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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15 장
안식이 있는 거룩의 경제 공동체(제4계명의 적용)
(찬송 208장, 구찬송가 246장)
2020-4-25, 토
15장은 예배(거룩)와 일상(정결)이 조화된 삶을 살도록 명령하는 4계명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맥락과 의미
신명기 12장부터는 언약의 기본 명령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입니다.
15장은 4계명을 삶과 제사-예배에서 실천하는 구체적 방법을 말합니다.
1-3계명은 여호와만을 예배의 대상으로(오직 하나님, 1계명) 삼아 예배하는 방법(보이는 우상이 아니라 말씀으로, 2계명)과 태도(가볍게 하지 않고 공경, 3계명)를 가르칩니다.
4계명은 1-3계명의 예배에 대한 가르침을 종합합니다. 예배를 위해 1주일에 한 번 쉬어야 합니다.
또 4계명은5-10계명의 서론이기도 합니다. “6일 동안 힘써 일하라”는 명령을 시작합니다. 일하는 공동체는 가족과 노비들, 나그네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쉬는 쉼의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15장은 일상과 예배에서의 거룩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7년에 한 번 빚을 면제하고 노예신분에서 해방하라(1-18절)
1년에 한번 한 번 소와 양의 처음 난 것을 여호와 앞에서 먹는 방법(19-23절)
이 두 가지 주제는 하나님의 안식을 7년 단위로, 그리고 매년 실천하는 안식의 공동체를 보여 줍니다.
1. 안식의 경제사회공동체: 7년만다 빚을 면제하여 노예해방 (1-18절)
1)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빚을 면제함 (1-11절)
1절, 매 7년 끝에 빚을 면제합니다. “면제하라”는 40년 전 시내산 언약의 안식 제도에서 이미 하신 말씀을 더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계명입니다. 출 23:10-11, “너는 6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7년에는 가지 말고 묵혀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묵혀둔다”는 말과 “면제한다”는 같은 말입니다. 7년마다 땅을 묵혀두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들짐승을 위해서입니다. 이제 40년이 지난 지금, 곧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백성들에게, 안식의 공동체를 이루라고 오늘 신명기 15장은 말합니다.
언약의 공동체의 형제 자매에게는 제 7년에는 빚을 독촉하지 말아야 합니다(2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 빚을 갚지 못한 형제 자매는 빚을 면제해 줍니다. 7년째가 되기까지 열심히 일해도 빚을 갚지 못한 형제 자매는 7년 째에는 빚에서 해방되어 안식을 누립니다.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에는 일에서 해방되어 쉼을 얻는 것은 종들도 함께 누리는 복입니다. 그 안식일의 복이 안식년의 복에 스며 들어 있습니다.
이방인에게는 빚을 독촉할 수 있습니다. 빚을 면제해 주는 안식은 우선 언약 공동체 안에서 이루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람이 아니라, 아마 장사하면서 오가는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빌린 돈은 생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업상 빌린 돈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사업상 빌린 돈은 갚도록 했습니다.
형제들에게 빚을 면제해 주라는 명령에 순종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5절). 더 복을 주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자신들이 가진 것이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임을 바로 아는 성도는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여 형제들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더구나 이 은혜를 베푸는 성도에게는 더 많은 물질적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더 많은 물질적인 축복을 주시는 이유는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5절). 하나님의 축복으로 물질을 받고, 그 물질로 서로 나누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없는 세상. 이것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물론 물질로만 천국이 되지 않고, 삼위 하나님의 임재와 성도의 사랑이 물질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천국입니다. 언약공동체는 앞으로 올 완전한 천국에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다 이루어 지지 않았지만, 그 천국 백성으로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이기심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면제년 제도를 악용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면제년이 다가 가오면 사람들이 빚을 갚지 않아도 되니까 쉽게 빚을 내려고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도 면제년이 다가오면 필요한 사람에게도 돈을 빌려주지 않으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강하게 경고하십니다. 9절, “일곱째 해 면제년이 가까이 왔다하고 네 궁핌한 형제를 악한 눈으로 바라보고 아무 것도 주지 아니하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그것이 네게 죄가 되리라.” 면제년이 다가왔다고 나누지 않는 것은 악이요 죄라고 선언합니다. 궁핍한 형제가 배가 고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그 형제에게 빌려주지 않은 부자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 벌을 받을 것입니다(9절).
부자들은 완악한 마음을 품고서 자기 돈을 움켜쥐고 있지 말고, 가난한 자에게 손을 펴서 넉넉히 빌려주어야 합니다. 떼일 각오를 하고라도 면제년 직전에도 아낌없이 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빌려준 자에게 다른 식으로 복을 주시고 풍성하게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냥 죄고 있는 경우 보다 나눠 주는 것이 더 풍족하게 되는 길입니다.
11절에, “땅에서는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그래서 가난한 자를 아무리 도와 주어도 빈곤 문제는 해결할 수 없으니, 돕는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다릅니다.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당에 네 형제 중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이 땅에 두시면서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네가 그들을 도와 주라.” 그러나 “이 땅에 가난한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그 문제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 가진 것으로 나누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늘 가난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대상이니까, 하나님이 주신 분들입니다. 주위의 가난한 성도들을 늘 돌아 봅시다. 우리의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푸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복 주셔서 항상 베풀 것이 흘러넘치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 간에 종을 자유케 함 (12-18절)
제7년에는 빚을 탕감할 뿐 아니라, 노비가 된 형제들을 해방합니다. 자유를 회복해 줍니다. 종을 놓아줄 때는 후하게 돈을 주어서 앞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도와 주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이 노예의 주인 또한 과거 애굽 땅에서 종살이 할 때에 여호와께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주인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종을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해방된 공동체는 계속 해방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재산과 인격의 자유를 향한 해방의 천국으로 나아갑니다.
종에게는 계속 주인 아래 머물러 있을 것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자유도 있습니다. 주인을 사랑하는 이유에서 그렇게 압니다. 그러면 주인은 종의 귀를 뚫고 영원한 주종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이 모습은 보통 때도 주인과 종이 마땅히 이루어야 할 관계를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주인 항상 종의 사랑을 얻을 정도로 종을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 종은 주인을 사랑해서 자발적으로 복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어야 할 주종 관계는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 많이 다릅니다.
노예를 7년마다 해방시키는 것은 경제적인 정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18절). 지난 6년 동안, 종은 일반 고용된 자보다 두 배나 섬겼으니 마땅히 놓아주어야 합니다. 정의를 실천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큰 복을 주십니다. 나의 재산의 손실이 있어 보여도, “그를 놓아 자유케 하기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18절)
2. 짐승의 첫 새끼는 안식의 상징: 제사 후에 함께 먹음 (19-23절)
짐승의 첫 새끼를 구별하여 드리는 것은 바로, 안식일의 거룩을 가축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짐승의 첫 새끼를 “부리지 말라”는 일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4계명에서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신명기 5:13)에 나오는 말입니다.
제 7일에는 일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첫 새끼를 일하게 하지 않습니다. 첫 새끼를 거룩한 성전에서 바쳐서 가족 전체가 함께 여호와 앞에서 먹도록 했습니다(20절). 노비들도 함께 먹을 고기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첫 새끼를 일하지 않게 하고 오히려 공동체가 함께 먹고 즐거워하게 한 것은 안식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체험학습이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첫 새끼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게 하십니다. 장애 있는 첫 새끼는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집에서 아무나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장애가 죄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율법 의식에서 부정한 자(시체를 만진 자)도 첫 새끼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드신 복지 혜택입니다.
첫 새끼에 대한 규정은 신명기 12장의 말씀과 비슷합니다. 소와 양의 제사는 항상 하나님이 선택한 곳에 가서 드리고, 노예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즐거워합니다(12:7). 그러나 각 성문, 집에서는 누구나 먹고 싶은 대로 소와 양을 잡아서 정한 자, 부정한 자 모두 즐겁게 먹습니다(12:15).
믿고 복종할 일
1년 단위로, 다른 짐승은 일하게 하고, 첫 새끼는 거룩하게 성전에 바쳐서 즐겁게 음식을 먹는 것을 반복하게 하셨다.
7년 단위로, 빚의 면제와 종의 해방을 통해 재산과 인격의 자유를 회복하게 하셨습니다. 또 7일 단위로, 6일 동안의 노동 후에 안식을 누리는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의 임재가 인간의 노동과 활동 가운데 비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역사 전체가 안식이 완성된 천국을 향해 나가도록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이미 그리스도의 승천에 의해 안식에 들어와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6일 동안 땀 흘려 일하고 인생을 즐깁시다. 그리고 제7일에는 예배하며 하나님을 즐깁시다. 이 안식이 우리의 경제활동에서 스며들게 합시다.
땀 흘려 일하면 돈을 모으고 더 즐기고 저축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 모든 수고는 손을 움켜지고 부를 독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가난한 형제 자매가 이 안식에 함께 들어오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안식에 더 많은 사람이 들어오도록 교회 안에서 먼저 나눕시다. 나눔의 공동체가 더 확장되도록 목사를 양성하고, 선교하는 일에 돈을 사용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천국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정확한 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안식과 기쁨의 나라를 지금부터 조금씩 맛보고 이루어 갑니다. 먼저 교회의 예배에서 누립니다. 성도들이 서로 나누면서 누립니다. 예배와 나눔의 공동체인 이 교회에서 복을 누린 성도는 세상의 소금으로 스며듭니다. 빛으로 나타납니다. 우리 사업체와 직장에서 학교에서, 그리스도의 이 은혜와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나타내는 이 특권을 귀히 여깁시다. 나눔은 특권입니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1절, 면제하라
“면제하라”(샤마트)는 출애굽기 23:10-11, “너는 6년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7년에는 가지 말고 묵혀두어서(샤마트)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에서 나옵니다.
<참고> 19절, 부리지 말고
“부리지 말라”(로-아바드)는 일하게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4계명에서 “엿새 동안은 힘써(아바드)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신명기 5:13)에 나오는 말입니다.
<참고> 출애굽기 20장의 안식일과 신명기 5장의 안식일
출애굽기 20장에서 4계명은 “하나님께서 제7일에 쉬셨다”는 사실에 기초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 5장에서 4계명은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에 기초합니다. 신명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기초해 있는 언약 공동체의 일상에서 인간적 공동체 만들기를 더욱 강조합니다.
출 23:3은 “너는 6일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제 7일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요, 네 계집 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안식일은 남자 종보다 더 힘든 여자 종, 더구나 그 여자 종의 아들까지 쉼을 주는 날, 나아가 소와 나귀도 쉬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들짐승도 쉼을 즐거워하는 우주적 안식입니다(출애굽기의 4계명의 강조점), 사람들이 물질적으로도 해방을 경험하는 사회적 안식(신명기의 4계명의 강조점)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7일에 한 번 기계적으로 쉬는 정도의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우주와 사회, 역사 시간의 모든 수고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찬란히 비치는 극도의 즐거움의 시간입니다.
<참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면제(1,2,3,9,10)와 해방(12,13,18)
1) 빚을 면제(샤마타=아페시스) à 자유, 죄상함
예수님이 낮아 지신 상태에서: 그리스도께는 자신이 이루시는 구원은 구약 백성에게 빚을 “면제하는 것”을 완성하셨다고 합니다. 신명기 15장에서 “면제(샤마타, 1,2,2,9,10)와 “면제하다(샤마트, 2,3)는 헬라어 성경에는 “아페시스”와 “아피에미”로 번역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4장에서 이사야 61장이 예언을 읽으시고 “이 예언이 오늘 너희에게 이루어 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아페시스)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아아페시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 이사야 9:11-12).
예수님께서 오셔서 빚을 면제하는(아피에미) 면제(아페시스)를 이루셨습니다. 가난하여 빚진 사람의 빚을 공도체가 책임지는 사회를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들판에서5천명, 4천명을 먹이셨습니다. 풍요의 사회가 왔음을 그림처럼 보여주셨습니다.
신약에서 ‘아페시스’ ‘아피에미’의 또 다른 의미는 ‘용서’ ‘용서하다’(누가복음 1:77, 3:3, 24:47).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성도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성령님을 의지하여, 앞으로 이루실 십자가와 부활의 공로에 기초하여 선언하셨습니다. 네 죄사함을 받았다”(아피에미, 누가복음 5:20,21,22,23,24, 7:47,47,48,49). 예수님께서 경제적인 풍요를 주시는 것 보다 죄를 사하시는 일을 더 많이 하셨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해”(눅 4:18-19)의 경제적인 ‘자유(면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죄용서에 기초해 있습니다.
높아지신 상태에서-성령님 안에서도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때 성령님을 보내 주십니다. “성령님이 교회에 오셨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자유를 선포하는 것”이 사도들을 통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십자가와 부활과 “죄용서(아페시스)”의 복음을 선포했습니다(사도행전 2:38, 5:31, 40:43, 13:38, 26:18, 에베소서 1:17). 복음을 듣고 믿은 자들이 죄의 나라에서 벗어나 의로운 나라에 들어 왔습니다. 그 뒤로 교회는 계속해서 죄용서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죄용서 받은 성도들의 공동체, 교회에 대해서 경제적으로 “면제(아페시스)”한다는 표현은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성령님이 오셨을 때, 서로 재물을 나누고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난한 자가 없는 자유와 기쁨의 새 나라를 더 구체적으로 이루었습니다(행 2:43-47, 4:32-37).
하나님의 성령님을 통해 복음을 선포함으로 경제적 사회적 나눔의 공동체가 이루어 졌습니다. 사도들 죄용서 받은 성도들에게 피차 물질을 나누라고 강하게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의 자발적 가난이 우리를 구원했으니, 우리도 기쁨으로 나누라고 권면하십니다(고후 8:9). 그리고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빚도 노예도 없는 기쁨의 나라를 완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2) 해방(하파셔=엘류테로오) à 자유
빚을 면제하는 것과 함께 할 일이 노예 신분에서 해방하는 것입니다. “해방(하파셔, 12,13,18)은 헬라어로 ‘엘류테이라’입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신 상태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엘류테로오). 하나님의 아들인 내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요한복음 8:32, 36). 사람들은 자유롭게 된다고 하셨습니다(엘류테로스, 형용사, 요한복음 8:33,36). 예수님은 죄와 마귀의 권세로부터 그 분의 백성을 해방하십니다. 구약 교회가 노예신분의 형제 자매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자유인의 신분이 여전히 죄와 마귀 탐욕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단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복음 말씀을 듣고 믿는 자는 “자유”를 누립니다.
높아지신 상태에서: 하늘에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셨을 때, 사도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자유의 복음을 전했습니다(야고보서 1:25, 2:12).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로마서 6:18, 22).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다”(로마서 8:2). 이미 해방은 왔습니다. 그러나 더 완전한 해방의 날이 오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해방되는” 온 우주가 해방되는 그 날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그 날이 오고 있습니다.
그 날이 오기까지 성도는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야 합니다.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베드로전서 2: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엘류테로오) 자유(엘류테리아)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시 인간의 선행을 자랑하면서 그것이 구원의 공로인 것처럼 생각하는 율법주의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또, 자유를 가지고 죄를 짓는 자유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형제들은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라디아서 5:13). 참 자유는 성도에게 가족에게 종노릇 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하고, 모든 사람의 종이다” (마틴 루터).
죄로부터 자유하므로 경제적으로 자유함을 주는 교회 공동체: 교회는 먼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합니다. 그것을 듣고 믿은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자유를 누립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한 몸된 성도들이 경제적 눌림과 슬픔에 눌림에서 자유하도록 서로 돕습니다. 영적 자유와 기쁨이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자유와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성장하기 바랍니다.
<참고> 경제적 해방을 주는 국가를 위한 정치참여와 실천- 보수와 진보
교회에서 영적 자유를 누리며 물질적으로 나누는 일을 경험한 성도는 국가와 정치에서도 그 일이 이루어지도록 힘씁니다.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은 각 가정과 개인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돕는 나라를 꿈꿉니다. 그래서 세금을 적게 거둡니다. 개인이나 기업에 세금을 적게 거두어서, 가정이 수입을 많게 합니다. 그렇게 안정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을 자발적으로 돕는 것이 보수적인 정치입니다.
한편 진보적 정치적 입장은 국가와 정부가 가난한 사람을 돕는 나라를 꿈꿉니다. 그래서 세금을 많이 거둡니다.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복지 정책을 더 잘 세웁니다.
모든 국가는 보수적인 비전과 진보적인 비전을 섞어서 세금과 복지정책을 결정합니다.
성도는 자기의 양심의 판단에 따라 보수적인 정치참여를 해도 되고 진보적인 정치 참여를 해도 됩니다. 자기의 소신대로 보수 혹은 진보적 정당에 투표하면 됩니다.
단 개인적 실천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보수적인 정치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성도는, 자기 가진 돈으로 더 많이 자발적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교회에 헌금하여 먼저 가난한 성도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또 교회도 개인 성도도 불신자에게도 나누어야 합니다.
진보적인 정치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성도는,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을 좋아해야 합니다. 정부가 복지정책을 잘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신을 보수라고 말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내지 않는 시민이나 정치가들은 부정직합니다. 진보라고 말하면서 세금을 많이 내지 않는 시민이나 정치가는 부정직합니다.
정부나 집권여당이 보수적이건 진보적이건 그리스도인은 자기 가진 것으로 자발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또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가난한 사람을 돕지만, 정부와 정당이 세금을 부당하게 쓰거나, 헤프게 쓰지 않도록 감시해야 합니다.
<참고> 모압평지에서 신명기 선포: 서쪽에
있는 약속의 땅을 바라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