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선물, 인간의 욕망이 덫을 놓아 비극을 잉태한 발칸반도(1)/전성훈
슬로베니아, 작지만 아름답고 부유한 발칸의 나라
올 여름이 되면 손자가 태어난다. 지금 손녀딸을 돌보고 있는데 축복 속에 손자가 태어나면 우리 부부는 몇 년 동안 마음 놓고 여행을 떠날 수 없다. 향후 우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아내가 그 전에 길을 나서고 싶어 하며 고른 곳이 발칸반도이다. 몇 년 전 예능프로그램에 상당한 재능을 보이는 어느 피디가 제작한 “꽃보다 누나”가 종편에 방영된 이후 우리나라 중년 여성들이 꼭 가보고 싶어 하는 제 1순위 로망이 발칸지역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유럽의 변방으로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린 발칸에 대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었다. 사라예보는 1차 대전의 발발지이며, 70년대 초 우리나라 이에리사와 정현숙 선수가 국제탁구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곳이다. 2차 대전 후 오스만 트루크 왕국이 해체되면서 발칸의 많은 나라들이 독립하였다. 발칸반도를 좌우에서 둘러쌓고 있는 아드리아해와 에게해, 프랑스 출신의 전설적인 영화 음악 제작자 “폴모리아”의 유명한 ‘에게해의 진주’의 황홀한 선율에 취해서 아드리아와 에게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발칸의 역사와 지리, 인종과 문화, 종교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았다. 여행 기간 내내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전공하였던 여성 가이드의 해박한 문화 역사 지식과 유려한 말솜씨 덕분에 나 자신도 덩달아 교양이 풍부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번 여행의 일정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아, 크로아티아 순으로 이루어졌다. 여행기를 쓰면서 국가별로 구분하여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실제 여행 순서와 조금 다르게 기록하였다.
발칸(VALKAN)은 터키어로 산, 산맥 그리고 초록색의 땅이라는 의미다. 16세기 오스만 트루크 족의 오스만 제국이 발칸반도를 통치하면서 유럽 문화에 이슬람 문명이 접목되었다. 중세 시대 유럽에는 세 가지 재앙이 있었다. 하나는 당시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휩쓸어버린 흑사병(페스트)와 둘째는 엄청난 메뚜기 떼의 공격으로 인한 심각한 기근, 마지막으로 오스만 트루크족의 유럽 침공이었다.
4월 12일(수) 발칸반도를 향하여
23:55분 정각, 터키 항공 여객기는 인천 공항을 출발하였다. 야간비행이라 승객들이 모두 잠들었는지 기내 분위기가 너무나 조용하였다. 그럼에도 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평소 잠자는 시각 밤11시를 한 시간 이상 놓쳐버린 탓이었다. 야간비행 도중 두 번씩이나 기내식을 먹고 잠을 청하려고 눈을 감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는 것처럼 두 눈을 감은 채 힘든 야간 비행을 감당하였다. 11시간의 비행이 처음도 아닌데 상당히 힘든 비행이었다. 이제 장거리 비행이 부담스러워지는 나이가 된 모양 같아서 조금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중간 경유지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여 해프닝이 벌어졌다. 공항버스를 타고 환승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에서 여행 가이드를 만나기로 했는지 아니면 환승 게이트에서 만나기로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누가 우리 일행인지 모르는 채, 수많은 사람들 틈에 끼여 환승절차를 마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여 통로에서 일행과 가이드를 기다렸다. 십여 분가량 기다려도 가이드가 보이지 않아서 출국 게이트 23번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가이드와 일행을 만났다. 일행 30명 중 우리 부부만 보이지 않는다고 약간 소동이 벌어졌는가보다. 아내가 가이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상황을 설명하였다. 가이드가 우리 부부를 잃어버린 줄 알고 서울의 아들에게 전화를 하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이 소동으로 이번 여행 내내 줄곧 가이드 옆에 붙여 다니며 설명을 잘 듣고 친하게 지냈다.
4월 13일(목)
슬로베니아 루블랴나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터기 이스탄불 공항에서 대기하였다. 새벽 시간임에도 이스탄불 공항은 북적거렸다. 2015년 여름 유럽 여행을 할 때 들렸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 약 2시간 20분의 비행 끝에 오전 8시 조금 지나 슬로베니아 루블랴나 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 카드를 작성하지 않고 여권만 제시하여 입국 심사는 간단히 끝났다. 처음 대하는 이 곳의 공기는 상당히 맑고 깨끗하였다. 미세먼지 공포에서 벗어나니 기분이 좋아 크게 숨을 들어 마셨다.
< 블레드 (BLED) >
루블랴나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약 30분 정도 달려 유네스크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율리안 알프스의 진주’라고 불리는 ‘블레드'로 이동하였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 보이는 산 속의 집들이 스위스 산간 마을과 비슷하였다. 그런데 지붕의 색깔이 빨강색의 스위스에 비하여 검정색과 회색 일색이어서 왜 그럴까 하고 의문이 들었다.
인구 6,000명의 작은 호수 마을 블레드는 소박하면서도 특색 있는 자연경관이 일품이다. 1855년 스위스 의사 아놀드 리클리가 요양소를 설치하면서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고 한다. 블레드성(城)은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 위에 우뚝 솟아있는 요새와 같은 성으로 800년 동안 유고슬라비아 왕가의 여름별장이었다. 블레드성에는 왕족들만 미사를 드렸던 자그마한 경당이 있다. 블레드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유고연방 티토 대통령과 회담한 곳이기도 하다. 브레드성에서 내려다보이는 빙하호수인 브레드는 에메랄드빛으로 너무나 고요하고 아름답다. 호수에 비친 작은 배 모습(플레타나)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환상적이고 매혹적이다. 호수 건너편에 앙증맞은 모습의 바로크 양식 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의 종을 세 번 울리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기에 누군가를 그리며 가볍게 줄을 세 번 흔들며 빌었다. 브레드에서 들리는 관광객들의 말소리는 독일어와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한국어이다.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슬로베니아에서 기아자동차 로고를 보는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 루블랴나 (LJUBLJANA) >
블레드 구경을 마치고 슬라브어로 사랑이라는 뜻을 가진 슬로베니아의 수도 루블랴나로 향했다. 루블랴나로 가는 왕복 4차선 고속도로 주변에는 노란 민들레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고, 단층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 평화로워 보였다. 촌락이 있는 곳은 여지없이 뾰족한 종탑이 보여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임을 알려주었다. 문득 지난 11월 하순 페루 ‘우루밤바’에서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로 갈 때 지나갔던 길의 아름다운 풍광이 떠올랐다.
루블랴나는 고대 로마 시대에 에모나(EMONA)로 불린 지역으로 당시의 유적과 중세 유럽 문화가 잘 보전되어 있다. 루블랴니챠강을 따라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구시가를 구경하였다. 시내중심 광장인 프리셰르노브 광장은 슬로베니아 민족시인 프란츠 프레셰렌의 동상이 있다. 광장은 젊은이들이 낭만을 구가하는 중심지로 여행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토모스토베’다리, 일명 트리플 다리라고 불리는 다리가 ( 인도교- 교통수단 다리- 인도교- 목재다리- 석조다리) W자의 형태로 연결되었다. 다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구경하였다. 도착한 날이 마침 부활절을 앞 둔 성목요일이었다. 고풍스런 성프란치스코 성당에 들어가 보니,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서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신자들의 모습이 눈에 띠었다.
숙소인 메노드(MENOD)호텔은 이름은 호텔인데 우리나라 00장 급이다. 저녁 식사는 현지 음식으로 빵 한 가지, 단출한 과일 두 가지 그리고 칠면조 고기국물에 당면 같은 가느다란 국수 몇 가닥의 짜디짠 국물이 전부였다. 음식은 형편없었지만 도시가 깨끗하고 공기가 너무 좋아서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4월 14일(금)
< 포스토이나 (POSTOJNA) >
석회암이 용해되어 침식되며 생성되는 카르스트(KARST)동굴, 세계에서 두 번째 규모의 카르스트 동굴인 포스토이나로 가는 길, 고속도로 주변은 평야이고 시선을 들어 멀리 바라보면 온통 산과 산뿐이다. 물이 오르는 4월이라 눈에 보이는 만물은 모두 초록색 일색이다. 봄은 자연에게 이렇게 생기와 활력을 주는 계절임을 다시 일깨워준다.
세계 최고 여행 도시 (LONELY PLANET IN THE WORLD 51)에 선정되었던 포스토이나 동굴탐험은 예전에 내가 보았던 제주도 만장굴이나 단양 고수동굴과는 너무나 차원이 다르고 격조가 다르다. 정말 조물주의 완벽한 창조 솜씨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동굴 길이 20Km의 슬로베니아 최고의 관광지다. 동굴열차를 타고 20분 정도 들어간 다음 걸어서 구경하는 동굴 관광, 동굴 입구를 조금 지나자 찬 기운이 엄습하였다. 수십만 년 전부터 생성된 자연의 춤추는 그림자가 이 자그마한 지역에 천혜의 자연관광 자원을 제공해준다. 종류석과 석순이 서로 맞닿아 이어진 모습, 에메랄드 빛 브릴리안트로 불리는 석순의 모습, 10,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콘서트홀도 있을 만큼 규모가 거창하고 웅장하다.
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이 여기에 석유를 비축하자, 슬로베니아 유격대가 침입하여 불을 질렀다. 출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콜타르’가 덕지덕지 붙어 검게 그을린 자국이 보였다. 그렇게 처참하게 상처를 입은 동굴은 자연 치유력을 발휘하여 세월의 도움으로 서서히 본래의 제 모습을 되찾아갈 것이다.
< 피란 (PIRAN) >
피란은 아드리아해를 사이로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마주하고 있어 과거 중세 시절 베네치아 공화국에 복속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피란은 베네치아(베니스)를 많이 닮아 작은 베네치아라고 불리며 슬로베니아어와 이탈리아어가 공용어이다.
로마제국 시절, 로마로 가는 길(ROMAN ROAD)의 표징은 길 양편에 소나무가 일렬로 가지런하게 심어져 있는 모습인데, '피란'으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도 그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아드리아해는 ‘아들라’섬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피란’이 일본 만화 ‘미래소년 코난’에 등장하여 일본인이 많이 찾는 지역이라고 한다. 돌이 깔린 좁은 골목이 길게 뻗어있고 오렌지색 지붕의 집들이 빼곡히 들어 서 있다.
피란에서 슬로베니아 국경 검문소를 건너 크로아티아 국경으로 들어섰다. 중동지역 특히 시리아 난민 문제로 유럽전체가 머리를 맞대고 이런저런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유럽의 골치 아픈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슬로베니아는 과거 불법 난민들이 유럽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이용되었다. EU 가입국가들이 솅겐조약에 의거 중동 지역 밀입국 난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하여 국경 검문이 갈수록 까다롭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슬로베니아 국경 검문소에서 개인별 여권 검사를 받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여 조금 가더니 다시 정차하였다. 이번에는 크로아티아 국경 검문소이다. 여기서는 여성 근무자가 버스에 올라와서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크로아티아로 입국하여 로비니( ROVIN)의 수호성녀 ‘유폐미아’ 유해를 모신 성당을 구경하고 로브란(LOVRAN)항구로 이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