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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ㆍ산행기 스크랩 청량산 산꾼의 집
이종도 추천 0 조회 76 06.07.15 11:52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봉화 청량산 산꾼의 집.

청량산 하면 초막 산꾼의 집이 생각나게 한다.

초막 이 대실 그는 우렁찬 기운으로 오늘도 청량산을 지키고 있다.



 

 

 초막 이 대실 선생님

산악구조대 대표 / 화가 / 도예가

 

 

 



 

 



 

 

 



 

 

 

 

 

 

초막 산꾼의 집은 그야말로 나그네의 집이고

길손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아홉가지 산 약초로 달인 구정차는 일품 차맛이다...

 

 

 

"약차 한잔 그냥 들고, 쉬었다 가시구려"
 청량산 지킴이 초막 이대실 선생

 

박대훈 기자 hoon45p@yahoo.co.kr

 

청량산 청량정사옆 산꾼의 집에는
구름처럼 살며 바람처럼 떠도는
주인 같은 나그네 나그네 같은 주인
초막 이대실이 산다.

이 글은 벽파 김철진 시인의 "내마음의 청량산" 중 '산꾼의 집 초막 이대실'이란 시다.

아침까지 비가 와서 그런지 청량산 산꾼의 집을 오르는 길은 미끄러웠다. 초가을이라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지만 잎들은 성장을 멈추었고 다람쥐, 청살모는 벌써 겨울 준비를 하는지 길가엔 도토리 껍질이 즐비하다.

   
오늘따라 등산객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 일기 탓이겠지, 띠처럼 둘러진 금탑봉 허리를 돌아 청량사가 건너다 보이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건너다 보이는 청량사 전경은 언제 보아도 고즈넉한 평화로운 풍경이다. 바로 그 풍경이 선경이라고 할 것이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퇴계선생이 수학하신 오산당이 보이고 바로 그 옆에 "산꾼의 집"이란 문패(?)가 붙은 "초막 이대실(63세)" 선생이 거처하는 오두막집이 있다.

두 걸음도 안되는 나무다리를 건너면 왼쪽에 별로 쓰이지도 않을 것 같은 빨간 우체통이 서 있고 그 옆엔 솟대가 군무를 하듯 모여 있다.
 
오른쪽 아랫채(전엔 헛간이었을)엔 어디서 그렇게 모아 왔는지 민속박물관을 하나 차려도 될 만큼 골동품(돈 될 것 같지는 않아도)들이 좁은 공간에 가득 차 있다.

본채로 가는 돌계단을 오르니 머리 위에 온갖 풍경들이 저마다 각각 다른 소리로 주인보다 먼저 손님을 맞는다.

   
그는 언제나처럼 뚜껑없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하회탈처럼 주름 많은 웃음을 띠며 반갑게 맞는다. 셀프로 되어 있는 그 유명한 구정차(九情茶)도 손수 따라주며, 찻잔은 좀 투박해 보였지만 그가 이곳에서 직집 흙을 빚어 구운 것들이란다.

구정차는 그가 개발해 낸 것으로 아홉가지 산약초를 달여서 만든다고 했다.

"오고 가고 아픈다리, 약차 한잔 그냥 들고, 쉬었다가 가시구려"

이 글귀를 기둥에 붙혀 놓고 오는 이마다 그냥 마시고 찻잔이나 씻어 놓고 가라고 한다. 등산객이 많은 날은 2-3천잔이나 나간다고 했다.

"차를 그렇게 오는 이마다 대접하면 밑천도 꽤 들텐데 무슨 돈으로 하느냐"고 하니 약초를 직접 캐기도 하고 목걸이 조각품(그는 이것을 "링타이"라 불렀다)을 팔아서 댄다고 했다.

출입구쪽 벽면엔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나무조각으로 된 달마상, 하회탈 같은 것들을 끈으로 매단 목걸이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 '한 개 4천냥'이란 쪽지도 붙어 있다.

손님이 쉬어가는 홀 옆방엔 전기와 가스가마가 놓여 있고 때때로 물레를 돌려 집에서 쓰는 그릇과 도자기들을 만든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작품들이 집안에 가득하다. 그의 도예 실력은 대학강단(대구공업대학 도예과)에 설 정도다.

흙을 빚다가 싫증나면 가야금을 뜯고 대금을 분다. 그러다 꽹과리를 가슴에 안고 소리를 한다. 그는 지방 축제에 초청 받아 나갈 정도로 뛰어난 소리꾼이기도 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축제장에서 장승깎기 퍼포먼스도 한다.

그는 또 시간 나면 선서화(달마도)를 그리고 그것을 팔기도 한다. 한쪽 눈을 지그시 감은 해학적인 그의 달마도는 수맥차단에도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는 사단법인 대한민국 국제미술작가협회가 공인한 선서화 부문 명장 1호이기도 하다. 그만큼 달마도에선 1인자로 인정받고 있다. 수많은 전시회 참가와 상패가 이를 증명해 준다.

산은 나를 물속에 달처럼
살다 가라하네.

술이 목까지 넘어 갈때는
그리움 인데
가슴으로 내려가면
눈물이더라.

시를 쓰기도 하는 그는 지독한 외로움에 술을 마구 퍼마시다가 '술또라이'란 말을 듣고 퍼뜩 정신이 들어 그 좋아하던 술도 10년 전에 끊었다고 했다.

   
자신을 '산 허렁뱅이'로 칭하며 산꾼의 집을 지켜 온 지도 13년이나 지났다는 그는 원래 춘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여 영양에서 사진관과 예식장으로 가업을 일으켰으나 소시적 잠시 머문 인연으로 홀로 청량산으로 들어와 청량사 문간방에서 산지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는 산사나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지리산 종주만도 100회가 넘을 정도로 전국에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요 외국에 원정도 많이 했다는 전문 산악인이다.

무술의 달인이기도 한 그는 청량산의 홀로 산악구조대장이기도 하다. 1992년에 입산하여 그동안 100여명 가까운 사람을 구조했으며 한번은 절벽 중간쯤에 걸린 초등학생을 구해낼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이런 재주꾼의 생활은 늘 바쁘고 고달프지만 그래도 외로움과 역마살이 도질 땐 휑하니 어디든 헤집고 다니다가 와야 한단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이시대의 기인이라고 한다.

가을 날 산경치에 취하고
바람소리에 취하고
사람 향기에 취하고
따뜻한 약차 한잔에 취한다.

어느 등산객이 산꾼의 집에 들러 낙서장에 쓰고 간 메모에는 이집과 집주인과 주변 정경을 정감스럽게 묘사해 놨다.

청량산이 있기에 그가 있지만, 그가 있기에 오늘의 청량산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내년 이맘 때에도 또 그 내년에도 그는 청량산을 지키며 구정차를 끓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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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6.07.15 18:12

    첫댓글 오호~..종도가 이렇게 좋은곳을 소개해 주네? 난, 거기 가서 아줌씨들이랑 약초나 같이 한잔 했으면 좋겄네! ㅎㅎㅎ..~

  • 06.07.16 08:26

    종도야~~ 난 이 대실 선생님 잘 알오!! 안지가 한26년전부터 !경북 영양에서 청파사진관&청파예식장 했다! 한번 가야징 중요정보 받아서 넘 고맙당~~

  • 06.07.16 23:43

    예안에서도 사진관 했다는데... 그렇게 존경할 선생님까지??????

  • 06.07.18 09:47

    정말 대단하신분이네, 이시대의 기인임에 틀림없네, 누가시켜도 못할것 같은 삶인데.... 재주도 타고나신분 같고, 존경하고 싶네

  • 06.07.25 12:05

    얼마전 TV에서도 소개되었더라 사원이가 소개해주는 선생님이라 다시한번 눈여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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