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카페지기 서봉석(소선)의 블로그
"소선의 음악이야기" blog.naver.com/bongarr 에서 옮긴 것입니다.
동양 최고의 호텔 워커힐의 글로벌 쇼-(1963~1998) 전속 빅밴드 이야기
[아래 내용중 호텔 연혁 관련 내용은 Daum백과의 기업사전 중 SK네트웍스 (주)워커힐 을 참고했음]
1950년6.25전쟁으로 인해 한국에 참전했다가 1953년7월 휴전이 성립된 후 장기적으로 계속 주둔하게 된 주한 미군들이 한국에
서 휴가를 보낼 장소가 없다보니 휴가때 일본으로 가게 되는것을 안타까워 한 우리 정부에서는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의 주도
로 국내에 미군들이 쉬면서 즐길 수 있는 휴양시설을 만들기로 계획하여 미국의 협조를 얻어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 기슭
에 호텔을 짓기로 했다. 그에 따라
1961년11월 현재의 워커힐호텔 위치에 사단법인 "워커힐"을 설립하게 된다.
(워커힐로 호텔 이름을 지은 이유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7월에 한국에 파견되어 작전을 지휘하던 미8군사령관 월튼 해리
스 워커(Walton Harris Walker 중장 1889~1950)장군이 한국에 육군 장교로 참전한 아들 샘 워커가 1950년12월23일
이승만대통령으로 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게되어 축하차 찝차로 이동하던 중 경기도양주군노해면(現 서울시 도봉구 도봉동)
에서 한국 육군6사단 수송대의 민간인 수리공이 수리된 차를 시승 운전 중, 실수로 장군의 찝차와 충돌하여 워커장군이 사망
하는 사건이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때의 전공으로 미 육군의 영웅이라 불리워지던 워커 장군을 기리는 의미에서 호텔이름을
워커에서 따왔고 호텔의 위치가 아차산 언덕이었기에 힐(Hill=언덕)을 붙여서 워커힐이 된 것이다.)
1962년에는 같은 해에 발족한 국제관광공사(현재의 한국관광공사)에서 인수하여 운영하게 된다. 휴가 관광을 일본으로 가는
주한미군을 수용하려면 일본의 휴양지를 능가하는 시설이 되어야겠기에 당시로서는 최고의 시설로 준비하게 된다
1962년12월26일에 워커힐호텔 준공기념 축하공연을 열게 되는데 당시에는 국내에 국제적 감각의 쇼단체가 미8군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뿐이기에 미8군 연예대행업체인 (주)한국흥행(=화양 및 3개 회사) (주)유니버설에 의뢰하여 멋진 공연을 펼쳤다.
그후로는 재빠르게 워커힐 자체에서 국내 최고를 지향하는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라스베가스式 쇼를 창출해 낸다.
아래 공연은 1962.12.26. 워커힐호텔의 준공기념 공연에서 미8군쇼에서 활동하던 공연단체의 출연장면이다.
40초부터 잠시 보이는 악단은 미8군쇼에서 고급스럽기로 유명한 트롬본의 송민영이 리드하는 Tommy Ario Show 밴드이다.
이 악단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원형의 입체식 회전무대(본무대와 객석사이에 있는)를 지하층에서 타고 오르내리면서 연주
를 해 관중들을 놀라게 했다. 2분16초에서부터 무용단 사이로 잠시 보이는 보면대 쪽이 初代 전속악단인 여대영악단이다.
https://youtu.be/8lk0gMdpY1Y ← 클릭하시면 동영상이 나옵니다
1963년3월 에는 UN군 R&R(Resort & Recreation)센터로 지정 되었고
1963년4월8일부터 2주간을 워커힐 호텔 개관기념공연을 거창하게 꾸몄다. 헐리우드의 공연기획자인 스티브 파커가 기획을 맡고
재즈의 원조 루이 암스트롱이 출연하면서 홍보의 효과를 톡톡이 본다. 이때의 전속악단은 당시의 유명 트럼펫 솔리스트이며
MBC라디오경음악단의 단장인 여대영이 맡았다. 워커힐쇼의 대명사격인 하니비쇼는 당시 국내 무대에서는 볼수 없는 늘씬
한 여성무용수들의 라인댄스가 일품이어서 장안의 화제꺼리였다.
아래의 동영상은 1963.04.08.워커힐호텔 개관기념공연의 하니비쇼 공연장면이다.
1분45초부터 루이 암스트롱의 뉴올리언스재즈밴드의 공연장면이 이어진다
https://youtu.be/OMHdiMkM2G0 ←클릭하시면 동영상이 나옵니다
♬ 1963~1998 국내 하나뿐이었던 외국인 고객을 위한 재즈빅밴드 공연장 - 워커힐호텔 극장식당
국내에서는 미국의 라스베가스쇼 스타일의 쇼를 하는 곳으로 빅밴드가 출연하는 오직 한 곳 -
1963년4월8일에 개관했을 때에는 워커힐 호텔의 구본관 1층의 퍼시픽 나이트클럽의 공연장뿐이었다.
1965년에는 한일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일본 관광객들이 워커힐을 많이 찾게 된다.
1973년에 선경그룹(현 SK그룹)이 국제관광공사로 부터 인수받아 민영화 된다.
1978년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쉐라톤과 계약을 맺고 쉐라톤워커힐로 명칭 변경, 대규모로 증축하여 지상 18층,객실 538개를
확보하고 지하 1층에 72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야금극장식당을 개관함으로서 동아시아 최대의 공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공연장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짓기 위해 라스베가스의 쇼 디자이너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세트 디자이너를 영입하여
가야금극장식당을 완성하였다.
1978년에는 워커힐 민속공연을 시작했으며1983년에는 워커힐 민속무용단을 설립 1999년까지 한국의 민속 공연을 계속하였다.
1979년에는 공연의 글로벌화를 위해 워커힐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종래의 하니비쇼를 유지하면서 외국의 공연단체와 연예인을
초청하는 업무를 직접 맡게 되었다.
1998년에는 1963년 개관이래 꾸준히 이어 오던 워커힐 쇼의 중추적 역할을 해 온 전속악단인 빅밴드가 심한구악단을 끝으로 막
을 내리게 된다. 이 시절에는 악단의 역할이 주로 외국 쇼의 반주를 담당했었다.
(90년대 중반부터는 국내의 대규모 국제적 공연행사와 대규모 TV쇼가 넓은 운동장에서 관객동원을 하는 등 워커힐 호텔의 쇼보
다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되니 그간의 워커힐 쇼의 매력이 반감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되어 내린 처방이리라. 또한 워커힐에도
외국인 관광객과 더불어 내국인의 중장년 관광객이 많다 보니 워커힐 쇼 관객이 줄어드는 추세였었다.)
워키힐호텔에서의 악단 연주음악이 본격적인 재즈는 전혀 아니지만 시중의 일반 악단에 비해 이곳에서는 외국 쇼처럼 미국 음악
을 비롯 세계 여러나라의 음악들을 연주하다보니 자연히 파퓰러한 외국 음악을 주로 연주했기에 국내에서는 드물게 재즈빅밴드
의 면목을 세운 악단이기도 했다. 손님이 대부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이었기에 국내 곡은 민요 이외에는 별로 없었고 대부
분 외국 팝송과 무용곡들이었다.
개관 초기부터의 악단을 열거해 보면
여대영 악단(1963~)→
최창권 악단(1964~)→
이 윤 악단(1965~)→
정서봉 악단(1970~)→
맹원식 악단(1974~)→
정서봉 악단(1976~)→
맹원식 악단(1979~)→
심한구 악단(1985~1998)
워커힐의 악단 편성은 Sax.4~5, Trumpet 2~4, Trombone 2~4, Rythm 4 지휘 1 정도로 13~18인조를 유지했었다.
초기에는 완전 18인조 빅밴드 편성에서 1970년대 부터 13인조로 축소 구성.
초기에는 회사측에서 전속악단의 악기 전체(관악기,리듬악기)를 최고급으로 구입해서 단원들이 그 악기로 연주했었다.
워커힐 전속악단장 중에는 방송악단장이 3명 있었고 편곡자로도 유명한 분들이 4명이 있었다.
여대영(Trumpet - MBC라디오악단장, MBC-TV악단장,작곡, 편곡)
최창권(Piano - TBC라디오악단장,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작곡, 편곡)
정서봉(Trombone - 미8군쇼 편곡, MBC-TV악단장)
맹원식 (Tenor Sax. - 편곡자)
워커힐 전속악단이 막을 내린 이후에는 한국의 민속 관련 프로그램으로 쇼를 유지했었다.
2002년에는 한국 전통민속공연 "가련"
2008년에는 가야금극장식당을 "워커힐 시어터(Walker Hill Theater)"로 명칭 변경
2010년에는 워커힐 한국 공연 "꽃의 전설"
2012년에는 위 "꽃의 전설"을 폐지하고 50년간의 화려했던 워커힐 쇼의 막을 내리게 된다.
2017년에는 워커힐 독자 브랜드로서의 "그랜드 워커힐 서울" 로 이름과 운영체제를 바꾼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쉐라톤" 과 1998년 쉐라톤을 인수합병한 세계적인 호텔그룹 "스타우드 호텔&리조트"와
맺었던 2004년 개관한 W호텔 도 2017년 독자 브랜드 "비스타 워커힐 서울"로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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