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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전태수암벽클럽 원문보기 글쓴이: 강장철
전태수암벽클럽등산학교 5기 교육등반 후기 6주간의 복잡다난했던 전암클럽등산학교 5기 교육등반 졸업식이 끝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랑은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그 댓가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전태수대장님의 등산학교설립 취지가 암벽등반교육을 제대로 받아서 어느곳, 어느암벽클럽에서 활동하더라도 가장 안전하게 등반에 임하여 등반사고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것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기때문이다. 사실, 암벽등반안전교육이라고해야 정확한 명칭일지도 모른다.
목격된다. 그것도 대장이란 작자가.. 도데체가 그런사람들이 클라이밍을 지도할 자격이 있는것인지를 되묻고싶다. 요즘 클라이밍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상황으로 실외인공암장에서 안전헬멧을 쓰지않고 등반하는 것이 일반화 되다보니 그런 습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등산학교에서도 첫 주차에 매듭법과함께 헬멧착용법을 배우게되는데 그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지도자, 대장을 절대 따르지 말것을 권고한다.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 상황은 난이도를 높이다보니 1그램이라도 가볍게 올라야 등반이되는 상황이어서 헬멧을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런 안전수칙을 모두가 정확히 지켰을때 등반은 더욱 즐거워지게 되리라.. 후기에 앞서 최소한 전암클럽멤버들은, 졸업생들은 대자연암벽 멀티피치등반에서는 반드시 헬멧을 착용함을 꿈에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당부드리고 나부터 반성한다.
2. 교육장소 : - 1주차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봉(비박 및 야영) 3. 교육참가자(존칭생략) : 황귀굉, 박선아, 한일석, 임현순, 김양수, 김봉애, 김철웅, 박종만, 정경식, 현승엽, 최영숙, 권오상, 조미진 (졸업 11명)
이해영, 박승란, 이희재, 변세환, 강장철 (강사 15명)
1주차_수리산 수암봉 전태수암벽클럽교장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는데, 인수봉의 암벽루트 100여개중 절반을 못올라가봤는데, 내가 남을 가르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전암클럽등산학교 교육생과 상면이 이루어졌다. 참으로 팔도 사나이, 팔도 여성들이 죄다모였다. 한쪽에서는 강원도 사투리, 건너편에는 경상도 아지매, 바로앞에는 전라도 아저씨, ... 대략 나이분포도는 설흔 후반에서 쉰 후반으로 막내와 최고참의 나이차이가 20여년정도 차이가 난다. 직업도 가지가지, 장사하시는분, 기업체 CEO, 주부, 택배기사, 한의원 근무하시는분, ... 이런분들이 모여서 대한민국이 이루어졌겠지.. 군대는 비슷한 나이로 입대를하니 쉽게 동기가 결성되고 한뜻을 목표로 훈련하니 결성 또한 빠르게 이루어지게되지만 나이 20년차이로 살아온환경, 직업도 가지가지에 남녀의 구분이 분명하니 배움의 속도가 일률적이지가 않아서 참으로 걱정이 많았다.
결론은 산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고 바위를 오르기위해서는 장비를 사용할 줄 알아야하고 반드시 안전교육을 받아야한다는 것을 교육생님들은 다 알고있는 상황이었다.
부터 한국인 특유의 열정들이 살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뒤쳐지면 죽는다(?), ㅋㅋ 6.25한국전쟁때문에 그런것인지는 모르지만 한국인들의 특성중 하나는 무엇을 하더라도 어영부영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전쟁을 통해서 유전적으로 강인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나역시 그러니까... 그 강인함으로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었겠지
이곳에서도 나타난다. 잘 모르시는 분들은 "드린 테이프슬링과 코드슬링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매듭법을 검색해보세요~" 미진 강사님이 외친다.
"누나, 군대가면 조교가 있는데 계덜 썬글라스를 반드시끼고 있자너~" "그거 다 이유가 있어서 끼고 있는거야~ 조교는 포스가 있어야돼~" 그랬더니 황미진 강사님은 그날 뒤풀이끝날때까지 썬글라스를 끼고있었다. ㅋㅋㅋ
그런것 같기도한데 암튼 눈이 깊고 반짝거려서 그런것 같기도하다.
다 도망가겠지요~ ^^; 이희재 고문님은 희말라야 원정대복장으로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앞에달고 멋진말씀 주신다. 역시 태극기의 위력은 대단한 것 같다. 참 힘들게 바위에다가 구멍을 뚫었는데 이렇게 사용되고 빛을 보는구나.. 나는 한편으로는 흐뭇함을 가지고 교육시간은 흘러갔다. 그 열정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개인사유로 탈퇴한 박선아, 그 진지했던 눈빛, "내가 내가 그래도 동네체육의 고수인데 이거이 잘 안되드래요~" 김양수씨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 오전 교육 준비끝!" 을 외치면서 이를 악물고 등반에 임하는 김철웅 동생.. 1주차때 팀을 나누느라 다른분들 어떻게 교육 받으셨는지 전부 다 기억은 안난다.
돈 빌려달라고 그럴까봐 괜히 쫄았다. ㅋㅋㅋ 재능기부좀 하라고 그런다. "먼데?" 설악산 케이블카 건립반대를 하는데, 거기 플랜카드, 산악회깃발 디자인을 해달라고 한다. 그래? 시간되는대로 해보마고 약속을 잡아놓고 이러저러 이야기를 하다가 지금 전암클럽등산학교 5기 교육이 막 시작되었는데 관심있으면 조인어스 하라고 권유를 했더니 흔쾌히 교육받겠다고 한다. 이렇게해서 최영숙의 전암클럽의 가입과 함께 교육이 시작이 되었다.
처음 방문한 곳인데 시설이 너무 마음에 드는 그런 곳이었다. 특히 우천시를 대비한 실내암장이 수준급의 장소로 평가하고 싶다. 오전에 실내로 들어가서 운동한 교육생님들이 그렇게 열심히 운동했는지 몰랐다. 최영숙교육생이 오전 교육을 마치고 나왔는데 세상에나 손꾸락에 물집이 몇개나 잡힐 정도 였으니 그느므 열정을 어케 참고살았는지... 그렇지만 인공암벽처럼 만들어진 등반만 하면 얼매나 좋으랴... 다가올 자연암벽, 멀티피치등반은 상상을 초월할텐데.. 교장선생님은 열심히 후등자빌레이를 가르치시고, 뒤이어 이어지는 외 주마등강훈련(저깅등반)에 교육생님들은 기를쓰고 오름짓이 이어지고 각 강사님들은 교육생들을 가르치느라고 목이다 쉴정도였다. 3주차_도봉산 용어천계곡 신선터암장
교장선생님의 계획대로 슬슬 등반 난이도를 높여간다. 오늘의 교육장소는 도봉산 용어천계곡 신선터암장!
드디어 슬랩에 강사님들이 줄을 건다. 교육생님들의 표정들이 묘하다. 저기를 어떻게 올라가... 조미진학생이 포기선언을 한다. 포기? 벌써 산악인 선서를 잊었단 말인가?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평화.사랑의 참세계를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5기 교육생님들은 전부 그자리에서 산악인선서를 했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수 많은 암벽등반지를 다녀봐도 슬랩등반 기술을 배우기에는 도봉산 신선터암장보다 더 좋은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렇게 3주차 교육은 끝났고... 4주차_하나개해벽암장
4주차의 하나개 해벽암장교육등반은 참으로 절묘한 교육이었다. 그 취지는 여러가지설(썰)이 있지만 클라이머는 등반만 잘한다고 굿 클라이머가 아니라는 것이다. 소위 낭만도 즐길줄 알아야한다는 지론이 지배적이다. 그 낭만을 즐기기 위해서는 도심을 떠난 바닷가의 한적함과 캠핑, 적당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클라이밍루트,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들.. 부드럽게 다가오는 밤의 낭만, 그것들이 서로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줄 수가 있고 자연스럽게 캠핑에 대한 상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하나개암장이 최고의 적지임에 분명해보였다.
가장 적당한 교육주간으로 선택한 교장선생님의 결정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늦어졌다. 하나개해수욕장에 도착하니 언제나 그랬듯이 대장님을 비롯 종석교무님, 미진누나, 종한선배, 병준이, 기연이형님, 수현이형, 경재형님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병준이는 전날 하나개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미 캠프는 완벽하게 구축했고 어마어마한 캠핑장비에 먹거리, 프랑스 르꼬르동블루 요리등산학교(?)를 수석 졸업한 클라이머가 3명이나 왔으니 가희 최고중의 최고 캠핑장이라고 내세울만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텐트를 구축하고 맛있는, 멋있는 저녁시간을 위해서 자일을 들고 해벽으로 갔다. 교육은 내일이므로 오늘은 강사님들에게는 자유롭고 즐거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종한선배 선등으로 가볍게 줄걸고 미진누나 뒤질세라 줄걸기 시합은 계속되고.. 탑로핑전용 자연암장에 가게되면 바위열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되는데 그것은 암벽등반이 팀 단위로 움직이다보니 다른팀이 제일쎈곳을 먼저 줄을 걸게되면 벌어지게되는 자연스러운 경쟁현상이다. "어 저거바라?" "야~ 이대장, 저기 줄거고와~" 줄을 걸게되면 그 휘하 대원들은 마치 패싸움하듯이 손꾸락이 째져서 피가나던지 말던지 바위에 피떡칠을 하면서 오르게된다. 이게 바로 바위열전으로 들어가게되는데 토요일은 우리팀밖에 없었지만 바위열전을 유발시키는 분이 있었으니... 그분이 바로아래.. 요분이다. ㅋ 포근한 날씨에 바위열전은 계속되고 기다리던 4주차 전야제행사를 위하여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쐬주로 통일하기로 하고 그 멋진날밤의 건배를 시작으로 그날의 해는 넘어갔다.
부터 '아득가' 하나는 분명하게 배웠으라고 생각하고 (아득히 솓아오른 저 산정에~)
교육 당일날 날씨가 왜 이런다냐, 그래도 우리는 간다...
교육장에 도착하니 그 유명한 하나개암장도 우리밖에 없다. 바위를 쳐다보는 교육생들 눈빛이 아득하다. 아득가를 너무 불렀나부다.. 또다시 바위열전은 시작되고, 교육받는상황이 너무 진지하다.
빗방울이 떨어진다. 바람도 불고.. 일단 철수 그렇치만 이렇게 철수한다면 전암이 아니지..
그것은 바람이 많이 불게되면 바람을 피해 등반을 할 수 있는 루트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해수욕장에서 오는방향으로 다시말하면 교육장 못미쳐서 약 100여미터 전에 안으로 들어가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다른 루트를 개척해 논것이다. 이곳에서 다시 바위열전 불씨를 피우는데... 5주차_도봉산 만장봉 낭만길 릿지등반교육 드디어 멀티피치등반 등반을 하면서 등반을 더욱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그 길을 누가, 어느산악회가 언제 길을 냈는지 그것을 알고 등반하게되면 등반의 기쁨이 배가된다는 것이다. 낭만길은 1964년 10월 1일, 요델산악회에서 백인섭, 강길건, 조상규 라는 선대 악우들께서 길을 낸것으로 되어있다. 당시의 등반장비나 상황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쌩 고생했었을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과연 지금의 모든 것들이 다 갖춰져있는 클라이머들도 그 노력과 열정이 있는지 자문하고싶다. 나부터 반성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이었으니 3년이나 흘러버렸다. 내일 첫 멀티피치등반인데 교육생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물론 강사님들이 각 피치마다 붙어서 지도해주겠지만 내심 계속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야영장의 낭만의 밤은 지나가고.. 많은 수의 교육생님들과 강사님들이 오전 일찍 석굴야영장으로 집합했다. 첫피치 등반시작점에서 등반 시작하는 찰라, 교장선생님께서 오늘 교육생이 너무 많아서 1,2피치는 우회한다고 하신다. 난이도는 약해도 20여명이 낭만길을 등반한다는 것은 무리지.. 등반속도를 계산했던 나는 20여명이 우회하지 않고 등반했다면 전 대원이 만장봉 정상에 서게되면 저녁 7시가 넘어가게 될 것이 자명해보였다. 더구나 마의 3피치 골짜기, 그곳을 등반해보신분은 아시겠지만 그곳은 한 여름 가뭄에도 크랙에 손을 집어넣으면 이끼가 손끝에 뭍어나오는 그런 기분나쁜 음지에 수직 크랙코스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대부분의 낭만릿지등반하시는 분들을 보면 3피치를 우회해서 등반하는 것이 일상화되어버린 것 같다.
우회길도 만만치가 않다. 무사히 7피치까지 완등 마지막 1피치만 남았다. 그리고 만장봉 정상 이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느낌 그리고... 하강
지금은 교육등반이지, 정규등반이 아니다. 교육생들에게 지금까지 배운것들을 제대로 실습하기위한 장이다. 지금같은 상황에서 다른대장은 어떻게 했을까, 앞뒤막힌 그런대장은 낭만길을 왔으니 그길을 재대로 타야된다 하면서 고집스럽게 등반을 고집한 대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전 인원 하강완료하면 저녁 9시, 내려가면 10시, 뒤푸리고, 강평이고 없다. 집에 가야하니까... 다시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리더는 아무나하는 것이 아니다. 배울것은 배워야 한다.
난 다른 야영장은 멋진추억이 많은데, 인수 야영장만은 그렇치가 않다. 그것은 2012년 12월 인수 혹한기훈련때 야영장에서 새벽에 당했던 트라우마때문에 그런 것 같다. 다른분들에게 그 당시 이야기를 하면 "에이~ 서울자락에서 뭔 그런일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는분이 있지만 12월의 인수야영장은 그렇치가 않다. 상상을 초월하는 바람과 함께 찾아오는 추위가 동계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야영을 했다가는 얼어죽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냥 몇시간 견디면 되겠지, 이렇게 생각했다가는 뉴스에 나올 수도 있다. 등반하다가 사고났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지만 야영하다가 동사했다면 그것만큼 미련한 죽음이 어디있으랴.. 4월16일, 17일 기상청을 뒤져봐도 영하로 떨어진다는 메시지는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나를 또 방심하게 만든 것이다. 다만 16일 저녁부터 비가 온다고 한다. 산에서 비 맞는거야 한 두번 맞아보냐, 저녁때 야영팀과 합류하려고 오는 교육생들이 더 걱정이지.. 16일 밤 7시반 수유역 출발한다고 한다. 판쵸우의를 뒤집어쓰고 하루재로 올라가서 도선사로 내려가는데 쏟아지는 빗속 백여미터 아래쪽에 헤드렌턴 불빛들이 반짝인다. "전암~" 외치니 저쪽에서 반응이 온다.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둘씩 보인다. 이 깊은 산속에 누군가가 빗속을 뚫고 마중나온다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봐도 반가울 것이다. 비는 그칠 생각을 안한다. 야영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해야할일은 텐트를 구축하는 일이다. 철웅 학생장이 텐트를 치는데 그전에 야간에 텐트치는일이 꽤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강력헤드렌턴으로 계속 비추어대었고 같이온 정경식, 황귀굉,최영숙 교육생도 저녁을 아직 들기전이라고한다. 빗속 타프안에서 비떨어지는 소리, 버너소리와 함께하는 술한잔, 이것은 정신적인 보약이라고나할까..
게다가 판쵸우의를 밖에 놔두어야하는데 그것을 텐트안으로 끌어들이니 그 습기가 텐트안면에 달라붙어 있다가 비가 더욱 거세지니 그 빗방울의 충격이 그 습기를 아래로 내려보내고 체온에 의하여 다시 올라가고 그것을 반복해서 하다보니 침낭은 안으로 밖으로 완전히 젖어버린 것이다. 방수를 자랑하는 블다 퍼스트라이트 텐트를 가지고왔지만 그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가 못했다. 정말 그날밤은 한숨도 못잔것 같다. 더구나 새벽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텐트를 날려버릴 것만 같았다. 본부동은 무사할까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몸이 추위로 꼼짝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눈 한쪽을 떠보니 텐트밖이 밝아오는 것을 보니 아침이 밝아오기는 오는가보다. 비는 그친 것 같았고 강풍은 계속 불어댄다. 사람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갑자기 반가웠다. 천근만근한몸을 일으켜 완벽하게 젖은 등산화를 신는데 그 느낌이란... 텐트밖을 나오니 내가 제일 늦게 일어난 것이다. 그래도 4년전에는 몸이 안좋아도 게으름을 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후배이면서 교육생때문에 게으름도 피울 수도 있고 참 세월가니 이런 좋은점도 있네, ㅎㅎ 새벽에 본부동이 날라갔다고 한다. 아니그럼, 교장선생님, 정경식씨는 어케된겨? 그 날씨속에 다시 원대복귀시키고 다시 잠을 잤단 말인가? 아침식사를 하고있는데 교육생과 강사님들이 온다. 참 부지런도하다. 이 아침에 먼길을 달려왔다는 것이... 역시 예상대로 오늘은 정식 졸업등반은 힘들다고 하신다. 목적지는 인수 대슬랩, 오아시스까지
무엇을 위한 시간이었나,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었는지, 그 시간에 최선을 다했는지,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줬는지... 그 도움에 보답을 바라면 안된다. 언제나 그랬듯이 사랑은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받았으니까...
설겆이.. 월요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근육통, 그 일련의 복잡한 6주간 정말 수고 많으셨고 교장선생님을 비롯, 교육생님들, 대장님들, 강사님의 열정에 감사의 인사를 장문의 후기글로 대신할까 합니다. 끝으로 알피니스트는 쉽게 이루지는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전태수암벽클럽 강 장 철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