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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블랙야크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바람(김성학)
백두대간 종주 산행기
*일시:2007.06.24(일요일)
*구간:5구간(무령고개~영취산~깃대봉~육십령)/35 구간중
*산행거리(km): 도상거리:10.3/실제거리:10.91 /접속거리:1.0
*산행 시간(hr):2:30~4:00(선두~후미)
*산행 인원(명): 64(남:42 /여:22 )
*차량: 버스2대(45인승/30인승)
*출발: 블랙야크 상무점: 06:40/광주 문예회관 후문: 07:00
*날씨: 오전: 흐림, 안개 자욱/오후: 흐림, 안개 짙음/조망: 불량
*기온: 18~24도씨
*산행 코스간 거리(km): 무령고개~0.5~영취산(1076m)~2.9~큰 바위 전망대(북바위)~1.7~
977봉~3.6~깃대봉(1144.8m)~3.07~육십령 주차장
[산행기]
날씨가 심상치 않다.
오늘의 관심은 하늘이고 비이고 안개이다.
평소에 무관심하던 것들도 이슈화 되면 중요한것이 되어 버린다.
배낭은 큰 비닐을 안에 넣고 모든걸 비닐 속에 넣고 젖지 않아야
할 것들은 별도의 비닐에 낱개로 싼다.
가장 중요한 등산화는 미끄럼 방지창을 선택하고 스패츠로 위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과 술섶에 맺힌 이슬을 막아야 한다.
모자는 고어텍스 원단의 햇으로 목덜미로 들치는 비를 막아야 한다.
전체적으로 레인코트로 둘러쓴다.
카메라, MP3 등은 방수용 포켓과 큰비를 예상해서 비닐 팩도 여분으로
챙긴다.
하늘에 대비는 끝났고 다른 것은 일상적으로 챙긴다.
오늘 대원은 64명이다
상무점에서 10분 늦었다.
신청한 인원이 비가 올 것 같아 나오지 않아 연락 하느라 늦었다.
이런것이 습관이 자주 하면 버릇이 되고 나중에는 나쁜 품성으로
주요한 시점에 수령으로 빠져 들어 바닥에 가로 앉고 만다.
냄비속 개구리마냥 점점 달구어 지는 줄 모르고 느슨하게 즐기다
삶아지고 만다. 냄비 두껑은 열려 있었다.
요즘 사회의 변화 테마는 혁신이다.
가죽을 더욱 새롭게 하여 비단보다 더 부드러워야 살아 남을 수 있다.
긴장과 정열과 신사고로 붉은 과녁을 남보다 빠르게 시위를 당겨서
적시에 놓아야 화살은 본분에 만족한 위치에 박힐 것이다.
문예회관후문 7시 정시에 출발이다.
아직까지는 가던 길로 가고 있다.
88고속국도(12번)~남장수IC(19번)~장수, 덕유산 방향으로 진행~743국도
장계, 논개 생가 방향으로 진행 하다가 장안 교차로 지난다(08:38).
날씨는 잔뜩 흐리고 비는 올 것 같지는 않으나 그러길 바란다.
장안 터널(500m)을 통해 743번 국도 장계 방향으로 진행 한다.
터널 입구에는 단아하게 한복 입는 논개가 족두리 머리로 두 손을 맞잡고
읍한다.
구불구불 올라가다 오른쪽으로 큰주차장이 무령고개이다.
*무령고개/장수군 장계면 벽계 (08:50)
무령고개는 장수군 장계면과 번암면 지지리을 잇는 고개이고
백두대간의 기운을 충청, 전라도에 전하고 있는 호남벌의 명산인
장안산(1237m)으로 연결된 금남호남정맥의 첫 번째 고개이다.
버스 2대가 도착 하여 조용하던 산고개길이 한바탕 수선이다.
날씨는 안개가 자욱하나 비는 오지 않고 기온은 22도 후덥지근하다.
넓고 깨끗한 주차장에 현대식으로 잘 지어진 화장실 문은 굳게 잠겼다.
배낭과 복장 정리하고 스트레칭 시작,
오늘 첫들머리가 급경사 나무 계단이 300미터 이상 이어 지고 영취산 정상까지 오르막이다.
그래서 충분히 몸을 덥혀서 천천히 생체 리듬을 가동해야 무리가 없다.
앞 구간때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샘터도 겹눈 질로 지나고 콘테이너
매점은 철시중이고 원두막 벤치를 뒤로 하고 폭이 긴 나무 계단의
탄력을 다시금 느끼며 긴 오르막 계단을 하나하나 밟는다.(09:09)
오늘은 급 할 것도 없다, 육십령까지 가면 끝이다.
출렁거리는 탄성에 리듬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샘터 300미터 푯말과
나무계단이 끝나 버렸다.
조금만 흙과 돌이 반섞이인 오르막을 오르면 영취산 정상이다.
우리 야크들 주력이 일취월장하고 있고 장난이 아닌 수준이 되었다.
여러분은 이미 정상이다.
*영취산 정상(1076/09:15)
이정표: 백운산 3.8km/깃대봉 7.5km/무령고개(샘터) 0.4km/장안산 3.5km
날씨: 안개로 사위는 묘연 하고 비는 오지 않음, 기온 20도
진록의 나뭇잎 아치 동굴을 벗어나며 12분만에 올라 왔다.
정상 이정표와 돌탑은 여전히 사이좋게 팔짱끼고 나란히 서 있다.
약간의 공터 한편에 안내판도 있다.
우리나라의 산줄기:1대간 1정간13정맥으로 표시된 15개의 산줄기들은
10개의 큰 강에 물을 대는 젖줄이자 그것을 구획 하는 울타리이다.
영취산은 백두대간에서 서쪽으로 금남호남정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이기도 하고
동으로는 낙동강 서로는 금강 남으로는 섬진강이 흐르는 3강의 분수령이기도 하다.
안개 속에 조망은 꽁꽁 숨었고 안내판의 안내도로만 상상 속에 그려 본다.
북으로 덕유산을 그리며 덕운봉 방향으로 내리막으로 접어든다.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은 것이 미안 했을까?
하얀 산딸나무꽃이 날카로운 +자 표창처럼 진록의 잎사이로 날아 앉았다.
어찌 보면 백학 무리가 하늘을 나는 모습같이도 하여 이채롭다.
염려 했던것 보다 산행이 어렵지 않고 순조로워 다행이다.(09:20)
작은 무명봉이다,
한 폼하는 작고 낮은 소나무가 바위에 팔 베게을 하고 바람 부는 방향으로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절벽 바람을 즐기고 있다.(09:46)
다시 잡목 숲속으로 들어 간다.
오늘은 먼 산수경을 조망 할 수 없으니 가까이 있는것에 관심을 갖고
친근감을 보여야 무료한 산행에 빴지 않는다.
내가 마음을 비우면 그리움이 아름다움으로 채워 진다.
덕운봉을 우회길로 기나간것 같다.
가끔 한 번씩 올라서는 작은 바위와 오름점의 둔덕에서 큰 호흡으로 폐의 묵은 공기를 몰아내고
새 공기로 치환하여 호흡기를 활성화 하여 본다.
그래도 간간이 있는 소슬바람이 언덕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10:00)
이정표:4거리다(10:21)
오른쪽은 경남 서상면 옥산리 3.5km/왼쪽은 장수 대곡리 논개 생가 2km
뒤로는 영취산 6.5km/ 직진은 육십령 6.5km 오늘 구간의 딱 중간이다.
땅바닥에 떨어진 이정표이다.
*전망바위(북바위):10:38
북바위는 대간길 왼쪽 편에 잇다.
편하게 올라 조망 할 곳은 못 되고 위험스런 형상이다.
바위 아래는 안개로 깊이를 가름 할 수가 없는 아슬아슬한 천길벼랑이다.
오동제 저수지에 흰 구름 뜬구름이 가득 담긴 시원한 풍경을
못 보아 아쉽다.
시원한 바람이 안개속에서 불어와 모자를 들썩이고 콧구멍에 가득
바람을 채우고 솟구친다.
잠깐 배낭 내리고 내친김에 등에도 바람 쐬고 간식도 먹으련다.
새콤한 자두랑 모시잎떡도 나누어 먹었다.
이정표(북바위옆):육십령 6km (10:45)
*암릉지대: 능선 우측으로 암벽이 구성 되어 있고 안개 속에
뜬 마루금이다.
석질이 푸석하여 마사가 깔려 발바닥을 간질인다.
*민령(민재):(10:59)
이정표(10:59):백운산 6.7/깃대봉 1.3/임도 0.8
여기가 민재인가? 싶다, 임도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는걸 보니!
억새의 좋은 길을 지나고 앞 봉우리는 여전히 안개를 둘렀다.
아래로는 육십령 터널이 바늘귀처럼 지나 갈 것이다.
*깃대봉(1014.8/11:20)
이정표: 육십령 2.5km/977봉 3.5km
깃대철봉주 3개가 긴장대 만큼이나 크게 세워 졌다.
가운데 깃발은 바람에 째져지고 세월에 헤져서 엉키어 꼼짝 못한다.
무엇을 산사람에게 전하려 펼럭였을까?
아래 세상에 무엇을 전하고자 함이였을까?
단지 녹색의 깃발 이였음만 가늠갈 뿐이다.
백두대간 안내판만 간략히 주변 산세를 귀뜸해 준다.
남덕유부터 향적봉까지 장대한 용트림을 볼수 없다니 여간 서운하다.
봉우리 터는 상당하고 흙봉우리이고 주변에 큰 나무가 없어 그늘도
없겠다
여기서 점심 식사 하고 가기로 하고 도시락을 육십령 차에 두고
오신분들도 있어 나누어 먹는다.
산에서는 안 맛있는 것이 없다.
식사 하는 동안 김밥 한 줄 들고 깃대봉 조망 안내판을 읽어 본다.
깃대봉에서 본 남덕유산 조망 안내입니다.
덕유산은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함양군과 거창군에 걸쳐 있다.
북덕유에서 무룡산과 삿갓봉을 거처 전방에 바라보이는 남덕유에
이르는 주능선 길이만도 20km가 넘는 거대한 산이다.
할미봉은 기암 괴봉의 운치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형형색색으로 변하여 산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2시간 반 왔고 1시간이면 육십령에 갈수 있다.
깃대에는 자욱한 안개만 걸처서 펄럭 인다.
모처럼 8조가 모여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떠난다(11:40).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이 직선으로 통하고 다른 길은 통나무로
야무지게 2단으로 얽어 막아 버렸다
조금 내려오면 억새평원에 3거리가 나오는데 이정표도 없어 직진으로
가버리면 안 된다.(독도주의)
이야기하며 깔끔한 바닥의 내리막에 가속 되어 지나치기도 하겠다.
오른쪽 내리막으로 바닥에 종이 표식기로 유도 하고 계속 내려간다.
낮은 억새길 옆으로 산나물도 많이 군생해서 육십령에서 많이 올라
오겠다.
그중에 참취는 간에 염증이 있거나 열이 있는 간병에 좋다.
육식을 많이 하고 운동이 부족한 현대인들에게 권장할 만한 나물이라 할 수 있다.
대간길에 꽃 처녀들이 있어 안개속에서도 즐거웠다.
하늘말나라, 참꽃마리, 미나리아재비, 별개미취, 엉겅퀴, 붓꽃, 노루오줌풀,
쥐오줌풀,둥근이질풀 그리고 흰노루발풀…….
흰노루발풀꽃: 파란 화경에 흰 꽃이 층층이 쌓아 올린 꽃탑이
진록의 광택 나는 넓은 잎을 받침으로 안정하고 편안하게 바람을 즐기고 있다.
긴 꽃대 끝에 아직 봉우리인 수정구슬 같은 순결한 모습
벌 나비에게 아직 마음을 주지 않았고 꿀도 주지 않았다.
이슬처럼 가녀리고 순결하여 콧김마저 네게 갈까 미안하다.
*깃대봉 샘터(11:46)
얼마간에 급경사 흙길을 미끄럽게 내려오면 우측 한편에 샘터가 있다.
1“정도 파이프에 물받이 돌은 둥글고 옴팍하게 2대박 정도 물을 받고는
흘러 보낸다.
샘터 테두리를 ㄷ-자 형태로 깨끗하고 파란, 빨간 바가지 몇 개와
샘터를 아끼는 문구판이 옛날의 작은 것과 새것의 번쩍거리는
스텐레스판에 옮겨 적은 같은 글귀가 관심을 끈다.
약수터에 목을 축이는 길손이여!
사랑 하나 풀어 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 가닥 그리움으로 솟아 나고…….
우리는 한 목음의 약수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 합시다.
우리는 한 목음의 약수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 합시다.
-깃대봉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번적거리며 온 몸을 다 반사하는 새것 대신 아담하게 한눈에 들어오고
읽기에 편한 작은 옛날것을 읽어 보았다.
돈 들인다고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닌가 보다.
위의 흙 경사 길에서 미끄러진 윤영애님이 약수물로 대략 소재를 하고
한 목음의 물맛을 음미 하며 폭 넓게 깔끔하게 닦아 놓은 계단길을
내려간다.
우측에는 펑퍼짐한 계곡터를 이용해 큰 시설 하우스가 여러동 설치되었고
진입로가 회색으로 때 묻지 않은 걸로 보아 최근 시설 인듯 하다
이런 길을 조금 더 내려간다.
이정표(12:16):직진 능선(육십령 매점 주차장)/
우측 내리막(육십령 휴게소)
직진으로 가면 곧 큰주차장이고 우측 내리막으로 가면 육십령 휴게소의
판넬로 지어진 옛날 가건물이다.
이리 가나 저리 가나 육십령재에서 200m 정도에서 만나는데
직진 능선에 차를 주차 하니까 직진 능선으로 가는게 좋겠다.
*육십령/장수군 장계면(12:20)
전북 장수군 장계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을 잇는 고개도로이다.
지금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가 계통 되어 차량 통행이 한산한
고개마루가 되었다.
이정표: 남덕유산 8km, 영취산 11km, 백운산 14.5km, 장안산 14.5km
직진 능선으로 오면 곧 내리막에 단정한 묘 4기와 비석으로 단장한
곳을 지나며 급경사에 다리에 힘 뺄 틈도 없이 육십령의 넓은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서고
연꽃 형상의 음용수대가 반긴다.
충영탑:입형의 조형탑으로 두 날을 가진 쌍지창 같기도 하고
놀란 토끼귀 같기도 하며 만세 만세 힘차게 외치는 두 팔 벌린
사람 같기도 하다.
돌 향로는 차갑게 식어 있고 미제 총든 군인이 양각으로 조각 되었으며
태극기만 돌속에서 휘날린다.
육십령루:매점 지나 화장실 가는 우측에 육각형 지붕에 흰 지붕이 깔끔한
현대식 전망루다.
날씨만 좋았다면 덕유산을 다 보고 남덕유는 손에 잡힐듯 했으리라.
전망루 정면 아래로 말을 사육하고 훈련도 시키는 경마장이 큰 타원을 그리며
말무리의 발굽에 하얀 먼지가 이는 듯 안개가 백마 갈기처럼 흩날린다.
육십령 표지석: 자연석의 거대한 것이 10여척은 넘겠다.
육중하고 풍만한 몸매가 제법 균형 있고 친근감 가는 느낌이다.
차분한 예서체의 글씨가 검정색과 어울린다.
도로 건너가 다음구간 덕유산으로 가는 관문이다.
육십령은 사연도 많은 이름이다.
장수군에서 설치한 안내판 글귀이다.
[영남과 호남을 이어 주는 이 고개는 국도 26호선이 지나고 있으며
육십령이라 부른다.
육십령은 그 구비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품고 있다.
첫째는 안의감영에서 이 고개까지 육십리(24km)이고 장수
감영에서도육십리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둘째는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육십 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넘을 수 있다는 설과
셋째는 육십령 고개에는 산적이 많아서 함부로 넘지 못하고 산 아래 주막에서
육십 명이 모일 때까지 며칠씩 기다렸다가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떼를 지어
넘어야 화를 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충혼의 고장 장수: 장수에서 더군다나 육십령에서 논개를 얘기 하지 않고
내려 갈수 있겠는가?
주논개는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 마을에 생가가 있고
무덤은 민령에서 동쪽에 위치한 함양군 서생면 금당리 방지마을에 있다.
방지 마을은 논개의 조상들이 살았던 곳으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간에서 나서 대간에 묻힌 논개를 말하는 것이다.
빗물이 금강과 섬진강으로 나누어지는 수분령의 의암사를 찾아가면
임진왜란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진주성 싸움에서 아리따운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순절한 의기 논개의 영정과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주논개(1574~1593)는 천품이 영특하고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마을 훈장이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작은 아버지가 돈을 받고
김풍헌의 백치 아들에게 민며느리로 팔아졌다.
이를 안 모녀가 완강히 반대하자 김풍헌이 장수현감에게 소장을 올렸고,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고 모녀는 관아에 머물면서 당시 최경회 장수 현감과
부부 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회는 이듬해 사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 되어 진주로 부임 할 때 간청하여 따라 갔다.
그러나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치열한 전투 끝에 진주성이 함락 되며
평생을 의지 하려던 최경회 역시 전사 하였다.
이어 칠월칠석날 왜적들이 진주 남강 촉석루에서 승전 술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논개는 기생으로 왜장을 유인하여 촉석루 아래 바위 절벽에서
그를 껴안고 남강 푸른 물속에 몸을 던져 함께 죽었다.
훗날 그녀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어 그 바위를 의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양귀비보다 붉은 영혼은 언제나 스무 살 아름답고 슬픈 모습으로
가슴에 남으리라.
육십령을 의병들과 함께 넘던 논개를 이 황망한 고개 어디서 느껴 봐야 하는가?
인연법에 가장 슬픈 이별을 한 논개는 죽어서 아름다운 이별이 되었다.
오늘도 주논개 생가 옆을 지나 속인으로 돌아간다.
백두대간 하늘길에서 바람(김 성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