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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으로 가는 날, 언제나의 일상처럼 새벽 5시에 독서 낭독을 위해 기상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아침이지만, 세 시간의 낭독은 어느새 종점에 와 있다. 이제 조치원으로 달려가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여행작가 학교의 마지막 실습 날이다.
수원화성이다.
조치원역에서 무궁화호를 탄다.
수원화성은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가보는 곳이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 아마도 1997년 이전일 것이다. 그때는 교육열이 폭발한 엄마들의 시간이었다. 역사 교육 현장을 ‘코스가이드’라는 교육업체에서 모집해, 버스 한 대로 엄마들은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수원화성으로 향했었다.
하루 종일 동서남북의 문을 따라다니며 설명과 이동을 반복했던 기억. 그리고 수원 왕갈비를 먹었던 기억. 그 왕갈비의 맛은 지금도 ‘맛있었다’는 감각으로만 남아 있다.
수원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넓어서 잠깐 혼돈스러웠다. 버스를 타야 할 출구를 겨우 찾고, 번호가 맞는 정류장에서 기다린다. 9시 50분까지 모여야 하는데 조금 늦을 것 같다.
맑은 하늘 아래, 버스들이 오가며 소음을 만든다. 마음은 급한데 버스는 천천히 다가온다. 자리에 앉고 시계를 자꾸 들여다본다. 시계를 본다고 시간이 빨라지는 것도 아닌데 마음만 부산하다.
그때 조장님의 전화가 온다. 두 정거장 남았다고 하니 편하게 오라고, 위치를 다시 알려준다. 전화를 끊고 보니 같은 일행이 이 버스에 두 명 더 있다.
내려서 세 사람이 거의 뛰다시피 걷는다. 찾기 어려운 수원화성박물관이지만, 일행 덕분에 길을 헤쳐 나가며 모두와 합류한다.
박물관에 들어간다.
화성행렬도가 걸개처럼 걸려 있어 사진을 찍는다. 2층을 둘러보지만 새벽부터 이어진 긴 시간 때문인지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아침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파진다. 삶은 계란을 꺼내 밖에서 급히 먹고 나니, 그제야 눈앞의 그림이 제대로 들어온다.
11시, 신풍루에서 무예 24기 공연을 본다.
흙먼지가 날리고, 배우들의 얼굴에는 땀이 맺힌다. 공연이 시작되면 그들은 정조의 시대를 살고, 끝나면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칼을 다루고, 활을 쏘고, 긴 창을 휘두르는 동작 하나하나에 훈련된 시간이 묻어 있다. 아슬아슬한 장면마다 박수가 터진다. 공연이 끝나고 관람객들은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나 역시 그들과 함께 사진을 남긴다.
사진 강의를 듣는다.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냄새가 남는 사진’이라는 말이 오래 남는다. 나는 어떤 사진을 남길 수 있을까.
재주는 부족한데 기대는 크다.
스스로 웃고,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칭찬은 받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점심은 화서로 근처에서 돈가스를 먹는다.
예전에는 아이들과 왕갈비를 먹었는데,
오늘은 돈가스다.
시간은 그렇게
음식의 형태로도 달라진다.
오후에는 성곽을 걷는다.
장안문을 지나고, 성벽 위로 오른다.
바람이 불고, 생각이 비워진다.
버드나무가 흔들리고
꽃이 길을 안내한다.
사람들은 걷고
나는 그들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마침내
방화수류정.
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노닌다.
사월의 끝자락,
연초록빛과 물소리가 어우러진다.
버드나무는 흔들리고
물은 흐르고
사람들은 웃는다.
나는 그 풍경을 바라본다.
수원화성을 가기 위해 조치원에서 무궁화호에 올랐다.
수원화성은 태어나서 두 번째로 가보는 것이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가기 직전이니 아마도 1997년 이전일 것 같다. 그때는 교육열이 폭발한 엄마들의 시간이었다. 역사교육의 현장을 교육업체에서 모집하여 버스 한 대로 엄마는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짚고 수원화성으로 향했었다. 하루 종일 수원화성에서 동서남북 각 문으로 온종일 따라다니면서 수원화성의 곳곳을 따라다니며 설명과 이동을 반복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맛있는 수원 왕갈비를 먹었던 것 같다. 그 왕갈비의 맛은 아주 맛있었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수원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수원역이 넓어서 잠깐 혼돈스러웠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할 출구를 겨우 찾다가 버스 번호와 일치한 장소에서 기다린다. 9시 50분이 모이는 시간인데 좀 늦어질 것 같다.
맑은 날씨의 하늘 아래 버스가 오고 떠나며 소음이 크다. 마음이 급한데 버스는 천천히 다가온다. 일단 일어서니 15여 분 가야 하니 뒤로 자리를 잡아본다. 그리고 시계를 자꾸 본다. 자꾸 본다고 시간이 늦게 가고 버스가 빨리 가는 것은 아닌데도 마음만 부산하다.
부산한 마음과 늦게 도착할 것 같은 마음이 뒤섞여 정신이 없는데 조장님의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두 정거장 남은 것 같다고 말하니 편하게 오시라고 하며 정확한 위치를 다시 말해준다. 전화를 하다 보니 같은 일행이 이 버스에 나 말고 두 명이 더 있다.
도착지에서 버스에서 내려 세 사람이 뛰듯이 걸어간다. 생각보다 찾기 어려운 수원화성박물관이지만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는 일행 덕분에 이리저리 길을 헤쳐 나가면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행들과 만난다.
각각 주어진 표를 받고 박물관에 들어간다. 화성행렬도 그림이 걸개처럼 걸려 있어서 사진을 찍는다. 2층으로 올라가서 둘러보지만 새벽부터 바쁜 몸과 마음을 휘둘려서인지 집중이 안 된다. 아침도 못 먹었는데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박물관 일정이 끝나면 계속 걸을 것 같은데 요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 가져온 삶은 계란을 밖에 나가서 게눈 감추듯 먹고 나니 이제야 세상 그림이 제대로 걸려 있는 듯하다.
박물관 앞에 사진작가 선생님과 글쓰기 선생님 두 분이 내내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고 인원을 체크하고 나서야 초등학생들 마냥 어미닭을 따라 동종종 발걸음을 재촉한다.
날씨 요정들이 많아서인지 유난히도 사월의 날씨가 좋다. 연푸른 잎들이 이제 세상에 태어나듯 가냘픈 손짓으로 우리를 부른다.
수원화성박물관은 동서양 성곽의 장점과 조선의 실학정신을 바탕으로 건설한 수원화성의 아름다움과 우수성, 그리고 이곳에서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정조의 개혁정신을 알리기 위한 전문박물관이다.
11시부터 신풍루에서 무예 24기를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앞에서 보아야 좋다고 하길래 달려가 보니 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작 전이지만 긴장감이 돈다. 태권도 같은 시범이기 때문에 별 기대는 안 하지만 옛 그대로의 복장으로 재현한다고 하니 살짝 기대도 해 본다.
드디어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울리고 각 장면마다 새로운 무예를 선보이며 나타났다 사라진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흙먼지가 날리면서 무대는 고정되어 있고 재현하는 분들의 얼굴에는 땀범벅이 보인다는 것이다. 내내 보면서 이 공연을 위해 늘 체력 단련을 해야 하는 일상을 생각해 보았다.
과거와 현재를 사는 사람들…
공연을 할 때는 정조의 시대에서 숨을 쉬고 끝나면 현대인으로 돌아오는 삶…
대부분은 남자들인데 그중 한 명은 여자이다. 궁금해진다. 이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할까. 칼을 다루는 솜씨도, 화살을 쏘는 능력도, 4미터가 넘는 창을 다룰 손목의 힘도 필요할 것이다.
아슬아슬한 장면에서는 박수 소리가 터진다. 싱그러운 푸른 하늘 아래지만 무예 24기를 보며 한 땀 한 땀 흘려가며 공연하는 예술인들의 노력이 느껴진다.
공연이 끝나고 관람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배우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도 주어져 나도 기념으로 사진을 남겼다.
사진작가 선생님으로부터 사진 에세이를 담는 법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우리 모두 그늘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한참 좋은 작품을 남기기 위한 강의를 듣는다.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기술적인 면보다는 자연스럽게 사람의 냄새가 남는 사진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수원화성에서 어떤 그림을 그릴까 생각하니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아마도 재주는 없는데 능력에 비해 과도한 작품을 기대하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ㅎ 스스로 웃는다.
그리고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칭찬은 받고 싶은 모양이다.
나란 무엇이냐,
사진 강의를 듣고 난 뒤 1시간의 시간을 주신다.
돌아다니면서 관람을 해보고 사진도 담는 시간이다.
사람들은 그 주변 일대를 돌아보며 각자 각기의 얼개에 맞는 작품을 물색해 본다.
그리고 다시 모였고, 각자 점심을 먹고 1시에 화서루에서 만나기로 한다.
단체로 점심을 할 수 없어 나는 재영 작가와 이리저리 떠돌다가 화서루 가까이에 있는 2층 돈가스집을 찾았다.
둘이서 단출하게 각자의 음식을 선택해 점심을 했다.
나는 돈가스를, 재영 작가는 손메밀돈가스를 선택했다.
계속 하늘은 더 푸르게 쨍쨍하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화성 탐방이다.
햇빛은 정오쯤에서 직각으로 내려꽂히듯 비친다.
푸르기만 한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점점 힘을 잃어간다.
걷는 일이 내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이가 좀 더 있는 언니는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하기야 운동하는 나도 힘든데.
화서루에 모였다.
성곽을 보며 놀람을 표현하듯 사진을 연거푸 찍는다.
푸른 창공 아래 돌담이 켜켜이 쌓여 우뚝 서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사람이 탄성을 지르며 연사를 날린다.
화서루를 시작으로 오후에는 함께 걷는다.
성벽을 머리에 두고 걷는다.
생각보다 관광객은 많지 않다.
연푸른 버드나무가 바람을 타고 그네를 타는 그 풍경 자체가 황홀하다.
걷는 길에는 화려한 봄꽃들이 길을 안내한다.
하늘을 쳐다보면 눈물이 터질 듯한 푸른빛이 쏟아지고,
성벽에 몸을 기대며 걷는 그 자체가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앞서 걷는 젊은 연인의 모습도 하나의 풍경이다.
봄햇볕을 가리기 위해 든 양산조차 그림이 된다.
그 아름다움이 내 그림이 되기를 바라며 따라 걷는 사진작가의 발걸음도 풍경이 되고,
그 뒤를 쫓는 나의 카메라도 바쁘다.
성벽 아래 정자가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고, 서너 개의 장기판인지 바둑판인지 모여 앉아 한낮을 보낸다.
그 장면마저 하나의 그림이 되고 시가 되어 흘러간다.
그리고 장안문에 들어섰다.
장안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 또한 멋지다.
글쓰기 작가님의 강의를 듣는다.
장안문에서 어떻게 글을 꺼내야 하는지를, 작가님의 경험에 바탕한 현실적인 글쓰기 수업이다.
강의를 들은 후 성곽 위로 올라선다.
거의 급경사에 가까워 내 다리의 힘으로는 올라서기가 쉽지 않다.
뒤뚱거리며 겨우 올라선다.
내려다보이는 계단이 어지럽다.
하지만 힘든 대신 그만큼의 풍경을 선물로 준다.
계단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쉬는 망루가 있다.
시골 마을의 모정처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편안한 쉼을 취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풍경 속에서 현재의 사람들은 오늘을 즐기고 있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펄럭이는 깃발 사이로 마음이 멍해진다.
그동안 많았던 생각들이 휘발되고,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간 나만 남는다.
긴 성곽길을 걷는다.
푸르름이 눈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마음도 활짝 웃는다.
성곽 주변의 현대식 건물들이 성곽과 대비되며
나는 마치 신화의 숲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된 듯하다.
방화수류정까지 걷기가 이어진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린다.
꽃을 찾아 버들을 따라 노닐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訪花隨柳).
이름 그대로의 뜻을 지닌 방화수류정이다.
사월의 끝자락,
불어오는 바람.
연초록빛의 향연.
그리고 봄의 소리, 물.
이 모든 것이 함께 잘 어우러지는 시기는
사월과 오월 사이인 듯하다.
나는 한없이 마음의 평안을 안고
물소리를 따라 방화수류정까지 오른다.
평평한 세계를 지나온 뒤의 여유를 만끽하듯
동북각루에 올라선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밤이 오면
별이 더 가까이 내려와
속삭였을 것 같은 자리.
높은 곳에서
스스로 독야청청하다.
떠들썩한 관광객들과 거리를 두고
방화수류정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슬아슬한 내리막길을 내려온다.
온통 봄빛 속에서
봄빛을 다시 본다.
방화수류정이 높이 보이는 지대에 내려와
다시 올려다본다.
높이 떠 있다.
버드나무는 길게 늘어져 그네를 타고,
돌다리 사이로 물이 흐른다.
사람들은 손을 잡고 돌담을 건너고,
버드나무 가지와 함께 널을 뛰듯 움직인다.
저 먼 높은 곳에서
방화수류정이 말없이 내려다본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는지
물수제비를 뜨는 사람들.
봄옷을 입은 연인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봄바람처럼 싱그러운
수원화성의 하루.
어느 사이
삼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 있다.
어제처럼
연초록 빛 봄빛은 그대로인데
나는 이제
칠십을 바라보며
수원화성의 봄빛을 담아본다.
수원화성을 가기 위해 조치원에서 무궁화호에 올랐다.
수원화성은 태어나서 두 번째 방문이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 아마 1997년 이전일 것이다. 그때는 교육열이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교육업체에서 모집한 역사교육 현장 체험으로, 엄마는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랐다. 하루 종일 동서남북의 문을 따라다니며 설명과 이동을 반복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먹었던 수원 왕갈비의 맛. 그 기억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다.
수원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넓어 잠시 혼란스러웠다. 버스를 타야 할 출구를 겨우 찾아 번호를 확인하고 기다린다. 9시 50분이 모이는 시간인데 조금 늦을 것 같다.
맑은 하늘 아래 버스는 오고 가고, 소음이 크다. 마음은 급한데 버스는 제 속도로 다가온다. 15분 정도 가야 하기에 뒤쪽에 자리를 잡는다. 시계를 자꾸 본다. 본다고 시간이 빨라지는 것도 아닌데 마음만 분주하다.
그때 조장님의 전화가 온다. 두 정거장 남았다고 하니 천천히 오라며 위치를 다시 알려준다. 전화를 하며 보니 같은 버스에 일행이 두 명 더 있다.
내려서 셋이 거의 뛰듯이 이동한다. 찾기 쉽지 않은 수원화성박물관이지만 여행 가이드를 하는 일행 덕분에 길을 찾아,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과 합류한다.
표를 받고 박물관에 들어간다. 화성행렬도가 걸개처럼 펼쳐져 있어 사진을 찍는다. 2층까지 둘러보지만 새벽부터 이어진 일정 탓인지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아침을 거른 탓에 허기가 몰려온다. 가지고 온 삶은 계란을 밖에서 급히 먹고 나니 그제야 시야가 또렷해진다.
밖에서는 사진작가 선생님과 글쓰기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 인원을 확인하고 나서야 초등학생들처럼 줄지어 움직인다. 사월의 날씨는 유난히 맑고, 연푸른 잎들은 막 세상에 나온 듯 가볍게 흔들린다.
11시, 신풍루에서 무예 24기 공연을 본다.
흙먼지가 일고, 배우들의 얼굴에는 땀이 맺힌다. 무대는 과거를 재현하지만, 몸은 철저히 현재에 묶여 있다. 공연을 보며 생각한다. 과거를 연기하는 순간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삶 사이에서 그들은 어떤 시간을 살고 있을까.
공연이 끝나고 관람객들은 박수로 답한다. 배우들과 사진을 찍는 시간도 주어진다. 나도 그 순간을 남긴다.
이후 사진 에세이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
기술보다 사람의 온기가 남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무엇을 담아야 할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욕심이 앞서는 탓일 것이다. 스스로 웃으며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한 시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진다.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장면을 찾는다.
점심은 화서루 근처에서 먹는다. 재영 작가와 함께 작은 돈가스집에 들어간다. 나는 돈가스를, 그는 손메밀돈가스를 주문한다. 예전에는 아이들과 왕갈비를 먹었는데, 오늘은 돈가스다.
시간은 음식의 형태로도 달라진다.
오후, 본격적인 성곽 길에 오른다.
햇빛은 거의 직각으로 내려꽂히고, 걷는 길은 쉽지 않다. 함께 걷는 이들 사이에서 힘들다는 소리가 나온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화서루에 모여 성곽을 바라본다. 푸른 하늘 아래 켜켜이 쌓인 돌담이 우뚝 서 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연신 사진을 찍는다.
성벽을 따라 걷는다.
관광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연푸른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봄꽃들이 길을 채운다. 하늘은 눈물이 날 듯 푸르고, 성벽에 몸을 기대며 걷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앞서 걷는 연인들, 햇볕을 가리는 양산,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풍경이 된다. 사진작가의 발걸음도, 그 뒤를 따르는 나의 시선도 바빠진다.
성벽 아래 정자에는 사람들이 모여 장기나 바둑을 두며 한낮을 보낸다. 그 장면 또한 하나의 그림이 된다.
장안문을 지나 다시 성곽 위로 오른다.
가파른 경사에 숨이 가쁘지만, 올라선 뒤의 풍경은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한다.
망루 안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쉼을 누리고 있다. 과거의 공간 속에서 현재의 사람들이 하루를 보내고 있다.
바람이 분다. 깃발이 펄럭인다. 생각은 흩어지고, 나는 가벼워진다.
긴 성곽길 끝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보이지 않는 것이 먼저 도착한다.
그리고 마침내,
방화수류정.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
이름 그대로의 풍경이다.
사월의 끝,
연초록과 바람, 그리고 물소리가 함께 어우러진다. 이 계절은 사월과 오월 사이에서 가장 완전해진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오른다.
동북각루에 서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밤이라면 별이 가까이 내려왔을 자리.
다시 내려온다.
버드나무는 길게 늘어지고, 돌다리 아래로 물이 흐른다. 사람들은 손을 잡고 건너고, 아이들은 웃고, 누군가는 물수제비를 뜬다.
높은 곳에서 방화수류정은 말없이 내려다본다.
그 아래에서
삼십여 년의 시간이 겹쳐진다.
풍경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 풍경을 지나는 나는 달라져 있다.
어제처럼 연초록의 봄빛은 그대로인데,
나는 이제 칠십을 바라보며
수원화성의 봄을 담는다.
수원화성을 가기 위해 조치원에서 무궁화호에 올랐다.
수원화성은 두 번째 방문이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 아마 1997년 이전일 것이다. 그때는 교육열이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교육업체에서 모집한 역사체험으로, 엄마는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이곳에 왔었다. 하루 종일 동서남북의 문을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에 먹었던 수원 왕갈비의 맛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수원역에 도착한다. 넓은 공간 앞에서 잠시 멈춘다. 출구를 찾고, 버스를 기다린다.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마음만 앞선다. 시계를 자꾸 본다. 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는데 발걸음이 먼저 서두른다.
조장님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호흡이 조금 가라앉는다.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일행 두 명과 함께 내려, 거의 뛰듯이 이동한다. 길을 헤쳐 나가며 수원화성박물관 앞에서 사람들과 합류한다.
박물관 안, 화성행렬도가 길게 펼쳐져 있다. 카메라를 들지만 집중이 쉽지 않다. 새벽부터 이어진 시간과 비어 있는 배가 몸을 먼저 흔든다. 밖으로 나와 삶은 계란을 급히 먹고 나서야 시야가 또렷해진다.
11시, 신풍루에서 무예 24기 공연이 시작된다.
흙먼지가 일고, 배우들의 얼굴에는 땀이 맺힌다. 과거를 재현하는 무대지만, 몸은 철저히 지금을 살고 있다. 한순간도 흐트러질 수 없는 움직임 속에서 시간은 겹쳐진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가 이어진다. 나도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 에세이 강의를 듣는다.
기술보다 사람의 온기가 남는 장면을 담고 싶다. 그러나 무엇을 찍어야 할지 선명하지 않다. 욕심이 앞선 탓일 것이다. 스스로 웃으며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점심은 화서루 근처에서 먹는다. 재영 작가와 함께 작은 돈가스집에 들어간다. 나는 돈가스를, 그는 손메밀돈가스를 고른다. 예전에는 아이들과 왕갈비를 먹었는데, 오늘은 돈가스다.
시간은 이렇게 다른 형태로 남는다.
오후, 성곽을 따라 걷는다.
햇빛은 거의 직각으로 내려오고, 길은 만만하지 않다. 함께 걷는 이들의 숨이 점점 무거워진다.
화서루에 모여 성곽을 바라본다. 푸른 하늘 아래 돌담이 켜켜이 쌓여 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는다.
성벽 위를 걷는다.
연푸른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꽃들이 길을 채운다. 하늘은 눈이 시릴 만큼 푸르고, 성벽에 몸을 기대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앞서 걷는 연인들, 햇빛을 가리는 양산, 그 모든 것이 풍경이 된다. 사진작가의 발걸음도, 그 뒤를 따르는 나의 시선도 바빠진다.
성벽 아래 정자에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한낮을 보낸다. 그 장면마저 조용히 하나의 그림이 된다.
장안문을 지나 성곽 위로 다시 오른다.
가파른 길이 숨을 끌어올리지만, 올라선 뒤의 풍경이 그 수고를 대신한다.
망루 안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쉼을 나눈다. 과거의 공간 속에서 현재의 시간이 흘러간다. 바람이 불고, 깃발이 흔들린다. 생각은 흩어지고, 나는 가벼워진다.
긴 성곽길 끝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보이지 않는 것이 먼저 도착한다.
그리고 마침내, 방화수류정.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
이름 그대로의 풍경이다.
사월의 끝, 연초록과 바람, 물소리가 함께 어우러진다. 이 계절은 사월과 오월 사이에서 가장 충만하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오른다.
동북각루에 서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밤이라면 별이 더 가까이 내려왔을 자리.
다시 내려온다.
버드나무는 길게 늘어지고, 돌다리 아래로 물이 흐른다. 사람들은 손을 잡고 건너고, 아이들은 웃고, 누군가는 물수제비를 뜬다.
높은 곳에서 방화수류정은 말없이 내려다본다.
그 아래에서
삼십여 년의 시간이 겹쳐진다.
풍경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 풍경을 지나는 나는 달라져 있다.
어제처럼 연초록의 봄빛은 그대로인데,
나는 이제 칠십을 바라보며
수원화성의 봄을 담는다.
두 번째 봄, 수원화성에 가다
수원화성을 가기 위해 조치원에서 무궁화호에 올랐다. 두 번째 방문이다. 두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 아마 1997년 이전일 것이다. 그때는 교육열이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교육업체에서 모집한 역사 체험으로, 엄마는 어린 두 아들의 손을 잡고 이곳에 왔었다. 하루 종일 동서남북의 문을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에 먹었던 수원 왕갈비의 맛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수원역에 도착한다. 넓은 공간 앞에서 잠시 멈춘다. 출구를 찾고, 버스를 기다린다.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마음만 앞선다. 시계를 자꾸 본다. 본다고 달라질 것은 없는데 발걸음이 먼저 서두른다.
조장님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호흡이 조금 가라앉는다. 같은 버스에 타고 있던 일행 두 명과 함께 내려, 거의 뛰듯이 이동한다. 길을 헤쳐 나가며 수원박물관 앞에서 사람들과 합류한다.
박물관 안, 아름다운 화성행렬도가 길게 펼쳐져 있다. 카메라를 들지만 집중이 쉽지 않다. 새벽부터 이어진 시간과 비어 있는 배가 몸을 먼저 흔든다. 밖으로 나와 삶은 계란을 급히 먹고 나서야 시야가 또렷해진다.
11시, 신풍루에서 무예 24기 공연이 시작된다.
흙먼지가 일고, 배우들의 얼굴에는 땀이 맺힌다. 과거를 재현하는 무대지만, 몸은 철저히 지금을 살고 있다. 한순간도 흐트러질 수 없는 움직임 속에서 시간은 겹쳐진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가 이어진다. 나도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긴다.
사진 에세이 강의를 듣는다.
기술보다 사람의 온기가 남는 장면을 담고 싶다. 그러나 무엇을 찍어야 할지 선명하지 않다. 욕심이 앞선 탓일 것이다. 스스로 웃으며 그 마음을 내려놓는다.
점심은 화서루 근처에서 먹는다. 재영 작가와 함께 작은 돈가스집에 들어간다. 나는 돈가스를, 그는 메밀 돈가스를 고른다. 예전에는 아이들과 왕갈비를 먹었는데, 오늘은 돈가스다.
시간은 이렇게 다른 형태로 남는다.
오후, 성곽을 따라 걷는다.
햇빛은 거의 직각으로 내려오고, 길은 만만하지 않다. 함께 걷는 이들의 숨이 점점 무거워진다.
화서루에 모여 성곽을 바라본다. 푸른 하늘 아래 돌담이 켜켜이 쌓여 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는다.
성벽 위를 걷는다.
연푸른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꽃들이 길을 채운다. 하늘은 눈이 시릴 만큼 푸르고, 성벽에 몸을 기대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앞서 걷는 연인들, 햇빛을 가리는 양산, 그 모든 것이 풍경이 된다. 사진작가의 발걸음도, 그 뒤를 따르는 나의 시선도 바빠진다.
성벽 아래 정자에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한낮을 보낸다. 그 장면마저 조용히 하나의 그림이 된다.
장안문을 지나 성곽 위로 다시 오른다.
가파른 길이 숨을 끌어올리지만, 올라선 뒤의 풍경이 그 수고를 대신한다.
망루 안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쉼을 나눈다. 과거의 공간 속에서 현재의 시간이 흘러간다. 바람이 불고, 깃발이 흔들린다. 생각은 흩어지고, 나는 가벼워진다.
긴 성곽길 끝에서 물소리가 들린다.
보이지 않는 것이 먼저 도착한다.
그리고 마침내, 방화수류정.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
이름 그대로의 풍경이다.
사월의 끝, 연초록과 바람, 물소리가 함께 어우러진다. 이 계절은 사월과 오월 사이에서 가장 충만하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오른다.
동북각루에 서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밤이라면 별이 더 가까이 내려왔을 자리.
다시 내려온다.
버드나무는 길게 늘어지고, 돌다리 아래로 물이 흐른다. 사람들은 손을 잡고 건너고, 아이들은 웃고, 누군가는 물수제비를 뜬다.
높은 곳에서 방화수류정은 말없이 내려다본다.
그 아래에서
삼십여 년의 시간이 겹쳐진다.
풍경은 변하지 않았는데
그 풍경을 지나는 나는 달라져 있다.
어제처럼 연초록의 봄빛은 그대로인데,
나는 이제 칠십을 바라보며
수원화성의 봄을 담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