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 신라 천년의 향기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갔을꼬.
BC 57년~ AD 935년
992년의 기나긴 세월
천 년(千年) 고도(古都) 경주
신라 천년의 향기를 찾아서
박, 석, 김씨의 왕이 무려 56명
백제와 고구려를 무릎 꿇린
신라 뒷배의 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신라의 시작과 끝을 받아내며
소리없이 그저 지켜봐왔던 남산
150개의 절터
120개의 불상
100개의 석탑
이 숫자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佛(불)의 산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탄생한 곳
마석산 천년의 세월이 찰나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끝내 새겨지지 못했던
맷돌바위의 그 미소
호국의 진산인 동악의 토함산
석굴암 그리고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
세계의 중심이라 굳게 믿었던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
우리들의 영원한 공주마마
선덕여왕과 하나된 낭산
동서남북으로
남산 토함산 마석산 낭산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곳
부처님 품 안에서의 천년 세월
그 기운은 지금 그 어디에...
... '경주 천향' Jiri 깽이 은경 아름다운 나의 이야기...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서
어떤 길일까 걷고 싶어서
찾아나서는 우리들은 모두 보물 사냥꾼들
우리에게 이 보물 지도를
"옛다~" 하고 던져줬던 분
그 분과 함께 '경주 천년의 향기' 그 길을 거닐어 봤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꽃필 때 한번 걸어보고 싶었던 그 길
근데요.
꽃망울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이때도
참 좋았던 거 같아요.
2023년 02월 25일(토)
꽃에 신경쓰다가 다 놓치고 가는 수가 있거든요.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아~ 이게 바로 종주 산행 지도구나!
어떻게 이 길을 만들어 내셨을까?
마지막을 낭산으로 틀어
화룡점정을 찍어낸 이 번뜩함
볼수록 기가 막히네요.
경주 천향길을 걸었던 사람들 중에
제대로 지도를 들여다보며
고민해봤던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배방장님이 왜 이 길을 만들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지도에 선을 그었을까?
걷고 와서 내가 걸었던 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봤는데...
아무리봐도 이 지도 너무 멋지다!
종주라는 것은
물길을 건너서는 아니되니...
궁이 있는 월성 인근에서 보자면
월정교 다리 건너 바로 마주하게 되는
불교의 성지
그 자체로 불교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남산이 시작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상서장-남산-마석산-원고개-괘릉-
토함산-대덕산-힌등산-명활산성-낭산
64km
남산-마석산-토함산-낭산
이 산들의 기운과
남천 물의 기운이
쏟아져 들어가는 곳
그 기운이 몰아치는 곳에 위치했던 "월성"
경주 신라 천년의 빗장
어떤 이유로 992년 동안
오래도록 이어졌던 것일까?
또 어떤 이유로 천년을 넘기지 못했던 것일까?
상서장 주차장...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과연 찾고자 했던 신선을 찾았을까?
당나라 유학파였던 그에게
신라의 땅은 돌아와보니
너무나 작고
결국 뜻대로 할 수 있는게 없어
한스럽지 않았을까!
당나라에 남아 있었다면
그의 인생은 어떻게 꽃피웠을까?
그래서 더 그리웠겠지...
상서장 앞에 있는 "고운대" 바위
바위가 꼭 말 안장을 닮은듯도 보이고...
이 바위에 올라서면
아마도 지척에 있던 월성이
잘 보일듯 싶습니다.
저는 밤중에 봤던터라 사진은 이렇게 담아봤습니다.
사실 휴대폰이 갑자기 이상해져서는
사진을 못 담았었거든요.
최치원 선생께서 이곳 상서장(上書莊)에서 작성한
시무10조(894년)를
진성여왕(51대, 887~897년 재위)에게 올리고
그 개혁안이 시행되기를 그토록 바랬지만...
그 바람은 귀족들의 반발로 이루지 못했고.
옆으로는 남천(=문천)이 흘러
궁이 있는 월성으로 갑니다.
그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그의 이 충직한 마음이
이 시무10조에 담은 완곡한 바람이...
이 강물과 함께 궁에 가 닿기를 이뤄지기를 바라지는 않았을지...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서 수많은 글을 작성하며
때론 고민하고... 쉬며...
이 앞마당을 왔다갔다 거닐었을
그 모습이 조용히 그려지며...
선생에게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드리며
천년의 향기 종주 걸음 시작합니다.
산행 시작 2월 25일(토)
시간은 새벽 3시 30분
형산강과 북천 안에서
명활산성과 더불어 월성을 지켜냈던 남산신성
근데요.
남산으로 사부작사부작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향기가 제 코에 와 닿는거예요.
무슨 향기일까?
진하게 났다가 약하게 났다가...
어디서 나는 향기지?
뭐지?
남산에 들어 향기와 함께 걷고 있다가는
방장님도 맡고 있는지 물었어요.
"방장님 어디서 좋은 향기 계속 나지 않아요?"
우띠~ 근데...
묻지 말걸 그랬어요.
그냥 혼자 상상하며
남산에서의 이 향기를 떠올려보는 것도 좋았을 것을...
앞서 걷던 방장님 손에 낀 장갑에서 나는
향기였대요. ㅠㅠ
순간 상상의 나래가 와장창...
박살...
새벽 3시 30분쯤 상서장에서 시작한 걸음~
저 수많은 불빛들로도
이 어둠을 몰아내기엔 역부족이고.
경주 남산(금오봉+고위봉)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경주에서 남산을 갔다오지 않으면
경주에 다녀왔다 말하지 말라고 했다지요.
19년 8월 초, 경주 투어를 한번 했었습니다.
방장님, 이글스님과 함께~
경주 효현동 법흥왕릉(23대)
태종무열왕릉(29대)
오릉(1대 박혁거세 / 2대 남해 / 3대 유리 / 5대 파사왕/ 혁거세 왕후 알영왕비 무덤)
삼릉(아달라 8대, 신덕왕 53대, 경명왕 54대)
지마왕릉(6대)
포석정지(신라 왕실의 별궁으로 역대 임금들이 연회를 베풀던 곳)
-->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 곳이지요.
일성왕릉(7대)
경주 나정(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신화를 간직한 곳)
월성(신라시대 궁궐이 있었던 곳)-석빙고, 첨성대 등
대릉원
통일전
정강왕릉(50대)
헌강왕릉(49대)
선덕여왕릉(27대)
황복사지 삼층석탑
진평왕릉(26대)
설총묘(아버지는 최고의 고승 원효대사,어머니는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
효공왕릉(52대)
신무왕릉(45대)
신문왕릉(31대)
탈해왕릉(4대)
흥덕왕릉(42대) 까지~
그러고보니 경주를 이렇게 한 바퀴 돌면서
아~ 남산을 올려다보며
언제 올라가 보나 그랬었었는데...
이렇게 남산을 만날 기회가 오긴 왔습니다.
경주의 남산신성은
남산의 북쪽에 있는 신라시대 산성으로
진평왕 13년(591년)에 축조되었고
문무왕 19년(679년)에 증축.
얼마나 돌이 많았으면 그 많은 절터며, 불상, 석탑.
그것도 모자라~ 산성까지...
어두워서 제대로 모습을 마주하진 못하고...
이렇게 표지판으로~
"피리"라는 처자와 할아버지가
바위가 되어 함께 한다는 전설이...
남산과 형산강 너머 서쪽으로 자리한 망산~
옛날 경주의 이름은 서라벌 또는 새벌
새벌은 동이 터서 솟아오른 햇님이
가장 먼저 비춰주는 광명에 찬 땅이라는 뜻.
어느날 이 땅에 두 신이 와서
아름다운 땅 새벌을 보고는 좋아하고 있었는데...
처녀가 "산 봐라!"하고 소리 지르자
그 자리에 두 신은 그대로 산이 되어버렸다는 전설이...
남산은 남자 산, 망산은 여자 산
19년도 경주 투어 걸어가며 망산을 바라봤었는데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더라고요. 아직도 기억나요.
이렇게 어둠속이지만 표지판에 랜턴 빛 비춰가며
주변 살펴보며 올라왔습니다.
남산의 금오봉(468m)
구미에도 유명한 금오산이 있는데...
김시습의 그 금오신화와 둘 다 관련이 있는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저는 구미의 금오산도 가보질 못해서.. 모르니까...
신라 32대 효소왕 시절 비파골에 관한 전설~
남산의 금오봉과 고위봉 사이 가장 큰 계곡인 용장골
용장골 계곡에 있었던 용장사는
통일신라시대법상종을 개창한
대현 스님이 거주하신 곳이며
조선 세조 때의 대학자이자 승려인 설잠스님
바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죠.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집필한 곳
수양대군의 단종 왕위 찬탈 소식에
스스로 머리 깎고 전국을 유랑하다가
31세~37세까지 7년간
경주의 남산 바로 이곳 용장사에 칩거
자왈(子曰)...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맞춰 익히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논어' 학이(學而)편
김시습(金時習)의 이름은
논어의 '시습'과 같지 않을런지...
김시습 이름 석자 남산에서 기억해보며
생육신의 한 사람
사랑을 주제로 했던 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
그는 이곳에 머물며
어떤 세상을 꿈꿨을까?
그의 강직함이 엿보였던 시 한 수도 잠시 소개.
한명회가 압구정에서 지었다는
靑春扶社稷(청춘부사직)
白首臥江湖(백수와강호)
젊어서는 나라를 위해 몸 바쳤고
백발이 되어서는 강호에 누웠노라
위 시에 답시를 냈던 김시습
靑春危社稷 (청춘위사직)
白首汚江湖 (백수오강호)
젊어서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더니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히네.
사육신인 박팽년, 유응부, 성삼문의 시신을
목숨 걸고 수습하였던 대쪽같았던
멋지다!~ 김시습
요즘 신문이나 뉴스 보면
(사실 잘 안보게 됩니다. 제대로 된 말들이 없어서...)
할말은 안하고
도대체가 하지말아야 하는 말들만 난무한데
김시습 같으신 분 어디 없나?
제대로 할 말 눈치 보지 않고 해내고 마는
죽음도 각오하며 소신껏 움직이는.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 수리는 높은 곳을 말하는데
남산에는 세 곳의 높은 봉우리가 있으니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두 봉우리의 삼각형 위치에 해당하는 이곳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어둠속에서 보이던 고위봉
봉화대 능선으로~ 새벽 5시가 넘고.
갈림길이 하나 나오니 방장님 대뜸...
혼자 갔다 오래요.
이 어둠 속에서?
그래서 1초 고민좀 하다가는
가볼까?
부처님의 산인 경주 남산이니까~
뭣이 무섭겠어~~
그러고는 혼자 산속에 숨어 있다는 삼층석탑 찾으러
랜턴 하나 달랑 들고 갑니다.
사실 몇 발짝 가다보니
쫌 무섭더라고요.
좁디 좁아서 등로 길다운 길도 아닌데...
어째 자꾸 내려가는거 같고.
길은 분명 외길이었는데
놓친 길이 있었나 의심도 해보며.
실거리는 사실 얼마 안되는데
밤중 혼자 걷는 첫 길은
왜 온 신경이 곤두서게 되는지...
한 걸음이 열 걸음은 되는듯 왜 그리 멀게만 느껴지는지
짐승들이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튀어나올까 쫄고.
갈림길이 나오고 이정표 따라~
근데 이번에는 푹 꺼졌다 올라가는 길인데...
어라?
저기 넘어 가면 진짜 탑이 있긴 있나?
뭐 보이는건 없는데...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가볼 만큼은 가봐야겠죠.
아~ 다행이다!
여기 꽁꽁 숨어있었구나.
어찌 이런 깊숙한 숲 속에 홀로 이렇게 탑이 서 있을꼬~
탑돌이를 혼자 하고 있으니
방장님 저 혼자 보내놓고는 불안했던지
쫓아 오셨더라고요.
뭐하냐고 하시길래~
"탑돌이하며 소원 빌고 있죠!^^"
천년세월~ 그리고 그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탑 앞에 와서 소원을 빌고
탑돌이를 했을까
그 많은 바람들이 다들 잘 이루어졌을까...
남산 용장 계곡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절터에 있는 경주 남산 용장계 지곡 제3사지 삼층석탑
무너져 있던 것을
2002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이곳 홀로 찾아올 때는 그렇게 먼거 같더니만...
방장님과 배낭 내려놓은 삼거리로 가는 그 길은
뭐 그리 가깝기만 하던지...
칠불암 갈림길에서 봉수대 방향 능선으로~
힌등산, 명활산, 대덕산 방향~
경주 남산의 고위봉 봉수대 안내판 살펴 보고~
봉수대의 흔적 찾아서 위쪽으로 올라가 봐야죠.
돌무더기가 쌓여 있는 이곳...
봉수대봉을 지나~
좌측으로 꺾어져 내려 서고.
저곳이 치술령(767m)이래요.
저는 이름만 들어봤지. 가보지를 못한 곳
고구려와 일본에 볼모로 잡혀갔던
눌지왕(19대, 재위 417~458)의 두 동생
박제상은 고구려에 있던 복호를 먼저 데려왔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도 구출해 신라로 보냈지만
정작 자신은 탈출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는데요.
그의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
일본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죽어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었다고 전하는 곳입니다.
이곳에 오르면 울산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하니
치술령 망부석이 저기 높은 곳 어디쯤 있겠구나...
저곳에도 꼭 서보고 싶어지고!
박제상의 부인이 치술공주.. 그래서 치술령이라.
박제상의 아들
'백결선생 떡방아~'라는 수식어로 더 유명한 박문량
"거문고의 명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이런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탓은 아니었을지...
하~ 어둠 속에서 열심히도 왔어요.
날도 이제 밝았고
잠시 앉아 쉬어갑니다.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측면에 쓰여 있던 문구...
이렇게 걷다가 만나니 예사로 보이질 않고.
대아미타사 갈림길을 지나...
남산의 금오봉으로부터 마석산~ 묵장산의 치술령까지 길이 있는가보네요.
천년지기 여인길이라...
마석산 정상 도착...
어느 분의 후기글 보다보니 이 마석산 정상석
울산의 산이지부장님이 제작해서 이렇게 세워놓으셨다고 하던데...
맞아요? 산이지부장님??
우와... 마석산과 어떤 인연이 있으셨을까??
이곳에서 마석산 정상석 바라보며
잠시 한숨 돌렸다가...
마석산에서 조금 진행해 가다보면...
마석산의 최고 명물 맷돌바위... 짜잔~
크기를 짐작할 수 없을 땐...
사람이 함께~
근데 이쪽에서 보는 것보다...
돌아나가 앞쪽에서 만나본 맷돌바위...
그 앞으로 작은 봉분이 보이시나요?
무덤...
방장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 설마 설마..
진짜요?
경주시 내남면의 마석산 맷돌바위의 유래
맷돌바위 정상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10바퀴
땅을 바라보며 10바퀴를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을 들은 인근의 어느 여염집 아낙이
자식이 없어 걱정에 걱정을 하다가
마석산 맷돌바위에 올라
맷돌바위를 가운데 두고
하늘 보며 10바퀴, 땅 보며 10바퀴 돌다가
그만 어지러워서 떨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방장님이 이 유래가 진짜일까
아랫마을 어르신께도 여쭤봤었다고 하시네요.
근데 이 맷돌바위말입니다.
저 안에 부처님 두 분 계실 듯
그래 보이지 않나요?
주변의 나무 가지치기 하고 정리를 하고 있더라고요.
가려져 있던 그 아름다움이
이제는 가려질 수 없이 만 천하에 드러나니...
어느 석공의 손을 통해서든
불심의 마음이 이곳에도 새겨질 듯 합니다.
신라가 992년에 끝나지 않고
천년을 넘어 이어졌었다면...
남산(금오산)을 지나 이곳 마석산까지
불상의 모습이며 석탑 등이 진즉 이곳저곳에 만들어졌을텐데...
마석산에도 꽤나 멋진 바위들이 산재해 있으니...
묵장산, 치술령 조망해보며...
우와~ 이런 시그널을 보고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저는 글씨 읽기도 힘들구만...
신경수 선배님의 오래된 시그널을 방장님 반갑게 마주하시네요.
맷돌산이라고도 불리는 마석산(摩石山)을 내려서고...
가야할 산길이 앞에 보이고...
아름다운 우리나라 능선 산길에
철도가 놓이고 도로가 놓여도...
산꾼들에게 능선에 대한 포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석산을 내려서면 명계천이
우리 앞을 또 가로막고 있지만
때론 이렇게 무덤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내려가서 도로를 건너가야하는데....
가파르기가 뭐~ 상당합니다.
옆쪽으로 우회해서 잡목을 뚫고 내려서서...
오른쪽에 보이는 주황색 지붕 건물과 좌측 건물 사이로 난길로 올라가서
산으로 들어야 합니다.
내려서서 위의 두 도로를 통과해서 걸어 가다가~
좌측 산 방향으로 진입.
저 앞에 산에 어찌 올라간다~ 공사중인거 같은데...
산이 깎이며 모양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밤에 절개지를 올라가는건 좀 위험할 것도 같은데..
방장님이 앞장서고 제가 뒤를 따라
절개지를 기어 올라 산 능선으로 붙습니다.
능선에 올라 붙어서 우리가 걸어온 마석산 방향 바라보며...
오~ 여기는 무슨 바위들이 꽃핀 것 마냥
석문처럼 양쪽에 서 있네요.
어서오시라고... 이 산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산과 인접한 기슭 곳곳이 파헤쳐져
세워진 공장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산의 능선이 뒤죽박죽~ 어떻게 연결해야할지...
저는 일단 방장님 따라 가니...
제가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꽤나 이 구간은 머리 아플 듯 합니다.
걸어온 마석산 방향 뒤돌아 보고...
반가운 J3클럽 수도권지부 시그널 담아보고...
냉천 재내 공단 임도길을 가로질러
경주시 외동읍 제네리와 냉천리를 이어주는 도로
마석산(摩石山) 남쪽
명계리 제내리 냉천리쪽으로
왜 유독 산업단지들이 많을까요??
울산과 인접해서일까?
봄이 온듯
순한 털처럼 폭신폭신한 산길 따라~
의도치 않게 만나게 되는 이런 모습들과 마주할때
이녀석도 매일매일 커가며
경주를 내려다 보며 아름드리가 되겠지요.
꼭 바위가 아닌 이녀석 속에도
부처님 한 분쯤 살고 계실것 같고...
저절로 나오는 한마디
아미타불...
찾았다!
J3클럽 예전의 시그널~
이 귀한 시그널이...
^^
이제는 시그널을 달지 않는다는 방장님
혹시라도 본인이 달았던 시그널을 보게 되면
이제는 수거하곤 하신다는...
오전 11시가 넘어 당채산 정상에 서고...
여기 시원하게 조망이 굿~
야~ 좋다~
지도에는 특별하게 표기되어 있지 않던데...
누군가 특별하게 이름 붙인 산인가?
마석산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철로길
신경주역과 울산을 잇는...
지적 표시도 담아두고.
방장님은 뭘 담고 계실까요?
냉천1리 마을로 내려가서 저 논길을 따라 산 능선으로 붙어가야하는데...
경주 시내권에서 가장 높은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 아래를 계속 내려다보며 저한테 질문하셨어요.
어느 쪽이 높은 것 같이 보이느냐고??
이때까지도 저는 그걸 왜 묻는지 몰랐어요.
후에 이걸 가지고 지도보며
엄청 머리 쥐어뜯을 줄...왜 몰랐을까.
자료 찾아보며
비단 저만 그런게 아니었던 것도 알았구요.
이렇게 산꾼들이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했던 흔적들...
저도 사실 강력하게 2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심의 여지 없이.
아~ 방장님이 산 위에서 벌판을 내려다보며
어느쪽 방향이 높은거 같냐고 물어보신 뜻을...
산 위에서 내려다 보면 논이 수평인게 아니고 층이 져 있었어요.
진행방향으로 보자면 왼쪽 토성소류지쪽 논 층이 높더라고요.
야산을 깎아내버려서 논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겠구나.
마루금이라고 해서 꼭 근처에서 높은 곳이 아니라고도
방장님이 말씀하셨구요.
저는 단순히 있는 지도 모습 보고
산 능선쪽으로 연결하면 되겠지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단순한게 아니래요. 이 구간이...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들 고민했었던 것이고.
빨간선 1번
마석산 방향으로 가면 일단 현재 원동천 물길을
명확하게 건너게 되고.
현재 물길을 안건너게 되는게
하늘색 선과 연두색 선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또 작은 똘 개천 같은 것이 있기는 하더라고요.
냉천1리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는 곳에.
근데 저는 이건 농지정리하며 그냥 임의로 만든거라
생각했었거든요. 천의 물길이 아니라~
농지 정리를 하며 물길에
손을 댔는지 안댔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방장님은 그래서 이 길이 맞다~ 저 길이 맞다~
장담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동네 어르신이 계셔서 물어봤는데
사실 그분도 잘 모르시는 듯 했고.
토성소류지는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는 하셨어요.
아래 땅에서 솟아나는건지.. 그러시며...
이게 참 어려운 거구나..
마루금 길을 찾아간다는게
그냥 지도만 보고 가면 되는게 아니었구나...
아~ 어렵다.
천향길은 일단은 지맥길은 아니니 통과~
지맥길 할 때 더 많이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논길 사이로 난 길 따라 걸어~~~가며
주변 지형도 좀 살펴보고...
어디서든 걷다보면 답이 찾아지지 않을까...
마침 마당에 계신 동네 어르신이 보이길래
잠시 멈춰서서..
마루금에 대한 답을 찾을까하여~
쫌 길게 대화를 이어나가 보는데...
역시 답은...ㅠㅠ
순지마을 장구뱅이길로 올라와 산길 이어갑니다.
지맥길을 찾아가다보면
도심을 지나는 경우도 많다더니
이렇게 경지 정리를 잘 해놔도 길 찾기가 애매하네요.
이곳 한곳이라도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는데
도심 지맥은 어찌 갈꼬~~@@
아~ 사람들이 길 더럽다는 표현...
이제야 이해가 슬슬 되기 시작합니다.
걷다보니 병든 소나무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바짝 말라서 노랗게 죽어버린 나무들.
그래서 산림청에서 나무들 관리를 하고 있는 띠지가 붙어 있고...
원고개로 향하는 지맥길이라는
준희 선배님의 샤뱡샤방한 이정표~
확인샷 한번 반갑게 해주고 갑니다.
늘 후기 올리면 잘 봤다시며
인사 전해주곤 하시는 준희 오라버니
^^
~므흣~
아~ 다 내려왔네요.
원고개에 도착~
호미지맥길은 횡단보도 건너서 쭉 앞으로 직진해서 가면 되지만...
우리는 기다리는 분이 계셔서~
그리고 우리는 지맥길이 아니니까~
이름도 괴상한~ 괘릉(??)도 만나보고 가야죵^^
괘릉(원성왕릉) 가는 길쪽 청풍한우집에서
이글스님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원래 경주 이글스님과 셋이 함께
경주 천향 산행하기로 의쌰의쌰~그러고
온 경주였는데...
이글스님이 출발지로 오셔서는
몸 상태가 너무~ 메롱인 상태라
아무래도 산행 힘들것 같다셔서
부득이 방장님과 둘이 산행이 되어버렸었네요.
계획되지 않았던...
사실 방장님이 백두대간 이후 저랑 단둘이 산행
다시는 안한다고 호언장담했었더랬거든요.
둘이 발이 너무 안맞으니까...^^
이해는 하는데... 우짭니까~
이글스님이 같이 걷는다고 오라고 안했으면
아마 지금쯤 집에서 띵까띵까 온갖 게으름 피우고 있었을텐데...
이글스님이 사주신 맛난 고깃국 먹고
다음길 이어갑니다.
괘릉.. 원성왕의 능입니다.
근데 왜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었느냐...
묘 아래 물이 있대요. 물은 물인데...어떤 물이냐...
원래 묘지에 물이 있으면 지금 같으면 묘를 쓰지 않잖아요.
찾아보니 연못이라고도 하고
또 시신을 안치하려고 땅을 팠더니 물이 나왔지만
물이나온다고 다른 곳에 안치하지 않고
그대로 이곳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왕의 유해를 수면 위에 걸어 안장하여 괘릉(掛陵)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원성왕은 38대 왕.
돌사자가 두 쌍씩(각기 다른 방향으로)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서있고
사방을 감시하며 지키고 있는 것이겠죠.
또 문인상과 무인상이 무덤 앞에서 지키고 서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서역인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서양 사람 닮았다고 해서...
신라 역대 왕들 중에서
이렇게 무덤에 문인상과 무인상(서역인상)이 있는 곳이
제가 알기로는 총 3곳
33대 성덕왕릉과
이곳 38대 원성왕릉
그리고 42대 흥덕왕릉
29대 태종무열왕(김춘추)으로부터 이어진 혈육
그의 아들 문무왕이 30대
문무왕의 맏아들 신문왕이 31대
신문왕의 장남 효소왕이 32대,
그리고 33대 성덕왕
성덕왕의 왕릉에서 처음 보여졌던 무인석과 문인석(서역인상)
성덕왕이 당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주력했다고 하구요.
그래서 재위 36년간 결코 적지않은 46회의
견당사(遣唐使)도 보냈으며 유학생도 보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역인들과 접하게 되고
무덤 문인상 무인상에 서역인의
괴이하고 신기했던 모습이 투영되지 않았을런지...
혹자들은 서역인의 모습이 아니라
사찰의 문이나 입구를 지키는 금강역사상의
모습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더라고요.
제 눈엔 왜 조각상의 문인 무인 모습들에서
날아라 슈퍼보드~ 손오공이 떠오르던지...
아직은 추위가 남아있어
꽃망울을 터트리는 성급한 한 두 녀석들만...
길가를 밝히고 있고.
얼어 죽으면 어쩌려구.
쾌릉저수지가 있는 옆 산길 능선 길로 올라~
호미지맥 산길로... ^^
아~ 요놈요놈.. 요 이쁜놈좀 봐라~
노루귀꽃이 방긋 올라와 웃고 있네요.
아~~~ 참말로 곱다!!
겨우내 잡목들이 제법 세력을 뻗쳐놔서 요래요래~
멀리서 보였던 풍력발전기
이제 눈 앞에 보이기 시작하고...
지난번 해안길 걸을 때 봤었던 풍력발전기와
역시 돌아가는 속도가 다르더라고요.
토함산과 삼태봉 갈림 분기점을 지나고...
임도 내려서기 전,
바람이 없는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갑니다.
토함산의 바로 옆 남동쪽에 있는 조항산 정상쪽에 경주 풍력발전소
일명 바람의 언덕
총 7개의 풍력발전기가 있다고.
차 다니는 임도길 따라 엄청 엄청 엄청 가야해요.
지루하고 또 지루하고
차가 다니니 위험하기도 하고...
정신놓고 가다가는
위험하니 특히 주의!!
여기 지도가 어디냐면요.
도로따라 가는데 약숫물 나오는 곳이 있더라고요.
먹어봐야죠. 방장님캉 크게 한모금씩 들이켜고 갑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일주문이 나옵니다.
^^
토함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석굴암
1995년 유테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
땡~~ 땡~~
딩~~~ 딩~~~
댕~~~~ 댕~~~~
쉼없이 들려오는 종소리
치는 사람에 따라 그 울림의 소리도 가지각색이라..
통일대종 타종
1000원을 내고 칠 수 있대요.
번뇌가 사라지며 지혜가 생겨나고 고통을 여의며
정신통일이 쉽게 이루어진다고.
그냥 누군가 치는 그 종소리가
저는 참 듣기 좋네요.
방장님과 저는 토함산 등산로로 오릅니다.
종소리는 점점 멀어져가고...
우리 온다고 또 이렇게...
귀빈접대^^
야자수 깔판도 빤짝빤짝 새로 깔아뒀네요.
이렇게나 등로 좋게 해놓기도 쉽지 않을텐데...
간간히 하산하시는 분들도 있고.
석굴암 매표소쪽에서 오니 금방이네요.
5시... 그래도 해 있을때 올라와서 다행입니다.
해 있을 때 하산 가능할 듯 하니 또한 다행이고.
배낭안에는 아직도 먹을 것이 많아서...
빈 몸으로 올라온 듯한 젊은 등산객들 보이길래
아껴두었던 빵 XX도너츠도 나눠먹고,
짜먹는 꿀도 나눠먹고...
그분들 지금 정상석 뒤에 숨어 있어요^^
이 친구들은 올라오느라 힘들었는지... 기진맥진...
아마도 보불로삼거리에서 올라온 듯...
우리와 반대편에서 올라왔으니...
이렇게 토함산의 기운 받으며 기분좋게 먹거리 나눔 보시도 하고...
이제 어두워지기 전에 언능 내려가야죠.
토함산의 하산길... 우왕~~~
나무들 사이로 저녁 노을이 점점 짙어져가며...
어느 순간 어둠이...
아직 6시 30분 정도 밖에 안됐는데...
산 속은 어둠이 빨리도 찾아 듭니다.
보불로삼거리쪽으로 내려서다가 우리는 대덕산으로 들어야하니
좌측으로 꺾어져 내려섰고.
시그널들이 있어서 처음엔 길 찾기 괜찮더니.
어느 순간 시그널도 보이질 않고...
낙엽이 많이 쌓여 있어 길찾기도 쉽지 않네요.
일단 아래로... 계곡길 따라...
다행이 계곡에 물도 말라서 없는 상태라...
"같이가요. 방장님...."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사이가 멀어지면 불안해서...
방장님은 앞장 서서 길찾느라 후다닥~
거침없이 앞으로 전진 중...
블루원 옆길따라 올라가다가~
대덕산 방향으로 산길 진입하고요.
밤 숲길 들어왔는데...
여긴 공사중인건가? 역시 파헤쳐져 있고...
길 찾기 힘든 곳들이 좀 보이는 부분
길이 보이다가는
또 길이 사라져 버리고...
어둠속에서 길 찾기 까다로운 곳에서
아는 시그널 만나니 그렇게 반갑더라고요.
방장님도 저도... 고맙데이~^^
그렇게 인사했습니다.
지금은 진주에 계시는 죽천님의 시그널
며칠 전에 달아놓은 듯 깨끗한 모습
그러고보니 얼굴 뵌지가 1년 전인 작년 2월 말
죽천님 제주에 계실 때 엘리 언니랑 제주 해안길 한바퀴 갔을때
산방산 아래 유명 맛집에서 제주삼합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었지요^^
토함산에서 대덕산~형제봉~낭산까지 이어지는 단맥길
죽천님 언제 이 길을 다녀가셨던 걸까나요?^^
단맥길을 걷는 분들은 도대체
그 단맥길을 어찌 찾아서 어찌 걸을까요?
10km이상 30km미만의 단맥길
대간/ 정맥/ 지맥/ 단맥....
암튼 산꾼들 중에 대단하신 분들 참 많네요.
도로길로 내려서서 보문카라반파크글 돌아 내려오다가..
뭐 사먹는건 이제 포기할 시간인지라...
ㅠㅠ
방장님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인데도...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따뜻한 커피와
짜먹는 음료수를 구해가지고 오셨어요.
방장님의 능력은 늘 생각하는 것 200% 초과 달성...
우왕~~ 방장님 최고!!
도대체 어떤 기술이 있으면
이런걸 구해오실 수가 있지?!~
도로따라 한참을 가다가
폐기물처리장건물을지나 위로...
산길로 들어 힌등산을 지나...
명활산성...하면 비담의 난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질 않죠.
647년 1월 선덕여왕 재위 16년,
최고 관직 상대등 비담이 일으킨 난
비담이 이곳 명활산성을 근거지로 월성의 왕실에 반기를 들었었지요.
선덕여왕은 몸이 좋지 않아 이미 다음 왕위를
사촌이었던 승만공주 진성여왕에게 선위했었고
비담은 여주불능선리(女主不能善理,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라 하여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관군에게 평정.
이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죠.
명활산성에서 보니 월성쪽으로 밤에 별이 떨어지더랍니다.
비담이 옳다쿠나~ 하며
명활산성 군사들에게
"월성에 별이 떨어지니 선덕여왕의 운이 다하였구나. 선덕여왕이 죽는다.
하늘도 우리를 돕는구나."
반란군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져 승리가 눈앞...
이때 나선 이가 있었으니 김유신.
밤에 허수아비를 연에 묶고 불을 붙여 하늘로 올려보내니..
그 모습이 멀리서 보니 어제 떨어졌던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듯 보였다고...
그렇게 왕실의 군대 사기가 높아지며 반란군을 진압하게 되었다는
연에 관한 이야기.
선덕여왕은 반란 중에 승하했고 진덕여왕이 즉위를 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선덕여왕이 묻힌 그곳...
우리가 마지막으로 들르게 될...
명활산성에서 내려서면 선덕여왕의 아버지
26대 진평왕릉(재위 579~632) 재위기간만 53년.
보문동 벌판의 평지에 자리잡은 진평왕릉
도대체 수령을 가늠하기도 힘든
굵직한 몸체를 그대로 땅속에 드리우고 서 있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노거수들 곁을 지나
멋진 소나무 인사를 받으며
제대로 귀빈 대접 받고 만날 수 있는 진평왕
진평왕은 어쩜 자신을 찾을 선덕여왕이나 가족들에게
편한 휴식처를 선물하고 싶어
이곳에 묻혔던 것은 아니었을지...
유치원생 초등학생들이
봄 가을 소풍 오면 참 좋을 것 같은 곳
누구나 와서 맘껏 뛰놀 수 있고
쉬어 갈 수 있는 곳.
진평왕릉은 맏딸이었던 선덕여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떠났고
단군 이래로 전례가 없었던 첫 여왕이었지요.
선덕여왕은 아버지 산소가 잘 보이는
인근 낭산에 묻혀...
어쩜 이 둘은 전생에서도 귀한 인연이었을 듯.
그리고 후세에 다시 태어나셨다면
또 보통의 인연은 아니게 만나셨을 듯.
이곳은 정말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동화속 같다고나 할까요^^
경주 갈 일 있다면 진평왕릉 꼭 가보세요.
경주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
신문왕이 죽자 아들인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692년에 세운 탑
어둠속에서 저 홀로 빛나고 있던 탑 하나...
진평왕릉에서 선덕여왕 만나러 가는 사이에 만날 수 있습니다.
의상사 절 옆 좁은 길을 통해 낭산으로
신라 천년의 향기의 대미
마지막으로 들를 선덕여왕릉
신라 56대 왕들 중 같은 이름을 가진 왕이 있었으니...
바로 선덕왕
한 분은 27대 선덕왕(덕만 공주, 632~647년 16년간 재위)
또 한 분은 37대 선덕왕으로
17대 내물마립간 왕의 10대손(780~785년 재위)
그래서 원래는 선덕왕이었던 덕만 공주를
후대에 구분하기 위해 선덕여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그리고 첫 여왕이라 특별함이 있으니
그렇게 부르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암튼 저는 우리 덕만 곤주마마~
선덕여왕님 만나뵈러 갈껍니다. 빨리~
아~ 역시 곤주마마 만나러 가는 길은 특별합니다.
이토록 많은 매화꽃이 곤주마마 왕릉 앞이라고
앞다투어 피어있고요.
어쩜 진짜 이곳이 도리천인가?
꽃이 피고 향기가 진동하는...
밤에 피어 있는 하얀 매화꽃은 나무가 춤을 추는 듯 보입니다.
황홀하죠.
진평왕릉의 봉분만 있던 모습과
선덕여왕의 왕릉은 조금 다른 모습이죠.
봉분 주위로 돌을 쌓아서 지지를 해준 모습이며
혹시 산 중이라 짐승들 때문에 그랬을까요?
과거에 수해를 입어 선덕여왕릉이 무너졌었는데
근세 들어 무너진 부분을 복원하느라 돌기단을 세운 것이라고 하네요.
예전에는 봉분만 있었던가 봅니다.
선덕여왕릉도 아버지 진평왕릉의 모습처럼 소박하게...
그 아버지에 역시나 그 딸^^
선덕여왕의 이 왕릉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해서
확실히 무덤 주인이 알려진 무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선덕여왕이
"내가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에 묻어 달라." 고 유언하자
신하들이 도대체 도리천이 어디냐고 여쭈니
선덕여왕이 "낭산 남쪽 봉우리"라 대답하였다고 전합니다.
선덕여왕이 승하하자 낭산에 장사를 지냈고
그 후 문무왕이 선덕여왕릉 밑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워
선덕여왕의 예언이 적중했다고들 했다고 합니다.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의 정상에 있는 도리천(忉利天)
신라 왕실의 왕릉은 크게 3기로 나뉘게 되는데요.
1기 - 1대 혁거세~22대 지증왕 시기로
경주 분지 내 왕릉을 축조했구요.
2기 - 23대 법흥왕~36대 혜공왕까지
풍수지리적 조건을 충족하는
주변 산록 등지에 2기 이상 군집을 형성
3기 - 37대 선덕왕부터는 더욱 왕성에서 멀리 떨어진
경주 분지 하천 유역에 위치
29대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의 누이 문희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던 문무왕
선덕여왕이 647년 승하하고
문무왕 19년(679년)에
선덕여왕의 무덤 아래 사천왕사를 처음 건립.
불경에 말하기를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하므로
그제야 선덕여왕의 신령하고
성스러움을 알 수 있었다."
어둠속에서 찍었던 사천왕사지 터의 모습.. 보이는게 없네요.
19년도 8월 경주 이틀간 돌아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찾았던 경주
2023년 02월 25일(토)
새벽부터 시작된 하루치 산행
사실 사천왕사지는 예전 그냥 흘려버렸었는데...
이런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었다니.
경주 월성을 호위하는
신라 천년의 향기 산길을 만나봤으니
그리고 남천이 그 안에서 유유히 흘러간다는 것도.
경주를 다시 한번 돌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깁니다.
4년전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보물같은 것들과
분명 만나게 될 것 같아요.
절과 불상, 그리고 석탑은요.
사람이 만들잖아요.
그래서 그 모습들에 투영된 것들은
그것을 만든 주변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자신의 모습이겠지요.
경주 신라 천년의 향기는
아마도 경주에 가서 어떤 길이든 걸어본다면...
내 주위를 스치고 지나는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얼굴들과 불상들의 얼굴에서 겹쳐지는
부처의 모습
"당신은 부처님입니다."
방장님의 얼굴에서도,
정말 오랜만에 만나 반가웠던 이글스님의 얼굴에서도
저를 향해 환하게 웃어주던 그 미소
그게 바로 부처님의 미소가 아니었을지...
"곤주~마마~~~"
ㅎㅎㅎ
경주에 가서 천년의 향기 길을 걷고 났더니
방장님께서 저에게
곤주마마라는 칭호를 내려주셨네요.
아~ 듣기 좋다!
나는 부처님입니다.
나는 "곤주마마~"입니다.
^^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어느덧 3년이 넘었네요, 저길 걸어본 지가.
같은 길을 걸었으면서 지리깽이님은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는 건지.
나는 앞사람 종이리만 내려보며 죽어라 걸었던 거 같은데, 1월이라 추위에 좀 떨었던 거 같고.
그런데 깽이님은 한반도 남부의 역사와 문화와 지리를 소상히 꿰뚫고 다니시니. 클라쓰의 차이랄까.
암튼 부지런히도 걸으시네요. 해 뜨는 경주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
괘릉을 보고 있으니 ㅋ~ 약 4년전 한 달 동안 경주 출장가서
어두운 새벽에 조깅했던 추억이 있어요.
수고하신 산행기 잘 봅니다.
자하 신경수 선생님
산줄기를 강의하고
이론과 실무
단매.분맥은 거의끝나가시는
대단하신 대선배님
저랑은 반대방향으로 걸었네요.
후기 읽으며 추억속을 함께 걸어봅니다.
마석산 멧돌바위 아래 암릉길 오른다고 식겁한 기억이 있는데
깽이님은 안전한 곳으로 내려가셨네요.
방장님이 배려하셨나 봐요~~
수고하셨습니다.^^
조선 500년을 지켜봤던 一川一江 청계천과 한강이 있었다면
신라 천년을 지키던 一川一江 으로는 형산과 남천이 있었죠
남천따라 펼쳐지는 남산과 마석산 그리고 토함산
낙동정맥길에 크고 장대했던 기운이 하나로 모였던 낭산과 반월이 있었기에
천년이란 역사를 간직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동안 따라다니면서 배우고 익힌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역사 공부 잘 하고 갑니다
장문의 글 잘읽었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오늘은 출근은 했지만 잠시 여유을 가지고 ~~~~~~~~~~~~
잘보고 갑니다. 늘 건강하게 안산 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