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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48권
19. 사념처품(四念處品)을 풀이함[3]
다시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란 이른바 글자의 평등[字等]과 말의 평등[語等]과 모든 글자에 들어가는 문[諸子入門]이니라.
무엇이 글자의 평등과 말의 평등과 모든 글자에 들어가는 문인가?
아자 문(阿字門)은 온갖 법은 처음부터 나지 않기 때문이요,
라(羅)자 문은 온갖 법은 때[垢]를 여의기 때문이며,
파(波)자 문은 온갖 법은 첫째가는 이치[第一義]이기 때문이요,
차(遮)자 문은 온갖 법은 끝내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모든 법은 마치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나(那)자 문은 모든 법이 이름을 떠나서 성품과 모양을 얻지도 잃지도 않기 때문이요,
라(邏)자 문은 모든 법이 세간을 제도하기 때문이며, 또한 애욕의 가지[愛枝]의 인연이 소멸하기 때문이며,
타(陀)자 문은 모든 법이 착한 마음을 낳기 때문이며 또한 베푸는 모양이기 때문이니라.
바(婆)자 문은 모든 법은 바자(婆字)를 여의기 때문이요,
다(茶)자 문은 모든 법은 다자(茶字)로 청정하기 때문이며,
사(沙)자 문은 모든 법의 여섯 가지 자재한 왕[六自在王]의 성품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화(和)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말[言語]의 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며,
다(多)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진여[如]의 모양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니라.
야(夜)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여실히 생기지 않기 때문이요,
타(咤)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제압하여 다스리기 때문이고,
가(迦)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짓는 이[作者]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바(婆)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때[時]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고 모든 법은 때가 와서 바뀌기 때문이며,
마(磨)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내 것[我所]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가(伽)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가는 것[去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타(他)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처소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사(闍)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생기는 것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파(簸)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파자(簸字)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타(馱)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성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사(賖)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일정함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거(呿)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허공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차(叉)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다함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차(哆)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존재[有]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야(若)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지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타(拖)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타자(拖字)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바(婆)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파괴(破壞)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차(車)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하고자 함[欲]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고, 마치 그림자와 같은 5중(衆)도 또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마(魔)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마자(魔字)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화(火)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부름[喚]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차(蹉)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차자(蹉字)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가(伽)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두꺼움[厚]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타(咃)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처소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나(拏)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서지도 않고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파(頗)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끝[邊]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가(歌)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무더기[聚]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차(醝)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차자(醝字)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차(遮)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행함[行]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타(陀)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몸[軀]은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니라.
다(茶)자 문은 모든 법에 들어가되 끝나는 처소[邊竟處]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요 마치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기 때문이니라.
다(茶)를 지나서는 얻을 수 있는 글자가 없나니, 왜냐하면 다시는 글자가 없기 때문이니라. 모든 글자는 장애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또한 소멸하지도 않고 또한 말로써 설명할 수도 없으며, 보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쓸 수도 없느니라.
수보리야, 그러므로 온갖 법들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알아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을 다라니문(陀羅尼門)이라 하나니, 이른바 아자(阿字)의 이치이니라.
만일 보살마하살이 이 모든 글자 문의 도장[諸字門印]과 아자의 도장[阿字印]을 듣고는 받고 읽고 외고 지니면서 다른 이를 위하여 해설해 준다면, 이런 이는 스무 가지의 공덕을 얻는다고 아느니라.
무엇이 스무 가지의 공덕인가?
오래도록 잘 알고 기억함[强識念]을 얻고,
부끄러워함[慚愧]을 얻으며,
견고한 마음[堅固心]을 얻고,
경의 근본이 되는 종요로운 뜻[經旨趣]을 얻으며,
지혜(智慧)를 얻고 요설무애(樂說無礙)를 얻으며,
쉬이 모든 다라니문(陀羅尼門)을 얻고,
의심하거나 뉘우침이 없는 마음[無疑悔心]을 얻느니라.
착한 일을 들어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일을 들어도 성내지 않음[聞善不喜聞惡不怒]을 얻으며,
교만해지지도 않고 풀죽지도 않는[不高不下] 마음에 머물러 더하거나 덜함이 없음을 얻고,
중생의 말[衆生語]을 교묘히 잘 앎을 얻으며,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ㆍ12인연(因緣)ㆍ4연(緣)ㆍ4제(諦)를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고,
중생의 모든 근기의 영리함과 둔함[諸根利鈍]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으며,
다른 이의 마음[他心]을 교묘히 잘 앎을 얻고,
날과 달과 해와 계절[日月歲節]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느니라.
천이통(天耳通)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고,
숙명통(宿命通)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으며,
생사통(生死通)을 교묘히 잘 분별함을 얻고,
도리에 계합함과 계합하지 않는 것[是處非處] 교묘히 잘 설명함을 얻으며,
가고 오고 앉고 일어나는 등의 몸의 위의[身威儀]를 교묘히 앎을 얻느니라.
수보리야, 이것이 다라니의 문[陀羅尼門]과 글자의 문[字門]과 아자의 문[阿字門] 등이니, 이것을 보살마하살의 마하연이라 하느니라.
【논】 해석한다.
글자의 평등과 말의 평등이라 함은 이 다라니가 모든 글자에 대하여 평등하여 사랑하거나 미움이 없는 것이다.
또한 이 모든 글자의 인연이 아직 만나지 못했을 적에도 또한 마침내 돌아가는 데가 없고 또한 나타나 있는 데도 없으며 또한 있는 바도 없나니,
단지 우리의 마음속에 머물러서 기억하고 분별하고 거친 생각[覺]과 세밀한 생각[觀]의 마음으로만 말할 뿐이다.
이 산란한 마음으로 말하면서도 진실한 일을 보지 못함은 마치 바람이 물을 움직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평등하다[等] 함은 필경공(畢竟空)의 열반과 똑같은 것이니, 보살이 이 다라니로써 온갖 법들을 통달하여 막힘이 없게 되므로 이것을 글자의 평등과 말의 평등이라 한다.
【문】 간략하게 말한다면 5백의 다라니문이 있고, 자세히 말한다면 한량없는 다라니문이 있거늘,
이제 무엇 때문에 이 글자의 동등한 다라니를 말씀하시면서 모든 다라니의 문이라 하시는가?
【답】 먼저 하나의 큰 것을 말하게 되면 그 밖의 것은 모두 말한 것인 줄 알게 된다.
이것은 바로 모든 다라니의 첫 문이기에 첫 문을 말씀하셨으므로 그 밖의 것도 모두 말씀하신 것이 된다.
또한 모든 다라니의 법은 모두가 글자와 언어를 분별하는 데서부터 생긴다.
이 42자(字)는 바로 온갖 글자의 근본이니, 이 글자로 인하여 말이 있게 되고 말로 인하여 이름이 있으며, 이름으로 인하여 뜻이 있게 된다.
보살이 만일 글자를 들으면 이 글자로 인하여 그 뜻을 분명히 알게 된다.
이 글자에서 처음이 아(阿)자요 맨 마지막이 다(茶)자이니, 그 중간에 40자(字)가 있어서 이 글자 다라니를 얻게 된다.
보살이 만일 온갖 언어 가운데에서 이 아자(阿字)를 들으면 즉시 그 뜻에 따라서 이른바,
“온갖 법은 처음부터 나지 않는 모양이다.”라고 알게 된다.
아제(阿提)는 진(秦)나라 말로 “처음[初]”이라는 뜻이요
아뇩파타(阿耨波陀)는 진나라 말로 “나지 않는다[不生]”는 뜻이다.
만일 라자(羅字)를 들으면 곧 그의 뜻에 따라 “모든 법은 때[垢]를 여읜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라사(羅闍)는 진나라 말로 “때[垢]”라는 뜻이다.
만일 파나(波字)를 들으면 즉시 “모든 법이 첫째가는 이치[第一義] 안에 들어간다.”라고 알게 되니, 파라목타(波羅木陀)는 진나라 말로 “첫째가는 이치”라는 뜻이다.
만일 차자(遮字)를 들으면 즉시 “온갖 모든 행은 모두가 행이 아니다.”라고 알게 되니, 차리야(遮梨耶)는 진나라 말로 “행(行)”이라는 뜻이다.
만일 나자(那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얻지도 않고 잃지도 않으며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라고 알게 되니, 나(那)는 진나라 말로 “아니다[不]”라는 뜻이다.
만일 라자(邏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가볍거나 무거움을 여읜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라구(邏求)는 진나라 말로 “가볍다[輕]”는 뜻이다.
만일 타자(陀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착한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타마(陀摩)는 진나라 말로 “착하다[善]”는 뜻이다.
만일 바자(婆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라고 알게 되니, 바타(婆陀)는 진나라 말로 “속박한다[縳]”는 뜻이다.
만일 다자(茶字)를 들으면 곧 “모든 법은 덥지 않는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남천축(南天竺)에서의 다사타(茶闍他)는 진나라 말로 “덥지 않다[不熱]”는 뜻이다.
만일 사자(沙字)를 들으면 곧 “사람의 몸은 여섯 가지의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사(沙)는 진나라 말로 “여섯[六]”이라는 뜻이다.
만일 화자(和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들은 언어(言語)를 여읜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화파타(和波陀)는 진나라 말로 “말[言語]”이라는 뜻이다.
만일 다자(多字)를 들으면 곧 “모든 법은 여(如) 가운데 있으면서 동요하지 않는다.”라고 알게 되니, 다타(多陀)는 진나라 말로 여(如)라는 뜻이다.
만일 야자(夜字)를 들으며 곧 “모든 법은 실상(實相)안에 들어가서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라고 알게 되니, 야타발(夜他跋)은 진나라 말로 “진실[實]”이라는 뜻이다.
만일 타자(吒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장애가 없는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타바(吒婆)는 진나라 말로 “장애(障礙)”라는 뜻이다.
만일 가자(迦字)를 들으면 곧 “모든 법 가운데에는 짓는 이[作者]가 없다.”라고 알게 되니, 가라가(迦羅迦)는 진나라 말로 “짓는 이”라는 뜻이다.
만일 바자(婆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에서는 온갖 종류를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살바(薩婆)는 진나라 말로 “온갖 것[一切]”이라는 뜻이다.
만일 마자(磨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내 것[我所]을 여의였다.”라고 알게 되니, 마가라(磨迦羅)는 진나라 말로 “내 것”이라는 뜻이다.
만일 가자(伽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의 밑[底]은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가타(伽陀)는 진나라 말로 “밑바닥”이라는 뜻이다.
만일 타자(陀字)를 들으면 곧 “4구(句)의 여거(如去)를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다타아가타(多陀阿伽陀)는 진나라 말로 “여거”라는 뜻이다.
만일 사자(闍字)를 들으면 곧 “모든 법은 나고 늙는 것을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사제사라(闍提闍羅)는 진나라 말로 “나고 늙는다[生老]”는 뜻이다.
만일 습파자(濕波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을 얻을 수 없음은 마치 습파라는 글자를 얻을 수 없는 것과 같다.”라고 알게 된다. 습파라는 글자는 뜻이 없기 때문에 해석하지도 않는다.
만일 타자(馱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 가운데에서 법의 성품[法性]은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타마(馱摩)는 진나라 말로 “법(法)”이라는 뜻이다.
만일 사자(賖字)를 들으면 곧 “모든 법은 고요히 사라진[寂滅]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사다(賖字)는 진나라 말로 “고요히 사라진다.”는 뜻이다.
만일 거자(呿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허공과 같아서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거가(呿伽)는 진나라 말로 “허공”이라는 뜻이다.
만일 차자(叉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모두 다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차야(叉耶)는 진나라 말로 “모두 다한다[盡]”는 뜻이다.
만일 차자(哆字)를 들으면 곧 “모든 법의 끝[邊]은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아리가차도구나(阿利迦哆度求那)는 진나라 말로 “이런 일의 끝에서 무슨 이익을 얻겠는가?”라는 뜻이다.
만일 야자(若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 가운데에는 지혜로운 모양이 없다.”라고 알게 되니, 야나(若那)는 진나라 말로 “지혜”라는 뜻이다.
만일 타자(他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에서 이치는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아타(阿他)는 진나라 말로 “이치(義)”라는 뜻이다.
만일 바자(婆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깨뜨릴 수 없는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바가(婆伽)는 “깨뜨린다[破]”는 뜻이다.
만일 차자(車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가는 바가 없다.”라고 알게 되니, 가차제(伽車提)는 진나라 말로 “간다[去]”는 뜻이다.
만일 습마자(濕麽字)를 들으면 곧 “모든 법의 견고함은 마치 금강석(金剛石)과 같다.”라고 알게 되니, 아습마(阿濕麽)는 진나라 말로 “돌[石]”이라는 뜻이다.
만일 화자(火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음성이 없는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화야(火夜)는 진나라 말로 “불러오라[喚來]”는 뜻이다.
만일 차자(蹉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간탐도 없고 보시도 없는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말차라(末蹉羅)는 진나라 말로 “아낀다[慳]”는 뜻이다.
만일 가자(伽字)를 들으면 곧 “모든 법은 두껍지도 않고 얇지도 안다.”라고 알게 되니, 가나(伽那)는 진나라 말로 “두껍다[厚]”라는 뜻이다.
만일 타자(他字)를 들으면 곧 “모든 법은 머무르는 곳이 없다.”라고 알게 되니, 남천축(南天竺)의 타나(他那)는 진나라 말로 “처소[處]”라는 뜻이다.
만일 나자(拏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과 중생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으며 앉지도 않고 눕지도 않으며 서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는다.”라고 알게 되나니, 중생이 공[衆生空]하고 법이 공[法空]하기 때문이다. 남천축에서의 나(拏)는 진나라 말로 “아니다[不]”라는 뜻이다.
만일 파자(頗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인과(因果)가 공하다.”라고 알게 되니, 파라(頗羅)는 진나라 말로 “결과[果]”라는 뜻이다.
만일 가자(歌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의 5중(衆)은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가대(歌大)는 진나라 말로 “여럿[衆]”이라는 뜻이다.
만일 차자(醝字)를 들으면 곧 “차(醝)라는 글자는 공하고 모든 법도 또한 그러하다.”라고 알게 된다.
만일 차자(遮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라고 알게 되니, 차라지(遮羅地)는 진나라 말로 “움직인다[動]”는 뜻이다.
만일 타자(吒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이 언덕[此岸]과 저 언덕[彼岸]을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타라(吒羅)는 진나라 말로 “언덕[岸]”이라는 뜻이다.
만일 다자(茶字)를 들으면 곧 “온갖 법은 반드시 얻을 수 없다.”라고 알게 되니, 파다(波茶)는 진나라 말로 “반드시[必]”라는 뜻이다.
다(茶)라는 글자 외에 다시는 글자가 없다. 만일 다시 있다면 이것은 42자(字)의 갈래이다.
이 글자는 언제나 세간에 있어서 서로 비슷하게 이어지고 온갖 말에 들어가기 때문에 장애가 없다. 마치 나라마다 같지 않고 일정한 이름이 없기 때문에 “이름이 없다.” 하고 들은 뒤에는 곧 다하기 때문에 “없어진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모든 법은 법의 성품에 들어가서 모두 얻을 수 없거늘 하물며 글자를 말로써 설명할 수 있겠는가?
모든 법은 기억과 분별이 없기 때문에 보일 수가 없고, 먼저 의업(意業)으로 분별하기 때문에 구업(口業)이 있으며, 구업의 인연 때문에 신업(身業)으로 글자를 만든다.
글자 이것은 형상 있는 법이라 혹은 눈으로 보기도 하고 혹은 귀로 듣기도 하며, 중생은 억지로 이름을 짓지만 인(因)과 연(緣)이 없나니, 이 때문에 볼 수도 없고 쓸 수도 없다.
모든 법은 항상 공하여 마치 허공의 모양과 같거늘 하물며 글자이겠는가? 말하고 나면 곧 사라지게 된다. 이 문자다라니(文字陀羅尼)가 바로 모든다라니문(陀羅尼門)이다.
【문】 이 다라니문의 인연을 안다면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얻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단지 스무 가지만을 말씀하시는가?
【답】 부처님도 또한 모든 그 밖의 한량없고 그지없는 공덕을 말씀하실 수 있는데도 단지 반야바라밀에 한하면서 설하시는 까닭에 간략하게 스무 가지만을 말씀할 뿐이다.
“오래도록 잘 알고 기억하게 된다.”라고 함은,
보살이 이 다라니를 얻고서 항상 모든 글자의 모양을 관하면서 닦아 익히고 기억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잘 알고 기억하게 된다.
“부끄러워하게 된다[慚愧]”라고 함은,
모든 착한 법을 쌓고 모든 악한 법을 싫어하기 때문에 크게 자신에게나 남에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견고한 마음을 얻는다.”라고 함은,
모든 복덕과 지혜를 쌓기 때문에 마음이 견고하게 되는 것이 마치 금강과 같으며, 나아가 아비지옥(阿鼻地獄)의 일에 이르기까지도 오히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겠거늘 하물며 그 밖의 고통이겠는가?
“경의 근본이 되는 종요로운 뜻을 얻는다.”라고 함은,
부처님께서 쓰시는 다섯 가지의 방편으로 법을 설함을 알기 때문에 경의 근본이 되는 종요로운 뜻을 얻는다고 하나니,
첫째는 갖가지의 문(門)을 지으면서 설법함을 알고,
둘째는 어떤 일을 위하면서 설법할 줄을 알며,
셋째는 방편을 쓰면서 설법함을 알고,
넷째는 이치를 보이면서 설법함을 알며, 다섯째는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쓰면서 설법함을 아는 것이다.
“지혜를 얻는다.”라고 함은,
보살은 이 다라니로 인하여 분별하면서 모든 글자를 깨뜨리고 흩뜨리므로 언어도 또한 공하며, 언어가 공하기 때문에 이름도 또한 공하고 이름이 공하기 때문에 뜻[義]도 또한 공하여 필경공(畢竟空)을 얻나니, 곧 그것이 반야바라밀의 지혜이다.
“지혜요설(智慧樂說)”이라고 함은,
이미 이와 같이 마침내 청정하고 장애가 없는 지혜를 얻은 뒤에는 본래 서원인 대비(大悲)의 마음으로써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잘 말하게 된다.
“쉽게 다라니를 얻는다.”라고 함은,
비유컨대 마치 대를 쪼갤 적에 첫 마디가 쪼개지면 그 밖의 것도 쉽게 쪼개지는 것처럼,
보살도 또한 그와 같아서 이 문자 다라니를 얻으므로 모든 다라니가 저절로 얻어진다.
“의심하거나 뉘우침이 없는 마음”이라 함은,
모든 법의 실상(實相) 안에 들어가면 비록 아직 온갖 지혜를 얻지 못했다 하더라도 온갖 깊은 법에 대하여 의심도 없고 뉘우치는 일이 없다.
“착한 일을 들어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일을 들어도 성내지 않는다.”라고 함은,
저마다 모든 글자를 분별하면서 찬탄함도 없고 헐뜯음도 없기 때문에 착한 일을 들어도 기뻐하지 않고 나쁜 일을 들어도 성을 내지 않는다.
“교만해지지도 않고 풀이 죽지도 않는다.”라고 함은,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일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중생의 말을 교묘히 잘 안다.”라고 함은, 온갖 중생의 언어를 알아듣는 삼매(三昧)를 얻었기 때문이다.
“5중(衆)ㆍ12입(入)ㆍ18계(界)ㆍ12인연(因緣)ㆍ4연(緣)ㆍ4제(諦)를 교묘히 분별한다.”라고 했는데, 5중 등에 대한 이치는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중생의 모든 근기의 영리함과 둔함[利鈍]을 교묘히 잘 분별한다.”라고 함은 타심(他心)과 천이(天耳)와 숙명(宿命)을 아는 것이다.
“도리에 계합하고 도리에 계합하지 않음을 교묘히 잘 설명한다.”라고 함은, 마치 10력(力) 안에서의 설명과 같다.
“가고 오고 앉고 일어나는 등을 교묘히 잘 안다.”라고 함은, 마치 아비발치품(阿毘跋致品) 가운데에서 설명한 것과 같다.
“날과 달과 해의 절기[日月歲節]”이라는 것은 날[日]은 아침부터 다음날 아침까지이며 초분(初分)과 중분(中分)과 후분(後分)으로 나누고 밤도 역시 셋으로 나눈다.
하루의 낮과 하루의 밤은 30시간이 있으며 춘분(春分)과 추분(秋分)일 때는 15시간이 낮이고 15시간이 밤이 되지만 그 밖의 때는 더하기도 하고 덜하기도 한다.
5월 달이 되면 낮은 18시간이요 밤은 12시간이 되며, 11월 달이 되면 밤이 18시간이요 낮이 12시간이 된다.
한 달[一月]은 30일이기도 하고 혹은 30일 반(半)이기도 하며, 혹은 29일이 되기도 하고 혹은 27일 반이 되기도 한다.
네 가지 달[四種月]이 있나니,
첫째는 해의 달[日月]이고, 둘째는 세간의 달[世間月]이며, 셋째는 달의 달[月月]이고, 넷째는 별의 달[星宿月]이다.
해의 달이란 30일 반(半)이고, 세간의 달이란 30일이다.
달의 달이란 29일에 62분(分)의 30을 더하며, 별의 달이라 함은 27일에 67분의 21을 더한다.
윤달[閏月]이란 해의 달과 세간의 달의 이 두 가지 일 가운데에서 나오게 되는데, 한 해는 열세 달[十三月]이 된다.
혹은 이 12월이나 이 13월을 한 해[一歲]라고 하며, 이 한 해는 366일인데 이렇게 다시 되풀이하게 된다.
보살은 하루가 나누어져 있는 동안에 전분(前分)은 이미 지났고 후분(後分)은 아직 생기지 않았으며 중분(中分) 안에서도 머무르는 때가 없고 취할 만한 모양이 없으니, 날의 시분(時分)은 공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된다.
또한 30일이 되었을 때에는 29일은 이미 사라졌거늘 어떻게 모여 달[月]을 이루겠는가? 달도 없으니 어떻게 모여 해[歲]가 되겠는가?
이 때문에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세간의 법은 마치 환과 같고 마치 꿈과 같으며 단지 그것은 마음을 속이는 법일 뿐이다.”라고 하신다.
보살은 세간의 날과 달과 해가 화합한 줄 알므로 깨뜨리고 흩뜨려서 아무것도 없는 줄을 아나니, 이것을 교묘히 잘 분별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등의 갖가지로 분별하는 것을 바로 보살마하살의 마하연(摩訶衍)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