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권 이정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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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손민호 기자
# 기차 타고 배 타고
1895년 알래스카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사람이 몰려들었고 길이 닦였다. 그맘때 알래스카 철도도 생겼다. 남쪽 항구도시 스워드에서 앵커리지를 거쳐 북극권 거점도시 페어뱅크스까지 알래스카를 종으로 가르는 800㎞ 길이의 알래스카 철도다.
그 철도가 지금은 관광용으로 쓰이고 있다. 관광열차는 모두 3개 구간이 있는데, 개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는 해안열차를 탔다. 앵커리지에서 스워드까지 약 200㎞ 거리를 4시간20분 동안 달린다. 이층버스 모양 일반 객차 위에 유리 천장을 얹어 전망이 좋다.
해안열차는, 북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꼽히는 스워드 하이웨이를 따라 달린다. 알래스카 남쪽 해안을 옆에 끼고 달리고 키나이 산악지대를 오르내린다. 흥미로운 경험은 곰·독수리 따위의 야생동물을 구경하는 일이다. 열차가 아예 멈춰 서 관광을 돕기도 한다. 그러니까 알래스카 열차는 일종의 사파리 열차인 셈이다. 편도 1인 130달러.
열차가 도착한 스워드는, 알래스카 남부 피오르 해안을 아우르는 키나이 국립공원 여행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크루즈를 타고 키나이 국립공원을 돌아다닌다. 크루즈는 시간과 코스에 따라 6개가 운영 중인데 그중에서 4시간30분짜리 크루즈를 이용했다. 크루즈도 알래스카 열차처럼 야생동물을 코앞에서 보는 재미를 제공한다. 해안 바위 위에서 놀고 있는 수천 마리의 바다사자와 물개, 배를 졸졸 따라다니는 고래가 아직도 선하다. 1인 89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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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 세 가족
앵커리지에서 페어뱅크스로 가는 3번 고속도로를 올라탔다. 그리고 5시간쯤 신나게 달리니 디날리(Denali) 국립공원이 나타났다. 디날리 국립공원은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를 품고 있다. ‘디날리’는 알래스카 원주민 언어로 ‘가장 높은 봉우리’란 뜻. 광활한 산맥과 거침 없는 봉우리에서 신성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디날리 국립공원을 체험하는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툰드라 윌드니스 투어(Tundra Wilderness Tour). 버스를 타고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탐방로를 8시간쯤 다녀오는 프로그램이다. 오전 6시쯤 출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1인 149달러.
국립공원 초입은 아직 기다란 침엽수림이 촘촘히 숲을 이루고 있다. 1시간쯤 달리니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는 일반 차량의 출입이 통제된다. 이제 더 이상 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툰드라 지대에 들어선 것이다. 툰드라 지대는 산림 한계선 너머의 영역이다.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키 작은 관목·초목 따위나 자라는 동토 지대다. 멀리서 구름에 휘감긴 매킨리 연봉이 보인다. 정상은 보이지 않지만, 눈이 녹지 않은 산자락이 거칠다. 저 산자락 어디에서 한국 사람이 죽었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故) 고상돈 대장이다.
툰드라 윌드니스 투어는 알래스카 사파리 투어의 대표라 할 만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대한 평원과 산기슭에서 인간의 방해 없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 야생동물을 한껏 구경할 수 있다. 곰은 물론이고, 늑대·여우·산양·순록 등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나타난다. 가장 인상에 남는 건 그리즐리 곰 세 가족이다. 20여m 앞에서 어미와 새끼 두 마리가 평화로이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그리즐리 곰은 인간을 잡아먹는, 가장 위험한 종류의 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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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극권 탐험
북극권(Arctic Circle)이라는 용어가 있다. 여름엔 해가 지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있어야 하며, 겨울엔 해가 뜨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있어야 북극권이 된다. 위도로 보면 북위 66.33도 이북 지역. 알래스카 면적의 약 4분의 1이 북극권이다.
그 북극권을 탐험하는 여행상품이 있다. 아크틱 서클 어드벤처. 페어뱅크스에서 소형 버스를 타고 콜드풋이란 도시까지 올라갔다가 거기서 경비행기를 타고 페어뱅크스로 귀환하는 일정이다. 오전 5시에 출발해 오후 6시가 넘어야 일정이 끝난다. 1인 359달러.
페어뱅크스를 벗어나 2시간쯤 달리니, 유명한 알래스카 파이프라인이 보인다. 북극해 연안의 석유를 알래스카 남부 스워드까지 실어 나르는 송유관이다. 송유관은 길이가 1250㎞로, 산맥 세 개를 넘고 하천 800개를 건넌다.
5시간을 달려 마침내 북극권 이정표 앞에 섰다. 여기서 뜻밖에 민들레를 봤다. 하나 민들레의 질긴 생명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북극권 이정표에서 1시간쯤 더 올라간 버스가 잠깐 멈췄다. 그리고 푸른 툰드라 대지를 밟았더니 발 아래가 물컹거린다. 가이드가 땅에 난 작은 구멍에 손을 넣어보라고 시킨다. 손목까지 넣어봤더니, 글쎄 차가운 얼음이 만져진다. 그러니까 지평선을 이루는 이 초원에서 20㎝ 정도만 내려가면 빙하가 깔려 있다는 얘기다. 얼음 위에 흙이 얹히고 오랜 세월 다져진 흙 위에 풀이 자라고 꽃이 핀다. 생명은 역시 경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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