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 (Edward Hopper)
서스펜스 영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알프레드 히치콕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으시겠죠. 이 스릴러 무비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거장 감독 영화들의 배경은 스토리와 함께 예술성을 담고 있다고 해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감독은 일관되게 이야기 하지요. 자신의 영화적 배경의 영감은 지금 소개할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로, 황망하고 적막한 도시를 배경으로 현대인 들의 소외감, 고독감을 탁월하게 표현해 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는 뉴욕주 나이액에서 태어나 상업미술학교에서 삽화를 공부하고 이어 뉴욕미술학교에서 회화를 배우게 됩니다. 졸업하자마자 광고회사에 취직한 후 광고미술과 삽화가로 돈을 벌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지속해 나갔습니다. 초기 작품 <항해>가 팔린 것을 제외하고 근 10년간 무명화가로 지냈던 그는 학교 동창이었던 조세핀과의 결혼을 계기로 유화에서 수채화로 기법을 바꾸며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후 평단과 대중들의 호응을 얻으며 드디어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그는 당시 미술계에 유행처럼 번져있던 추상표현을 외면하고 사실주의 화가로서 그의 길을 묵묵히 고수해나간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대산업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느꼈을 고독의 정서를 마치 ‘알고 있다’ 는 듯 위로하듯 표현해내고 있어 감동으로까지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대표작품 : <책을 읽고 있는 모델> <선롯가의 집>
밤 10시까지 달구는 파리 그랑팔레 전시장,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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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otel Room(1931), Oil on canvas, 152,4 x 165,7 cm Madrid, Museo Thyssen-Bornemisza | 지난해 인적이 끊긴 어두운 거리. 불이 환하게 켜진 카페에 중절모를 쓰고 담배를 피우는 남자와 빨간 원피스를 입고 성냥갑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여자가 앉아 있다. 그들 맞은편에는 중절모 차림 남자의 뒷모습이 보이고, 이들을 서빙하는 직원이 있다. 사람이 넷이나 있건만 이들 사이에 대화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침묵이 그림을 지배한다. 화려한 불빛이 모두 꺼지고 마치 이 어둠을 기리기 위해 켜져 있는 듯한 카페의 불빛은 어둠과 고요가 찾아온 밤에도 잠 못 이루는 도시인의 고독에 고독을 더할 뿐이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대표작 ‘나이트호크 (Nighthawks, 밤의 사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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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hawks(1942), Oil on canvas, 84,1 x 152,4 cm Chicago,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Friends of American Art Collection | ‘나이트호크’를 비롯한 호퍼의 명작 128점이 한겨울 파리 그랑팔레 전시장을 달구고 있다. 파리에서 열리는 호퍼의 첫 번째 회고전이다. 당초 28일까지 열릴 예정이었지만 밀려드는 관람객 덕분에 2월 3일까지 연장됐다. 다수의 작품이 뮤지엄 컬렉션에서 온 흔치 않은 전시임을 잘 아는 프랑스인들은 인터넷 판매가 일찌감치 매진되자 두세 시간 줄서기에 기꺼이 오후를 반납했다. 지난해 10월 10일 개장 이후 주 4일은 밤 10시까지 관람할 수 있지만 인파는 줄어들 줄 모른다. 2월 1일부터 3일까지는 62시간 논스톱으로 개장한다. 주최 측은 관람객이 최종 7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사실 ‘나이트호크’ 한 점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세 시간 추위에 떠는 것쯤이야 무에 대수랴.
분주함이 끝나면 빈 상자처럼 공허해지는 도시 풍경
전시는 호퍼가 1900년 뉴욕 스쿨 오브 아트의 로버트 헨리 밑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림의 주제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주제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이다. 미술이 무엇인지는 잊어라. 단지 우리 인생에서 관심이 있는 것을 그려라.”
보수적인 미술 아카데미가 인정하는 미술이 정석으로 여겨지던 미국 미술계에서 로버트 헨리의 이러한 가르침은 예술의 본질을 고민하던 호퍼를 뒤흔들었다. 헨리의 가르침 외에 호퍼의 인생에 영향을 준 것은 파리였다. 1906년, 1909년, 1910년에 파리에 체류한 호퍼는 이미 모더니즘이 태동 하고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가 화제가 되던 파리에서 인간의 일상을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표현하던 화가들의 작품을 목격한다. 특히 무대 위 발레리나나 세탁부, 노천 카페의 평범한 사람들을 독특한 구조로 그림의 중심에 내세웠던 드가의 화풍과 루브르 미술관에서 발견한 렘브란트의 그림은 충격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온 호퍼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삽화와 판화, 수채화 작업을 병행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스승인 로버트 헨리가 이끄는 여덟 명 화가들의 그룹 ‘에잇(Eight)’ 은 보수적인 아카데미 화풍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전시를 열고 있었다. 누드와 역사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단지 화가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자는 이들의 주장은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후에 평론가들은 이 그룹을 ‘쓰레기통 학교 (Ash Can School)’ 라 부른다. 이 ‘쓰레기통 학교’ 의 등장은 1913년 있었던 아트페어 아모리 쇼와 함께 미국 미술사에 모더니즘에 대한 인식을 일깨운 중요한 계기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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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New York Office(1962), Oil on canvas, Montgomery, Alabama, The Blount Collection Montgomery Museum of Fine Arts. 3 Night Shadows(1921), Etching, 17,5 x 21 cm Philadelphia Museum of Art |
유럽의 갤러리들이 대거 참여한 아모리 쇼에서 미국은 피카소의 큐비즘과 앙리 마티스, 그리고 마르셀 뒤샹을 통해 아방가르드를 발견하게 된다. 호퍼도 아모리 쇼에서 처음으로 그림을 한 점 팔았다. ‘Sailing’(1911)이라는 이 그림은 호퍼가 어린 시절 보면서 자란 허드슨 강에서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을 그린 매우 미국적이고 일상적인 소재의 작품이었다.
아방가르드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호퍼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가 프랑스 시인 랭보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1914년 작 ‘푸른 저녁’ (Soir bleu)은 노천 카페에 앉아 있는 익명의 사람들을 그린 것이다. 그림 가운데에는 피에로 복장을 한 작가 자신이 있다. 담배를 물고 테이블을 응시하며 홀로 앉아 있는 피에로는 가상의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준 후 현실의 세계로 돌아왔다가 다시 무대로 돌아가기 전 스스로의 존재를 들여다보는 초연한 예술가의 상징처럼 보인다. 현실의 삶은 피에로의 삶이 있기에 더 진실해질 수 있는 것일까. 랭보의 상징주의 시처럼 이 그림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호퍼의 회화를 정의할 때 늘 따라다니는 ‘사실주의 화가’라는 표현에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보면 호퍼의 그림은 추상 회화보다 더 추상적일 수 있고, 초현실주의 회화보다 더 초현실적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에 노크을 하는 실존주의적 질문이 그 속에 있다.
추상화보다 추상적인, 초현실 회화보다 초현실적인
1920년대 중반부터 그림만 그려서 살 수 있게 된 호퍼는 디테일을 최소화하고, 철저히 계산된 방식으로 구도를 잡고, 소재들을 조심스럽게 배열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을 많이 그려낸다.
그는 특히 도시의 풍경에 관심이 많았다. 수많은 군중을 집어 삼키는 듯한 도시는 그 분주함이 끝나면 텅빈 상자처럼 공허해진다. 기하학적 모양의 빌딩들, 하늘과 만나는 건물들의 지붕 장식들, 골목길들. 그리고 노천 카페와 레스토랑은 단골 배경이다. 그런데 마치 영화 세트의 한 장면을 찍어 놓은 스냅 사진처럼 뭔가 인위적인 요소에 의해 정지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는 그 건물 속 공간을 즐겨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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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Room in New York(1932), Oil on canvas, 74.4 x 93 cm Sheldon Museum of Art, University of Nebraska - Lincoln, UNL-F.M. Hall Collection |
1932년 작 ‘뉴욕의 방’ (Room in New York)에서는 얼굴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보인다. 남자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여자는 피아노를 치고 있다. 부부인 듯한 이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그들의 영혼은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처럼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은 그림 속 다른 인물들, 그림의 배경, 그리고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자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정작 호퍼는 “내 그림에서 느껴지는 고립이나 상실감을 표현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고 말한다. “나는 위대하거나 로맨틱하거나 고립된 것들을 찾지 않는다. 나는 그저 평범한 것을 끌어안고 탐구한다. 나는 친근하고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그릴 뿐이다.”
그러나 호퍼의 그림에서는 그가 살아온 시대가 고스란히 목격된다. 유년 시절을 보낸 허드슨 강가처럼 아름다운 미국의 자연, 순수했던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 급격한 기계화를 내세운 산업혁명으로 야기된 인간성의 상실, 전쟁으로 인한 황폐함, 근대화된 사회 속에서 개개인이 맞서야 했던 외로움 등이다. 호퍼는 말한다. “위대한 예술은 한 예술가의 내부적인 삶의 외형적 표현이다. 그리고 이러한 내부적인 삶은 세상에 대한 작가 자신의 고유한 비전으로부터 온다.”
앞서 호퍼 자신이 말했듯 그의 그림에서 보이는 고독과 적막함에 무게를 두지 말자. 모든 가게가 셔터를 내린 깊은 밤 거리 어딘가에는 노란 불빛을 환하게 밝혀놓은 카페가 하나쯤은 있다. 카페에 홀로 앉아 차를 마시는 여인의 그늘진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카페의 등불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에 반이 그늘로 차 있다면 그 나머지 반에는 빛이 있다.
그가 마지막 남긴 그림 1965년 작 ‘두 명의 희극 배우’ (Two comedians)는 희극 배우로 분한 호퍼 자신과 평생의 반려자였던 아내 조(Jo, 조세핀 디비슨, 그녀는 호퍼가 죽은 지 10개월 후 사망했다)를 그렸다. 초기작이었던 ‘푸른 저녁’(Soir Bleu)에서처럼 하얀 피에로 복장을 한 그는 아내와 손을 잡고 무대에서 이별을 고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늘 비극과 희극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니 슬퍼할 것 없다고, 그리고 이 세상에는 피에로처럼 세상의 희로애락을 이야기 해 주는 예술가가 있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야간 관람을 끝내고 어두운 거리로 나오니 먼 발치에 샹젤리제의 화려한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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