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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 구비 구비-‘줄이기’, ‘작아지기’, ‘없어지기’, ‘비우기’, 낮아지기, 겸비하기, 中庸(중용)의 도 실천하기, 謹愼(근신)하기, 회개하기, 성찰하기... 영성훈련1 (198P)
*검색어-작아, 작게, 작은, 작다, 줄이, 축소, 없애, 없으, 없어, 없는, 비우, 빈, 비다, 낮아, 낮은, 낮고, 천한, 비천한, 가난, 겸손, 겸비, 겸허, 절제, 중용, 절약, 검소, 근신, 회개, 통회...
*30분간 5개 동영상 시청-인생사 구비 구비-비우기, 내려 놓기, 겸손하기
돈이 또 없었다.
“또 400만 빌려야겠네...” 하다가,
갑자기 진정 교만함 없이, 이렇게 외쳤다.
“난 부자다. 난 건강하다. 난 행복하다. 난 최고다. 난 ‘성령님의 侍從(시종)’이다. 난 ‘殉命(순명)의 사람’이다. 난 ‘하늘 國務總理(국무총리)’이다. 난 골방의 先知者(선지자)이다. 난 지금 돈이 없지만, 10일에 우리카드 385만 결제할 때까지는 돈 걱정 없다...”
비우기, 내려 놓기, 겸비하기...
얼마나 소중한 단어인가?
내 진정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 놓고, 겸비하여... 진정으로 행복하리라.
하루 하루 살리라.
오늘은 아무 문제 없다.
오늘은 <성령사관학교> 만 멋지게, 최선을 다하여 인도하면 된다. 할렐루야!
나는 오늘부터 ‘辱(욕)하기’ 를 버리기로 했다.
설교나 강의에서 절대 辱(욕)을 하지 않으리라.
내게 제일 부족한 것이 ‘節制(절제)’ 이다.
모든 면에서 아무런 절제가 없는 것이다. 아니, 나 스스로 성령의 누림 안에서 ‘自由(자유)’ 를 강조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절제’ 란 단어가 멀리 멀리 사라져 버렸다. 정말 난 별로 절제없이 산다. 일부러 절제 그런 것 하지 않는다.
사실 나는 성령 안에서 죄를 짓지 않는다. 평안하다. 행복하다. 누린다. 감사한다. 기뻐한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무엇 하나 불평, 불만, 원망...이 없다. 불평 불만은 하나님의 뜻과 다른 생각과 견해를 내 속에 품고 있는 것이고, ‘怨望(원망)’ 은 말로 내뱉는 것이다.
범사에 하나님께, 주변 사람들에게 늘 감사한다.
굳이 애써서 인상을 써 가며, 경건을 ‘체-’ 하며, 절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성령 안에서의 유유자적한 삶!
이제 60대 耳順(이순)의 나이에, 中庸(중용)의 도를 깨쳐, 過猶不及(과유불급)의 삶을 누림!!!
정말 나는 그럴까?
현재의 이런 나의 삶이 맞는 것일까?
내가 진정으로 절제하고 버려야 할 것들이 과연 없을까?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실상 나는 진정한 절제의 삶이 없는 것이다.
첫째 ‘辱說(욕설)’ 버리기 – 설교나 강의에서 절대 辱(욕)을 하지 말아야지...
왜 남에게 없는 그 좋은 탁월한 ‘성령과 하늘의 말씀’ 들에 너의 感情(감정)을 원색적으로 넣어 辱說(욕설)을 함으로, 주옥 같은 설교에 흠집을 내고, 유튜브나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게 만드냐?
둘째 ‘음식’ 절제 – 나는 음식에 일체의 절제가 없다.
禁食(금식)을 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된 듯 하다. 밤이고 낮이고 먹고 싶으면 언제라도 먹는다. 그러는 사이에 배는 점점 더 나오고, 체중은 자꾸 늘어 90Kg이 다 되었다.
이제는 스스로 食貪(식탐)을 느낀다.
왜 그러지!
난 진정한 禁食(금식)의 사람이었는데...
셋째 규칙적인 생활로 ‘잠’ 도 절제 – 나의 원칙은, “잠 오면 언제라도 바로 자고, 깨면 바로 일한다” 이다. 이건 대단히 좋은 습관이다.
그래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야지!
넷째 ‘性慾(성욕)’ 절제 – 성욕을 절제할 필요성이 있나?
그냥 생리적 반응대로 행하면 되지!
다섯째 ‘돈’ 절제 – 돈을 허튼 데 쓰지는 않지!
그래도 너는 남에게 너무 후해...
쓰지 않아도 좋을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것 같아...
그게 물론 남들에게는 좋지만, 넌 늘 가난하잖아!
그래서 내일의 대책이 없고, 저축이 없고, 빚만 자꾸 늘어나잖아...
하나님이 결코 너에게 돈을 적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넘치게 주시는데도...
여섯째 ‘사람 사랑’ 절제 – 배종부 목사 넌 사람을 너무 사랑해...
만 사람이 그렇게 다 좋으면, 너와 네 가족은 언제 챙길래...
내 주변에 온통 좋은 사람들 뿐인데...
일곱째 ‘충동성’ 절제 – 나는 여전히 너무 충동적이야...
너무 감성적이야...
너무 사람이 좋다고...
너무 남을 위해 사는 것 같아...
너와 가족을 위해 좀 살아 봐...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 잇속이 없어...
오늘도 집 가까이 새로운 이발소에 머리를 깎으러 갔는데, 요금이 13,000원인데, 너무 싸다는 느낌이 들어 2만원을 줬잖아...
너는 그런 돈이 너무 많아...
그렇게 따지면 너는 그렇게 쓰는 돈이 한 달에 몇 백만원은 되지 않을까?
여덟째 ‘과시욕’ 절제 – 아직도 네 자신을 드러 내고, 과시하고, 잘난 체 하고, 뭐 영성이 대단한 것처럼 행세할 거야?!
정말...
제발 좀 그러지 마...
아홉째 물건 ‘과다 구입’ 절제 – 넌 마음이 풍성하여 항상 넉넉해...
남들 보다 늘 물건도 풍성하게 많이 사지.
식당 같은 데 가면 음식도 항상 너무 많이 시켜...
그러지 말고 꼭 필요한 만큼, 아니 좀 적게 사도록 해 봐...
에이그! 그 평생의 습관이 고쳐지나...
열번째 ‘지나침과 과도함’ 절제 - 過猶不及(과유불급)의 삶 실천...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 *과불급(過不及).
오호라! 너무 음식을 맛있게 잘 먹어, 90Kg의 과체중이 되었다. 17일 동안 10Kg을 감량하여, 체중을 줄여야겠다.
주기적으로 걷기, 윗몸 일으키기, 스트레칭, 登山(등산)을 해야겠다. 특히 등산과 더불어, 봄이 오면 1박 2일의 ‘산상기도’ 를 재개해야겠다.
아침 8시 식사, 점심 1시 식사 후, 일체의 간식과 음식을 먹지 말아야겠다. 오늘부터 17일 간 저녁을 먹지 말자.
그렇게 ‘禁食(금식)’ 을 잘 하고, 많이 하더니, 이제는 단 한 끼도 금식하지 않은지 얼마나 지났는지...
그래 다시 금식 훈련에 들어 가자.
음식을 먹고 나면 졸리니, 절대 눕지 말고, 무조건 졸리면 걷자.
이번 기회에 ‘역류성 식도염’ 을 반드시 고치자.
그리고 ‘줄이기’, ‘작아지기’, ‘없어지기...’ 영성훈련을 집중적으로 해 보자.
사탄의 코로나 이간질과 책임론
사탄의 이 간교한 코로나 이간책의 수법을 보라.
모든 <성령의군대> 가 이 이간책이 휘말렸었다.
맨 처음 강한나 목사가 근육통을 호소했다.
박민 목사가 <성령 컨퍼런스>에 왔다가, 구토하고 쓰러졌다.
권재천 목사가 독감으로 고생하고, 사모가 양성 판정, 이어서 이경미 집사가 코로나에 양성 감염되었다. 두 사람은 격리되었다.
임선태 목사, 조에스더 사모가 <성령 컨퍼런스> 에 왔다가 각각 음성, 양성 판정을 받고, 조 에스더 사모는 격리되었다.
박도식 목사가 독감으로 심히 고생을 하고, 장정진 사모가 무증상 양성으로 격리 수용되고, 고통을 당했다. 장정진 사모의 어머니가 감염되어, 死境(사경)을 헤매다가 살아 났다.
집회에 열심히 참석한 이선희 전도사가 음성, 남편과 아들은 양성으로 격리되었다. 감염 원인은 아들의 친구 발이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이 <성령의군대>를 온전히 지키셨다. 각종 집회를 단 한번도 중단한 적이 없었다.
원인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다들 단지 새성교회 발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배종부 목사와 대전 권재천 목사의 성도인 이경미 집사와의 편지를 보라.
시험 든 자도 돌아 오고,
사경에서 살아 나고...
사탄의 이간책에 속지 말라.
고통도, 행복도 다 하나님의 섭리이다.
코로나 감염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다 들어 있다.
굳이 따지면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내 책임이다.
이 기간에 배종부 목사도 분명히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2주간 말할 수 없이 컨디션의 亂調(난조)를 보였다.
이틀 간은 꼬박 누워 있어야 했다.
강력한 毒感(독감)이라 생각했다.
이어서 2달 동안 만성적인 기침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나는 이것이 독감인지, 감기인지 모른다.
방성용 지도목사도 동일한 고통을 겪었었는데, 코로나 음성 판정이 나왔었다. 그래서 독감일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우리와 접촉이 없었던 주변 사람 채샤론 목사가 감염되어, 격리되었었다.
코로나는 감염 후, 3-4일이 지나야 증상이 나타 나니, 정말 원인을 모른다. 각자 본인이 그 원인을 추정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2021.2.6.토. 사탄의 이간질, 분리, 파당의 역사는 어떻게 변질 되어져 가는가?
모든 분리, 파당의 역사는 어떻게 진행 되어져 가는가?
1>.異見(이견)이 생긴다. 다른 생각이다.
2>.이간질이 시작된다.
3>.‘흘기는 눈’ 이 나타 난다.
4>.猜忌(시기), 嫉妬(질투), 미움이 가중된다.
5>.對立(대립)이 일어 난다.
6>.煽動者(선동자)가 나온다.
7>.分離(분리)가 시작된다.
8>.派黨(파당)이 일어 난다.
9>.黨派(당파)가 갈라진다.
10>.리더쉽 허물기가 시작된다.
11>.不順從(불순종)이 조직화 된다.
12>.拒逆(거역)이 거세진다.
13>.對敵(대적)이 점점 강해진다.
14>.悖逆(패역)으로 나아 간다.
15>.狂悖(광패)가 그 마지막이다.
16>.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審判(심판)이 시작된다.
17>.그리고 狀況(상황)이 종료된다.
보라. 이번에 새성교회와 <성령의군대> 중심으로 일어난 일련의 코로나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성령의군대>가 새성교회 중심으로 계속 모였기 때문에, 감염이 일어 났다?
그렇다면, 이 정권이 옳다. 교회 폐쇄, 예배 폐쇄 정책이 타당하고, 옳다. 거역한 한국교회들과 목사들은 잘못이다.
인터콥의 상주 열방 센타가 법인 취소가 되었다. 이 정권을 대적한 모든 교회들은 매도되었다.
저들이 옳다면, 대다수의 이 불의하고 악한 정권을 따른 한국교회가 옳고, 대적한 소수의 신앙의 정절을 지킨 목사들과 교회들은 코로나를 퍼뜨린 逆賊(역적)이 된다.
2>.가장 중요한 결론,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성령의군대>를 지키셨다. 우리가 옳고, 우리의 예배와 모임을 성령님이 기뻐하셨다는 결론이다.
3>.성령과 믿음으로 인내하며 행하면, 하나님이 시험을 유익의 기회로 삼으신다.
그러므로 시험 당하지 말라.
야고보서 1:2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야고보서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아래는 대전의 권재천 목사의 교회 이경미 집사와의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편지 대화이다.
사랑하는 이경미 집사님!
그러한 말 못할 사정들이 있었군요.
이집사님의 마음의 고통을 충분히 알 것 같습니다.
제 입장에서 한번 답을 드려 보겠습니다.
권재천 목사님은 제게 있어서, 친형제 보다도 더 가까운 형님 목사님이십니다.
제가 늘 섬기며, 따르지요.
저는 권목사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존경하며, 권목사님도 저를 그렇게 신뢰합니다.
이경미 집사님을 만났을 때에, 첫 인상이 참으로 총명하고, 똑똑하고, 믿음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무엇 보다 권목사님을, 결혼 이후 20년 가까이 섬겼다는 얘기를 듣고서, 너무나 아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코로나 감염으로 인하여 ‘시험’이 왔군요.
그러니까 이집사님 생각에는, 권목사님이 여기 새성교회에서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고, 사모님이 감염되었고, 마지막 희생자가 이집사님이라는 것이잖아요?
사실이 그렇다면, 코로나 피해가 새성교회 내에서 나타 나야 정상인데, 여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녀 갔고, 집회가 연속되어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성령의군대> 지부들에서 감염 사례가 3군데 있어서, 제가 모금을 하며 도운 것입니다.
만일 여기 저의 멤버들 중에 코로나 감염자가 있었으면, 저의 책임을 벗을 수가 없겠지요. 그러나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여기 많은 분들이 코로나 검사를 해도 다들 음성이고, 양성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러나 저도 사실은 이경미 집사님이 새성교회를 다녀 갔기 때문에, 마음에 염려는 했었었지요.
이 문제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코로나가 어디서 감염이 되었든지 간에, 이경미 집사님이 시험에 들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감염이 새성교회 발이든, 권목사님이든, 사모님이든, 어떤 알 수 없는 제3의 원인이든, 그것이 왜 이경미 집사님이 ‘시험’ 에 들어야 합니까?
코로나에 걸렸으면, 그냥 걸린 것입니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느냐 따지며, ‘시험’ 에 들면 안되지요. 이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코로나 감염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어떤 뜻으로 받고, 차분하게 기도하며 아름다운 방향으로 생각해야지요. 더욱 더 교회를 잘 섬기고, 목사님을 더욱 더 보호하고, 나를 더욱 더 채찍질하여 영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성령의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집사님은 이번 경우에 보니, 사탄의 역사를 따라 잘못 생각하여, 그만 ‘시험’ 에 들고 말았군요.
확인되지도 않은 코로나 감염의 책임 소재가 무엇이 그리 중요합니까?
이집사님이 권목사님을 20년 가까이 섬겼으면, 누구 보다도 잘 아시잖아요?
이번 코로나 감염 기회에, 오히려 권목사님을 보호하고, 사모님을 보호하고, 더욱 더 두 분에게 힘을 실어 드리고, 사랑하고, 더 잘 섬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것이 성도의 본분이 아닌가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억울하게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는데, 이집사님은 나의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고통이 권목사님, 사모님께 있다고 생각하고 (확증된 것도 아닌데...), 스스로의 상한 마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시험’ 에 들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사탄의 농간에 놀아 난 것이 아닌가요?
저는 이집사님이 오히려 권목사님과 사모님께 사죄하고, 이전 보다 더욱 더 잘 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권목사님은 진정 남자요, 의리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영을 가진 가장 훌륭한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코로나 감염원이 확인도 안된 사실을 두고서, 권목사님과 사모님이 나 이경미 집사에게 코로나를 감염 시켰으니 나는 억울하고, 나만 욕 먹고, 나만 불행해졌으니, 나는 ‘시험’ 에 들어야 맞다... 나는 정당하고, 담임목사님, 사모님이 죄인이며, 나에게 덮어 씌우고 거짓말까지 한다... 이런 논리가 어찌 정상적인 신앙인의 논리입니까?
저는 성도는 자기 목사님에게 사랑과 정성과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집사님이 이전처럼 권목사님을 잘 섬기고,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정리해 봅시다.
명백한 사실은 코로나가 어디서 감염되었는지 모릅니다.
법적으로 나타난 결과는 이경미 집사> 사모님 순입니다.
새성교회> 권목사님> 사모님> 이경미 집사 논리는 이집사님이 만들어 낸 논리입니다. 여기 새성교회 내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검사도 받았지만, 코로나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로 인해 이집사님은 스스로 억울하다 생각해도, 교회가 폐쇄되지 아니하고 정상적으로 돌아 갔으며, 내 담임목사이신 권목사님과 사모님이 보호를 받았으니, 이는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닌가요?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 아닌가요?
내가 고생하고 희생하여 교회가 보호 받고, 담임목사님, 사모님이 보호 받으면, 큰 은혜가 아닌가요?
아니할 말로, 법적으로 밝혀진 대로, 이경미 집사> 사모님 감염이라면, 이집사님이 천번 만법 권목사님, 사모님께 사죄를 드려야지요.
어찌 되었건 간에, 왜 이 일이 시험이 되어야 하나요?
사랑하는 이경미 집사님!
그러지 마세요.
넓게, 크게, 깊게, 잘 생각을 해 보세요.
나의 담임이신 권목사님, 사모님을 적으로, 원수로 생각하지 마세요.
이전처럼 더욱 더 교회를 잘 섬기고, 출석 잘 하고, 권목사님을 더욱 더 잘 섬기고 충성하세요.
마음에 생긴 상처로 인하여 앙금을 품고 사는 것은 성도의 마땅히 할 바가 아닙니다. 성도는 항상 마음이 선하고 착해야 합니다. 하물며 그 대상이 나의 담임목사님이요 사모님이라면 더 말할 필요성이 없지요.
말씀하신 카톡의 제 글은, 일반 성도들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담임목사님의 허락 하에서만, 다들 받을 수 있습니다.
이집사님이 권목사님에게 시험 들어 있거나, 영음교회를 떠나면 저의 글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권목사님께 다시 돌아 오고, 정상적 집사의 자리로 돌아 오면, 다시 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양해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이경미 집사님!
코로나의 막대한 피해는, 그 병 자체가 아니라, 이렇게 우리가 서로 불신하고, 책임을 전가하고, 아름다웠던 사람 관계의 신뢰 마저 다 깨뜨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 속에 사탄의 농간이 있습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예수를 믿으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 생각을 버리고, 자기 감정을 버리고, 자기 뜻을 버리고, 말씀을 따라, 성령을 따라 가야 하는 삶입니다.
이집사님이 훌륭하게 바로 다시 서서, 교회를 잘 섬기고 권목사님의 오른팔이 되었다는 서식이 들려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평안을 빕니다.
서울 새성교회, <성령의군대> 배종부 목사 드림
[이경미 집사 대전 영음교회] [오후 11:30] 보내 주신 답변 말씀을 보면서, 배종부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는 말씀 같습니다. 감사하게 잘 봤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생각하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내가 좀 더 넓게, 좀 더 깊게, 좀 더 크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배종부 목사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신 대로 앞으로 영음교회를 잘섬기고 충성하도록 힘써 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배종부] [오후 11:36] 소중한 이집사님!
제가 가장 존경하는 권재천 목사님으로부터, 우리 이경미 집사가 다시 열심히 교회 잘 나오며, 충성한다는 소식을 꼭 듣고 싶습니다.
이유는 제가 다시 이경미 집사님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의 소원은 이집사님이 시간을 내어 권목사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와서 저의 <성령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도할게요.
부디 나의 담임이신 권목사님을 사랑하고 충성하셔서, 제게 좋은 소식을 주세요. 제가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게요. 할렐루야!
[이경미 집사 대전 영음교회] [오후 1:16] 오늘 오전에 보내 주신 단톡 말씀을 다 보면서 긴글이지만 두 번 이상 보아도 지루하지 않는 참 좋은 말씀이었고, 마음에 많이 와 닿는 말씀이네요. 참 감사합니다.
중간 부분에 배종부 목사님께서 두 달 가까이 기침한다는 것은 잘 몰랐네요. 어제도 아팠고, 그리고 고혈압은 저는 아직까지 고혈압 때문에 약 먹는 사람은 아니지만, 목사님께서 고혈압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하나 고민 하신다고 하니, 저의 생각을 말씀을 드립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은 약을 계속 먹는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고혈압 있는 사람에게는 약을 먹는 것도 좋을 듯 해요. 병원에 가 보시면 이 정도면 약을 먹어야 한다, 안먹어도 된다고 병원에서 판단하시겠지만요. 목사님 자주는 기도 못한다고 하더라도 가끔씩이라도 빨리 치료해 달라고 기도는 하겠습니다..^^!
" 수고하십시요..!^^
성령 배종부 목사님 안녕하세요^^ 주일날 아침에 일어 나서 배종부 목사님을 위해서 잠깐 기도했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나네요. 우리 교회와 나에게 코로나 걸렸다고 이 때까지 나쁘게만 생각한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고 생각이 드네요. 왜냐하면 코로나 사건을 통해서 배종부 목사님께 처음 메시지 보낼 때 감사의 마음을 전하게 된 일과, 코로나 사건 때문에 시험 들어 상담했던 메세지와 등등... 어제도 톡 말씀 가운데 기침과 고혈압 얘기가 있어서 내 마음이 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톡을 보내게 되었지만, 만약에 코로나가 안걸렸다면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못하였다는 생각도 들고, 지금도 메세지를 전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코로나 걸리기 전에는 톡 말씀을 잘 봤다고 항상 마음 속에는 감사의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데 괜히 이상할까 봐 싶어서 망설이고 지나 갔지만, 코로나 사건으로 인하여 배종부 목사님께 메세지를 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이 큰 영광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진짜 저는 많이 부족한 사람인데, 성령 배종부 목사님께 이런 메세지를 전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에 전혀 상상도 못했는데, 지금의 생각 속 가운데 이 정도이겠지만, 앞으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흐르지 알 수 없겠지만, 잠깐 기도하는 가운데 이런 마음을 주셔서 영광스럽게 전하게 됩니다. 전하고 나서 후에는 잠깐 부끄럽게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전하게 되네요.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이겠죠.?
오늘도 수고하십시요^^!
[배종부] [오전 10:52] 그렇지요? 우리가 이런 고통을 통해, 서로 더 잘 알게 되고, 기도할 수 있게 되니, 참 감사하지요?
제가 꼭 당부 드리는 것은 나의 담임목사님이신 권재천 목사님과 사모님을 잘 섬겨 영혼육의 큰 복을 받으시라는 것입니다.
저와도 스승과 제자로 살아요.
아름다운 주일 보내세요.
[이경미 집사 대전 영음교회] [오전 11:01] 네... 꼭 배종부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명심하고, 권목사님 사모님 잘 섬기고 교회에 충성하겠습니다 ^^
세상에는 가족도, 형제도, 친구도, 애인도
사랑 때문에,
돈 때문에,
권력 때문에,
안전 때문에,
이익 때문에 배신한다.
개인적 배신이 커지면, 집단적 배반이 된다.
그러므로 사랑도, 돈도, 권력도, 안전벽도, 이익 관계도 없는 사람을 살면 배신과 배반이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사의 모든 비극은 다 이런 것들에 기인한다.
조만식 장로님의 겸손
주기철 목사님과 사제지간이 되고, 주 목사님 교회의 장로로 시무 하시던 조만식 장로님이 있었습니다. 조 장로님은 오산학교에서 교장으로 있을 때, 주 목사님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조 장로님이 예배시간이 지나도록 손님과 이야기 하다가 교회에 들어 오셨습니다.
주 목사님은 설교를 하다가 "조 장로님, 오늘은 의자에 앉지 마시고 서서 예배를 드리시오." 하고 호령을 했습니다.
이럴 때 보통사람 같았으면 그냥 나가든가, 의자에 앉아서 목사에게 욕을 하며, 험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 장로님께서는 그대로 서서 예배를 보았다고 합니다.
나중에 주 목사님이 설교를 마치고는 "서 계시는 조 장로님, 기도해 주십시오." 하니, 기도하시는데, "하나님, 나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시 한 죄를 용서하옵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서서 예배를 드리신 장로님을 본 교우들은 큰 감동을 받고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조만식 장로님의 신앙을 우리는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 당시 얼마나 자존심과 인격의 손상을 당하셨을까?
그러나 오로지 기도와 순종으로 극복했을 때, 역사의 위대한 인물로 빛날 수가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기독교의 終止(종지)를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다’ 고 했습니다.
일본의 [내촌 감삼] 선생은 말하기를 "구원은 회개에서 시작되고, 회개는 겸손에서 시작된다." 라고 했습니다.
신학자 풀로처에게 어떤 전도사가 찾아 와서 묻기를, "내가 어떻게 하면 가장 위대한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대답하기를 "그대가 영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될 려면, 영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쓰실 것이라" 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지구상의 인구가 100명 밖에 되지 않는 마을로 축소된다면...
*아래 글을 읽고서, 당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더 점검하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십시오.
지구상의 인구가 100명 밖에 되지 않는 마을로 축소된다면, 물론 현 세계의 인구 구성, 인구 비율은 그대로 보존한 대로 축소한다면, 이 조그맣다고 할, 또 다양하다고 할 마을은 어떤 모습이 될까?
스탠포드 의대의 의학박사인 필립 M. 하터가 계산을 시도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57명은 아시아인, 21명은 유럽인, 14명은 서반구(미주)인, 8명은 아프리카인,
52명은 남자, 48명은 여자,
70명은 유색 인종, 30명은 백인,
70명은 비기독교인, 30명은 기독교인,
89명은 이성애자, 11명은 동성애자,
6명은 세계 부의 59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그 6명은 모두 미국 사람,
80명은 적정 수준에 못미치는 주거 환경에 살고 있고,
70명은 문맹,
50명은 영양 부족,
1명은 죽기 직전,
1명은 임신 중,
1명은 대학 교육을 받은 적이 있고,
1명은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좋은 집에 살고, 먹을 게 충분하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주 탁월하게 선택된 사람’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좋은 집, 먹을 것이 있는 데다, 글을 읽을 수 있고,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면, ‘아주 엘리트’ 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또 만약에 전쟁의 위험, 감옥에서의 고독, 고문에 의한 고뇌, 기아의 괴로움 등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세계 인구 상류 500만 명 중의 한 사람인 셈이다.
만약 고통, 체포, 고문, 혹은 심지어 죽음의 공포 없이 매주 교회를 다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곧 지구상 30억 인구가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누리는 행운아이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있고, 몸엔 옷을 걸쳤고, 머리 위로는 지붕이 있는 데다, 잘 곳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 75% 보다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은행에 돈이 있고, 지갑 속에도 돈이 있고, 어딘가 잔돈만 모아 놓은 동전통도 있는 사람이라면, 지구상에선 상위 8%의 부자에 속한다.
만약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살아 계시고, 아직 결혼한 상태라면, 아주 드문, 미국에서 마저도 아주 드문 경우가 될 것이고, 만약 고개를 들고 얼굴에 웃음을 머금으면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장 축복 받은 사람’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대다수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그러지 못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고, 안아 주고,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역시 큰 축복 받은 사람이다.
곧 아픔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손을 내밀 수 있기에...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당신을 생각해 주었음을 생각할 때, 배가된 축복을 받은 셈이다.
지구상에 글자를 읽지 못하는 20억 인구가 있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지어다.
겸손
ㅇ 불손한 사람은 선심을 쓰고도 욕을 먹는다. 그러나 공손한 사람은 돈이 없어도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다.
ㅇ 유능한 매는 발톱을 감춘다.
ㅇ 겸손은 검보다 강하다. 승리는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ㅇ 숯불이 아름다우나 재로 묻지 아니하면 곧 사라지는 것 같이, 덕의 빛이 크나 겸손으로 덮지 아니하면 오래 가지 않아 소멸된다.
ㅇ 교만은 천사를 떨어 뜨려 마귀를 되게 하고, 겸손은 사랑으로 천사가 되게 한다.
ㅇ 모든 덕이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인데, 겸손이 그 첫째 계단이다. 이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 가기가 쉬운 것이다.(어거스틴)
ㅇ 겸손이란 독일말로 Demut, 즉 '힘' 이란 의미이다.
ㅇ 겸손은 하나님의 나라에 풍부한 창고를 발견하는 눈이요, 그것을 받는 손이다. 우리가 남을 도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신다. (웨슬레)
ㅇ 칭찬을 받았을 때가 아니고 꾸지람을 들었을 때, 그 때에 겸양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겸손한 사람이다.(J. 파울)
ㅇ 겸손한 자는 남을 비판하지 아니하며, 또한 비판하는 소리도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ㅇ 영안으로 온 세상을 보니, 마귀가 온 땅에 그물을 편 것을 보고 두려워 탄식하기를 누가 능히 이 그물을 벗어 나겠는가? 하니 한 천사가 대답하기를 겸손한 자 만이 능히 이 마귀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귀가 두려워 하는 것은 오직 겸손이요,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교만이다(안토니)
ㅇ 영국의 프리처 박사에게 한 전도자가 가서, 어떻게 하면 영국에서 제일 유명한 전도자가 되겠는가 물으니, 그 때 박사의 말은 영국에서 제일 작은 자가 되라고 하였다.
ㅇ 동전이 가득 찬 단지는, 동전이 들어 갈 때, 조용하다.
작아져야 해, 낮아져야 해...
맨 밑에, 더 작게...
열매가 가장 많이 달린 무거운 가지는 항상 맨 밑으로 조용히 내려져 있는 법이며, 강 속의 깊은 물은 언제나 잠잠한 법이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전능한 모습 앞에서 우리는 더욱 더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는 "그리스도와 같이" 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다.
"나 자신 보다도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격한 교만의 감정과 헛된 영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은혜를 구하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같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보인다. 자기 자신을 복종 시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진실로 동참하여 사는 사람 만이 더욱 자라나 이 겸손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 일을 해 내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 첫째로는, 확고한 목적을 갖고 자기 자신을 복종 시킨 이후로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과 이웃의 유익 만을 구하며 사는 것이며,
둘째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또한 자신도 죄에 대하여 죽고,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신앙을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을 말하며, 동시에 그리스도의 새 생명이 우리 속에서 살아 나는 것을 의미한다."
강아지를 작게 만드는 방법
한 여행자가 파리에서 아주 조그맣게 생긴 강아지들을 팔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여행자는 그에게 "왜 그렇게 강아지들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작게 생겼냐?" 라고 물어 보았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처음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여행자가 자신의 사업을 폭로할까 봐, 또는 그가 개를 파는 경쟁자가 될까 봐 두려워 했던 것이다.
여행자는 그에게 단지 알고 싶기 때문이라고 안심을 시켰다. 그랬더니 몇 번 의심스러운 표정을 한 끝에, 그는 개들을 조그맣게 만든 과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가 들려 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나는 이 강아지들이 매우 어렸을 때 먹을 음식에 소량의 니코틴을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개들이 더 이상 크지 않게 되었던 겁니다."
“니코틴이 혹 개들을 죽이지나 않았습니까?”
여행자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물론 많은 개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 남은 개들을 비싼 가격에 팔 수 있게 되어, 손해 본 것은 없습니다."
결국 그 불쌍한 개들은 그의 부를 위해 독살되었던 것이다.
넌 너무 작아...
늙은 호랑이는 피 묻은 뼈들이 흩어져 있는 초가집 마당을 걷다가 잡풀 속에서 얼굴을 쏘옥 내민 병아리를 발견하고는 말했어요.
“난 지금 배가 부른 걸. 쩝!”
호랑이는 이미 주인 없는 초가집을 덮쳐 개를 잡아 먹었고, 닭 세 마리를 잡아 먹은 후였어요.
뿐만 아니라 닭들을 잡아 먹을 때 갓 태어난 병아리들도 무참히 깔려 죽었는데, 잡풀 속에서 빠져 나온 병아리 하나가 삐약거리지 뭐예요. 배가 부른 호랑이는 그냥 초가집을 나와 산으로 올라 갔어요.
그리고 다음 날, 사냥을 하기 위해 돌아 다니다가 다시 초가집을 지나치게 됐어요.
“아직도 삐약거리네!”
호랑이는 병아리에게 다가 가 입을 벌렸어요.
“난 지금 배가 고프지만, 너를 잡아 먹어 봤자 아무 소용 없을 거야.”
호랑이는 늙은 몸이라 사냥을 하기 힘들었는지 그냥 초가집 마당에 길게 누웠어요. 그러자 병아리가 삐약거리며 다가 오더니 호랑이 가슴으로 안겨 오지 뭐예요.
병아리는 호랑이 가슴 털로 파고 들며 간지럽혔어요. 그 고운 목소리로 삐약거렸어요. 난 네 엄마가 아니란다. 호랑이는 얼른 일어나, 산으로 달아나듯 했어요. 하지만 아주 떠난 게 아니지요. 늑대나 너구리가 병아리를 해치지나 않을까 걱정을 하며 몰래 지켜 보았어요.
어둠이 내리자 호랑이는 초가집으로 다시 가 마당에 누웠어요. 천진하게 놀고 있는 병아리를 지켜 보는 게 흐뭇했지요.
다른 동물 같으면 호랑이 소리만 듣고도 달아 나기 바쁜데, 그래서 언제나 외롭게 지내야 하는 처지인데, 그런 무서운 호랑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 주는 병아리가 너무 귀엽고 너무 귀여웠지요.
“편히 자거라. 내일 아침 일찍 일어 나고...”
호랑이는 낮이면 병아리를 등에 태우고 다녔고, 밤이 되면 가슴 털 깊숙이 병아리를 품어서 재웠어요. 그 후 한 달 쯤 지난 어느 날 호랑이는 병아리를 지켜 보다가 눈물을 뚝뚝 흘렸어요.
오래도록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야 했지요.
“얘야, 사실 네 부모는 내가 잡아 먹었다. 정말이다. 내가 아주 못된 짓을 저질렀단다. 이를 어쩌냐! 흐흑흑.”
하지만 병아리는 그저 삐약거리며 놀기만 했어요.
호랑이는 그래서 풀숲에 앉아 캑캑거리며 뱃속에 든 그 무엇을 토해 내려 했지요. 하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목만 뻘겋게 달아 오를 뿐이었어요. 그로부터 며칠 후 호랑이가 또 말했어요.
“나는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단다. 내 목숨을 내가 알지. 그래서 먼 안식의 계곡으로 찾아 가야 한다. 그 안식의 계곡에 내 몸을 던져야 하는데, 네가 걱정이구나. 이 고통의 땅에서 너 같이 연약한 목숨은 하루라도 살 수 없을 거야.”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된 늙은 호랑이는 일찍이 자기가 지배했던 산과 들을 굽어 보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어요. 더욱이 연약한 병아리를 놔두고 안식의 계곡으로 찾아 가야 하는데,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어요.
늙은 호랑이는 그래서 나무 아래에 길게 누우며, 병아리에게 힘없이 말했어요.
“그래. 난 이 고통의 땅에서 죽으마. 내 형체가 바람에 나부낄 때까지는 네가 안심해도 될 거야. 다른 동물들이 감히 여기에 못 올 테니까. 그 동안에 너는 내 품에서 자라 다오.”
얼마 후 늙은 호랑이는 자기를 향해 개미와 진드기들이 몰려 오고 있음을 느낌으로 알았어요.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지요. 죽음의 긴 터널을 지나 꼬끼오!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질 때를 기다릴 뿐이었어요.
녹아서 작아지는 비누처럼...
비누는 사용할 때마다
자기 살이 녹아서 작아집니다.
드디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더러움을 없애 줍니다.
만일 녹지 않는 비누가
있다면 쓸모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자기 희생을 통해
사회에 공헌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비누와 같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기 것을
아끼려는 사람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습니다.
이는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가 한 말입니다.
사람의 삶 중에 희생하는
삶 만큼 숭고한 삶은 없습니다.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되는인간관계는
어느 것이나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그렇고,
우정이 그렇고,
동료애가 그렇고,
전우애가 그렇습니다.
비누처럼 나를 희생해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삶!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삶입니다.
그러나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를 위해 하길 원합니다.
이런 마음이 없다면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 받고 싶으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아름다운 건
상대의 옷에 묻은 때를
깨끗이 세탁해 화려하게 해 주고,
상대의 몸에 찌든 때를 씻어,
향기나게 해 줘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녹아서 작아지고,
녹아지는 비누같은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복된 하루 되시고,
사랑받는 날 되세요~(하트)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YIgz&articleno=451
스스로 작아지는 기쁨을 아는 사람들 - 장애우 평등학교
오랜 만에 내린 비에 맑게 씻긴 나무들을 양 옆에 거느리고, 네 시간 가까이 달려 충남 금산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 곳엔 무더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장애우 평등학교 개교 준비에 구슬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몇 해 전, 환경운동가 정요섭 님은 어느 장애인 공동체에서 장애우 열 사람과 함께 시 공부모임인 시인의 나라를 시작했다. 모임이 거듭되면서 비록 장애인이지만 각각의 개성을 가진 그들이 대규모 장애인 시설의 일률적인 규칙 속에서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알게 되었다.
시인의 나라 사람들은 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한 사람이 아니라, 서로가 마음을 나누고 평등수 있는 가족으로 묶이길 바랐다. 그래서 정요섭 님은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고 왜소해져 버려진 장애우들에게 그들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 주리라고 마음 먹었다.
정요섭 님은 한 월간지에 글을 연재하고 있는데, 거기에 소개된 정요섭 님의 뜻에 발맞추는이들이 많이 생겨났고, 그렇게 해서 장애우 평등학교의 머릿돌이 놓여졌다.
이 곳은 장애인을 돌보는 시설의 개념이 아니다. 또 학교라고는 하지만, 제도권 안의 교육기관도 아니다. 우선 몸이 성한 이들에게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아닌, 손 없는 이는 말 못하는 이의 입이 되고, 말 못하는 이는 손 없는 이의 손이 된다. 보잘 것 없고 작더라도 가진 것 안에서 나누고 돕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장애우 평등학교를 서로 살림의 공동체고 말한다.
장애우 평등학교는 세 축으로 이루어진다. 한 가족인 열 명의 장애우와 정요섭 님,
장애인 모두 평등한 존재라고 여기며, 장애우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140여 명의 평등지기, 그고 내년부터 이 곳을 찾게 될 교육생들이다.
새 가족을 받아 들일 때는 가족회의를 열어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이 곳이 너무 커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정으로 장애인을 위하고 보살피는 마음들이 모여 장애우 평등학교와 같은 작은 모임들이 곳곳에 세워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교육은 일주일 과정으로 한 달에 한 번 이루어지며, 교육 내용은 들꽃 기르기와 생태 관찰기, 악기 다루기와 노래 부르기, 시 쓰기, 그림 그리기, 사진 찍기, 연극하기와 대본 쓰기, 자기 굽기, 종이 접기 등 장애우들이 배우고 싶어하는 것들에 귀 기울일 계획이다.
지난 6월, 평등지기들의 힘을 모아 충남 금산군 남이면에 있는 폐교된 흑암분교를 빌렸다. 애인 시설이 들어 설 때면 이웃들이 가장 먼저 반대하고 나서는데, 흑암리 주민들은 처음부터 마음을 열고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찾아 간 날도 동네 아주머니가 다섯 살, 두 살 아이들을 곁에 두고, 벽돌 나르는 일을 돕고 있었다.
“하나님은 절대 넘치게 주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필요할 때면 참 희한하게 채워 주시지요.”
정요섭 님의 말이다.
분교 임대비로 남 몰래 속을 끓이는 걸 어찌 알았는지, 이름을 밝히지 은 누군가가 천만 원이라는 큰 돈을 보내 왔고, 학교건물 옥상에서 물이 새 들어와 벽이 갈져 근심하고 있는데, 정요섭 님의 강연을 들은 한 학생이 아버지가 방수액 공장을 한다며 혹시 방수액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전화를 해 왔다.
교육에 필요한 책상과 의자는 해오름도시대안학교에서, 운반은 인천에 있는 평등지기 한 분남편의 트럭으로 거뜬히 해결해 주었다. 또 폐교를 손질하는 공사는 평등지기들이 직접 나서서 따로 사람을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아직 필요한 게 더 많다.
시인의 나라 사람들이 쓴 시를 모아 묶어 낸 시집 <반짝이며 글썽이는 것들>의 인세가 수입의 전부인데, 날이 추워지면 보일러도 놓아야 하고, 이불, 냉고에 장애우들에게 필요한 특수 시설 등 장만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나 하나 어 보니 없는 게 더 많은 것 같아 걱정스럽기만 한데, 정요섭 님은 곧 채워질 거라며 마냥 즐거운 얼굴이다.
이제 곧 공사가 마무리 되면 겨우내 집안을 손보고, 또 교과를 담당해 줄 평등지기 선생님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교육 내용을 여기 저기에 알리고, 각 교과당 교육생도 신청 받을 예정이다.
몸은 불편하지만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인지 장애우 루시아 님은 한참 동안 뒤안길 풀을 뽑있었다. 하지만 정작 손에는 아무 것도 쥐어 있지 않다. 제비꽃은 이대로 자라 씨앗 주머니가 터지면, 내년 봄에 다시 꽃을 피울 테니 뽑지 않고, 질이는 약초로 쓰임새가 요긴해 그대로 두고, 이름은 모르지만 꽃봉오리를 품은 걸 보니, 예쁜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두고 보기로 했어요.
잡초려니 생각하고 넘겨 버리기 쉬운 그 작은 것들에서도 하나 하나 비밀을 찾아 낸 루시아님, 그녀에게서 몸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한 사람, 한 사람 마다 아주 큰 비밀이 담겨 있음을배운다.
이 가을엔 많이 가진 이가 나누겠지 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나눌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으로, 장애우 이문섭 님의 시를 가만히 소리 내어 읽어 본다.
가지면 더 가지고 싶은 병을 얻게 됩니다
작아지면 더 작아지고픈 기쁨을 얻게 됩니다
전화로 말하지 말고 얼굴 맞대고 말해 보세요
자동차만 타지 말고 걸어 보세요
작은 씨앗 하나에도 우주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데
당신 속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나요...
작게 보여야 이득
가진 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존경 받기 원하는 사람은 실제로 자신이 가진 것 보다 더 많이 보여지길 원한다.
그러나 그 소유가 물질이 아니고, 인격의 가치일 때에는 정반대이다.
인격의 관계에서 보면 자신의 모습보다 작게 보이는 것이 이득이다.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실제 보다 크게 보였을 때에, 그가 나를 잘 알게 된 후에는, 나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금 작게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크게 보이는 것은 커다란 손해이다. 그와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처음에는 작게 보였을지라도 나는 점차로 커질 수 있는 것이니, 내가 다른 사람에게 작게 보이면 보일수록, 이득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흔히 자신을 남에게 알리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작아 보이는 한 가닥의 실
커다란 굴뚝이 완성되고, 사람들이 그걸 짓기 위해 설치한 작업대를 제거하고 있다. 오직 한 사람 만이 밧줄을 타고 내려 오기로 하고 굴뚝 위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만 사람들이 밧줄을 꼭대기에 남겨 놓지 않고 다 내려 가 버렸다.
큰 일이었다. 뛰어 내리는 길 밖에 없었다. 굴뚝에 혼자 남은 그는, 절망하여 굴뚝 꼭대기에서 이리 저리 두려워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지만, 밧줄은 굴뚝 꼭대기까지 던져 올릴 수는 없었다.
그 때 그의 아내가 외쳤다.
"당신 양말을 벗어서 실을 풀어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숨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 보았다.
"그것을 길게 이어서 아래로 내려 보내세요."
실이 거의 내려 오자, 그의 아내는 거기에다 가늘고 질긴 삼실을 묶었다.
"이제 끌어 올리세요."
삼실이 그의 손에까지 올라 갔다. 이번에는 삼실에 밧줄을 묶었다. 그가 밧줄을 손에 넣었다. 밧줄을 튼튼하게 꼭대기에 묶은 그는 긴장 속에서 무사히 밧줄을 타고 내려 왔다. 그리고 울면서 아내를 안았다.
작아 보이는 한 생각의 지혜와 한 가닥의 실이 생명을 구한 것이다.
입 냄새 없애는 요령
깔끔한 외모의 사람이라도, 대화 도중 입 냄새가 난다면, 좋은 인상을 갖기 어렵다.
미 여성지 글래머는 최근호에서 전문가의 말을 인용, 입 냄새를 없애는 요령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입에서 냄새를 유발하는 박테리아가 살고 있다. 바로 이 박테리아가 황하수소, 메틸 메르캅탄 등의 썩은 달걀이나 마늘 냄새가 나게 하는 것이다.
입 냄새는 입 속의 침이 마르면, 더 심하게 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침이 없을 경우, 구강 악취를 유발하는 박테리아가 더 급격하게 증식하기 때문...
실제로 잠을 자는 동안에는 침의 분비가 현저히 감소, 아침에 잠을 깬 후 입 속이 텁텁하면서 냄새가 나는 것이다.
또, 운동을 할 때, 말을 많이 하고 난 다음, 혹은 오랜 시간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늦은 오후 무렵, 입에서 심하게 냄새가 나는 것도 침의 분비량이 줄어 들었기 때문이다.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효과가 좋은 것은 일상적이지만, 칫솔질을 올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스엔젤레스에서 개인 치과를 하고 있는 듀마 박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채 1분도 칫솔질을 안하지만, 가장 적당한 양치 시간은 5분”이라고 권한다.
혀의 안쪽 부분이 입,냄새를 유발하는 박테리아의 주요 서식처이므로, 칫솔질 할 때는 치아는 물론 혀, 뺨의 안쪽까지 닦아 내야 입속의 박테리아를 제거, 상쾌한 입김을 유지할 수 있다.
필라델피아의 구강악취 전문의인 리히더 박사는 “숟가락으로 혓바닥을 긁어 내는 것도 냄새를 없애는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일러 준다.”
숟가락을 뒤집어 입안에 넣고 숟가락 끝으로 혀 표면을 몇 번 긁어 낸, 다음 물로 입가심을 해 주는 것이야 말로 효과적인 양치법이라는 설명.
너무 바빠 칫솔질을 할 여유 마저 없을 때는 물로 입을 헹궈 내는 것도 악취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과일 조각 같은 날 음식도 침 분비를 자극, 구강 악취를 줄여 준다.
이에 비해 카페인은 침을 마르게 하기 때문에, 한 잔의 커피는 입 냄새를 없애기는 커녕 더 심하게 할 수 있다.
구강 청결제(mouth wash)는 냄새만 완화 시킬 뿐, 근본 적인 원인인 박테리아를 없애지는 못하기 때문에, 10분에 1시간 정도 임시 방책 밖에 안된다.
4대강 보를 없애면, 수심이 3미터에서 1미터 아래로 내려 간다.
북한이 후방으로 기습 남침하든지,
둘이서 남북연방제 선언하고, 북한군이 국군 복장하고 내려 와서 반대세력 제거하는데, 5박 6일 안에 신속하게 강을 건너 다니며 끝내야 한다.
6일이 지나면 미국 본토에서 지원군이 온다.
휴전선을 열어 준 것 같이, 길을 열어 주는 일환이다.
여적죄 말이다.
다행히 김정은이가 병색이 깊고, 군부의 동요가 심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무엇보다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미국 특수부대를 한국에 배치하고, 특수부대 사령부를 일본으로 이전했다.
트럼프가 정말 많이 도와 주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이는 자충수만 두고 있는 것이다.
전 겨울에 눈이 많이 안와서, 올 여름에는 비가 많이 안 올 것이다.
가뭄 피해로 농민들도 돌아 설 것이다.
정말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겨 놓고 싸우는 전쟁입니다.
거지 근성을 없애자
남에게서 무엇을 거저 받기를 좋아하는 것이 망국민 특성 중 하나이다. 우리에게는 남의 것을 거저 받고도 치욕으로 여기는 마음이 없다.
남이 나에게 무엇을 거저 준다면 모욕으로 알아 물리치는 용기가 없다. 저편에 배나 돌려 보내지 않을 작정이면 받지 아니하는 호기가 없다.
남에게 받기 좋아하는 자는 거지와 같아서 의기(意氣)가 소진하고 용기가 죽었으니 저는 퇴영적이요, 진취적이 아니며, 의뢰적이요 독립적 건설적이 아니니라.
에머슨은 말하기를 "저는 저를 위하여 있는 세상에서 빈민굴 학교 생도와 같이, 사생아와 같이, 면허 없는 상인과 같이 쭈뼛 쭈뼛 엿보며 사람의 눈을 피하여 숨어 행하는 자가 되지 말 것이니라" 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회개하자. 이제부터는 남의 것을 거저 받아 좋아하는 마음을 없애자. 그리하여 용감하자. 왕자 같자. 공공연하게 사람 앞에 주리 끼울 일이 하나도 없게 하자. 이것이 또한 크리스천 도덕으로, 특히 국민에게 부흥되지 아니하면 안될 독립의 도(道)이다.
마음을 넓히자. 허허로운 마음을 갖자.
다툼을 없애는 방법 - 헤라클레스
희랍신화 한 토막,
하루는 헤라클레스가 길을 가다, 괴물의 기습 공격을 받았다.
헤라클레스는 그 괴물을 두들겨 쓰러뜨린 후,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런데 조금 후 3·4배 더 커진 괴물이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는 더 센 힘으로 괴물을 때려 눕혔는데, 이번에는 더 커진 괴물이 나타 났다.
때리면 때릴수록 더 커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자, 헤라클레스는 아테네를 찾아 갔다.
그 때 아테네는 말했다.
“그 괴물의 이름은 '다툼'인데 때릴 게 아니라, 못 본 척 놔 두면 저절로 작아져 힘을 못 쓴다네.”
파당을 없애는 방법
파당을 없애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자유 토론 시간에 의논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의견을 끝까지 듣고, 인정해야 합니다."
"나누이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음에 안 들면 나간다는 극히 단순하면서도 위험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상과 같이 아주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그러나 그 토론은 서로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다가 그만 해산되어 의견이 일치되는 사람들끼리 소그룹을 지어 열띤 논쟁을 벌이고야 말았다.
벌레도 없앤다구요
김준곤 목사의 `기도의 능력'에 대한 칼럼 중 일부이다.
“일본의 어느 마을에 한 기독교인이 천 그루 정도의 과수를 가꾸고 있었다. 열매가 맺을 무렵, 이상한 벌레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약을 치고 잡아도 기승을 부렸다.
이 분은 철야기도를 했다. 가족도 다 모여 벌레가 없어지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수백마리의 이상한 새떼들이 몰려 오더니, 한 나무에 하나씩 붙어, 한 시간 만에 벌레를 전부 쪼아 먹어 버려, 나무들이 깨끗해졌다고 한다.”
산을 없앤 기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가운데 나온 이야기다.
원나라 쿠빌라이 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할 마음으로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17:20을 보고 신부를 불러서 "10일 동안 기도해서, 내 궁전 앞에 있는 산을 없애라."라고 명령했다.
신부는 열심히 8일 동안 기도했다. 그러나 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부가 9일째 기도할 때 계시를 받게 되었는데 "거리에 나가서 눈이 하나 밖에 없는 신발 만드는 사람을 불러 기도하게 하라." 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를 불러다가 기도하게 하였더니, 갑자기 폭풍이 불고 천둥과 번개가 쳤다. 그러는 동안 그 산은 없어지고 평지가 되었다.
그 신발 만드는 사람은 청년 때 구두를 맞추러 온 처녀를 보고 음란한 생각을 품었다가, 마태복음 5:29 말씀에 따라 한쪽 눈을 뽑을 정도로 철저한 신자였다.
신부는 이 일로 그제서야 기적의 참 뜻을 알게 되었다.
싸울 생각을 없애 버리는 책
중국 남경에서 선교사들이 일본군 병사들에게 신약 성경을 나누어 주자, 하루는 일본군 장교 한 사람이 이들에게 찾아 와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발 부탁이니, 더 이상 내 부하들에게 성경책을 주지 마시오. 어떻게 된 셈인지 이 책을 읽기만 하면, 아무도 싸우려도 하지 않는단 말이오!"
울타리를 없앤 홍수
큰 호수가 있는 마을에 사는 농부들은 집오리를 많이 길렀다.
그러나 그들은 집오리 떼를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둬 두고 그 가운데 작은 연못을 만들어 거기서 놀도록 하였다. 그들은 오리들의 밖에 돌아 다니거나 들오리들과 서로 섞여 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루는 큰 소낙비가 퍼부어 물이 넘쳐 이 작은 집오리 울타리와 연못이 물에 잠기에 되었다. 모든 울타리가 잠겨 버리자 오리들은 널찍한 물 위에 떠올라 날개를 치며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였다.
그들은 서로 좋아하며 저절로 한 무리가 되었다. 큰 소낙비가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것이었다.
우리는 성령의 강림을 필요로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연합이 천박한 외면적 통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된 깊은 심정의 연합으로 될 것이다.
장래의 화근을 없애려고...
허 부인은 성종 때 우의정 허종과 좌의정 허담의 누이로 감찰 신영석에게 출가하였다.
본래 명문대가에 태어나 <경전>, <사기>를 통달하고 사리에 밝아 오라비 되는 두 재상의 자문 역할을 맡았는데, 한 번은 두 오라비의 목숨을 구한 일이 있었다. 그 때 연산군의 생모이자 성종 왕비인 윤씨가 실덕한 탓에 폐위되고 사약을 받게 되었다.
이 불길한 소식의 전달 책임자인 허종과 허담 두 형제에게 허 부인은 피치 못할 사정을 만들어야 하니, 다리에서 일부로라도 떨어지라고 해서, 그들도 누이의 말에 따랐다.
훗날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과연 허 부인이 예견한 대로 그들은 불운을 전달하였다는 죄목으로 내린 극형을 피할 수 있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다리를 '종담교'라고 불렀다.
제사 없애 달라 명절에 등장한 각양각색 청원
이런 며느리들 생각은 청와대가 설치한 국민 청원 게시판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명절 직후에 이혼 신청을 하는 부부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명절 스트레스, 가사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으로 옮겨왔습니다.
제사를 없애달라는 청원이 수십 건이나 됩니다.
"남편도 기억 못하는 조상을 위해 제사상을 차리고, 그 많은 설거지를 해야 하냐"는 한 청원자의 푸념이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명절마다 국회 의원회관 로비는 선물로 넘쳐난다며 아예 선물을 못 받게 법으로 막아 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한 대형마트 입점 점주는 "매장을 7년 동안 운영했는데 명절에도 쉬지 못한다"며 하소연해, 명절에도 쉴 수 없는 사람들의 공감을 샀습니다.
죄를 없애는 기회
똑바로 자란 편도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편도나무는 자신의 가지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철새 한 마리가 편도나무 위에 내려 앉았습니다. 철새는 편도나무의 껍질에 귀를 대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수 많은 벌레들의 우굴거리는 소리를 들은 후, 철새는 부리로 나무를 쪼아 나무 줄기에 구멍을 뚫고 벌레를 꺼내 먹었습니다.
그것을 본 편도나무는 기분이 나빴습니다. 알록달록한 앵무새가 푹 쉬고 갔을 때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자신의 몸에 구멍까지 낸 이 조그마한 새를 편도나무는 도저히 참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만한 편도나무는 철새에게 욕을 해서 철새를 쫓아 버렸습니다. 이제 조그마한 벌레들은 점점 커졌습니다. 게다가 어미 벌레는 새끼벌레를 계속해서 낳았습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벌레들이 나무 줄기를 천천히 파대고 있었지만, 편도나무는 그것을 알아 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찬 바람이 불자 속이 텅 비어 버린 거만한 편도나무는 그만 쓰러져 넘어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