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대한 나의 변덕스러움
청룡의 해 갑진년의 태양이 동해를 붉게 물들이면서 장엄하게 솟아 오른 지도 어느덧 21일이 지나가고 있구나. 결국 한 살 더 먹은 지도 21일이 지나가는 것이군. 그런데 요즘은 나이도 세는 나이, 년 나이, 만 나이 등 헷갈리기만 하네. 그러나 한국 사람 그중에서도 어느 정도 세월을 살 만큼 산 사람들은 우리 한민족의 전통적인 세는 나이가 자연스럽고 자기의 나이 같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엄마의 배속에서 10개월 동안 자라다가 첫 울음울 터뜨리며 이 세상에 태어나면 바로 한 살이 주어지는 것이다. 엄마의 배속에서 자란 10개월 동안의 태아에게도 인격체로서 존중을 해 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우리 한민족만큼 태아 때부터 인격체로서 존중을 해 주는 민족이 이 지구상에 몇이나 있을까.
새롭게 한 해가 바뀌니 내 나이도 벌써 70대 중반이 다 되어 가는구나. 내 나이가 70대 중반이 다 되어 가니 돌아가신 지 반 백 년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가 문득 생각이 나네. 아버지께서 70대 중반에 돌아가신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모님들은 우리 삼 남매를 늦게 두시어 아버지께서 70대 중반에 돌아가실 때 우리 삼 남매의 나이는 그렇게 많지가 않았고 그리고 전부 미혼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며느리도, 사위도 그리고 손주들도 못 보고 돌아가신 것이다.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한 분들은 며느리의 밥상도 받아 보고 사위의 술 대접도 받아 보고 손주들의 재롱도 받아 보았지만 우리 삼 남매의 아버지께서는 그런 소소한 행복도 못 느껴 보시고 돌아가신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기만 하다.
아버지의 정례식 때 조문을 오신 분들 중 어느 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자식들 결혼하는 것을 못 보고 돌아가신 것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살 만큼 사시고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라고 하셨다.
아벼지께서 돌아가셨을 때가 1970년대이니 그 당시만 해도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인 환갑과 진갑 잔치를 다 하였을 때니까 70대 중반에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아주 장수하신 것은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로써는 살 만큼 사신 어쩌면 호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슬픔도 세월의 흔적처럼 희미해지고 모든 것이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나의 생활도 이어져 갔다.
직장 생활 등 사회생활을 하다가 보면 가끔 조문이나 문상을 갈 일이 생긴다. 문상을 가면 상가에서 문상객들에게 조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술과 음식을 대접받은 문상객들을 서로 가까운 지인들끼리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집에서 장례를 많이 치루었다. 그때만 하여도 우리나라의 인심이 지금처럼 삭막하지 않았음은 물론 이웃 간의 정이 오고 가서 서로가 도울 일은 도왔고 아무래도 문상객의 조문으로 주위가 시끄러웠지만 이웃의 슬픔을 같이 나누는 마음으로 불편함도 이해를 하여 상가에서도 유족들이 장례를 치르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특히 시골은 집 주위에 넓은 공간이 많아서 밤에는 장작불을 피워 놓고 많은 문상객들이 밤을 지새웠다. 문상객들이 떠나고 밤이 되면 상가가 더욱더 적막하여 가족을 잃은 유족들이 더욱더 슬픔을 느낀다고 많은 문상객들은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고 일부는 화투놀이를 하면서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간다. 이 얼마나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모습인가. 필자도 상가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몽롱한 정신으로 바로 출근을 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상객들이 상가에서 대접하는 술과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밤을 지세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상가다 보니 자연스레 건강과 수명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자기의 기대여명(期待餘命)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때 나는 30,40대 초반까지는 돌아가신 아버지만큼만 살아도 나름 장수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그래서 그 때는 나의 기대여명(期待餘命)도 70대 중반으로 하였다.
그러나 40대 후반부터 나의 기대여명(期待餘命)에 대하여 마음이 흔들리가 시작하였다. 내가 생각한 나의 희망 여명 70대 중반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가 않는 것이다. 아버지의 장례 때 조문 오신 분의 말씀처럼 그 당시의 우리나라 노인들의 평균적인 사망 나이를 보면 냐의 아버지께서는 아주 많이 장수하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은 가족들이 아쉬워할 만큼 일찍 돌아가신 것도 아닌 적당하게 사실만큼 돌아가신 것은 사실이다. 기왕 이 세상에 태어났으면 오래오래 살면 그 이상 좋은 것은 없겠지만 모든 생명체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으니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최대로 오래 사는 방법을 강구할 뿐이다. 영생의 꿈을 가지고 불로장생을 위하여 그렇게 발버둥 치던 진시황도 죽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나도 50대애 들어서는 기대여명(期待餘命)을 10년 상향 조정하여 80대 중반으로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상향 조정한 나의 기대여명(期待餘命)을 또 상향 조정을 하여야 상황이 된 것이다.
흔히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각각 개인들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말 말이다. 20대는 세월의 속도가 시속 20km, 30대는 30, 40대는 40 이렇게 나이가 더 먹을수록 내 세월의 속도는 더욱 빨라져 50대, 60대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고 70대가 되더군요. 70대가 되니 상향 조정한 나의 기대여명(期待餘命) 80대 중반이 또 많이 남지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또 기대여명(期待餘命)을 상향 조정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의 나이에 대한 속도도 자꾸 빨라지는 상태에서 좀 여유롭게 기대여명(期待餘命)을 110세로 하였다. 어쩌면 너무 지나친 욕심 같기도 하고 과연 실현이 될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실제로 지인들과 술좌석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니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며 핀잔 아닌 핀잔을 하기도 하였다.
내가 기대여명(期待餘命)을 전보다 좀 더 많이 한꺼번에 상향 조정을 하였다고 불로장생이나 영생을 꿈꾸었던 진시황처럼 허황되고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것도 삼천갑자 동방삭이 처럼 18년 동안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삶의 욕심을 부린 것도 아니고 지금과 같은 영양섭취나 의학의 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2~30년 후면 우리의 희망 기대여명(期待餘命)이 지금보다는 획기적으로 높이질 것이라는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소박한 희망일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생각한 기대여명(期待餘命)이 실현 불가능하다 해도 결코 그것에 대하여 실망을 할 필요는 없다.
만약에 내가 생각한 그 기대여명(期待餘命)이 실현이 안된다 하여도 그 기대여명(期待餘命)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목표가 있는 것이다. 그 기대여명(期待餘命)의 희망이 실현된다면 고손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증손자까지는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증손자까지 보려고 하면 더욱더 건강관리에 매진할 것이다. 2016년 6월 1일부터 끊었던 담배는 앞으로도 계속 피우지 않을 것이고 젊을 때보다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는 정도로 적게 마시는 술도 더욱더 적게 마실 것이다.
나의 희망 기대여명(期待餘命)을 110세가 실현되지 않는다 하여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뿐 아니라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그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여 살아갈 것이니까.
2024년 1월 21일
김 상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