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피크닉 신영호 강사입니다.
본 역학동 선생님들이라면 기본에서 고급까지 사주명리학을 10년이상에서 많게는 30년 그 이상도
공부하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도 아직 17년 정도... 20년차가 안되었습니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쿤달리니 각성과 선 체험 등으로 힘든 삶을 살아왔습니다.
사주명리학은 인생 고해를 최소 10~20여 년 이상 겪어야 접할 수 있고
그 소중함을 인식하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인생과 마음 고생을 하여
카르마가 일정 정화되면
어느정도
미신이 아닌 무언가 있고
설명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운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무튼 저는 여기서 사주명리학 자체를 설명하기 위해서 글을 올리는 게 아닙니다.
보병궁 시대에 맞추어 "사주명조와 대운/세운"을 리딩하고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프레임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합니다.
즉, 과거 선천시대는 주로 고정된 공식과 방식에 의해서 사주명리를 풀이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서양 점성학이나, 오컬트 마법 그리고 불교의 철학 사상들을 통합해 오면서
특히 쿤달리니 요가나 에너지 힐링 그리고 마인드 성찰과 활용을 공부하면 할 수록
21세기 이후 앞으로의 세상은 경쟁과 전략에 의해서 진행되고
때로는 투쟁과 전쟁으로 상황이 악화되는 관점에서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사주명조는 "앞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 등으로 읽기에는
이제는 시대가 선천시대의 마법에서 풀리고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선택도 많아졌습니다.
물론 아직 선천시대의 기운이 남아 의당 적중률이 요구되고 맞추어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사주명조/대세운이라도 방향이 달라지거나 흐름이 달라지는 경우도 보여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세월이 흐를 수록, 더 다양한 흐름으로 전개된다고 봅니다. 같은 사주라도 말입니다...
이제는 한 직장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이 오히려 예외가 되었고,
가족·부부·조직·국가조차도 고정된 운명 공동체라기보다
필요와 선택에 따라 유동적으로 재편되는 관계망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사회 현상이 아니라,
운명 자체를 바라보는 프레임의 변화입니다.
과거 선천시대의 사주명리는
“이 명조는 이렇게 태어났으니, 이 정도까지 간다”
“이 대운에는 흥하고, 저 대운에는 망한다”
와 같이 결과 중심의 예언 언어에 가까웠습니다.
그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그 시대에는 그 방식이 유효했습니다.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았고,
환경이 사람의 삶을 거의 결정해 주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보병궁 시대로 접어들면서
인간은 점점 더 자기 선택의 책임을 떠안게 되었고,
같은 사주명조라도
어떤 관점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생 궤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서서히 다가서고 있고 도래하고 있는 보병궁 시대에 맞추어
좀 더 현실적인 사주명리 리딩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제 사주명리는
“무엇이 일어난다”를 말하는 학문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 구조인가”를 읽는 학문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의미론적 해석(semantic hermetics) 관법이 소중합니다.
사주명조와 대운·세운은
정해진 미래가 아니라
선택 가능한 시나리오의 지도입니다.
같은 명조, 같은 대운이라도
어떤 이는 그 운을
경쟁과 투쟁의 방식으로 소모하고,
어떤 이는 그 운을
관계 재편과 의식 확장의 기회로 사용합니다.
이 차이는
공식의 차이가 아니라 리딩 관점의 차이입니다.
저는 그동안
서양 점성학, 타로, 오컬트 마법,
불교의 연기·공·무상 사상,
쿤달리니 요가와 에너지 힐링,
마인드 성찰과 의식 훈련을 함께 공부해 오면서
하나의 공통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사주명조는
인생을 구속하는 족쇄가 아니라
의식이 작동하는 기본 설계도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대운과 세운은
그 설계도가 현실에서
어떤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타이밍 신호입니다.
그래서 이 연재에서는
사주명리의 기본 이론을 그렇게 많이 다시 거론하거나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미 역학동 선생님들께서는
그 부분을 충분히, 아니 과분할 정도로
체득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오히려 제가 부족하고 선생님들로부터 더 알아가고 얻어가야합니다.
대신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함께 다루고자 합니다.
– 같은 사주명조인데 왜 어떤 사람은 깨어나고, 어떤 사람은 반복되는가?
– 대운이 바뀔 때, 반드시 사건이 터져야만 변화가 일어나는가?
– 충·형·합은 정말 불행의 신호인가, 아니면 재구성의 신호인가?
– 사주 리딩에서 언제 “말을 줄여야 하는지”, 언제 “말을 해야 하는지”?
– 보병궁 시대의 사주 리딩은 어디까지 말해야 하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등등...
이 연재는
정답을 제시하는 글이 아니라,
리딩의 시야를 넓히는 글이 될 것입니다.
공식을 버리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기존 명리를 부정하자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다만,
같은 명조를 두고도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지는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떤 언어로
사주를 읽고,
사람에게 말을 건네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제안이자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향후 소개될 글들부터는
실제 명조 예시도 들 수 있으면 들어가면서
이러한 관점이
리딩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하나씩 풀어가 보겠습니다.
부디 이 연재가
각자의 명리 공부와 상담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크닉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