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시리즈.
"마지막 때와 심판에 대한 경고",
3) 사랑이 식어지리라 - 불법이 성함으로 나타나는 영적 냉담 상태
성경본문 : 마 24:9~14(12)
24: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24: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24: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여러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새벽기도 가는 길이 힘들지 않았고, 성경 한 구절만 들어도 마음이 뜨거워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처음 집사가 되셨을 때, 처음 주일학교 교사로 서셨을 때, 그 열심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게 넘쳐났던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삼십 년, 사십 년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 중에는 오히려 그 뜨거움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예배는 습관처럼 드리는데 마음은 예전 같지 않고, 교회 봉사는 계속하는데 사람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줄어들고,
누군가 상처를 주면 예전보다 훨씬 쉽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됩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분들이 부분에서 예외가 아닙니다.
이게 바로 오늘 본문이 말하는 현실입니다.
"아, 내 이야기다" 싶으실 겁니다.
본문이 서 있는 자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감람산 강화라고 불리는 본문인데,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이라는 가까운 사건과,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궁극적 사건, 이 두 지평을 동시에 바라보며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여쭙습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예수님은 전쟁과 기근과 지진, 그리고 성도들이 당할 환난을 말씀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0-12)
여기서 흐름을 눈여겨보십시오.
거짓 선지자의 미혹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불법이 성하고, 그 결과로 사랑이 식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거짓된 가르침은 사람을 두려움 속에 가두고, 두려움은 사람을 자기 보존 모드로 몰아넣습니다.
은혜로 사는 삶 대신,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이웃을 향한 마음의 문이 닫히게 됩니다.
거짓말이 사람을 겁먹게 하고, 겁먹은 사람은 사랑할 여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식어지리라"는 말의 무게
"사랑이 식어지리라"에서 '식어지리라'는 헬라어로 ψυγήσεται(프쉬게세타이)입니다.
이 단어는 ψύχω(프쉬코)라는 동사에서 왔는데, 원래 뜨거웠던 것이 차가워지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냉장(冷藏)이라는 개념과 비슷한 어원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헬라어 문법상 미래 '수동태'로 쓰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이 '스스로 식는' 것이 아니라, '식혀지는' 것입니다.
즉 누군가 처음부터 사랑을 포기하려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거짓과 불법이라는 외부의 압력이 서서히 그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신 분들이 갑자기 냉랭해지려고 결심하신 게 아닙니다.
실망이 쌓이고, 배신을 겪고, 헌신이 알아주는 이 없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식어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불법'이라는 단어, 헬라어로 ἀνομία(아노미아)는 νόμος(노모스, 율법) 앞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어 α-가 붙은 말입니다.
단순히 규칙을 어기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자체를 거스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 불법이 '성한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만연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불법이 성할수록, 신기하게도 사람들 사이의 사랑은 식어갑니다.
왜냐하면 참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이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으면, 이웃을 향한 사랑도 함께 식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우리의 현실
이게 어디 종말의 어느 먼 시점 이야기이겠습니까.
오랜 세월 교회를 섬겨오신 여러분들 가운데는, 처음의 헌신이 알아주는 이 없이 반복되면서 지치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함께 기도하던 동역자에게 서운한 말을 들은 뒤로 마음의 문을 반쯤 닫아버리신 분도 계실 겁니다.
자녀를 향한 기도가 응답 없이 길어지면서,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조차 흐릿해지신 분도 계실 겁니다.
이것을 "틀렸다"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이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문제는, 우리 힘으로는 이 식어진 마음을 다시 데울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다시 열심을 냅시다"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타락한 우리 의지는 스스로 사랑을 지속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이것이 정직한 진단입니다.
하나님의 마음, 그리고 복음
그런데 본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곧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3-14)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우리가 열심히 견뎌내야 구원을 받는다는 뜻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견딤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참으로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께서 끝까지 붙들어 주심으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고백하듯, 참으로 은혜로 부르심을 받은 자는 결코 그 상태에서 완전히, 최종적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십니다.
그렇다면 식어진 우리 사랑은 어떻게 다시 불붙습니까.
로마서 5장 5절이 답을 줍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여기서 '부은 바 됨이니'는 헬라어로 ἐκκέχυται(에케케우타이)인데, 이것은 완료시제입니다.
과거 어느 순간에 부어졌고, 그 부어진 상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매일 다시 채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어졌고 지금도 흐르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근원을 우리는 십자가에서 봅니다.
마태복음 27장 46절,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외치십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 순간,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가장 완전한 차가움, 가장 완전한 버림받음을 경험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불법을 짊어지시고,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자리까지 내려가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극한의 차가움 속에서도 예수님의 사랑은 단 한순간도 식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께 버림받으신 그 순간까지도, 그분은 우리를 위해 그 자리에 계속 계셨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실망 앞에서 쉽게 식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식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불법의 형벌을 대신 지시고, 우리 대신 완전한 사랑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의 식어진 사랑을 다시 데우는 힘은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완성된 그 사랑이, 성령을 통해 지금도 우리 마음에 부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이 유일한 근원입니다.
오늘 우리가 돌이킬 것
그렇다면 우리는 이번 주에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세 가지만 구체적으로 나눠보겠습니다.
첫째, 내 마음속에서 구체적으로 식어버린 관계 하나를 이번 주 안에 떠올려 보십시오.
막연히 "요즘 사랑이 부족하다"가 아니라, "그 사람과의 관계가 식었다"고 구체적으로 이름을 붙이고,
이번 주 기도 시간에 그 이름을 놓고 주님 앞에 정직하게 아뢰십시오.
둘째, 오랫동안 교회에 나오지 않은 지체, 혹은 조용히 섬기고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분 한 사람에게 이번 주 안에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을 보내보십시오. 큰 결심이 아니라 작은 연락 하나면 충분합니다.
셋째, 매일 아침 로마서 5장 5절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으시길 권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고 선포하십시오.
감정이 따라오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붙드는 훈련입니다.
이게 쉽지 않지만 오랜 세월 상처받고 지치신 마음이 하루아침에 데워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랑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어진 사랑을 매일 다시 붙드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사랑이 식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장 차갑게 식었던 그 순간에도,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버림받으시면서까지 식지 않는 사랑을 이루신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흘러들어오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식어졌던 그 자리에, 결코 식지 않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지금도 부어지고 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