그런지 웬만큼 다국적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
하지만 그보다 생존언어인 바디랭귀지에 정통하다,
척하면 척 하는 식의 눈치가 9단이다.
그래서 서로가 짧은 영어인데도 무리없이 일주일 간의 빙벽교육이 이루어지고
그 많은 빙벽이론과 테크닉 등을 손짓 몸짓으로만 가르친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희상과 팔봉이 미시령터널을 지나고 있다는 전화가 온다.
원통쯤에서 미리 전화를 하라고 했는데, 깜빡 잠이 든 팔봉이 뒤늦게 문자 확인을 한 것이다.
토왕등반을 끝내고 다시 오마하고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차를 몰아 설악동으로 향했다.
설악구조대 바로 옆에 있는 리조트에 방을 두 개 예약해두었고, 비수기라 방값은 무척 쌌다.
우리 팀이 방 한 개를 사용하고, 이상우 송우근 박정주 팀이 한 방을 사용할 계획이다.
그 들이 간다는 계획을 알고 있었고, 이왕이면 같이 숙박을 하고 함께 등반을 하자는 제안을 했었다.
다 들 친한 후배들이고 특히 우근은 산악회의 등반대장을 맡을 만큼 등반도 잘 할 뿐더러
의정부 샤모니 암장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을 때 거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을 만큼 일도 잘하고
책임감도 강한, 김점숙의 총애를 듬뿍 받는 후배이자 일꾼이다.
상우는 익스트림라이더 빅월 페스티벌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빅월등반의 고수이다.
1회 대회부터 7회 대회까지 내가 대회 진행을 했었는데, 상우는 매년 출전하여 매번 결승에
진출하였고, 1위 아니면 2위를 차지하곤 했었다.
그와 더불어 1위를 다퉜던 클라이머는 안나푸르나 산군에서 실종사한 故민준영이 유일했다.
상우는 인공암장에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기존바위등반 뿐아니라 믹스등반, 빙벽등반에서도
좋은 역량을 발휘하는 수준급의 클라이머이다.
상우가 겨울내 공을 들여 가꾼 클라이머가 정주다.
정주는 종로 디딤돌 장비점의 매니져이자, 여성들로 구성된 원정대의 대원이었고, 여러가지
재주가 많은 여성산악인이다.
광명에서 종로까지 자전거(로드바이크)로 출퇴근을 하고, 고기와 술을 끊고 채식만 하고 있다.
또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하고,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기도 한다.
내가 익스트림라이더 초대동문회 총무이사를 할 때 함께 총무 일을 하며 도와주기도 했었다.
그 정주에게 토왕폭 상하단을 선등으로 등반을 시키기 위해 전부터 상우가 가래비 등지에서
계속 선등연습을 시키기도 했었다.
세 녀석 다 내가 이뻐하는 후배들이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그 네들 방으로 내려가니, 그 들도 정리를 끝내고 맥주 한 잔 하려던 참이라고
내게 캔맥주 하나를 건넨다.
우리 팀은 당초 다섯 명이었으나 함께 가려던 김은아씨가 합류를 못하는 바람에 네 명이 되었고,
내가 김점숙에게 빌려온 스크류 10개가 있었으므로 두 명씩 등반을 하기로 했다.
팔봉이가 한 파티를, 내가 희상이와 한 파티를 이루어서 등반을 하기로 했다.
정주나 나나 토왕폭 상하단 풀리딩은 처음이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각자의 방에서 우리는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날씨가 최대 절정이라는 일기예보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날이 추워도 바람만 세게 불지 않는다면, 괜찮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옆으로 돌아 누웠다.
머리 위 창문에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새벽 5시 알람소리에 깨어, 고양이 세수를 하고는 옷을 갈아 입었다.
컵라면에 끓는 물을 넣었고, 코펠에 녹차 티백을 넣어 우려내어 보온병에 담았다.
6시경 리조트 문을 나서 설악동 매표소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는데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정신이 혼미해진다.
등반이고 뭐고 싹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뒤이어 상우네 일행이 바로 옆에 주차를 하는데, 다른 차가 또 옆에 주차를 한다.
우리 말고 이 날씨에 또 토왕폭 등반하러 오는 팀이 있나 싶어 보니 윤대표 선배님과 허욱형님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 날씨에 등반하러 왔느냐며 서로 강적이라고 웃으면서 덕담을 나눈다.
윤대표 선배께는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허욱형에게는 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윤대표선배와는 개인적인 친분이 없었고, 함께 등반을 하거나 모임에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기 때문이다.
허욱형은 선운산이나 이런저런 자리에서 많이 만나면서 친해졌고, 그러다가 알게된 결정적 사실이 나의 대학선배여서
허물없는 사이로 발전 할 만했다.
학연 지연 혈연 세가지가 사람을 결속하는 가장 큰 매개체라고 하는데, 비단 한국 뿐아니라
사람사는 세상이면 어디서나 통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팔봉이도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를 하고 있어 윤대표선배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베낭을 메고 출발하는 허욱형이 한마디 한다.
“상섭아, 지금 이 순서대로 토왕폭 등반 하는거지?”
물론 진심도 아니고, 규칙도 아니지만 우리는 그저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다.
차가운 새벽바람을 안고 우리도 토왕폭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식당 앞 의자에서 다시 허욱형 일행을 만났다.
거기서 잠시 휴식과 장비점검을 하고 가는 중이었나 보다.
“형님, 우리 먼저 올라갈께요. 지금 이 순서대로 등반하는거 맞죠?”
하고 크게 말하며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출발한 지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Y계곡에 도착을 했다.
거기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올라가자는 팔봉의 제안에 동의를 하고 짐정리 및 장비착용을 하는데,
주기적으로 불어닥치는 바람에 금방 체온을 빼앗긴다.
기온은 영하 17도 였는데, 그 거센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25도는 넘을 듯 싶었다.
장갑을 끼고도 장비착용이 수월치 않았다.
뒤이어 도착한 허욱형 일행은 우리를 지나쳐 토왕폭 하단까지 이동해서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허욱형 일행이 네 명, 우리 일행이 네 명, 상우네 일행이 세 명, 먼저 도착해서 장비를 차고 있던
클라이머가 세 명 이었으니 도합 14명 정도 인원이었다.
허욱형은 윤대표선배와 자일을 묶었다.
허욱과 윤대표.
두 사람은 대한민국 산악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긴 등반을 했었다.
한국 최초로 알프스 3대 북벽등반을 해치웠고, 다른 기념비 적인 등반도 많이 했다.
윤대표는 이름 그대로 대한민국을 대표할 만한 등반을 이루어내었다.
토왕폭을 두 번째로 올랐고, 가장 여럽다는 대승폭 초등을 해내기도 했다.
허욱형은 3대 북벽을 끝내고 산악계를 떠나 평범한 자기 삶에 열중해 살다가 몇 년 전 다시 산으로
복귀하여 서울등산학교 교장을 맡기도 하였다.
허욱형이 산으로 복귀한 그 날, 우연히 인수봉에서 30년 만에 다시 두 사람이 재회를 했고,
술 한 잔도 안마시는 윤대표선배가 그 날 산에서 내려와 많은 술을 마셨다고 하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뉴스감이라고 한다.
산이외에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외길인생 윤대표와 암벽등반을 하러 오르다가 옛 친구를 만나면
등반을 포기하고 계곡에 주저 앉아 술을 마신다는 까오기 허욱.
박인식은 그의 책 ‘사람의 산’에서 두 사람을 밤하늘에 빛나는 별 ‘시리우스’ 라고 표현했다.
시리우스 라는 별은 자세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두 개의 연성(連星)이었던 것이다.
팔봉에게 등반을 시작하자고 신호를 보내는데, 다른 팀에서도 일제히 등반을 시작한다.
가장 우측에서 시작한 나는 좋은 루트를 뺏기는 바람에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서 팔봉이가 오른 루트로 따라 오른다.
하단폭 1/3 지점부터 강한 바람이 불더니 엄청난 스노우샤워가 쏟아져 내려온다.
온 몸에 스노우샤워를 맞다보니 정신이 없다.
그 후 1분 간격으로 강한 상승기류와 하강기류가 교차하면서 눈보라를 동반하는데,
손이 어는 것도 문제지만, 온 몸으로 얼음과 눈이 들어가 순식간에 체온을 빼앗긴다.
얼굴에는 바라클라바 대신 버프(buff)를 썼는데, 강한 바람에는 속수무책이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해 낭패를 겪은 그 날의 나의 첫 번째 실수였다.
하단 등반만 끝내면 팔봉과 희상에게 이야기하여 등반을 접고 내려가자고 할 마음이었다.
앞서 등반을 끝낸 팔봉의 옆으로 가서 스크류 두 개를 박고 이퀄라이징을 하여 희상의 확보 준비를 한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속에서도 어느 누구 하나 등반을 끝내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클라이머들 특유의 기질과 자존심 때문이리라.
뒤이어 도착한 정주의 얼굴을 보니, 눈썹과 속눈썹이 하얗게 얼어붙었고 얼음이 매달려 있다.
그런 정주의 얼굴을 보자니 오래 전에 읽었던 책 '난쏘공(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내용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난쏘공'은 조세희의 책으로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충격적인 책이었으며
운동권학생들의 필독서이기도 했다.
'뫼비우스의 띠'라는 부분에서 그런 내용이 나온다. 한 교실의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한다.
굴뚝청소를 마치고 내려온 두 사람이 있고, 한 명은 얼굴이 숯검정이 묻어 검게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멀쩡하다면, 누가 얼굴을 씻겠냐는 질문이었다.
학생들은 당연히 검정이 묻은 사람이라고 답을 하지만, 선생님의 대답은 다르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기 때문에 멀쩡한 사람의 얼굴을 본 사람은, 자신의 얼굴이 깨끗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면에 검정이 묻은 사람의 얼굴을 본 사람은 자신의 얼굴이 지저분할 걸로 생각하고 씻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책 내용의 이야기는 계속 전개되지만,
아마 내 얼굴도 정주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손으로 눈주위를 문질러 닦았다.
얼굴에 두른 버프는 입김이 얼어붙어 뻣뻣해져서 기능을 발휘못하고 있었다.
희상이 올라오고 우리는 중단을 걸어 상단 출발지점으로 향했다.
중단에도 어찌나 바람이 거센지 앞사람이 러셀을 하고 지나간 흔적이 금방 메꿔져 버렸다.
하단을 등반하면서 내 손은 얼어버렸고, 발도 조금씩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 두 번 째 실수는 장갑과 양말을 올바로 선택하지 못한 치명적인 것이었는데, 나는 뒤에 그
무지한 선택의 결과를 톡톡히 치르게 된다.
일단 나는 손과 발이 유달리 차가운 체질이어서 가래비나 판매, 매바위 등지에서 곤란을 많이 겪었었다.
그렇다면 장갑도 장갑이려니와 양말의 선택을 잘해야 했었다.
나중에 정주 말을 들으니, 울(wool)소재로 만든 양말이 가장 보온력이 좋고, 물에 웬만큼 젖어도
보온력을 유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면으로 된 얇은 발가락양말을 신고 그 위에 싸구려 등산양말을 한 개 더 신었던 것이다.
발가락 양말도 무좀이 있어서가 아니라, 워킹산행할 때의 오래된 버릇과 과거의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 고착화 된 생각때문인 것이다.
오랜 시간 산을 다녔다는 것은 절대 자랑할 일이 아니다.
그건 자신이 선택하고 즐긴 취미일 뿐이고 남에게 내세워서 우쭐 댈 일은 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나처럼 오래 산을 다녔다는 사람이 그토록 무지한 선택을 했다는 것에는 스스로 그 결과를
책임지고 감내해야하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었다.
내 방에는 겨울 등반에 필요한 의류를 보관하는 장롱이 있는데 거기에는 장갑이 10켤레 정도 있다.
그만큼 장갑은 날씨에 따라서 등반형태에 따라서 선택해야 했고, 정답이 없었다.
그런데 양말에 대해서는 그토록 무관심했고 무지했던 것이다.
토왕폭 상단등반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얼음에 붙었을 때 내 손은 이미 감각이 없었고,
스크류에 매달려 양쪽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쩔쩔매야만 했다.
아래 쪽에서 정주 확보를 보던 상우가 보다 못해 내게 장갑을 건네준다.
내 장갑을 보고 딱했는지, 그런 장갑을 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빨리 갈아 끼라고 한다.
이렇게 추울 줄 알았냐고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상우가 건네 준 장갑을 끼고 나서 녀석의 배려가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러면서 상우가 웃음으로 긴장을 풀어준다.
- 정주아, 형 올라간다. 위에서 등반하면서 낙빙 마구 떨어뜨려~하하하
상단 테라스 바로 밑에서 피치를 끊고 희상의 확보를 보기 시작했다.
희상의 등반 속도도 나 처럼 빠르지 않다.
희상이 역시 내 곁으로 다가오며, 막상 등반을 시작하면 장갑이 얼음에 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급속도로 손이 차가워 지면서 감각이 무뎌진다고 하니, 강빙의 얼음에 타격의 어려움이 더해져
등반이 정말 어렵다고, 선등을 서는 형의 모습이 정말 대단하다고 추켜 세운다.
난 그 말이 내게 용기와 격려를 주는 희상의 마음인 걸 안다.
그래서 그런 말 한마디, 배려하는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앞으로도 빙벽은 절반 쯤 남아있었지만, 남은 부분의 얼음은 어렵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내게 있는 것이었고,
그런 내 모습을 본 희상이가 앞서 올라가는 팔봉의 자일을 이용해서 편하게 후등으로 올라가자는 제안을 한다.
그의 제안은 흔들리기 쉬운 달콤한 여인의 유혹같기도 했고, 나도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여기까지 올라온 것이 아까웠고, 춥고 지쳐있었지만 남은 빙벽의 어려움과 길이를 생각하면
선등을 포기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보다 속칭 '가오'를 더 중시하는 김세준도 있지만, 나 역시 가오를 중시하고 있었고 우스개 말로
집안의 가훈을 '가오만사성'이라고 정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기 까지 했으니 말이다.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내복을 입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이 역시 가오때문인데,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 기 전 몇 마디 남기신 유언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아버지가 남긴 금쪽같은 유언 중 하나가 '겨울에 아무리 추워도 내복을 입지 마라' 였다.
이유는 없다. 단 한가지 가오가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희상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내 스스로와의 타협을 거부한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쪽팔리기 싫었기 때문인데,
토왕폭은 벼르고 벼르던 나의 짝사랑, 여자로 치며 이상형에 가까운 대상인 것이다.
그 빙벽의 완등이 코앞에 있는데, 전쟁으로 치면 적의 요새를 허물어 함락을 눈 앞에 둔 장수가
병력의 손실이나 손해가 있다고 해서 작전을 바꿀 수는 없는 일과 같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그리고 토왕폭에 새겨진 많은 이름들
송준호 박영배 유기수 이태식 정승권 김점숙 최승철
그 들이 나눠가지고 가슴에 품었던 그 대상을 나도 공유하고 싶었고,
그 공유하는 순간은 길게 남아있지 않았다.
내 스스로의 힘듦과 고통만 내가 감내하면 되는 일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체되고, 그 때문에 어둠 속에서 하강이 이루어지고 하산을 한다해도 어쩔 수 없을 것같았다.
사랑은 뜨뜨미지근한 사랑보다는 열렬한 사랑이 좋다. 그리고 후회없다.
가수 혜은이가 부른 '열정'은 그래서 좋다.
"가슴 터지게 열망하는 사랑, 사랑 때문에 목숨거는 사랑, 같이 있지 못하면 참을 수 없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면 눈 멀고 마는, 활화산 처럼 터져 오르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
지금 희상과 팔봉이 함께 있을 때 끝내지 않으면 또 언제 끝내랴 싶었다.
희상에게 시간이 지체되어 미안하다고 하고 다시 등반을 나선다.
박아 넣은 피켈에 의지하여 스크류를 설치하는 일이 잦아졌다.
완경사를 넘어서니 그 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보더니 소리를 지르며 반겨준다.
악전고투하며 오르고 있을 나를 걱정하며 있던 그들에게 내 모습은 무척 반가운 존재였으리라.
힘든 나를 위해 내 자일을 받아들고 대신 후등자의 확보를 봐준다.
물 한모금 마시고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팔봉과 상우 우근 정주와 어깨동무를 하고 돌기도 하고
다리를 흔들며 개다리춤을 추었다.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추면서, 온동네를 주름잡았던~”
마지막 등반자 희상이가 올라오면서 우리 모두는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토왕폭 등반이 그렇게 남달리 기뻤던 것은 정주와 내가 선등으로 올라서가 아니라,
그토록 춥고 바람 거센 혹한을 뚫고 올랐다는 것이다. 다른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건 나와 정주 뿐아니라 팔봉도 그랬고, 상우, 우근, 희상도 그랬다.
손과 발에 동상이 걸린 나는 식욕이 없어 그 들이 건네주는 간식은 손도 못대고 따뜻한 물과
미지근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허욱형 일행은 하강 포인트로 이동해서 하강을 해 중단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희상이가 마지막 등반자였고, 그 뒤에 다른 등반팀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빙벽위로 하강하기로 결정했다.
하강포인트에서 하강하는 것보다 빠른 방법이기도 했고, 아이젠이 덜 상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상우의 의견에 내가 적극적으로 찬성을 했고, 우리는 상단 테라스에서 한 번 끊고, 다시 상단
출발 지점에서 한 번 더 끊기로 했다.
얼음에서 하강을 하면서 마디를 끊는 방법은 아발라코프 식 방법이 아주 유용했다.
구체적인 수치는 모르겠지만, 스크류를 설치한 것보다 강도가 더 높다고 들었다.
빙벽등반을 하는 클라이머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좋은 시스템이다.
상우가 굳이 그 방법을 쓰자고 한 이유는 이러한 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등반하면서
스크류 한 개를 떨어뜨렸고, 그것을 찾기 위해 아이디어를 낸 것이었으나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다.
마지막에 하강을 하는 몫은 팔봉이가 하기로 했다.
줄 처리와 마무리를 한다고 자청하는 녀석을 보면 항상 듬직했다.
물론 세상살이도 등반처럼 그렇게 듬직하게 해낸다면야 팔봉이도 남들 못지 않게 한 몫잡고 어깨펴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노릇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한 곳은 아니었고,
그런 팔봉을 보면 콧등을 스치는 겨울바람처럼 마음이 싸하게 아려왔다.
하단폭 하강을 하는데, 출발할 때와 같은 거센 바람과 스노우샤워가 나를 덮친다.
아래에서 하강을 끝내고 내가 하강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후배들이 그런 나를 보고 한마디씩 한다,.
- 형, 오늘 스노우샤워는 원없이 맞네요, 형이 등반할 때, 하강할 때 공교롭게 그렇게 눈이 쏟아지는 걸 보면
아무래도 형 오늘 단단히 고생시키려고 날씨와 토왕폭이 작정을 한 것같아요.
하산 길은 힘들었다.
아침에 먹은 컵라면 외에 전혀 먹은 것이 없었는데, 무릎 속에 병아리가 들어 앉았는지 급경사
길을 걸을 때마다 삐약삐약 소리가 났다.
비룡폭포 아래에서 잠시 쉴 때 정주가 배낭에서 남은 과자 부스러기 몇 개랑 초콜릿을 건넸다.
너무 배가 고파서 정신없이 먹으면서 상단에서 입맛이 없어 간식을 전혀 먹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고 그러면서 정주에게 한 마디 했다.
“정주야 내 옆에 가까이 있지 마라, 너무 배가 고파서 네가 옆에 있으면 뜯어 먹을 것 같아~!!”
상우가 잘 안다는 속초 지역사회주민들이 애용한다는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생선조림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인데, 평일 저녁인데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발이 빙벽화에서 해방되어 따뜻한 식당 구들에 얹혀지자 비로서 피가 돌며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이 몸속으로 스미자 나른하게 늘어져있는 내 몸이 흡사 각성제라도
맞은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식당에서 상우일행과 헤어진 우리는 민예단지 삼거리 휴게소로 이동을 했고, 휴게소 안에서 각자의
장비를 챙기고 정리하고 커피 한 잔씩을 마시며 마무리를 했다.
희상과 팔봉 그리고 나는 속해있던 산악회가 와해될 때, 마지막까지 남은 생존자였지만 성공하지
못한 조직이었으므로 우리는 결국 패잔병이었다.
각자의 마음 속에는 씁쓸함이 남아 있었으나 어느 누구 하나 그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고,
세 명에게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하고 우리끼리의 우정을 이야기하자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동의는 매년 토왕폭을 함께 오르자는 또 하나의 약속을 남겨놓고 있었다.
희상과 팔봉과 차례로 악수와 포옹을 하면서, 그 다짐을 서로의 가슴으로 밀어 넣고,
손으로 다둑이며 마음 깊이 다져 넣었다.
금요일 저녁 나눔 음악회에서 만난 곽정혜와 김영미가 페이스북에 올린 내 글을 읽었는지,
동상을 걱정해주며 자신들이 동상 전문가 아니냐며 방법을 알려준다.
곽정혜와 김영미 둘 다 에베레스트 정점을 찍고 내려온 여성 산악인이며, 특히 정혜는 당시
심한 동상으로 한 쪽 손가락을 거의 다 절단해야 했다.
그래서 귀를 쫑긋 세우고 경청을 하는데,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일단 술은 마시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대단한 동상치료 혹은 관리 노하우가 있는 줄 알고 잔뜩 기대했던 나는 그 말에 실망했고,
실망감을 달래기 위해 길 건너 술집에 가서 상조형을 비롯한 일행들과 술을 마셨다.
토요일
(최)석문이가 동상에 걸려본 경험이 많아서 전화로 걱정을 하면서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사람마다 같지는 않겠지만, 자신은 침을 이용해서 발가락의 어혈(죽은피)를 빼낸다는 것이었다.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팔랑귀를 가진 나는 한의원으로 갔고, 의사는 감각이 없다는 내 말을
믿고 피를 빼기 위해 마구 침을 찔러댔다.
증상을 이야기할 때, 동상이 심해 발가락의 감각이 없다고 했는데, 안심하고 찔러대는 의사의
무자비한 침에 아프다고 하면 꾀병이 되므로, 나는 아프다는 표현을 하지 못하고 어금니를
꾹 물고 누워있었다. 식은 땀이 흘렀다.
열개의 발가락에 침을 골고루 놓고, 양손과 배에도 침을 놓았다.
대게 한의원에 가면 아픈 부위말고도 다른 곳에 자주 침을 놓는 경우를 보았으므로 그것이
저명한 한의사의 수준 높은 처치방법인 줄 알고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있었다.
한의사는 동상이나 화상이나 비슷한 병이라며 동상부위에 바를 연고를 처방해준다.
자신이 제조한 비법이 담긴 연고라고 하는데, 일단 한약냄새가 독하게 나는 것이 좀 그럴 듯 하긴 하다.
내일은 일산 요양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찾아 뵙고, 돌아오는 길에 지성이 입원해있는 병원에
들러봐야겠다.
지성은 우리가 토왕폭 하단등반을 할 때 개토왕폭 등반을 하는 중이었고, 등반 주에 추락을 해서
다리가 골절되어 일산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입원치료 중이다.
중단에서 희상의 확보를 볼 때, 구조대 헬기가 계속 맴돌고 있길래, 워낙 날씨가 안좋아서
우리를 비롯한 토왕폭 등반자들의 안전을 위해 순찰을 나온 줄로 생각을 했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했다.
지성이가 바로 그 비유에 해당한다.
지성의 등반수준은 국내 톱클래스의 역량이다.
거벽등반 뿐아니라 기존바위 하드프리, 빙벽등반, 믹스등반에 두루 능하다.
능하다는 표현으로는 다소 부족하고, 국가대표급에 들아가는 수준이라 하겠다.
개토왕폭을 초등한 클라이머들이 바로 1998년 탈레이사가르에서 추락사한 故신상만, 최승철,
김형진이었다.
당시 그 들의 등반능력이 절정인 시기이긴 했어도 그리고 등반난이도가 M7 이니 쉽지 않은
등반루트임에는 틀림없으나, 지성의 등반역량으로 해결하지 못할 난제는 아니었다.
다만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너무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얼음이 너무 단단했고,
몸이 경직되어 사고가 난 것이다.
지성 자신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지성이 쓴 글에 답글을 남겼다.
- 많이 달려왔으니 조금 쉬라는 뜻으로 알고 이번 기회에 휴식도 취하면서 몸조리 잘하고,
쉬면서 심기일전하세.
비단 지성의 경우만 그럴까.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바쁠 때 일수록 그렇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고 남과의 관계를 한 번 더 생각해야 하고,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야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조금씩 개선하면 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말이지만, 실천은 어려운 법이다.
난 내 인생의 멘토인 상조형의 말과 행동에서 얻는 교훈이기도 하다.
소설 ‘흑산’에서 흑산도로 귀양가 생활을 하는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저술하고 서당을 열어
배우지 못한 풍헌들의 자식과 어부의 자식들을 가르친다.
그는 천자문과 소학을 함께 가르쳤다.
‘소학’의 가르침은 물 뿌려서 마당 쓸고 부르면 응답하는 것이다.
자연스러움 그것이 곧 순리이고 조화로움이다.
- 형, 그 정도 추위와 그 정도 어려운 강빙의 토왕은 해외원정 등반 못지 않은
성취감이 있는게 맞아요. 발관리 잘하세요 (용학)
- 형, 토왕 다녀오셨군요. 토왕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매력이 있는 것같아요.
동상치료 잘 하시고, 언제 한 잔 해요. (기련)
- 그 날 바람이 심해 체감온도가 무지 낮았죠. 제가 추락한 원인 중에 추위도 한 몫했죠.
치료 잘 하시기 바랍니다. (지성)
- 치료 잘 받으시고 빨리 완쾌되시길…저는 오늘 설악으로 갑니다.
실폭, 소승, 그리고 토왕…설레는 마음 가눌 길 없네요. 좀 갈켜주세요~ (장근)
- 형님, 피부색 변하지는 않았죠? 빨리 회복하세요. (석문)
- 형, 나중에 많이 가려우실 거에요. 치료 잘 받으시구요 (성욱)
- 늘 자연 빙벽은 얼굴 색깔을 바꿔서 클라이머들을 긴장시키는 것 같아요.
힘든 조건에서 등반해서 더 뿌듯할 듯 함돠~ 축하해요. (점숙)
- 제니 대디(지성)처럼 등반 치열하게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이보그&인조인간이야.
그만하길 다행이다 생각하자구~(상섭)
- 예, 백번 동감합니다. 그래도 정기적으로 기구 교체 안해도 쇠고랑 안차고 경찰출동 안하니
될수있음 선배님두 주의에 주의를…동상도 언릉 치료하시구요. (백은영)
또 다시 꿈을 꾼다.
희상과 팔봉과 함께 내년에는 기필코 날씨 좋은 포근한 날을 골라서 토왕을 낭만있게 오르는…
비록 낙수가 떨어지고 몸으로 물이 스미지만, 피크가 푹푹 박히는 그런 얼음 같은 얼음을 만끽하며 말이다.
토왕은 나에게 영원한 꿈이자 로망이다.
그래서 늘 멀어서 아득하다.
사랑이여, 아득한 적이여
너의 모든 생명의 함대는
바람불고 물결 높은 날, 내 마지막 바다 노량으로 오라
오라, 내 거기서 한 줄기 일자진으로 적을 맞으리.
첫댓글 작성해놓긴 했는데 늦었네요.
형님 등반기 잘 읽었습니다.
걍 토왕 가고 싶네요.
내년에 너네 부부랑 함께 가면 아주 재미있고 낭만있을 것 같은데~? ^^ 아니면 성훈네 부부, 미달이네 부부까지 다 함께 가보자, 내가 바라는 그림인데 말야 ^_____^
아냐 남자는 남자끼리 , 여자는 여자끼리 ~~
상섭아우님의 등반기는 날 항상 거기에 있게 하네..........동상 치료 잘 하시고 난 옛날 옛날 한 옛날에 뒷굼치에 동상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