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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론 88강
출애굽기 37:1-29
성소의 기물들
회막을 만든 다음에 성소의 기물들을 제작한다. 계시의 순서와 달리 회막을 먼저 건립한 것은 성소의 기물들을 둘 곳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계속하여 앞에서 주신 계시들을 문자적으로 반복한다. 분향단과 관련된 기록에서 아론이 정기적으로 향을 피우는 것에 대한 말씀(출 30:7-10)과 속전을 내는 것에 대한 말씀(출 30:11-16)은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지 않다. 이는 성막의 건립에 대한 필요한 말씀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출 39:32, 42-43)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1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2 순금으로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만들었으며 3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에 달았으니 곧 이쪽에 두 고리요 저쪽에 두 고리이며 4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5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 궤를 메게 하였으며 6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반, 너비가 한 규빗 반이며 7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양쪽에 쳐서 만들었으되 8 한 그룹은 이쪽 끝에, 한 그룹은 저쪽 끝에 곧 속죄소와 한 덩이로 그 양쪽에 만들었으니 9 그룹들이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었으며 그 얼굴은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였더라”(1-9절).
언약궤(법궤, 증거궤)와 그 위 뚜껑의 역할을 하는 속죄소(시은좌)의 제작에 대한 말씀이다.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1절)라고 하였는데 신명기 10:3에 의하면 모세가 만들었다고 말씀한다. 모세가 계시를 받은 말씀대로 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궤”의 히브리어 ‘아론’은 하나님께서 언약 안에서 자기 죽음을 담은 상자이다(창 50:26). 두 규빗 반의 궤의 크기는 다섯 규빗이 되는 번제단의 절반으로 지성소에 둔 언약궤를 백성들은 볼 수 없었기에 번제단을 통해 언약궤를 보는 것이었다. 즉 번제단을 비롯하여 성막의 모든 기물은 언약궤를 증거한다.
33 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34 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민 10:33-34)
언약궤가 삼 일 길을 앞서 간다는 것은 구원의 길을 인도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삼 일 길을 하나님께서 앞서 가신다는 것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기 희생, 죽음을 담은 상자가 언약궤이다. 싯딤 나무에 금을 입혔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배 사건을 전제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모든 자가 우상 숭배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약궤 안에는 돌판, 즉 율법의 말씀을 기록한 돌판을 담아 놓았다. 죄인은 말씀의 다스림 안에서만 생명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순금으로 “속죄소”(6절)를 만들었는데 “그룹 둘을 속죄소 양쪽”(7절)에 배치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들 수 없는 것이기에 그룹들이 보좌를 호위하는 모습으로 가운데는 비어 있어 하나님의 보좌를 상징한다. 단순히 법궤 뚜껑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요 발등상이었다(시 99:5, 132:7). 그룹을 형상화함으로 속죄소가 생명나무임을 증거한다.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사 37:16)
“한 덩이”(8절)로 만든 것은 하나의 진리이신 하나님께 향하였다는 의미이다.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었으며”(9절)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였던 죄인들의 증거들(만나를 담았던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을 덮어 은혜로 이끌어 가시겠다는 뜻이다. 생명나무이신 분이 오셔서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면 우리의 죄를 덮고 생명을 허락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속죄일에 속죄소에 피를 뿌려 속죄가 이루어짐을 보여주신 것이다. 오직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안에서만 속죄가 이루어진다. 결국 야훼 하나님께서 속죄소 위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만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안에서 만나신다는 뜻이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할 것은 언약궤 안에 들어 있던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증거하는 것은 출애굽기 25:6에서 ‘열 말씀의 돌판은 언약궤 안’에 두라고 말씀하셨으나 민수기 17:10에 보면 “아론의 지파이는 증거궤 앞”에 간직하라고 하셨고, 만나의 항아리를 언약궤 앞에 두라고 하셨다(출 16:33-34). 또한 열왕기상 8:9(대하 5:10)에서는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추가로 신명기에서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두고 증거로 삼으라고 하셨다(신 31:24-26).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히 9:3-4)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서 기록자가 언약궤 안에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고 말한 이유는 “둘째 장막”(히 9:7)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하늘 성전이 완성되었다는 차원으로 전한 것이다. 그래서 금향로가 지성소에 있는 것으로 표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책을 안고 지성소 안에 들어가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언약의 돌판과 함께 있는 것으로 표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의 증거들이 말씀과 하나가 되어 언약궤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었음을 선언한 것이다.
“10 그가 또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었으니 길이가 두 규빗, 너비가 한 규빗, 높이가 한 규빗 반이며 11 순금으로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둘렀으며 12 그 주위에 손바닥 넓이만한 턱을 만들고 그 턱 주위에 금으로 테를 만들었고 13 상을 위하여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네 발 위, 네 모퉁이에 달았으니 14 그 고리가 턱 곁에 있어서 상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15 또 조각목으로 상 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16 상 위의 기구 곧 대접과 숟가락과 잔과 따르는 병을 순금으로 만들었더라”(10-16절).
진설상의 제작에 대한 말씀이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진설병”(출 25:30, ‘레헴 파님’)을 직역하면 ‘얼굴의 빵, 면전의 빵’이다. 즉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심을 나타낸다. 이런 점에서 진설상은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식탁의 빵’이다. 열두 빵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열두 지파의 이스라엘이 식탁을 함께 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진설상은 언약 안에서 하나님과 식탁을 함께 하는 화목의 상태를 계시한다. 새 언약으로 성취되었다.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19-20)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고전 10:16-17)
“17 그가 또 순금으로 등잔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 18 가지 여섯이 그 곁에서 나왔으니 곧 등잔대의 세 가지는 저쪽으로 나왔고 등잔대의 세 가지는 이쪽으로 나왔으며 19 이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저쪽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어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이 그러하며 20 등잔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21 등잔대에서 나온 가지 여섯을 위하여는 꽃받침이 있게 하였으되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하였고 또 다시 두 가지 아래에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결되게 하였으니 22 이 꽃받침과 가지들을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서 만들었으며 23 등잔 일곱과 그 불 집게와 불 똥 그릇을 순금으로 만들었으니 24 등잔대와 그 모든 기구는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더라”(17-24절).
등잔대의 제작에 대한 말씀이다. “살구꽃”(19절)의 ‘샤카드’는 ‘아몬드꽃’이다. 동사 ‘샤카드’는 ‘경계하다, 감시하다, 깨우다, 지키다’라는 뜻이 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아몬드나무(히, ‘샤케드’)가 보이도록 하시고(렘 1:11-12)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의 말씀대로 지키고 경계하여(히, ‘샤카드’) 이루시겠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이렇게 보자면 등잔대를 살구꽃(아몬드나무의 꽃) 형상으로 만들게 한 것은 빛이신 하나님께서(요일 1:5) 이스라엘을 깨우고, 지켜 경계하며 언약의 말씀을 이루시겠다는 것을 나타내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 창조하신 것이 “빛”(히, ‘오르’)이고(창 1:3) 넷째 날 창조하신 것이 “광명체”(히, ‘마오르’)이다(창 1:14). 히브리어 ‘마오르’는 ‘마’(접두어)와 ‘오르’(빛)의 합성어이다. 접두어 ‘마’는 히브리어 알파벳 ‘멤’인데 그릇을 뜻하는 철자이다. 즉 빛을 담은 그릇 또는 빛이 비추는 장소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래서 출애굽기 27:20에서 “등불”을 ‘마오르’로 썼다. 그렇다면 등잔대는 빛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동시에 성소 자체가 창조하신 하나님을 품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출 32:31-40). 거꾸로 말하자면 창조의 상태를 성막에 담아놓고 계시하신다.
“등잔대”(17절)는 줄기 하나에 가지 여섯이 연결된 구조로 되어 일곱 개가 된다. ‘일곱’은 완전수로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일하심을 표현한 것이고, ‘여섯’은 사람의 수요 짐승의 수이다. 그렇다면 짐승과 같은 사람의 여섯이 일곱에 접붙임 받은 것과 같은 모양이다. 그래서 ‘일곱’이라는 언약의 수로 보여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언약을 성취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촛대(등잔대)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나타내신 것은 언약 성취를 일곱 교회의 완성으로 보여주신 것이다(계 1:13-16, 20).
“25 그가 또 조각목으로 분향할 제단을 만들었으니 길이는 한 규빗이요 너비도 한 규빗이라 네모가 반듯하고 높이는 두 규빗이며 그 뿔들이 제단과 연결되었으며 26 제단 상면과 전후 좌우면과 그 뿔을 순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 테를 둘렀고 27 그 테 아래 양쪽에 금 고리 둘을 만들었으되 곧 그 양쪽에 만들어 제단을 메는 채를 꿰게 하였으며 28 조각목으로 그 채를 만들어 금으로 쌌으며 29 거룩한 관유와 향품으로 정결한 향을 만들었으되 향을 만드는 법대로 하였더라”(25-29절).
분향(제)단의 제작에 대한 말씀이다. 언약 백성들의 기도를 상징한다(시 141:2). 분향 제단의 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고후 2:15-16). 그래서 요한 사도는 언약 백성들의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향에 합하여 보좌 앞에 올려지는 성도의 기도라고 선언하였다(계 8:3-4). 이런 점에서 실제 분향단은 지성소의 휘장 밖 곧 내성소에 두는 것이지만(출 30:6) 히브리서 기록자는 분향단, 즉 금향로가 지성소에 있다고 선언한 것(히 9:3-4)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자기 백성들의 기도와 합하여 하늘의 지성소에 온전히 들어가신 완성을 증거하였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속죄소에서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분향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계시한 것이다(20261011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