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브이 드라마에서 제3공화국이니 제5공화국이니 하는 제목을 본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공화국이란 용어에 관심이 적어졌다.
현행헌법 체제도 제6공화국이란 용어보다는 87년체제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우리 헌법 전문에서는 헌법제정의 목표가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는데 있다고 밝히고 제1조 제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공화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임시정부 헌법을 만들던 당시 역사적 결단이었다.
어쩌면 우리도 유럽 국가들이나 일본처럼 국왕을 두고 정치를 하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대한독립을 선언하던 선열들이 왕정복고를 배제하고 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정부형태에서 고민거리가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다.
왕정을 택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왕정을 택하였더라면 대통령제를 택할 여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왕정을 택한 태국이 푸미폰 국왕의 영도력에 의지하여 쿠데타가 잦은 나라치고는 비교적 정치적 안정을 누리다가 국왕의 영도력이 사라진 지금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는 것을 보면서 싫으나 고우나 대통령제가 대세인 우리나라의 현실이 공화정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그런데 공화국이면 되었지 앞에 서수가 붙는 것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나라가 겪은 현대사의 질곡을 드러내는 흔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대통령제를 택하였다가 의원내각제로 바꾸었다가 다시 대통령제로 돌아오면서 공화국 구분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이는 단순히 정부형태의 변경에 의한 시대구분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공화국 구분의 언저리에는 언제나 정치적 격변이 자리잡고 있었다.
4.19와 5.16, 그리고 10.17 유신 쿠데타와 10.26 사태, 가장 최근의 사태로는 1987년 여름의 뜨거웠던 6월항쟁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공화국 구분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음은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른다.
20년이 넘는 태평성대(?)가 지속되어 왔으니까.
공화국 구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기억나는 것은 이른바 제5공화국에서 있었던 비화이다.
건국 이후 최초로 국가원수가 저격당하는 사태였던 10.26의 원인은 유신헌법에서 찾을 수 있다.
10.26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에 취임한 최 규하 정권은 12.12 사태와 그 이듬해에 있었던 5.18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신군부에게 개헌 주도권을 내주었다.
신군부는 개헌을 하면서 대통령제로 결론을 내리되 체육관선거의 간선제로 정권유지를 도모하였다.
헌법의 권력구조는 국민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정되었는데 갑자기 정권 상층부에서 새 헌법이 몇 공화국 헌법이냐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은밀한 검토가 이루어졌는데 유신잔당들은 제5공화국이라고 했다 제4공화국이라 했다 헷갈리는 모습들을 보였다.
제헌헌법이 제1공화국 헌법임은 분명하고 4.19로 출범한 의원내각제 헌법에 제2공화국헌법이란 명칭을 붙이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었다.
이어서 5.16 쿠데타로 헌정이 중단되고 사실상 헌법이 새로 제정되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제3공화국헌법이 태동하였다는 점도 수긍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10.26 친위 쿠데타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문제인데 유신을 옹위하던 학자들은 유신헌법도 대통령제이기에 따로 공화국 구분을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유신헌법이 조국통일을 위한 역사적 결단이고 과거의 서구식 대통령제와는 판연히 다른 토착민주주의의 산물로서 영도적 대통령제이기에 제3공화국과 구분하여 제4공화국이어여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객관적으로 보아 유신체제는 공화정이라 부르기에 민망스런 부분이 있었다.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권한은 최소한으로 축소된 정부가 공화정이란 이름을 갖기는 낯 뜨거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일부 유신학자들 주장처럼 새로 제정되는 헌법은 제4공화국 헌법이라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 문제를 검토하던 윗분들은 생각이 달랐다.
신군부가 미우나 고우나 헌정의 중단을 역사적 기정사실로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여겼다.
유신체제가 제3공화국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정치체제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를 비공화정 시대라고 매도하여 역사적 공백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식의 논란은 신군부 고위층들에게는 헷갈리는 일이기에 과연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를 일이었다.
실무로 잔뼈가 굵은 우리 팀의 윗분 중 한 분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내 놓았다.
검토보고서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비교적 균형있게 서술하다가 갑자기 당구장 표시를 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4"라는 숫자가 불운을 상징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음"이란 문구를 삽입한 것이었다.
신군부에서 바로 답이 왔다.
새로 제정하는 헌법은 제5공화국 헌법이고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헌법에서 제5공화국임을 명시하라는 지시였다.
그렇다고 제1조에서 "대한민국읜 제5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결국 헌법 전문에서 "새로은 제5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라는 문구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공화국 구분에서 제2라운드가 준비되어 있엇다.
6월항쟁으로 6.29선언이 나오고 국민들이 열망하던 직선제 개헌이 추진되었다.
그 헌법에서는 유치하게 전문에서 제5민주공화국이니 뭐니 하는 문구를 삭제하였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법제처장에게 갑자기 새 헌법은 몇 공화국이냐고 물었다.
법제처장은 그냥 제6공화국이라고 하여 넘어갔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제5공화국헌법은 체육관선거 조항을 빼고는 딱히 비민주적이라고 단정하기는 좀 그랬다.
그리고 간선제 역시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채택하였기에 이를 이유로 제5공화국 헌법체제를 비공화정으로 분류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국회에서도 법제처장의 제6공화국 헌법 답변을 그냥 넘어갔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6월항쟁은 헌정중단을 가져온 바도 없고 새 헌법도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꾼 것 빼고는 공화국 구분을 달리할 정도로 서로 다른 헌법은 아니었다.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꾼 사실만으로 공화국 구분을 달리한다면 제헌헌법에서 채택한 간선제를 제1차 개헌, 즉 부산에서의 참담한 정치파동을 겪으면서 얻어진 발췌개헌에서 직선제로 바꾸고 국회도 단원제에서 양원제로 변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공화국 구분을 달리하지는 않았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이런 점을 소상히 따질만큼 한가한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그냥 넘어간 것이다.
나중에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표준헌법교재 집필의뢰가 와서 거기에 한줄을 남겼다.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지위가 현저히 부각되고 대화와 타협, 중용과 조화룰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적 전통의 수립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5공화국을 포함한 과거의 부끄러운 정치적 유산을 값비싼 교훈으로 여기고 과감한 쇄신을 단행하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앞으로의 정치체제가 꼭 '6'공화국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공화국이어야 한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새 헌법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담았고 국민들이 쟁취한 것이기에 이를 과거 헌법과 구분하여 제6공화국헌법으로 불러도 무방하다고 보는 것이다.
김 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 한때 진정한 문민 대통령을 가졌으니 새 정부는 제7공화국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남새스러운 주장인지라 정부에서는 더 이상 공화국 구분을 하지 않고 미국식으로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OOO정권" "OOO정부"라고 부르기로 하였다.
공화국 구분은 우리에게 헌정사의 애환을 기억하게 하는 촉매제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제6공화국에 해당한다는 점을 설명해 주어야 하겠다.
물론 이의를 달 똑똑한 아이들도 나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