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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호]
서양 문학 속의 불교
민용태
종교나 사상, 문학에 동서양이 있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보편성이나 일반성, 즉 유니버살리티(universality)가 없는 종교나 문학이 있을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상에는 분명히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싸움인 “십자군 운동”이나 “성전”이라는 것이 있었고, 중동이나 인도차이나 반도에는 아직도 종파 사이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가 인간의 삶과 역사 속에 사는 존재 양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역사에는 처음과 끝이 있고 여기저기가 있고 내 나라 남의 나라가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불교가 서양과 기독교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붓다가 기원전 6세기에 태어났으니까 그리스도보다는 선배인 만큼 후배에게 분명히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 문학은 보편성(universality)을 바탕으로 한다. 즉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사실처럼 누구나 수긍할 수 있도록 그럴듯하게 표현하는 것이 문학이다. 과거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를 따지는 역사적 관점과는 다르다.1) 따라서 우리가 비교문학을 할 때 문학을 역사적 관점에서 보느냐 문학적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결론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요즘은 비교문학 방법이 역사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동일성 차기의 해석할 적 시각을 많이 동원한다. 그러나 애초에 19세기 문학 연구나 비교문학 필요성의 발발은 문학을 역사적 관점에서 보는 방법이 가장 학문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에서 유사성, 동일성을 찾는 해석학적 비교문학 방법과 영향 연구에 주안점을 두는 역사적 비교문학 방식을 함께 활용하기로 한다. 문학 연구가 문학 자체의 속성, 즉 주관적 보편성과 관계가 먼 역사적 관점만을 고집하는 것은 이상하다. 그렇다고 붓다가 태어나기 전, 혹은 불교를 알지도 못한 특정 문학에 불교적인 것을 심각하게 논하는 것은 공염불 같다. 우리는 문학 현상을 관찰하며 그 날줄과 씨줄의 좌표 찾기에서 타당한 진실을 알아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 서양의 붓다의 전통
오쇼 라즈니쉬는 “서양의 붓다(The Hidden Harmony)라는 헤라클레이토스 강론을 쓴다. 물론 이 제목은 역자 손민규 씨가 번역하면서 개조한 이름이지만, 라즈니쉬의 견해를 충분히 따른 것이다. 라즈니쉬는 직접“(헤라클레이토스가)만일 인도 또는 동양에서 태어났다면 그는 붓다로 알려졌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인생은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다…같은 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오직 변화만이 영원하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붓다의 “재행무상諸行無常”과 뜻과 몸을 같이 한다. 고정된 본질적 자아는 부질없는 집착이다. 그런 에고는 없으며, 모든 변화와 갈등, 모순 속에서 “숨겨진 조화 ”과 리듬을 터득하는 것이 헤라클레이토스와 붓다의 종교라고 라즈니쉬는 강조한다.2) 그래서 그랬던지 그는 그 후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서구 사상가들로부터 어두운(Oscuro) 철인, 모호한 괴변가로 왕따 당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희랍 철학의 명철한 이성 중심주의보다는 물질의 생명성, 변화 원리 보다 현묘한 “숨겨진 조화”에 더욱 치중했기 때문이리라.
물질의 기본 요소는 불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하나이며, 어느 특정한 신이나 특정한 인간에 의하여 창조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원래 자연적으로 있는, 그렇게 있어온, 또 앞으로도 있을 영원히 살아 있는 하나의 불이다. 그 불은 어떤 법칙에 의하여 불이 붙으며, 또 어떤 법칙에 의화여 꺼진다.” 이 첫 원소로부터 이어지는 변신 작용으로, 물이 생겨나고, 흙이 생겨나고 다른 물질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반대의 작용으로 또다시 모두 불로 돌아가, 우주의 커다란 불구덩이 속에서 사라지리라. 따라서 모든 것은 변하며, 모두 흘러간다(panta rhei). 모든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난다. 모든 사물은 반대로 변한다. 추위는 더위가 되고, 낮은 밤이 되고, 큰 것은 작아지고, 작은 것은 커지고, 살아있는 것은 죽는다… 3)
라즈니쉬는 헤라클레이토스가 서양의 붓다이며 노자, 일본 하이꾸俳句를 통한 선시禪詩 대가인 바쇼芭蕉라고 극찬한다. 위 설명을 보면 거기에 음양오행설의 주역 사상까지 통달한 서양의 공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 말은 기원 전 6세기의 헤라클레리토스라는 존재 하나만으로도 서양은 이미 유사 동양 사상의 전통을 줄기차게 전해 내려왔다는 말이 된다. 더구나 문학이라는 것이 특정 종교나 사상을 넘어 인간의 모든 꿈과 상상 세계를 아우르는 창조력의 산물인 만큼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도인이나 시인의 생각은 오랫동안 서구 문학의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서양 문학에는 이런 불교 냄새 짙은 작품들이 허다하다. 스페인 중세 시인 호르헤 만리께(Jorge Manrique)의 “아버지의 죽음에 바치는 조가”에는 인생무상의 한탄이 흘러나온다.
잠든 영혼이여 깨어나라,
정신 차리고 생각하라,
인생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죽음 어떻게 그렇게 소리도 없이
다가오는지(…)
우리네 인생은 흐르는 강물
바다에 이르면
죽는 것(…)
이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
가는 하나의 길목.4)
“우리네 인생은 흐르는 강물”이라는 말은 헤라클레이토스 말이며 동시에 인도의 우파니샤드의 나오는 말 그대로이다. 불교의 인생관이 다를 게 있는가. 부귀영화도 모두 다 초로草露와 같은 “풀밭의 이슬…”이란다.
그 떵떵거리던 왕 돈 한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유명한 아라곤 왕자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멋쟁이라고 뽐내던 그 친구들은 다 어떻게 되었는가?
(그 모든 것들이 가을이면 말라 죽는)
논밭 이랑 이랑의
파란 이파리 신세 밖에 더 무엇이든가?
그 황금으로 번쩍거리던 왕궁
그 반쩍반쩍하던
천 냥짜리 만냥 짜리 황금 동전들은
지금 어디 가서 찾을 수 있겠는가?
풀밭에 이슬 밖에
더 무엇이었던가?5)
이렇게 보면, 십자군 운동 이후 기독교중심 문화로 점철된 중세 서양 문학이지만, 그 안에는 덧없는 세월과 인생에 대한 불교적 비전이 스스럼없이 끼어들곤 했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결론이 지극히 기독교적이다. 속세의 가치를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고 오직 하나님만을 모시고 바라고 산 아버님의 훌륭한 삶의 태도는 우리 모든 자손들에게 큰 교훈이었고 위안이었다는 시구로 끝난다.
서양 르네상스와 바로크 문학 또한 인생무상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특히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가”으로부 유행을 가져온 “오늘을 즐기라(carpe diem)” 테마는 “오늘 장미를 꺾으라(Collige, virgo, rosas)”라는 쾌락주의로 발전하면서, 그 앞에 반드시 “모든 것은 변하나니(panta rhei)…”하는 무상無常의 이미지를 이유로 깔고 있다. 오늘의 장미는 “…먼지로, 재로 화하리니…” 아름다운 그대 오늘을 즐기라!
또한 17세기 바로크 문학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가 “세상은 허상(desenga뻩)”이라는 주제이다. 이 또한 불교의 세계관과 맞아 떨어진다.
속임수 같은 인생의 짧음에 대하여
(…)
날마다 떠오르는 해는 한 번 지나가는 떠돌이별.
한 줌 재로 화한 호화롭던 카르타고 도시여,
네가 그걸 모르겠는가? 부귀영화를 좇던 리시오여
자꾸 그림자만 좇고 허영만 껴안다 보면 위험할지니,
시간 시간이 너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하루하루를 줄질하고 있는 시간이,
한 해 한 해를 갉아먹고 있는 하루하루가.6)
물론 같은 시대의 셰익스피어에게도 이런 불교 이미지가 없을 수 없다. 영국의 시인은 이런 무상한 세월의 침공 앞에서 사랑의 힘으로, 시의 힘으로 맞서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사간아!(…)
날쌘 시간아! 무슨 짓을 해도 좋다,
이 넓은 세상과 이윽고 그 속에서 사라질 아름다운 것들에게.
하지만 그대에게 한 가지 흉악한 범죄를 금하노니.
오! 내 사랑하는 이의 아름다운 이마에 그대의 시간 새기지 말고,
그대의 낡은 붓으로 주름살도 새기지 말라(…)7)
세르반떼스의 “돈 끼호떼”도 인생무상의 제물이 된다.
“인간만사 영원한 것이 없듯이,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항상 쇠락해간다. 특히 인간 수명이 그렇다. 돈 끼호떼의 수명 또한 인생의 흐름을 멈출 수 있는 하늘의 특권을 갖지 않았기에, 그가 미처 생각지도 않은 사이에 끝이 오고 종말이 다가왔다.”이 이 위대한 방랑 기사의 방랑의 마감을 고하는 대목이다. 이렇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미쳐서 날뛰던 기사는 이제 모든 것을 깨닫고 집에 돌아와 조용히 눈을 감는다.8)
그러나 이 위대한 기사가 마지막 우울증에 빠진 진짜 이유는 진짜 선사禪師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아픔 때문이 아니었을까.
“영국문학과 동양 고전에 있어서의 선禪”이라는 책을 쓴 블리스(R.H.Blith)는 “돈 끼호떼”에 선적 깨달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있음을 지적한다. 제 1권 50장에, 돈 끼호떼가 어느 절벽에 당도하니, 큰 호수가 나타나고 그 속에는 큰 뱀 작은 뱀 등 온갖 끔직한 생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마침 호수 한 가운데서 대단히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 기사여, 이 무서운 호수를 바라보는 그대가 누구이든지 간에, 만약 이 검은 물 밑에 숨겨진 보물을 손에 넣고 싶다면, 그대 억센 가슴의 용기를 발휘하여, 이 시커멓게 펄펄 끓는 물 속에 몸을 던지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검은 물 밑에 묻혀있는 일곱 천사가 사는 일곱 성에 간직된 진귀한 보화를 그대는 결코 볼 수 없으리라.” 돈 끼호떼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당장 모든 것을 잊고 갑옷투구도 벗지 않은 채 호수 한 가운데로 몸을 던진다. 그리고 어느 사이 자신은 백화난만한 도원경에 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바로 이 대목은 돈 끼호떼가 선禪적 체험을 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즉 그는 “무문관無門關” 46 칙則의 “白尺竿頭 如何進步…”을 보고 있다. “백 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한 발자국 전진할까? 백 척 장대 끝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는 아직 도道에 이르진 못한 것이다. 백척간두에서 모름지기 한 발자국 내어 디뎌야 한다. 그 때에 온 우주가 그대 몸의 나타냄임을 알리라.” 그리고 돈 끼호떼가 감행한 그 엄청난 용기는 그 “백척간두”에서 몸을 던진 선 수행이었으며 그가 다다른 것은 다름 아닌 깨달음의 황홀경 같은 것이었으리라.9)
그러나 돈 끼호떼가 마지막 화두話頭를 풀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진다. 그것은 어느 가짜 마법사에게서 들은 둘시네아를 마법에서 풀려나게 하기 방편이다. 그것은 산초엉덩이에 3,300대의 매를 때리라는 명령이었는데, 이 이해하기 힘든 화두야 말로 돈 끼호떼의 산초에 대한 인정 때문에 포기하고 좌절에 이르게 한 결정적인 이유다.10)
2. 사양에 미친 붓다의 설화의 파문
붓다의 설화가 서구에 소개된 것은 11세기 경 힌두어에서 희랍어로 번역되면서부터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746년 경 성 환 다마세노(San Juan Mamasceno)가 번역했다고도 하지만, 어떻든 산스크리트 경전(Lalitavistara)에 나오는 이야기를 기독교적으로 각색한 “바를라암과 호사팟(Barlaam y Josafat)” 이야기는 이렇다. 한 점성가가 왕의 아들이 태어나면 곧 기독교로 개종하라는 예언을 한다. 왕은 왕자 호사팟을 별궁에 감금하고 일체의 세상의 고통을 보지 못하게 한다. 세상에 병이나 늙음이나 죽음이 있음을 모르게 한다. 그러나 왕의 감금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어느날 우연히 한 봉사와 늙은이, 문둥병자를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인간 산다는 것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것임을 실감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고뇌한다. 그러던 어느날 한 기독교 은자 바를라암을 만난다. 그가 호사팟을 성경의 말로 깨우친다. 깨달음을 얻는 왕자는 마침내 자기 아버지까지 기독교로 개종하게 한다는 이야기.
이 설화는 수많은 라틴어 번역판이 나왔고 스페인어로도 마드리드에서 출간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스페인 문학에 그 영향이 지대했다는 점이다. 이미 13세기 돈 환 마누엘(Don Juan Manuel)의 “정치서(Libro de los Estados)”에 붓다 설호가 나온다. 어느 나라 왕 모로반에게 아들 호아스(Joha뇋)가 있었다. 이 아들은 우연히 사람들 장례식을 구경한다. “죽은 시체”을 직접 본 왕자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종자 뚜린에게 사람이 낳고 죽는 문제에 대하여 수많은 질문을 퍼붓는다. 대답에 궁해진 종자는 스페인 사람 훌리오에게 해답을 구한다. 훌리오는 이들 모두를 기독교로 개종시킨다. 돈 환 마누엘은 이 이야기를 그의 단편소설 책 “백작 루까노르”에도 쓴다. 이 이야기는 인기가 있어, 최초의 기사소설인 “시파르 기사의 이야기(Libro del caballero Cifar)”에 다시 나온다.11)
그러나 중요한 것은 17세기 대극작가 로뻬 데 베가(Lope de Vega)가 1611년에 “바를라안과 호사팟(Barl뇆 y Josaf�”라는 연극을 쓴 것. 로뻬의 작품은 라틴어 책을 1608년 스페인어로 번역한 환 아르세 솔로르사노의 “그리스도 두 병사들의 이야기, 바를라암과 화사팟”이라는 책에서 영향 받은 것이라고 한다.12) 그러나 로뻬의 연극의 영향을 받아 더욱 위대한 작품로 완성시킨 것은 깔데론 데 라 바르까의 “인생은 꿈이다”이다. 동양에서 “인생은 한 자리 봄꿈(一場春夢)”이라고 하는 말 그대로, 깔데론의 이 작품 또한 소재와 내용이 모두 동양에서 온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 때는 대통령이라고 떵떵거리던 사람들도 지금은 사람 대접 못 받는다. 심지어 지금은 흙과 먼지가 되어 구천을 해매고 다닌다. 왕자로 태어났어도 사도세자처럼 뒤주 속에서 죽어 갈 수 있다. 바로 그런 폴란드 앙자가 왕 바실리오의 아들 세히스문도이다.
폴란드 왕에게 자식이 태어나자 점성가들은 그 아들이 엄청난 액운을 가지고 태어나서, 폭군이 되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고 예언한다. 왕은 국민들에게 세자가 태어남을 감추고 몰래 탑에 가둬 키우도록 명한다. 쇠고랑을 채우고 끌로탈도라는 신하를 시켜 밤낮으로 감시하도록 한다. 짐승처럼 끙끙대며 신음하는 세히스문도의 소리를 들은 것은 높은 산에서 미끌어져 내려오던 남장 여인 로사우라였다. 세히스문도는 자기 소리를 엿들은 로사우라를 죽이려고 한다. 그녀는 용서와 동정을 청한다. 그리고 그에게 잠들어 있는 자비심에 호소해서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세히스문도가 갇혀 있는 첨탑을 안 것은 로사우라의 생명을 위협하는 큰 범죄이다. 폴란드 왕은 누구라도 탑에 접근한 자는 죽여 없애도록 엄명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 탑이 죽음의 상징임을 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알면 죽는, 감염되면 끝나는 인생의 어두운 실존의 구도. 그것이 바로 육체의 감옥이고, 육욕과 오욕칠정五慾七情이고, 그것의 포로가 되어 사는 삶이다. 기독교와 불교와 모든 종교, 스토아 철학이 다 한 가지로 죄악시하는 짐승 같은 삶. 탑 속에, 감옥 속에, 어둠 속에 갇혀 사는 세히스문도의 삶이다. 육욕의 갈등과 분노의 노예가 된 삶.
거기에 바로크 정신 특유의 무의미한 삶에 대한 의식이 겹친다. 동시대의 시인 께베도도 나의 일생이 어린아이를 싸는 “강보”인 줄 알았더니, 어느덧 그것이 죽은 시체를 싸는 “수의”이었더라 말한다. 인생은 이렇게 빠르고 덧없고 허무할 뿐. 세히스문도는 세 가지 의미에서, “이 탑이 나에게는 요람이고 무덤이었다”이 소리친다. 먼저 그는 자신이 태어나 죽어갈 한계가 이 탑 속이라고 생각하는 연극 이야기 속의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둘째는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적인 의미로, 영혼이 육체에 갇혀 사는 세상을 상징한다. 특히 야심과 욕정, 분노, 고통에 시달리는 삶일수록 세상을 “눈물의 계곡”,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부른다. 여기는 고통과 분노의 탑일 뿐. 그리고 세 번째는 이미 전에 말한 빠르고 허무한 인생을 말한다. 세히스문도 자신을 “살아 있는 해골”, “숨쉬고 있는 죽은 자”라고 말한다. 이 말에는 그 세 가지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
세히스문도의 절규는 처음부터 실존주의의 그것 못지않게 절망과 구토 그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범죄는 태어났다는 것.” 부처의 “태어나니 괴로워라! 늙으니 괴로워라! 또 죽으니 괴로워라!”의 깨달음의 전 단계가 아닌, 피투성이 울부짖음이 세히스문도의 목소리이다. 같은 바로크 문학의 세상과 인생을 “허무”, “꿈”으로 보는 페시미즘 이전, 세히스문도의 목소리는 어두운 실존의 터널 속의 절규이다.
내가 하늘에 무슨 더 큰 죄를 지었기에
나에게 이토록 더 무서운 형벌을 내리는가?
남들도 다 태어나지 않았는가?
(…)
새가 태어나면, 새에게 준 화려한
옷은 최상의 아름다움, 새는
거의 깃털의 꽃, 아니면
날개 달린 꽃타래,
보금자리를 조용히 떠나
그 자리의 온정을 마다 하고
전 속력으로 하늘의
날개를 가르며 나를 때,
나는, 새보다 더 큰 영혼을 가진
나는 왜 새보다 더 자유가 없단 말인가?
(…)
물고기는 사방을 돌고 돌며,
해심의 차가움만큼 있는 대로
광활한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데,
나는, 물고기보다 자유 의지가 더 많은
나는 왜 자유가 더 없는가?
이 짐승처럼 끙끙대면 사는 삶 속에서 세히스문도는 자신의 삶이 다른 새나 물고기보다 자유롭지 못함을 한탄한다. 신의 장자인 인간이 다른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아간다는 한탄…. 그러나 그런 기독교적 자연관보다 자연을 경애하고 숭상하는 눈들이 있었다. 그라나다 사제의 “신앙의 상징”에 나오는 동물들의 신성스러움을 보라. 동물들도 인간보다 훨씬 나은 신성스러움을 가지고 있다.13) 세히스문도에게는 주어진 운명이나 점성술이라는 비기독교적 굴레와 비리에 따른 고통이라 할 수도 있다. 세히스문도의 비운과 나르는 새의 자유, 헤엄치는 물고기의 자유 의지를 부러워함은 좁은 기독교적 육체의 감옥 비유를 넘어 이렇게 “고통의 바다”에서 몸부림치는 인류의 보편적 상징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어떻든 바실리오 왕의 폴란드 궁전에는 왕위 계승을 바라는 사촌이나 친족들이 속속 도착한다. 모두들 바실리오에게는 자식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은 마지막 결정 이전에 문득 세히스문도가 정말로 점성가들 말처럼 포악한지 실제로 시험해보고자 한다. 신하 꼴로딸도를 시켜 최면제 마약을 먹이고 궁중으로 대려와 보도록 한다. 궁중 침실에서 눈이 뜬 세히스문도는 갑자기 바뀐 자의 모습과 신부에 깜짝 놀란다. 지금까지 자기를 짐승 취급하던 끌로딸도도 “왕세자님, 왕세자님!”하며 급신거리지 않는가?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모두가 “왕자님, 왕자님…”하며 받드는 것을 보며 너무 기뻐하다가, 문득, “…그렇다면 이 나라의 당당한 왕세자인 나를 지금까지 누가 감금하고 학대하라 했단 말인가?”라는 의문과 분노에 봉착한다. “꼴로딸도, 너는 어찌하여 너의 조국에 그토록 큰 반역을 하였는가?”
“너는 나라의 법을 위반하고
왕에게 알랑알랑 아부만 하고,
나에게는 잔인한 짓만 하고;
그래서 국왕과 국법과 나를
참혹한 불행 속에 몰아넣은 죄로,
너를 내 손아귀에 죽게 하도록
벌을 내리겠노라.”14)
세히스문도의 분노는 극도에 다다른다. 끌로딸도를 죽이려 한다. 궁중에서 만나 모든 사람들에게 분통을 터뜨려 오만방자하게 군다. 하인이나 종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귀찮게 굴면 창문 밖에로 던져버리겠다고 고함 친다. 그래도 왕자의 말을 믿지 않는 듯 하자, 종자 한 놈을 즉시 창 밖으로 던져버린다. 헤시스문도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몰래 지켜보고 있던 바실리오 왕은 그만 깜짝 놀란다. 왕이 그의 횡포한 행동과 오만을 경고하고 배은망덕한 처신을 나무라자, “내가 왕께 감사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데요? 나의 자유를 횡포하게 박탈한 자, 이제 늙고 노쇠하여, 이제 죽는다고, 내게 베푸는 게 뭐요? 원래 내 것인 내 권리 이외에 물려 줄 것이 더 있소?”라고 다그친다. 세히스문도는 로사우라까지 겁탈하려고 한다. 그녀를 도와주려 하는 끌로딸도를 다시 죽이려 한다.
마침내 바실리오는 점성가들의 예언이 맞은 것을 인정하고, 끌로딸도를 시켜 그에게 최면제를 먹여 다시 탑으로 돌려보낸다. 잠을 깬 세히스문도에게 끌로딸도는 자기가 날아간 매를 찾아 한참 헤매다 오니, 아직도 그대는 자고 있더라는 말을 한다. 즉 지금까지 왕자로서 보고 느끼고 즐거워하고 분노했던 것은 모두가 잠자다 꾼 꿈이었다고 말한다. 그 때 세히스문도는 크게 깨닫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이상한 곳이어서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일 뿐.
이 나의 경험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은 다 꿈을 꾼다는 것,
자기가 누구라는 꿈을 꾼다는 것, 깰 때까지.
왕은 자기가 왕이라고 꿈꾸고, 이 꿈에
속아서 통치하고 명령하고
조치를 취하고 법을 만들고,
그러나 그가 받은 이 환대는
결국 잠깐 빌려서 바람에 쓴 것 뿐,
모든 것 다 잿더미로 만들고 말지,
죽음이(이런 무서운 불행이…!).
(…)
부자는 자기의 부에 취해 꿈꾸며 살고
걱정만 더 많이 만드는 부富에 취해 살고,
가난뱅이는 자신의 가난을 아파하며
빈곤함을 견디는 꿈을 꾸며 살고
(…)
나는 지금 여기 이 유치장 속에
끙끙대며 사는 꿈을 꾸고 있지만,
다른 훨씬 안락한 신분에
있었던 꿈을 꾸었었지.
인생은 무엇인가? 하나의 열망.
인생은 무엇인가? 하나의 환상,
하나의 그림자, 하나의 허구,
그리하여 가장 큰 재산은 작은 것;
모든 인생은 꿈이고
꿈들은 꿈들일 뿐.
이렇게 깨닫고 후회하고 있는데, 왕에게 정식 왕세자가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군인들이 세히스문도 왕자를 왕으로 세우자고 봉기한다. 외국 왕자인 아스똘포는 왕좌를 노리고 세히스문도 반대 편에 선다. 군인들을 세히스문도가 갇혀 있는 철창을 부수고, 왕자를 석방한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다시 혼란에 빠진 세히스문도. 근 3막 4장에서 이렇게 소리친다.
운명의 여신이여. 왕이 되러 가자꾸나;
내가 지금 잠자고 있다면, 나를 깨우지 말라,
이것이 현실이라면, 나를 잠들게 하지 말라.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든 꿈이든,
선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할지니,
이게 사실이라면. 사실이기 때문에,
아니고 꿈이라면, 나중에 깨어났을 때
친구 몇 명이라도 가지고 있도록.
이리하여 혁명은 성공하고, 결국 바실리오 왕은 점성가의 예언대로 자식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러나 세히스문도는 자리에서 내려와 아버지에게 예를 갖추고, 너그럽고 인자한 왕세자로서의 훌륭한 처신을 한다. 자신은 로사우라를 사랑하였지만, 이미 아스똘포와의 성관계가 있었던 이유로, 명예회복을 위해 그와 결혼하도록 허락한다. 세시스문도의 마지막 말은, 당시 연극의 관습대로, 연극을 떠나 직접 청중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용서를 비는 형식이다.
무엇이 놀라운가요? 무엇이 여러분을 감동케 하는가요?
나의 스승은 하나의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직 나의 열망 속에서도
언젠가 꿈이 깨어, 다시 나의 그 비좁은
감옥 속에 들어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꿈꾸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일이지요. 그리하여
내가 알게 된 것은, 모든 인간의 행복은
결국 하나의 꿈처럼 지나가나니(…)
물론 스스로가 왕의 예배를 맡았던 사제인 깔데론이 불교의 영향을 받아 이단적 사고로 이 작품을 썼으리라는 생각은 없다. 탑이나 궁이나 인간 세상이 다 감옥인 것은 대표적인 크리스챠니즘적 비유이다. 세리스문도는 자신을 “인간과 야수의 혼성품”라고 한다. 이 또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라는 말. 왕이거나 거지거나 죽을 때는 다 똑같다는 “죽음의 춤”의 테마도, 죽으면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고 깨우치는 것도 지극히 당연한 크리스친안이즘의 비전에 속한다.
그러나 그가 예수파의 신학에 정통이음으로, “자유 의지”의 실천을 위한 개인의 노력을 중시했던 루이스 데 몰리나(Luis de Molina1, 535-1600)의 신학에 호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의 의지는 스스로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이미 신으로부터 정해져서 태어났다”이 주장하는데 반해, 몰리나는 소위 “중용학(scientia media, 中庸學)”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성총(gracia divina, 聖聰)과 인간의 자유 의지의 상호 “합일(concursus, 合一)”을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몰리나는 아퀴나스파처럼 우주의 모든 것이 성령, 성총에 의하여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15) “인생은 꿈”에서의 세히스문도의 고뇌와 자주적 결정이 어떠한 경우에도 “선행”을 하겠다는 신성성과 맞닿은 점은 신의 뜻과 인간 의지의 상호 합일로 볼 수 있다.
이 작품에 남은 불교적 요소는 현상세계(samsara, 色)는 허상(maya), 허구, 꿈이라는 기본 설계에 있다. 부처의 깨달음에 이르는 비전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궁중에서 감옥으로 탑에서 왕궁으로 환경이 180도 바뀐다. 신분이 왕이었다가 죄인이었다가, 종이었다가 왕이었다가로 바뀐다. 이런 변화를 인간적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오직 혼란과 고뇌와 분노, 광기만 일으킬 뿐. 그러나 이 어지러운 현상 세계의 미궁과 소용돌이 속에서 세히스문도가 눈을 뜬 것은 기적에 가깝다. 그것은 몰리나의 신학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총의 힘과 세히스문도의 자유 의지의 성스러운 합일이라는 기적!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깔데론의 “인생은 꿈”에는 신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다. 신에게 구원을 청하지도 않으며, 그 혼란 속에서 성스러운 계시를 받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고통스럽거나 분노가 치밀면 세네카처럼16), “이 사나운 맹수 같은 성질을 억누르자, 이 분노,이 야심, 혹시 어쩌다 또 꿈을 꾸는 날에는” 부르짖는다. 세히스문도는 어떻든 “선행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자 같은 지혜를 꿈으로부터 배웠다고 말한다. 엎치락뒷치락하는 인생의 수많은 경험으로부터 결국 사람은 선해야 한다는 원리를 터득했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면 세히스문도는 탑 속에서 신음하며 낑낑대며 으르렁거릴 때부터 이미 착해질 수 있는 천성을 가지고 태어났음이 분명하다. 즉 “인간과 맹수의 혼성품”에서 “인간”을 가지고 있었음을 부정할 나위가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히스문도를 기독교처럼 육욕과 분노에 찌든 “원죄적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유교처럼 성선설性善說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는 “태어난 것이 곧 죄”이고 악惡인 줄 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생물, 무생물의 자유와 생명, 자유 의지를 빗대어 자기 신세 한탄을 하는 것을 들으면, 그는 분명 자신에게도 그런 자유와 선의지善意志가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로사우라라는 남장 여인을 대할 때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녀가 자신의 불행의 하소연을 엿들었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세히스문도는 로사우라를 당장 손아귀에 으스러뜨려 죽이려 한다. 그녀는 “그대가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내가 그대 발 앞에 무릎 꿇고 빌 테니, 그 정도로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애걸한다. 모르는 여인의 그 따스한 간청의 목소리에 세히스문도는 연민을 느낀다. 그는 그녀를 풀어준다. 세히스문도의 타고난 “언짢아하는 마음(惻隱之心)”이 그를 유교의 선한 마음(四端)의 으뜸인 “사랑(仁)”으로 이끄는 장면이다.
“인생은 꿈”에서 로사우라의 역할은 의외로 대단히 중요하다. 세히스문도가 잃었던 선한 마음을 되찾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시스문도가 탑에 있을 때, 궁중에 있을 때, 다시 깨어 났을 때, 한결 같이 그의 눈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는 여인은 로사우라 뿐이다. 그는 꿈 속 궁중에서 왕과 끌로딸도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기억을 한다. “모든 사람들의 주인이었지./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어./ 다만 오작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어…” 그렇다. 로사우라에 대한 사랑만이 꿈을 꾸어도 꿈을 깨도 한 가지로 살아 있는 감정이다. 그 감정이 곧 “꿈이거나 생기거나 선행을 해야 한다”은 의지로 이어진다.
세히스문도는 어버이에 대한 사랑(孝)으로부터 사랑(仁)을 배우지 못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타고난 착한 성품이 있었다. 언짢아 할 줄 알고,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이다. 유교의 네 가지 으뜸가는 선함(四端)의 바탕이 로사우라를 대할 때 모두 나타난다. 세히스문도는 로사우라를 사랑한다. 그러나 로사우라는 아스똘포를 사랑했기 때문에, 멀리 러시아에서 폴란드까지 애인 찾아, 명예 회복을 위해 온 것이다. 그런 여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지 못 하고 자기 사랑 때문에 가로채는 것은 의義롭지 못하고 부끄러운 짓이다. 그는 사랑을 버리고 양보의 길을 택하는 예禮를 갖춘다. 이런 세히스문도의 행동이 유교의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깨닫고 실천하는 행위이다. 유교를 통해서 볼 때, 세히스문도가 선행을 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것이 참으로 근본을 이해한 태도였음을 안다. 특히, 자기가 왕인 것이 사실이면 사실이기 때문에 더욱 선행을 해야겠다는 말, 그리고 이게 꿈이었으면, “깨어난 뒤에 친구 몇 명이라도 남아 있도록” 늘 착하게 굴어야겠다는 이 결심…. 이 얼마나 겸손하고 진솔하고 꾸밈없는 착한 말인가.
3. 서구 현대 문학에 미친 불교의 영향
불교를 좋아한 쇼펜하우어와 니체 이후 서구 현대 문학은 알아보기 쉽게 불교에 물든다. 스페인과 중남미 현대시를 한번 둘러보아도 눈에 띄게 불교 이야기가 많다.
오, 시다르타 고타마여, 당신이 맞았습니다
모든 고뇌는 욕망으로부터 오나니…
― 아마도 네르보(멕시코)
부처님의 고요, 돈독하고 차거운
소박한 신의 고요… 그 영원한
금속, 혹은 화강암의 휴식을 원하노라
나의 이 가슴을 위해.
― 프란시스꼬 빌야에스뻬사(스페인)
도끼로 찍거든 응답하라
붓다가 말했다, 그리고 그리스도도!
너의 향기로, 박하 샌들처럼
― 안또니오 마차도(스페인)17)
이제 서구인들에게 불교는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전통이 기독교인 서구 문인들에게도 불교는 그들 문학을 위한 하나의 자연스러운 선택의 과제였다. 1762년, 프랑스의 앙케틸 듀페롱이란 젊은이가 “우파니샤드”을 번역했다. 그리고 1801년 이 책이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에서 출판되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쇼펜하우어가 읽은 책이 바로 이 책이었고 그 후 프랑스 동양 학회는 인도 사상이나 불교에 관한 책들을 수없이 번역해냈다.18) 영미에서도 인도 사상이 불교, 특히 스쓰끼가 번역 해설한 선불교에 관한 책들이 엄청 인기를 누렸다. 유럽의 슈레알리즘에 영향을 미치고, 앨런 왓트 등 히피즘의 선구자들에 의하여 선불교적 자기 해방 혹은 해탈 이론이 인기를 끌었다.19)
스페인 문학에서는 환 라몬 히메네스, 영문학의 예이츠20), 아르헨띠나의 보르그리고 멕시코의 옥따비오 빠스가 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여러 연구에 의하여 밝혀졌다. 특히 프랑스 시인을 비롯 1920년대 이후 서구 시 전체를 휩쓴 하이꾸(俳句) 모방 열풍은21) 일본 시가의 대표적인 시인 선승禪僧 바쇼(芭蕉, 1644-1694)의 영향을 받아 이따금 선시적 취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빠스의 일본 하이꾸에 대한 애정 또한 무척 오래 가는 사랑의 하나이다. “나무 속으로”에는 원조인 일본 시가의 형식을 고대로 모방한 5, 7, 5조의 음률까지 지키고 있다.
바쇼 암
세상은 17
음절에 들어간다:
이 초가집에.
지푸라기와
기둥: 이 틈 사이로
벌레와 부처.
솔과 바위들
사이, 바람 속에서
시가 솟는다.
모음과 자음
얽히고 설혀, 이내
세상 집 되다.
세월의 뼈들,
고통은 이제 돌, 산:
무게가 없다.
내가 한 말은
채 석 줄이 못 된다:
이 소리의 집.
빠스는 바쇼의 여행기 “오쿠의 오솔길”을 서반아어로 번역할 만큼 이 선승에 대한 사랑 또한 지극하다. 그가 붙인 주석을 보면, 1984년 그와 그와 아내가 옛 바쇼의 암자를 찾아갔다고 한다. 그 때의 감흥을 하이꾸 형식으로 읊은 것이 이들 시다. 보잘 것 없는 작은 초가집이 그의 암자라는 게 믿기지 않았던듯, 빠스의 시에는 여러 형태로 우주와 나, 대서사시와 5, 7, 5의 작은 시형식이 한 이미지로 선기禪趣가 느껴진다. 빠스 특유의 관념성이 불립문자 정신에 위배되기도 하지만 나름대로의 하이꾸 형식에 대한 성찰들이 선불교를 생각하게 한다. 다른 시에서도 그렇지만 빠스의 이 시집에는 의식적으로 하이꾸를 모방한 이미지의 비약들이 돋보인다. 5, 7, 5라는 좁은 형식의 제약을 벗어날 때 그의 시는 더욱 함축적이다.
귤
작은 태양
식탁 위에 조용히 머문
한 낮.
무언가 부족하다:
밤
여명
모래 위에
새들의 글씨:
바람의 일기장.
별과 귀뚜라미
하늘은 커서
위에서는 세상을 심는다.
그 많을 밤을
꿈쩍 않고 뚫고 있는
송곳, 귀뚜라미.
고요
달, 모래 시계:
밤은 비어간다,
시간이 빛난다.
하이꾸 스타일의 빠스의 이미지즘은 이 시집에서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하이꾸 형식이나 불교적 내용에 구애 받는 것만은 아니다. 시인의 사고와 이미지에 부합되면 금방 하이꾸 식 풍경이 전개된다. 에로티즘과 이미지즘이 옥따비오 빠스의 시의 기본 특질이라면 하이꾸 형식만큼 그의 우주관과 일상적인 체험을 절정감으로 합일시켜주는 도구가 없으리라.
밤, 낮, 밤
1
빛 줄기: 토방에서
노래는 새 한 마리.
너의 육체의 산과 골짜기에
동이 튼다.
2
밤에 잠 자는 불덩이,
깨어서 웃는 물.
3
너의 머리칼의 풀더미 밑에
너의 이마:
정자,
나무가지 사이 환한 빈 터.
나는 정원을 생각한다:
너의 기억을 뒤흔드는 바람이 되고 싶다,
너의 짙은 풀더미 속에 길을 여는 햇살이 되고 싶다!22)
민용태 1968년 <<창작과비평>> 등단. 시집 [시간의 손] [시비시] [풀어쓰기] [푸닥거리] 수필집 [남성을 보호하라] [사랑사냥연습], [스페인 중남미 현대시의 이해 1 ,2] 등. 마차도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