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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문학관.한국시낭송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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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 게시판 스크랩 13.8.1 중국여행 4일차(청해호-고절-탑이사-시닝)
지리산문학관.계간시낭송 추천 0 조회 156 17.03.06 17: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여행일정 :

    5:50 숙소 출발 - 6:28 청해호 일출 - 8:30 숙소 출발(흑마하현) - 10:25 고절 관광 - 11:40 점심

    - 14:40 타얼스(塔爾寺) 16:40 - 18:00 시닝 호텔(福美호텔) - 19:30 청진대사 - 20:20 저녁 - 22:00 발맛사지

여행경비 : 아침 숙소 10위안(죽, 만두) 식당 발맛사지 88위안(9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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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호 일출 : 밤하늘을 가득 뒤덮은 별들이 여기저기서 깜밖이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수히 많은 별들과 그사이를 은하수가 흐르는 광경은 참으로 오랬만에 보는 감동적인 풍경이다.  일출을 보러가기 위하여 일어난 새벽 아직도 어둠이 갈린 주위에는 그 많던 별들이 다 사라지고 초승달만이 외로이 텅빈 하늘을 지키고 있었다. 여회원들은 일출감상을 포기를 하여 우리 셋만 길을 나섰다. 벌서 많은 차들이 도로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도 도로를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도 사람들을 따라 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나무기둥을 세워놓은 문이 있었으며 여기도 룬다가 세워져 있었다. 그 안으로는 화려한 무늬의 담자을 가진 천막 숙소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조그만 유원지 마을이 있었다. 마을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가니 청해호라쓴 돌비석이 있엇으며 흰색의 탑과 룬다 그리고 론 깃발들이 무더기로 있는 해변가에 도착을 하였다. 바로 청해호 왼쪽 끝자락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하여 해변가에 늘어서 있었다. 이 날씨도 춥다고 담요를 덮어쓴 사람들도 보였다. 이곳도 낮에 들어올때는 입장료를 받는데 새벽에는 받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고요한 호수에는 덩치가 큰 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으며 새들은 분주하게 호수위를 이리저리 날라 다니고 있었다. 드디어 멀리 호수 한곳이 붉으스르하게 빛나고 콩알만하던 붉은 기운이 점점 호수위로 얼굴을 내밀더니 붉은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일출이 진행이 되었다. 호수위에 깔린 구름 사이로 둥그런 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드디어 북은 해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관을 우리에게 선사를 한다. 매일 뜨고 지는 해이지만 이렇게 일출을 볼때마다 설레이고 감흥이 새롭고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한다. 호수에서 떠오른 태양은 이제 호수에 한줄기 붉은 그림자를 던져 놓고 하늘로 솟아 오르니 일출도 끝나고 일출의 흥분을 간직한채 다시 왔던 길로 돌아들 간다. 아침은 우리의 숙소 식당에서 해결을 하였다. 죽과 만두 그리고 계란등으로 간단하게 주문을 하였다. 죽은 담백하고 맛이 있어 입맛을 돌게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친후 오늘은 왔던 길을 되돌아 시닝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어제 늦게 차카염호를 구경을 하여 오늘은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오늘은 예정에 없던 시닝의 유명한 사원 마제사를 가기로 하였다. 이곳 흑마하에서 시닝까지는 210k거리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길이라 부담이 없었다. 어제의 감동을 되살리며 스쳐가는 차창밖의 풍경에 눈을 떼지를 못한다. 길거리에는 군데군데 벌통을 놓고 그옆에 천막을 치고 꿀을 따 팔고 있는 장사꾼들이 군데 군데 있었다. 우리도 한곳에 내려 맛을보기 위하여 유채꿀과 잡꿀을 한병씩 구입을 하였다. 500g에 16위안 하였다. 우리는 준비해온 삥에 꿀을 찍어 먹었다.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어제 지나치며 신물이 날 정도로 구경하며 지난 길인데도 오늘 또 구경을 하니 새로운 기분으로 새로운 감동의 물결이 느껴진다.

 

 

 

 

 

 

 

 

 

 

 

 

고절 관광 : 길 옆에 이름도 떨어져 나간 그러나 상당히 큰 고절이 있었다. 어제는 그냥 지나?으나 오늘은차에서 내려서  절을 구경을 하였다. 앞 언덕의 건물에 매표소 글자가 망가져 있었고 문도 잠겨 있었다. 담 옆으로 해서 절로 올라갔다. 그래도 룬다의 깃발만은 선명하고 밝은 색갈로 펄럭이고 있었으며 둘레 언덕의 초지 위에는 라마어로 흰색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건물 앞쪽을 막아선 담벼락에는 마니차가 만들어져 있었으며 갖가지 벽화가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으나 건물은 어긋나고 부서질듯이 서있었다. 여러개의 흰색의 돌탑들이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본전 안에는 큰스님을 따라 두명의 학동이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중앙의 건물은 수리중이었다. 한때는 이절도 입장료를 받을 정도로 웅장하고 번창한 적이 있었을 것이나 지금은 이렇게 퇴락하여 예전의 영화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곳 절에서 바라보니 넓은 초원이 멀리가지 한눈에 들어 온다.  

 

 

 

 

 

 

 

 

 

 

 

 

 

 

 

 

 

 

 

 

 

 

 

 

 

 

 

 

 

 

 

 

 

 

 

 

 

 

 

 

 

 

도창하 삼거리길을 지나자 도로 한가운데에 날렵한 치마를 입고 금방이라도 하늘로 솟아 오를듯한 여인의 동상이 시선을 잡아 끈다. 아마도 일월산에 있는 문성공주의 동상인 모양이다. 이제 일월산 허리를 돌아 시내로 들어 간다. 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하고 좁은 샛길로 들어 간다. 우리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더 많이 볼수가 있어서 좋았다. 나가는 곳에는 큰차들이 못다니게 말뚝을 박아 놓았다. 중국에는 도로비가 비싸서 고속도로도 이렇게 샛길이 있어서 도로비를 탈루를 하고 있었다. 길 옆 초지에는 옛날에 담으로 사용했는지 흘으로 만든 담들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점심식사 : 황원시 근처에 오니 점심때가 되어서 태화면집에서 점심을 하였다. 갈때 단갈고성에서 나와서 식사를 하였던 식당 근처에 있는 식당이었다. 들리는 식당마다 음식이 입맛에 맞으니 보이는 아무런 식당이나 들러도 상관이 없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시닝 시내로 들어와 다시 황수하를 건너 서남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오른쪽으로 대남천 저수지 옆길로 난 도로를 따라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능선을 넘으니 눈을 의심할 정도로 갑자기 많은 차량이 붐비고 사람들이 가득찬 마을이 눈앞에 나타난다. 타얼스(塔爾寺) 마을이었다.   

 

 

 

 

 

 

 

 

 타얼스(塔爾寺)  : 문성공주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니 티베트 불교가 등장을 하고 시닝의 유명한 타얼스가 등장을 하게 된다. 우리의 이번 여행에는 들어 있지를 않았으나 차카염호에서의 일정때문에 오늘 일정에 여유가 생겨 방문을 하게 되었다. 

   " 티베트 불교는 라마교라고도 하며 손첸캄포(松贊岡保)왕(?~649)때 중국 문성공주와 인도 브리쿠티 데비 두 왕비가 각각 중국계와 인도계의 불교를 도입하였다. 주술을 중시하는 티베트의 고유신앙인 본교(BON)교와 융합하여 토착화해 갔다. 그후 8세기 중엽 인도의 샨티락티샤(寂護)와 파드마 삼바바(蓮華座)가 밀교를 전한 뒤부터 티베트 불교의 근원은 밀교가 되었다. 랑다르마왕이 한때 파불(破佛)했었으나 1038년경 인도에서 초빙된 아티샤가 티베트 미교를 크게 개혁을 하여 13세기에는 원(元)나라에 전파되어 국교가 되기도 하였다. 15세기에 총카파(宗喀巴)가 반야중관(般若中觀)사상을 기초로 하여 이를 밀교와 융화시킴으로서 카담파를 개혁하여 계율의 엄수를 부르짖으며 황모를 사용하며 티베트 불교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그의 종파를 황모파(黃帽派:거루파)라 하며 그 전의 종파를 홍모파(紅帽派:닝마파)라고 한다. 총카파의 제자 중 겐둔그룹(1391~1475)이 초대 달라이라마(達賴喇마)가 되어 현재 14대에 이르고 있다. 달라이는 몽고어로 바다를 뜻하며, 라마는 덕이 높은 스승을 가르킨다. 티베트인은 자신의 국가를 관음(觀音)의 정토(淨土)라 생각하며, 그 통치자인 달라이라마를 관음의 화신으로 생각을 한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뿐만 아니라 북인도 몽골 및 중국 일부 지방에 있다. 거루파의 법왕 달라이라마가 거주하면서 집무하던 티베트 라싸 서북부 마부르산 위에 있는 포탈라궁(包達拉宮)은 손첸캄포가 문성공주에게 지어준 건물이라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달라이라마 5세가 17세기 경에 지은 것이다 - 두산백과 - "

 

   타얼스는 티벳불교의 거루파 6대 사원중의 하나로 창시자 총카파 대사가 태어난 곳이다. 서녕시 남쪽 25k지점에 있으며 황중현 루사울진의 8개의 연꽃봉우리가 감싸고 있는 산속에 자리잡고 있다. 1357년(원 지정17년) 총카파대사는 현재의 대금와전 대은탑 자리에서 태어났다고 전하며 태어난 자리에 자란 보리수에 10만개의 잎이 나오고 사자후불상 10만존이 나타났다고 한다. 1397년 총카파대사의 모친이 대사의 편지에 따라 부근 5개 마을의 도움으로 태어난 곳에 연꽃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1560년에 정수스님 르네칭 총저지알천이 이 탑 남쪽 산에 작은 절을 지었다. 1583년 3대 달라이라마 색남가조(索南嘉措)가 청해에 도착하여 타얼스에 거주하며 기념탑 우측에 미륵불전을 건축하여 본전으로 사용을 하였다. 탑이 먼저 건립되고 절이 나중에 세워져 타얼스라고 함. 1961년 3월4일 국무원으로 부터 중국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중심가에 넓은 광장이 있었으며 왼쪽 대각선 방향 언덕을 따라 탑이사 절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광장 오른쪽에 매표소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수많은 관람객들과 참배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광장 오른쪽에는 백탑이 도열하듯 늘어서 있었다. 이곳 안내판에도 한글이 병기되어 있어서 의아하게 생각이 되었다. 오늘도 이 많은 관광객 중에서 한국인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이 보인다.   

 

 

 

 

*** 매표소 건물 ***

 

 

 

 

 

 

 

 

 

 

 

 

 

 

 

 

 

 

여의보탑 :

 

 

 

 

*** 호법신전 ***

 

 

 

 

 

 

 

 

 

 

 

 

 

 

 

 

 

 

 

 

 

 

기수전 :

 

 

태평탑(太平塔) :

 

 

 

 

 

 

 

 

 

 

대경당(大經堂) :

 

 

 

 

 

 

 

이 골목으로 들어가며 사진을 찍었더니 왼쪽 담벼락에 있던 건장한 중이 쫓아와서 사진을 찍지를 못하게 한다. 이곳은 촬영 금지구역 표시도 없는데 멋대로이다. 그래서 어디 수행을 제대로 한 불자라 할수 있겠는가. 경내에는 곳곳에 촬영금지구역이 있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타얼스 관광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두명의 신자가 오체투지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온 몸을 던져 힘든 고행을 하는 신심이 어디에서 나오는가 궁금하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마니차를 돌리며 신심을 달래는 것과 어떤 믿음의 차이가 있을가 더 힘든 고행이 더 많은 복을 받을 수 있을가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타얼스 관광을 마치고 다시 시닝 시내로 돌아오니 이정표 노릇을 하는 남산의  흰색 돛단배 모양의 건축물이 햇빛을 받아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중심가에 있는 복미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복미호텔 : 시닝에서 제일큰 이슬람사원 근처에 있는 호텔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거리 관광에 나섰다. 우리의 호텔 길 건너편에도 이슬람 사원이 있었다. 왼쪽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많은 나무가 식재된 넓은 도로가 나온다. 이 도로가 시닝시내 남북을 관통하는 중심도로로 우리가 첫날 내렸던 중상광장과 연결되는 도로이다. 

 

 

 

 

청진대사 : 중심도로를 건너 계속 큰길을 따라가니 뾰족탑이 두개 하늘로 솟아있는 이슬람 사원에 도착을 하였다. 마침 예배가 끝났는지 머리에 하얀색 빵모자를 쓰고 검은색이나 흰색 두루마기 같은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거리를 지나간다. 완전히 회족사람들의 거리였다. 사원은 바로 큰길가에 있었으며 앞마당에는 아직도 많은 신도들이 운집해 있었다. 왼쪽 건물에는 예배를 보기전 손발을 씻는 곳이다. 우리는 기독교와 불교문화에 길들여 이슬람사원에 접근하기에는 불안하고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있다. 앞마당에서 외관만 구경을 하고 사원 내부에는 들어가볼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사원정문 한쪽에는 청진사와 뉴앙스가 다른 팔각탑이 세워져 있는데 청진사의 부속건물은 아닌것 같았다. 청진사 관광으 마친 후에는 근처에 있는 청진식당에서 삥을 주식으로 각종음식을 주문하여 저녁식사를 하였다. 간판에 청진이라고 쓰여있는 곳은 무슬림용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을 알리는 글귀이다. 다른 중국음식점의 특이한 냄새나 기름에 튀겨 느끼한 맛도 없이 이곳 음식도 깔끔하고 담백하였다. 저녁을 먹은후에는 내친김에 발맛사지도 받으며 청해에서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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