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가 쇼스타코비치 탄생 120주년이라 다른 어느 해 보다 쇼스타코비치 공연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2016 교향악 축제」에서도 과천시향(4.6)이 교향곡 제10번을, 경기필(4.13)이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하였고, 부천시향과 전주시향은 똑같이 교향곡 제5번을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부천시향(4.10)과 전주시향(4.14)의 공연을 예매해서 5일 간격을 두고 ‘같은 곡 다른 시향’의 연주를 비교해 보고자 마음 먹었는데 막상 지금에 와서 글을 쓰려보니 정확한 비교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더군요. 다만 제 기억장치에 더듬어 남아 있는 흔적과 약간의 메모를 갖고 다분히 주관적인 견해지만 두 공연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1악장-Moderato
정적을 깨고 장막을 찟는 듯한 제1주제(“따단 따단~” 혹은 “빠밤 빠밤~”)에서 이미 이 곡의 성패가 갈리기 때문에 시작부터 임팩트 강한 사운드가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부천시향의 시작은 대체로 순조로웠습니다. 금관악기의 사운드는 불안정했지만 현악파트와 목관파트가 서로 주고 받으면서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안정적이었고 이들의 힘찬 울림은 클라이맥스의 행진곡으로 연결이 잘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반해 전주시향의 시작은 조금 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작이 의외로 너무 부드러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다운 느낌이 부족했고, 호른을 비롯한 금관악기 주자들의 자신감도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1악장의 중요한 역할은 초반부에서는 곡 전체의 정서를 지배하는 음산함과 긴장감의 단서를 충분히 표현하는 것이고, 후반부에서는 셈여림의 변증법적 관계, 즉 강약의 대비를 극명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이후에 이어지는 악장들간의 유기적 관계가 살아나고, 파국을 맞는 마지막 부분에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부천시향의 박영민 지휘자는 프레이징을 길게 잡아 부분적으로 포인트와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였고, 전주시향의 최희준 지휘자는 거시적인 흐름보다는 세부적인 디테일을 강조해서 하나씩 쌓아 올리는 형식을 취한 것으로 느껴졌는데 이 두 전략 모두 효과적이었다고 보여집니다. 부천시향은 전반적인 곡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성공하였고, 전주시향은 저음 현악기의 거칠고 두툼한 소리와 고음 현의 부드럽고 날카로운 선율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면서 명암의 대비가 드러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최희준 지휘자는 앙상블이 살아날 때는 마치 오케스트라 위에서 활공하는 것처럼 지휘하는 모습이 독특하더군요. 그리고 제가 1악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마지막 코다의 첼레스타 선율은 부천시향의 울림이 더욱 영롱하게 느껴졌습니다.
2악장- Allegretto
현악기들의 빠른 서주에 이어 나타나는 춤곡풍의 선율이 즐겁고 유쾌하면서도 동시에 쓸쓸함을 같이 표현해야 하는 악장입니다. 마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광대의 춤처럼 자신의 처지를 비웃는 듯한 풍자와 현실에서 거리를 둔 부유함을 함께 그려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부천시향과 전주시향 모두 이 악장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잘 살려낸 것 같습니다. 두 시향 모두 저음 현악기 소리 위에 목관악기들의 풍자스런 선율이 얹혀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야유하는 작곡자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습니다. 2악장의 백미는 무엇보다 중간에 전개되는 바이올린의 독주와 플릇의 독주라고 생각됩니다. 바이올린 독주는 전주시향이 부천시향보다는 깊이있는 서정성을 살려주었고, 플릇의 독주는 부천시향에 더 높은 점수를 두고 싶습니다. 전체적으로 보아 2악장에서 현파트의 실력은 비슷비슷한데 목관악기는 부천시향이 좀 더 우위에 있어 보였습니다.
3악장-Largo
비애감, 애잔함, 고독감, 비장감 등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가장 슬픈 정서를 최대한 섬세하게 표현해야 하는 악장입니다. 많은 평론가들이 언급하듯이 제3악장은 쇼스타코비치의 마음을 담은 악장이라 현과 목관이 서로 어울리면서 여백을 만들어 내고 그곳에서 서정성이 증폭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느 악장보다 힘을 빼고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음악이 고조되다가 어느 순간 침잠하는 분위기로 다운되는 변화를 살리기 위해서는 오보에, 플릇, 피콜로, 클라리넷, 종소리, 실로폰, 첼레스타, 하프 등의 앙상블도 중요하죠. 이 점에서는 부천시향의 연주가 더 유려하고 여유있었다고 느껴집니다. 호흡도 부천시향이 좀 더 길게 빼주어서 감동의 여운이 더 길었구요. 반면 민중들의 흐느낌과 고단함을 표현해야 하는 현악기 트레몰로는 전주시향의 결이 세밀하고 곱게 다가왔습니다. 두 시향 모두 전통적인 방식으로 보통 이상의 감동을 주었지만 좀 더 욕심을 내자면 두 시향 모두 힘을 더 빼고 연주했으면 복잡미묘한 감정을 깊게 보여주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나 지방교향악단에게 이것까지 바란다면 과욕이겠지요?
4악장-Allegro non troppo
그동안 쌓아왔던 에너지가 한꺼번에 분출하면서 가랴얀님의 말씀대로 빅뱅의 순간을 표현해야 하는 악장입니다. 처음부터 호른, 트럼펫, 트럼본 등 금관악기가 포효하고 팀파니가 가세하면서 '당신들이 원하는 음악이 이런 거라면 다 해주마!!"라는 외침이 들려야 하죠.줄곧 종착점을 향해 힘차게 달려다가가도 아직은 알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신비감에 머뭇거리는 모습을 이전 악장의 선율을 느리게 반복함으로써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결국은 멈출 수 없는 인생의 퍼레이드를 환희의 피날레로 마감해야만 하는 숙명의 마지막 악장을 두 시향 모두 호방하게 마무리하였습니다. 제4악장에서는 두시향의 특별한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두 시향 모두 지휘자나 연주자가 열과 성을 다해 집중한 결과, 나름대로 통쾌하고 시원한 총주의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고 여겨집니다. 지방교향악단이라는 한계를 갖고 20세기 교향곡 중 가장 어렵다는 작품을 연주한 두 교향악단에게 고마움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 사람은 비단 연주장에 있는 관객 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두 시향 모두에게 나타난 금관악기 (특히 호른)의 취약점은 앞으로 시급히 보완해야 할 숙제로 남겨야 할 것 같습니다.
첫댓글 섬세하고 흥미로운 감상글입니다. 부천시향은 단원들간의 연주호흡에 있어서만큼은 국내에서 첫손으로 꼽아야 하는 악단이고, 전주시향은 최 지휘자의 활약으로 급부상중인 악단이라 어떤 특성이나 장점이 연주표현에 드러나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밌는 일인듯 합니다. 언급하신 호른 부분은 국내 특유의 악기쏠림으로 인해 서울시향도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부분인것 같습니다. 다양한 악기를 다양하게 연주하고 즐기는 전공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래봅니다.
고맙습니다. 처음에는 비슷한 여건의 국내 시향이 같은 곡을 연주한다고 해서 비교가 용이할 줄 알았어요. 근데 두 연주를 연이어 들은 것도 아니고 반복해서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사실상은 비교가 불가능하더라구요. 특히 지휘자에 대한 후광효과, 먼저 들은 연주에 대한 초두효과뿐 아니라 지역시향이라는 관대화효과 등등 지각적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작용하는 것을 느꼈어요.
다양한 악기 연주자들이 배출되길 바라는 마음은 저도 간절합니다. 특히 금관이나 목관 전공자들의 저변 확대는 국내 음악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비교감상 글 잘 봤습니다. 부천필 연주 다시듣기를 해봐야겠어요. 박영민의 해석이 어찌 작용했는지도 궁금하고요. 참, 이번에 소니에서 말러 6번 음반도 냈던데 실연과는 또 어찌 다른지도 궁금하네요.
가랴얀님이 부천시향 연주 다시 들어보시고 전문가 입장에서 비교 한번 해주세요~ 저는 진짜 어렵더라구요ㅠㅠ 그리고 부천시향 말러 6번 공연은 실연으로 듣고 싶어 예매까지 했는데 사정이 생겨서 못들었어요. 음반으로 출시되었다니 반갑네요. 조만간 들어봐야겠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