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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의 섬나라 인도네시아(Indonesia)
인도네시아 전도(全圖) / 인도네시아 국기(國旗) / 국장(國章:가루다<金翅鳥>)
♣가루다(金翅鳥:금시조)-불경에 나오는 황금날개를 가진 상상의 새<용을 잡아먹는 새>
◆ 남태평양 휴가여행(Healing Tour)
2019년 1월, 대학 후배 3명과 따뜻한 나라를 찾아 배낭을 달랑 메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태국 푸켓(Phuket) 4일, 인도네시아 10일 등 총 14박 15일의 휴가여행이다.
나 혼자 다닐 때는 보고 싶은 것이 많아 여행 일정이 좀 무리하다 싶을 만큼 빡빡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매일 1회 마사지 필수!』처럼 철저한 힐링(Healing) 여행이어서 마음이 가볍고 즐거웠다. 푸켓(Phuket)에서의 4일간은 마사지와 해변에서의 여유로운 휴식이었으니 별로 쓸 것이 없고, 처음 가보는 인도네시아의 이곳저곳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인도네시아는 8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보다 잘사는 나라였는데 특히 1955년에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한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Asian-African Conference)는 서구 열강들의 횡포에 대한 대책을 협의하기 위한 개발도상 국가들의 회의로 아시아 아프리카 29개국이 참가한 대규모 회의였다.
당시 이승만정권의 우리나라는 참가조차 어려운 여건....
1985년에는 30주년을 기념하여 같은 장소에서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83개국 및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도 참석하여 새 반둥선언(New Bandung Declaration)을 발표하였다.
2015년에는, 60주년 기념회의가 다시 반둥에서 개최되었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자카르타에는 기념박물관도 있다.
◆ 인도네시아 개관(槪觀)
인도네시아는 면적이 190만 ㎢로 우리나라 남한면적의 약 20배로 매우 큰 나라이며, 약 1만 3천 7백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인구는 약 2억 7천만 명이며 수도는 자카르타(Jakarta)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미화 약 3.500달러 정도로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고 하겠다. 인도네시아는 300개 이상의 종족, 250여 종의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질집단이 공존한다고 한다. 이슬람을 믿는 해안지방의 종족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여타 소수민족들도 많은데 중국 본토에서 건너와 수대째 살고있는 중국인들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언어는 인도네시아어로 통일하고 있다.
종교는 이슬람 신봉자가 88%로 압도적으로 많지만, 국교로 지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 활동은 자유롭다.
이슬람이 전파되기 전, 이 지역은 불교와 힌두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들이 지배하였기 때문에 불교사원, 힌두교사원 유적이 많은데 비교적 잘 보존되어있어 관광객 유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인도네시아 지형(地形)
인도네시아는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 있는데 동서로 약 4.100km, 남북으로 1.600km에 걸쳐 펼쳐져 있다. 남쪽으로 수마트라(Sumatra), 자바(Jawa/Java), 발리(Bali), 롬보크(Lombok), 숨바와(Sumbawa), 플로레스(Flores), 티모르(Tomor) 등 섬들이 늘어서 있고 북쪽으로는 칼리만탄(Kalimantan/Borneo), 술라웨시(Sulawesi/Celebes), 몰루카 제도(Moluccas諸島/Maluku)가 있으며 거대한 뉴기니(New Guinea) 섬도 서쪽 절반은 인도네시아 영토로 이리안자야(Irian Jaya)라고 부른다.
인도네시아는 지리적으로 환태평양(環太平洋) 불의 고리에 있는 까닭에 220여 개의 활화산이 지금도 활동 중이며, 지난 2018년 12월 발생한 순다해협 대지진과 쓰나미(海溢)로 사망 281명, 부상 1.000여 명...
일 년에 십여 차례 화산과 지진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한다.
◆ 기후(氣候)와 동식물 분포
대부분의 섬들이 적도에 걸쳐있어서 고온다습(高溫多濕)한 열대성 기후를 보이며 일 년 내내 비가 많이 내리고 벼농사를 짓는 집단이 전체 인구의 2/3를 차지한다고 한다.
동식물도 다양한 분포를 보이는데 특히 앵무새, 극락조 등 수많은 종류의 새들의 낙원으로 알려져 있다.
◆ 인도네시아 약사(略史)
기원전 1.000년,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자바원인)가 거주하기 시작한 이곳 섬들은 수많은 작은 왕국들이 난립하여 있었다고 한다. 13세기 이슬람의 전파, 14세기 포르투갈인들의 상륙, 뒤이어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인들이 들어오면서 식민지를 쟁탈하는 싸움터가 되고 말았다.
1942년 태평양전쟁 당시에는 일본에 점령당하여 3년간 식민지가 되는 등 곡절을 겪다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수카르노(Sukarno)가 정권을 잡지만 네덜란드 연방에 묶인 채 반쪽의 독립을 이룬다. 그 이후 수하르토(Suharto)를 거쳐 현재는 조코 위도도(Joko Widodo)가 제7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80년대 중반까지 아시아권에서는 제법 잘사는 나라로 꼽혔다.
1955년에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개최한 반둥회의(Bandung Conference/Asian-African Conference)는 서구 열강들의 횡포에 대한 대책을 협의하기 위한 ‘개발도상 국가’들의 회의로 아시아 아프리카 29개국이 참가한 대규모 회의였다. 당시 이승만정권의 우리나라는 한국전쟁(6.25)이 끝난 직후라 참가조차 어려운 여건이었다. 1985년에는 반둥회의 30주년을 기념하여 같은 장소에서 또다시 회의를 개최하였는데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83개국 및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도 참석하여 새 반둥선언(New Bandung Declaration)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또 2015년에는 60주년 기념회의가 다시 반둥에서 개최되었는데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자카르타에는 반둥회의 기념박물관도 있다.
1. 수도(首都) 자카르타(Jakarta)
자카르타 모나스 광장 / 이스티크랄(Istiqlal) 회교 모스크 / 독립 기념탑
인도네시아의 수도(首都) 자카르타(Jakarta)는 자바(Jawa)섬 북서부 해안에 위치한 도시인데 2018년에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던 도시이다. 자카르타는 인구 1.100만 명 정도로 인도네시아 최대의 도시이며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인데 인근의 위성도시까지 합치면 인구가 2.100여만 명이라고 한다. 기후는 열대우림으로 연중 많은 강수량과 높은 습도를 나타내며, 도심에는 옛 포르투갈 식민시대의 건축물도 많이 남아있다.
<1> 자카르타(Jakarta) 시내 관광
시내의 관광꺼리로는 메르데카 광장(Merdeka Square),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회교사원(Masjid Istiqlal), 문화예술의 전당(TM/Taman Ismail Marzuki), 순다 켈라파항(Sunda Kelapa Habour), 쇼핑거리(Block M), 보고르 식물원(Bogor Botanical Garden) 등이 있다. 자카르타시 중앙 부분에 있는 메르데카(Merdeka) 광장은 엄청난 넓이를 자랑하는데 그 가운데 독립기념탑(Monas National Monument)이 우뚝 솟아있다.
이 광장 둘레로 대통령궁, 정부청사 각국대사관 등이 모여 있고 또 엄청난 크기의 이슬람 사원(Masjid Istiqlal)과 가톨릭 성당(Gereja Katedral Jakarta/성모승천 대성당)이 마주 보고 있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제일 먼저 독립기념탑(Monas)을 보러 갔는데 탑과 동떨어진 한쪽 구석에 사람들이 모여서 있고 경비원이 사람들 줄을 세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가 봤더니 신기하게도 입구(입장권 매표소)가 지하에 있는데 입장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이곳 지상에서 기다리다가 입구의 상태를 확인하고 한 무리씩 지하로 내려보낸다. 입장권 매표소에서는 첨탑의 꼭대기 전망대까지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탈 사람은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
우리는 전망대는 오르지 않기로 하고 지하 통로를 따라 한참 걸으니 탑 아래의 넓은 원형 방에 도착하게 되는데 벽면은 빙 돌아가며 연대별로 인도네시아 역사를 그림과 조형물로 설치하고 자국어와 영어로 설명을 붙여놓았다. 이 독립기념탑은 인도네시아의 자랑이자 랜드마크(Landmark)로 높이가 137m, 맨 꼭대기 독립의 상징인 금으로 도금된 횃불이 있는데, 금의 무게만 35kg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금 시세로 약 16억원 어치라고....
<2> 이슬람 모스크(Masjid Istiqlal)
독립기념탑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거대한 하얀색 돔(Dome)의 이슬람모스크(Masjid Istiqlal)가 있다.
동양에서 제일 크고 세계에서 세 번째 크기를 자랑한다는 이 이슬람사원은 1978년 건립되었다니 역사가 40년 남짓이다. 이스티클랄(Istiqlal)은 아랍어로 ‘독립’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를 괴롭혔던 네덜란드, 영국, 일본의 300년이 넘는 지긋지긋한 식민통치는 태평양전쟁 종식으로 끝나게 되고 1945년 인도네시아는 독립을 성취한다. 그런데 독립 후 30여 년이 지난 후 이슬람 모스크를 건립하면서 독립이라는 명칭을 붙이다니...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을 국교(國敎)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국민의 88%가 이슬람을 믿으니 크고 웅장하게 지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훨씬 먼저 지어져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톨릭 성당 길 하나 건너 바로 코앞에 엄청난 규모의 이슬람사원을 세웠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
<3> 늙은 마귀 영감
사원을 향해 걸어가는데 느닷없이 비쩍 마른, 이빨도 없는 늙은이가 오물거리는 입으로 몇 마디 한국말을 하며 따라온다. ‘안녕하세요? 김대준(김대중), 김종은(김정은)....’
처음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에 몇 마디를 대꾸했더니 계속 따라오더니 가이드인 듯, 사원 입구에 신발 맡기는 사람들과 히히덕거리며 우리를 힐끔거리고 곁눈질을 하더니 신발 넣는 시커먼 비닐봉지를 가지고 오더니 신발 맡기는 요금을 내라고 한다. 신발을 맡기고 따라 들어가는데 아무래도 사기꾼한테 걸린 것 같다. 눈치 빠른 우리의 리더(Captain Kim)는 돌아가는 낌새가 심상찮음을 눈치채고 이제 우리끼리 다닐 터이니 그만 가시라고... 이 영감탱이 소리를 꽥 지르며 화를 낸다. 재수 없이 이상한 놈한테 걸린 것이다. 좋아... 우리는 들어가지 않고 현관 앞 나무 밑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었더니 영감이 다가와서 왜 들어가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우리는 너무 더워서 쉬는 중이라며 천천히 들어가겠다고...
이 늙은 마귀를 떼어내느라 한 시간 정도나 허비한 후 영감이 보이지 않을 때 슬그머니 일어서서 서둘러 나오며... 모스크 관광은 포기하고 길 건너 성당으로 향했다.
<3> 자카르타 대성당
자카르타 가톨릭 대성당은 아름다운 60m 높이의 상아색 첨탑을 자랑하는데 두 첨탑은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의 상징이라고 한다.
자카르타 도심 / 배낭여행 4인방 / 자카르타 대성당
신 고딕식으로 지어진 이 첨탑은 지진에 잘 견디도록 철강구조로 건축했다는데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건축물로 손꼽힌다고 한다. 이 성당은 1829년 11월 인도네시아 최초의 가톨릭 성당으로 문을 열었고 1859년 개축되었으나 1890년 지진으로 붕괴되어 지금의 건물은 1891년부터 1901년에 걸쳐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마침 미사 중이라 잠시 앉아서 지켜보다가 나왔는데 가톨릭 신자인 나는 헌금 5달러를 내고 우리 모두의 여행안전을 기원했더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자카르타에서의 점심식사는 먹을 만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종업원 무슬림 아가씨의 미소가 예쁘다.
인도네시아 전통가옥 / 자카르타에서의 점심식사 / 카페의 무슬림 아가씨
2. 요그야카르타(Yogyakarta)와 보로부두르 사원
<1> 요그야카르타(Yogyakarta)
자카르타 일정을 끝내고 인도네시아의 고대도시 요그야카르타(Yogjakarta)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비교적 깨끗하며 쾌적했고, 자카르타에서 7시간 정도 걸렸는데 졸다 깨다.... 멋진 추억이었다.
차비는 1인당 50만 루피아인데 경로 할인 20% 받아서 40만 루피아(32.000원)이다.
인도네시아 자바(Jawa)섬 중부에 있는 요그야카르타(Yogjakarta/일명 족자카르타)는 인구 63만 정도의 소도시지만 수많은 유적들이 있는 고대도시로, 그중에서도 세계 최대 불교유적으로 꼽히는 보로부두르 (Borobudur)사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의(不可思議)로 꼽히는 유적이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다.
세계 3대 불교유적은 이 보로부두르 사원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Ankor Wat), 미얀마 바간(Bagan)의 사원군(寺院群)을 꼽는다고 한다. AD 8, 이 지역을 통치하던 불교 왕국 사일렌드라(Shailendra) 왕조가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원은 당시 위세를 떨치던 힌두교에 대항해서일까 이토록 크고 웅장하게 지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사일렌드라(Shailendra)는 ‘산의 주인’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1>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 사원(寺院)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은 요그야카르타에서 북쪽으로 약 2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세계 최대의 불교 유적(遺蹟)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원은 AD 825년 지어졌는데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에 묻혀 사람들에게 잊혀졌다가 1814년 네덜란드 고고학자들이 발굴하여 복원하였고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한다. 세계 3대 불교 유적은 이 보로부두르 사원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Ankor Wat), 미얀마 바간(Bagan)의 사원군(寺院群)을 꼽는다고 한다.
AD 8세기, 이 지역을 통치하던 불교 왕국 사일렌드라(Shailendra) 왕조가 지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원은 당시 위세를 떨치던 힌두교에 대항해서일까 엄청난 규모로 크고 웅장하게 지었다.
사원 전경 / 종 모양의 스투파(안에 부처님) / 사원 앞의 신수(神獸)
우리는 일행이 네 명이라 시내에서 택시를 대절하여 왕복하기로 했는데 택시 대절비가 55만 루피아(우리 돈 약 4만 4천 원)이다. 그런데 사원 입장료가 1인당 35만 루피아(2만 8천 원)로 매우 비싸다.
인도네시아 내국인 입장료는 외국 관광객의 1/10 정도였다.
이 보로부두르 유적의 특징은 어디를 둘러봐도 들어갈 방(공간)이 없으니 사원이라고 해야 하나, 탑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엄청난 규모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유적은 정사각형 모양인데 밑면 한 변의 길이가 112m, 높이는 31.5m라고 하며 맨 아래쪽 기단은 흙 속에 묻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고 한다.
기단(基壇)을 제외하고 8층으로 이루어진 이 건축물은 각층 마다 빙 둘러 화랑이 이어져 있는데 회랑 벽면에 새겨진 아름다운 부조와 곳곳에 안치된 수많은 불상이 눈길을 끈다. 사원은 기단(基壇) 부분을 포함하면 총 10층인데 1층부터 6층까지는 부처의 생애와 불교의 가르침이, 7층부터 10층까지는 천상의 세계가 아름다운 부조로 섬세하게 벽면에 새겨져 있다.
1층부터 6층까지 시계바늘 방향으로 부처의 탄생부터 그의 일생과 행적, 가르침이 정교하게 부조로 새겨져 있다. 또 하나의 불가사의는 제일 아래쪽 기단(基壇)이 아직까지 흙 속에 숨겨져 있는데 미래를 예언하는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또 7층에는 천상의 세계를 표현한 종 모양의 작은 불탑(Stupa)이 수없이 많이 모셔져 있다. 이 종 모양의 불탑(Stupa/안에 부처님이 들어 있는 종 모양) 표면의 구멍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넣고 소원을 빌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깜빡 잊고 소원을 빌지 못했다. ㅎ
종탑과 부처 / 나보다 한 살 아래 영국 할멈 / 사원 구조도
이 유적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사원 전체의 구조가 만다라(曼陀羅)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불교에서 우주 법계(法界)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眞髓)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만다라로,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만다라는 불교의 한 분파인 밀교(密敎)의 수행에서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내면세계, 혹은 부처의 법신(法身)인 진실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라고 전해진다. 더운 날씨에 헐떡거리며 네 명이 각자 흩어져 회랑을 빙빙 돌며 관광을 했는데 나는 잠시 신비한 불교의 마법에 빠졌다. 나는 먼저 내려와 중턱의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머리 허연 서양 노부부가 눈으로 인사를 한다. 영국에서 왔다며 담소를 나누다 보니 할멈이 나보다 한 살 아래인 72세라며 우리 네 명이 배낭여행을 한다니 놀라워한다.
사원 관광을 마치고 입구 근처의 박물관에 들렀는데 넓은 뜰에는 사원을 복원하면서 짜 맞추지 못한 돌 들인 듯 아름다운 조각이 된 돌조각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이것을 보면 완전한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한 모양이니 보로부두르는 지금의 모습과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깥으로 나오는 길은 기념품 가게들이 빼곡한 골목을 구불구불 돌아야만 나올 수 있는데 관광객들을 붙잡고 사라고 성화다. 마침 여행 증거물인 마그넷(Magnet)이 보이기에 혼자 뒤떨어져 1개 2달러 달라는 것을 깎아서 2개에 3달러를 주고 산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때 핸드폰을 떨어뜨린 것 같다. 뒤에서 뭐라고 소리치는 것이 싸게 줄테니 더 사라는 소리인 줄 알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친구들이 기다릴까봐) 나왔다. 그때 ‘핸드폰 떨어졌어요! 들고 가요!!’ 라고 하지 않았을까... 결국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까워라 삼성갤럭시7... 그까꺼 핸펀이야 다시 사면 되지만 그동안 메모한 여행기록, 수많은 사진들이 너무나 아까워 속이 뒤집힌다. 끓끓.....
가까우면 가보기나 하지... 대절택시로 시내로 와서 호텔에서 몇 번 전화를 걸어봤지만 첨에는 조금 울리더니 나중에는 한 번 울리면 뚝 끊어버리고... 횡재했다고 신났겠지... 나쁜 분(!)들 같으니라구....
족자카르타의 특별구인 프람바난 마을은 근처에 있는 8~10세기에 세워진 사원지대로 유명한데 그 사원 중 프람바난 사원을 꼭 보고 싶었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보러 가지 못해 아쉬웠다. 잠깐 소개해보면...
사원의 원래 이름은 ‘라라종그랑(Lara DjongGran/Roro JongGrang)사원’으로 프람바난에서 가깝기 때문에 찬디프람바난(Candi Prambanan/프람바난 사원)이라고 하며 인도네시아 최대의 힌두사원이라고 한다.
라라종그랑 사원은 10세기 초 힌두신 시바(Shiva)를 모시기 위해 세운 것으로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시바 신전(높이 47m)이라고 하며, 라라종그랑은 ‘호리호리한 소녀’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인근 주민들이 신전에 있는 힌두교 여신 두르가(Durga/시바의 부인)에게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프람바난 사원/ 공주와 악마의 대결>
옛날, 이곳에 살던 반둥(Bandung)이라는 왕자는 적국의 아름다운 공주 라라종그랑에게 결혼신청을 하지만 공주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라는 사실을 알고 거절한다.
그러나 보복이 두려워 단 하룻밤 만에 1.000개의 신전을 쌓는다면 결혼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위대한 마법사였던 반둥은 악마(惡魔)들을 불러서 순식간에 신전들을 쌓아 올렸다. 새벽녘에 이 모습을 본 공주는 마을 사람들에게 신전 하나를 무너뜨리라고 지시한다. 드디어 아침이 밝아 오자 1.000개의 신전을 모두 세운 악마들은 일을 멈추었고 마을 사람들은 공주의 신호에 따라 신전 하나를 무너뜨렸다. 결국, 1.000개에서 딱 하나 모자란 999개의 사원이 세워지게 되었고, 뒤늦게 공주의 지시로 신전이 무너졌다는 사실을 안 반둥은 공주를 돌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돌로 된 공주를 모신 신전을 1.000번째 신전으로 삼았다고 하는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