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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박식함과 학자에 대하여
1.
가르치고 배우기 위한 많고 다양한 학교와 수많은 학생과 교사를 보면, 사람들은 인류에게 통찰과 지혜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교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가르친다. 그들은 지혜를 얻으려고 열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혜의 겉모습과 신용을 추구한다. 그리고 학생은 지식과 통찰을 얻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떠벌이기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배운다. (378쪽)
2.
나이를 불문하고 온갖 부류의 대학생과 대학 교육을 받은 자는 대체로 지식을 얻으려 하지 통찰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 많이 아는 체하는 사람들의 인상적인 박식함을 접하면 나는 이따금씩 이렇게 중얼거린다. 저렇게도 읽은 책이 많은데 생각은 그렇게도 하지 않다니! (379쪽)
3.
많은 독서의 배움이 자신의 사고를 중단시키듯이 많은 글쓰기와 가르침도 지식과 이해의 명확성과 철저함의 습관을 자연히 버리게 한다. 명확성과 철저함을 얻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379쪽)
4.
위대한 일을 하려면 학문을 하는 것이 목적이고, 다른 모든 것, 즉 생존은 단순히 수단이어야 한다. 그 자체 때문에 하지 않는 모든 것은 대충 하기 쉽다. (...) 연구의 직접적인 목적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얻는 자만이 새롭고 위대한 기본 통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80쪽)
5.
가발은 순수한 학자 그 자체를 의미하는 잘 선택된 상징이다. 그것은 자신의 머리칼이 부족할 때 남의 풍부한 머리칼로 머리를 꾸며 준다. 박식하다는 것도 남의 생각을 잔뜩 집어넣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380쪽)
6.
딜레탕트, 딜레탕트라니! 학문이나 예술을 해서 수입을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마음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하는 자들을 경멸하는 투로 딜레탕트라고 부른다. 그들은 학문이나 예술로 돈을 벌어야만 즐겁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멸은 곤궁이나 배고픔, 또는 탐욕의 자극을 받아야만 어떤 일을 진지하게 할 것이라는 그들의 저급한 확신에서 기인한다. 대중도 같은 견해다. 그 때문에 대중은 '전문가'를 대개 존경하고 딜레탕트를 불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딜레탕트에겐 그 일이 목적이고, 전문가에겐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일을 직접 중요하게 생각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 일에 몰두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하는 자만이 매우 진지한 자세를 가질 것이다. (381쪽)
7.
괴테도 색채론 분야에서 딜레탕트였다. (...) 그들은 좀 더 잘 이해하는 자들이 전문가일 거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교양 대중은 어떤 일로 밥벌이하는 자들을 그 일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과 혼동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일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 그토록 많이 생겼지만, 실은 그곳에 많은 멍청이가 죽치고 앉아 뽐내고 있는 이러한 대학이 대체 무엇 때문에 존재한단 말인가? (382-383쪽)
8.
독일 학자는 너무 가난하기도 해서 솔직하거나 명예롭게 행동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왜곡하고 비틀고 순응하고, 자신의 확신을 부정하고,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가르치고 쓰며, 굽실거리고 아첨하며 편드는 것, 그리고 장관이나 권세 있는 사람, 동료, 대학생, 서적상, 비평가와 친교를 맺는 것, 요컨대 진리나 남의 공덕보다 오히려 모든 것을 고려하는 것이 그의 처세이자 방식이다. 그로 인해 독일 학자는 대체로 사려깊은 사기꾼이 된다. (384쪽)
9.
학자 공화국에서는 대체로 멕시코 공화국에서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멕시코 공화국에서는 각자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고, 자신을 위한 명성과 권력을 추구하며, 전체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다가 망하고 만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자 공화국에서는 각자 명성을 얻기 위해 자신만 인정하려고 한다. 그들 모두가 의견 일치를 보는 유일한 일은 정말로 탁월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385쪽)
10.
교수와 독립적인 학자 사이에는 예로부터 가령 개와 늑대 사이에서 볼 수 있는 어떤 대립관계가 존재한다. 교수는 자신의 위치에 의해 동시대인에게 알려지는 데 큰 이점이 있다. 반면에 독립적인 학자는 자신의 위치에 의해 후세에 알려지는 데 큰 이점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유와 독립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385쪽)
11.
온갖 종류의 지식 중에서 대부분은 언제나 종이 위에만, 즉 종이에 기록된 인류의 기억인 책 속에만 존재한다. (...) 도서관만이 인류의 확실하고 영속적인 기억이며, 인류 개개인은 모두 매우 한정되고 불완전한 지식을 지닐 뿐이다. (386쪽)
고전어를 어중간하게 배워서는 아무 소용 없고, 그러다간 일반적인 인문주의 교양이 부족해진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다른 분야를 수용하지 않는 배타적인 전공학자는 평생 동안 특정한 나사나 갈고리, 또는 특정한 도구의 손잡이나 하나의 기계만 만드는 공장 노동자와 비슷하다. (387쪽)
인문주의의 참된 교양은 다방면의 지식과 개관 능력을 요구하므로, 학자에게는 좀 더 높은 의미에서 뭔가 박식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철두철미한 철학자가 되려고 하는 자는 인간 지식의 가장 동떨어진 양 끝을 연관시킬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어디에서 그것들이 언젠가 함께 만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일급의 정신은 결코 전공학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생존 전체를 문제로 삼는다. 그런 사람은 어떤 형식과 방식으로든 그 문제에 관한 새로운 해결책을 인류에게 제시할 것이다. 사물의 전체와 위대함, 본질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을 자신의 업적의 주제로 삼는 자만이 천재라는 명칭을 얻을 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 동안 사물 상호 간의 특수한 관계를 정리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천재라고 부를 수 없다. (387쪽)
12.
일반적인 학자어로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고 민족문학의 소시민 근성이 도입된 것은 유럽의 학문에 진정 불행한 일이었다. (...) 피히테, 셸링, 마지막으로는 헤겔적인 엉터리 학문의 도깨비불이 휘황찬란한 횃불을 올렸다. 그 때문에 괴테의 색채론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나 또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 나는 학술서적에, 그리고 식자층이 보는 잡지, 심지어 대학에서 발행되는 잡지에 그리스나 라틴 저자가 쓴 대목이 독일어로 번역되어 인용되는 것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퉤, 빌어먹을! 너희는 구두장이나 재단사를 위해 글을 쓰는 거냐? (...) 그 정도가 되면 인문주의 취향, 고상한 감각은 이제 모두 안녕이다! (...) 애국심은 학문의 영역에서 세력을 얻으려고 한다면 내던져 버려야 하는 지저분한 녀석이다. (388-390쪽)
13.
남아도는 대학생의 숫자를 줄이고 그들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음과 같은 법칙을 정해야 한다. 첫째, 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안 되고, 학생 명부에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고전어의 구술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그렇지만 대학생이 되면 군 복무를 면제받아야 한다. 그로써 대학에 다니면서 학자라는 명성에 수여된 최초의 훈장을 받는 셈이다. (...) 둘째 모든 대학생은 1학년 때는 오로지 철학 강의를 들어야 한다는 법칙을 정해야 한다. (391쪽)
제8장 독자적 사고
1.
아무리 많은 지식이라도 자신의 사고로 철저히 다듬은 지식이 아니라면 양은 훨씬 적어도 다양하게 숙고한 지식만큼 가치가 없다. 알고 있는 지식을 모든 방면으로 종합하고, 모든 진리를 다른 진리와 비교해서야 비로소 자신의 지식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하고, 그 지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알고 있는 것만 면밀히 숙고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면밀히 숙고한 것만 정말로 안다고 할 수 있다. (393쪽)
2.
독자적 사고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과, 독서가 정신에 미치는 영향 사이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큰 차이가 있다. (...) 독서는 우리가 순간적으로 갖고 있는 정신의 뱡항이나 기분, 너무나 낯설거나 이질적인사고를 마치 도장을 찍듯이 정신에 강요한다. (...) 독자적 사고를 하는 경우 정신은 순간적으로는 외부의 환경이나 어떤 기억에 좀 더 좌우된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의 충동을 따른다. (394쪽)
용수철에 무거운 짐을 계속 놓아두면 탄력성을 잃듯이, 많은 독서는 정신의 탄력성을 몽땅 빼앗아 간다. 그러니 시간이 날 때마다 아무 책이나 덥석 손에 쥐는 것은 사고를 갖지 못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학자란 책을 많이 읽는 자들이다. 사상가, 천재, 세상 사람을 깨우쳐 주는 자, 인류의 후원자는 직접 세상이라는 책을 읽는 사람을 말한다. (394-395쪽)
3.
독서에서 얻은 남의 생각은 남이 먹다 남긴 음식이나 남이 입다가 버린 옷에 불과하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자신의 생각과 책에서 읽은 남의 생각의 관계는 마치 봄에 꽃이 피어나는 식물과 돌멩이 속에 든 태곳적 식물의 화석의 관계와 같다. (395쪽)
4.
독서는 독자적 사고의 단순한 대용품에 불과하다. (...) 수호신의 인도를 받는 사람, 즉 독자적 사고를 하고,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올바로 생각하는 사람은 올바른 길을 발견하는 나침반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사고의 샘이 막혀 버렸을 때만 독서를 해야 한다. (...) 독자적 사고를 해서 알아낸 것은 책에서 그냥 얻은 것에 비해 100배는 더 가치 있다. (395-396쪽)
사상가와 단순한 학자의 차이도 이런 사실에 기인한다. 따라서 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정신적 획득물은 올바른 빛과 그림자의 배합, 은은한 색조, 색채의 완전한 조화로 살아 있는 한 편의 빼어난 아름다운 그림처럼 보인다. 하지만 단순한 학자의 정신적 획득물은 알록달록한 색으로 가득하고 체제도 정돈되어 있지만, 조화와 연관성이며 의미가 결여된 커다란 팔레트와 같다. (397쪽)
5.
독서란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는 대신 다른 삶의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스스로의 생각으로 엄밀하게 완결된 체계는 아니더라도 항상 연관성 있는 전체를 발전시키려고 할 때 끊임없는 독서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 강하게 흘러 들어오는 것만큼 불리한 작용을 하는 것은 없다. (397쪽)
사상가 자신의 생각은 파이프 오르간의 기초 저음처럼 항시 모든 음을 지배하며 결코 다른 음에 묻히는 일이 없다. 반면에 단순히 박식하기만 한 사람은 온갖 음조로 이루어진 누더기 음이 갈핑질팡하는 바람에 기본음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398쪽)
* 422쪽에는 '기본 저음'이란 용어가 나옴. (박희택)
6.
독서로 일생을 보내고 여러 가지 책에서 지혜를 얻은 사람은 여행 안내서를 잔뜩 읽고 어느 나라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얻은 사람과 같다. 이런 사람은 많은 정보를 줄 수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나라의 사정에 대한 일목요연하고 분명하며 철저한 지식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이와 반대로 일생을 사고하며 보낸 사람은 직접 그 나라에 갔다 온 사람과 같다. 이런 사람만이 그 나라의 실제 모습을 알고 있고, 그곳의 문제를 일목요연하게 꿰뚫고 있으며, 진정으로 그곳 사정에 정통하다. (398-399쪽)
7.
책에만 매달리는 평범한 철학자와 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역사 연구가와 목격자의 관계와 같다. (...) 책에만 매달리는 철학자는 이런저런 사람이 말하고 생각한 것이나,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이 반론한 것 등을 보고한다. (399쪽)
독서를 하면 언제나 우리의 방식이 아닌 방식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 우리 대신 생각해 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너무 많은 독서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정신이 대용품에 길들여져서 생각하는 것 자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 독서할 때보다 현실 세계를 바라볼 때 독자적 사고를 할 계기와 기분이 훨씬 자주 일어나므로 책을 읽느라 현실 세계의 모습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401쪽)
독자적 사고를 하는 자는 진지하고 직접적이며 본래적인 특징이 있고, 모든 사고나 표현에 독창성이 있다. 반면에 책에만 매달리는 철학자는 죄다 남의 손을 거친 것이고, 개념도 남의 것을 받아들인 것이기에 중고품을 잔뜩 모아 놓은 것과 같아서 복제품을 다시 복제한 것처럼 희미하고 흐릿하다. 그리고 틀에 박힌 진부한 상투어와 잘 통하는 유행어로 이루어진 문체는 직접 화폐를 주조하지 않아서 순전히 외국 동전만 쓰는 작은 나라와 같다. (401쪽)
8.
단순한 경험도 독서와 마찬가지로 사고를 대신하지 못한다. 순수한 경험과 사고의 관계는 먹는 것과 소화나 동화 작용의 관계와 같다. (401-402쪽)
9.
정말로 능력이 있는 모든 사람의 작품은 단호함과 확고함, 또한 그런 사실에서 기인하는 분명함과 명확함의 성격에 의해 다른 사람의 작품과 구별된다. (...) 제1급의 정신을 지닌 소유자들의 특징적인 자질은 모두 직접 판단을 내린다는 점이다. 그들이 제시하는 의견은 모두 그들 자신이 스스로 사고해 얻은 결과이며, 어디서나 말솜씨를 보더라도 그런 사실이 잘 드러난다. (...) 진정으로 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은 이런 점에서 군주와 같다. (402쪽)
10.
권위 있는 자의 말을 인용해서 미해결의 문제를 판정하기를 매우 좋아하고 그러는 데 급급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자기의 분별력이나 통찰력 대신 남의 것을 동원할 수 있을 때 참으로 기뻐한다. 그런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네카가 말하는 것처럼 "누구나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오히려 남의 말을 믿으려고 하기([행복한 삶에 관하여])"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논쟁할 때 즐겨 쓰는 무기는 권위다. (403쪽)
11.
현실이 아무리 아름답고 행복하며 우아하다 해도, 현실의 나라에서 우리는 언제나 중력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므로, 이러한 영향을 끊임없이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런 반면 사고의 나라에서 우리는 중력도 곤경도 알지 못하는 형체가 없는 정신이다. (403쪽)
12.
현재 어떤 사고를 하고 있다는 것은 눈앞에 애인이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고, 이 애인에 결코 무관심해질 수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안 보면 잊어버리는 법이다! 아무리 멋진 생각이라도 적어 두지 않으면 다시 기억해 내지 못할 정도로 완전히 잊어버릴 위험이 있고, 애인도 결혼하지 않으면 달아날 위험이 있다. (404쪽)
13.
어떤 생각을 해낸 사람에게만 가치 있는 생각이 많다. 하지만 독자의 반향이나 성찰에 의해 영향을 미칠 힘이 있는, 다시 말해 글로 쓰인 후에 독자의 관심을 끄는 생각은 그것들 중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404쪽)
14.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생각한 것만 진정한 가치가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사상가는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 사고하는 사람과, 남을 위해 사고하는 자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전자의 사람들이 참된 사상가이며, 단어의 이중적 의미에서 독자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들이야말로 참된 철학자인 것이다. 그들은 사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들 생활의 즐거움과 행복은 바로 사고에 있기 때문이다. 후자의 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이다. 그들은 그럴듯하게 드러내 보이기를 원하고, 세상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들은 이런 점을 진지하게 생각한다. (...) 리히텐베르크는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며, 헤르더는 두 번째 유형에 속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404-405쪽)
15.
생존의 문제, 이 애매하고 괴로우며 덧없는 꿈과도 같은 생존의 문제는 너무나 크고 절박하다. 그 문제를 잘 헤아리는 자가 그런 점을 깨닫자마자 다른 모든 문제와 목적은 그 그림자에 덮여 무색해질 정도로 생존의 문제는 너무나 크고 절박하다. (405쪽)
자연이 인간을 이미 생각하도록 정해 놓았다면 자연은 인간에게 귀를 주지 않았거나, 적어도 박쥐의 경우처럼 공기가 통하지 않는 밀폐용 덮개를 달아 주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박쥐가 부럽다. 하지만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가련하며, 인간의 힘은 자신의 생존을 유지할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묻지도 않았는데 박해자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시도 때도 없이 알려 주는, 늘 열려 있는 귀가 필요하다. (405-406쪽)
제9장 저술에 대하여
1.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저술가가 있다. 일 자체 때문에 쓰는 사람과 쓰기 위해서 쓰는 사람. 전자는 어떤 생각을 지녔거나 경험을 해서 그것을 전달할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후자는 돈이 필요해서, 돈 때문에 글을 쓴다. (405쪽)
전적으로 오직 사안 그 자체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만 가치가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저작물의 모든 영역에 걸쳐 단 몇 권의 탁월한 책만 있어도 그 이익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 위대한 인물의 가장 뛰어난 작품은 모두 아직 돈을 받지 않거나 극히 적은 원고료를 받고 글을 써야 할 때 나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도 "명예와 돈은 같은 자루에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스페인의 격언이 옳다는 것이 입증된다. (408쪽)
2.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저자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사고를 하지 않고 글을 쓴다. 그들은 기억과 추억을 바탕으로 하거나, 남의 책을 직접 이용해서 글을 쓰기도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가장 많다. 두 번째 유형은 글을 쓰면서 사고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쓰기 위해서 사고한다. 그 수는 매우 많다. 세 번째 유형은 사고하고 나서 집필에 착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고를 했기 때문에 글을 쓸 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드물다. (...) 매우 진지하게 미리 생각하고 글을 쓰는 소수의 저술가 중에서도 사물들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409쪽)
마지막에 한 말이 항상 옳은 말이고, 나중에 쓴 글은 모두 이전에 쓴 것을 개선한 글이며, 모든 변화가 진보라고 믿는 것만큼 큰 잘못은 없다. (410-411쪽)
그대 자신이 번역할 가치가 있는 책을 써라. 그리고 타인이 쓴 작품은 원래 그대로 놓아둬라. 그러므로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원래의 창작자, 창시자, 창안자의 작품이나, 적어도 전문 분야에서 정평 있는 대가의 작품을 읽어야 하며, 최신 내용이 담긴 책보다 차라리 중고 서적을 사는 편이 낫다. (...) "좋은 것은 짧은 순간만 새로운 것이므로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규칙이 적용된다. (4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