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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여름이 다가옵니다
<어린이와 문학> 여름호에는 신나고 즐거운 일을 가득 담고 싶었습니다. 여름은 어린이에겐 방학이 있고, 어른들에게는 휴가가 있는 계절이잖아요. 그런 계절에 나오는 잡지니, 실컷 놀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길 바랐습니다. 저를 비롯한 어른들은 학창시절 방학 때 친척 집에서 놀았고, 한 달 내내 놀다가 개학 전날 숙제를 했고, 모범생이 쓴 일기를 베껴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놀았던 어른들이 정작 어린이에겐 놀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름과 방학, 이 시기에 요즘 어린이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놀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놀이’로 다가가는 어른들도 만났습니다. 꽤 많은 분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더군요.
동화와 동시, 청소년 소설과 그림책 등 이 잡지에 실리는 다양한 작품들은 어린이가 주로 읽고 어른들이 씁니다. 이런 간극을 줄이기 위해 어린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알아야 합니다. 요즘처럼 어린이가 여유롭게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을 때, 과연 어린이·청소년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할까, 어떤 책을 만들어야 할까, 이런 고민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찬란한 여름을 보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길 바라면서 여름호를 만들었습니다.
잡지 한 권을 만들기까지 꽤 많은 공력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거절당하는 것은 각오해야 하고, 생각대로 잘 풀리지 않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데 의외의 발견을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런 발견이 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독자들에게 읽을거리를 만드는 게 아닌가싶습니다. 잡지를 만드는 동안 일어난 멋진 발견이 읽히길 바랍니다.
또한, 글이 사람을 위로하고 힘을 줄 수 있지만, 반대로 상처를 주거나 해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그 문장 또한 여름호를 준비하는 내내 품었습니다.
여름을 기다리는 마음처럼, 이번 호가 즐겁고 재미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남기는 잡지이길 바랍니다.
“작가의 서랍”에서는 박현숙, 천효정 작가와 만났습니다. 두 작가에게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시리즈로 쓰고 있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많지만 이번 호에서는 박현숙은 ‘수상한 시리즈’, 천효정은 ‘건방이 시리즈’로 한정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야기에는 어떤 것이 담겼는지, 그런 이야기를 쓰려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엿보았습니다. 편집부가 준비한 질문도 있었지만, 두 분이 서로에게 궁금한 점을 묻는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길고 무더운 여름,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로 독자들도 즐거움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이 인터뷰를 위해 서울까지 오신 두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시선”은 김선정의 「나의 방학 탐구생활」을 실었습니다. 작가이면서 교사인 김선정은 이르게 퇴직을 하고 작가로 생활하면서 오히려 방학이 없는삶을 보냅니다. 퇴근도, 주말도, 방학도 없는 생활에 당황한 작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업작가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생활을 합니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어떻게 방학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동시”에서는 시인들이 소개하는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길냥이를 돌아보고 연잎과 세상을 연결합니다. 자신을 닮은 자동차를 찾고, 달토끼를 우리 옆으로 불러옵니다.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바라볼지, 떠돌이개와 집에 묶여 있는 개를 따스한 눈길로 돌아봅니다. 잠 못 드는 사람에게 베개를 내주는 마음과 가늘지만 튼튼한 털에게 집중하지요. 아빠와 내가 가로등과 전봇대처럼 읽히고, 할머니를 걱정하는 지팡이를 소개받았습니다. 바위가 내는 소리는 어떤가요? 또, 낙타가 된 듯한 아이 마음을 어루만집니다. 쉼표가 꾸는 꿈과 지각해서 걱정하는 아이를 응원합니다. 호랑이가 앞을 가로막은 날과 각각 다른 버스를 타는 할머니와 손녀도 볼 수 있습니다. 감기를 다르게 바라보고, 답답한 마음을 뚫는 도구도 만났습니다. 자동차 학교에는 어떤 선생님이 있는지 아시나요? 거북이가 헤엄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웃으며 읽었습니다.
“동화”에서는 세 편을 실었습니다.
김현경의 「우리의 우정은」에서는 반장 선거에 후보로 나선 우정은이 주인공입니다. 그리고 같이 지내던 친구 여럿이 반장 선거의 결과를 놓고 친구들 사이에 우정이 있는지 없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친하니까 뽑아야 한다는 우정은과 선거는 다르다고 말하는 친구들, 이 간극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요?
송라음의 「뿔」에서는 소문난 말썽꾸러기 박찬결이 등장합니다. 찬결이는 착한 애는 바라지 않고 그냥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애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런 찬결이에게 친구 민영이는 첫 번째 말썽꾸러기가 어떻게 착해졌는지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찬결이는 선생님께 두 번째 말썽꾸러기거든요. 찬결이의 뿔난 행동이 바뀌는 과정이 흥미진진합니다.
임순옥의 「길 탐험가」에서는 동네 길을 탐험하는 과정을 다룹니다. 조별로 동네를 탐험하고 지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는 바다로 가는 길 네 개를 알고 있다가 탐험을 하면서 동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자신이 아는 길을 넓혀갑니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는 흰여울길을 함께 걷는 듯한 글입니다.
“청소년 소설”은 두 편을 실었습니다.
김경은의 「교동 소년단 나봉석」은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를 다루었습니다. 황해도 연백에서 활동하던 유격대는 교동도로 내려와 빨갱이를 색출하는 작업을 합니다. 열네 살 나봉석은 특공대를 돕는 작은 단체인 교동소년단원입니다. 여덟 살부터 열 여섯 살까지 소년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월북한 가족이 있는 주민들을 골라냅니다. 어린 소년들에게 색출된 이들이 고문을 당하고 총살까지 당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게 됩니다.
소향의 「1919, 너의 목소리」는 오래된 학교에 다니는 노해강이 아빠에게 선물 받은 이어폰으로 1919년 당시에 학교에서 주고받던 소리를 듣습니다. 그 소리는 1919년 3월에 온 나라를 들끓게 하던 3·1운동과 지율이 맡은 연극과 관련 있습니다. 해강이와 지율이 듣는 소리가 인상 깊습니다.
“평론”에서는 다양한 시선을 담았습니다.
김라나는 「미디어를 바라보는 청소년문학의 시선」에서 청소년문학이 미디어라는 키워드를 통해 청소년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조명하고 있는지 살핍니다. 청소년문학에서 SNS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지, 개인 정체성을 미디어로 어떻게 드러내는지 설명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주목할 만합니다.
이유진은 「어린이책과 온작품읽기 그리고 어린이」를 통해 온작품읽기로 어린이책을 읽는 기쁨과 교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폈습니다. 국어 수업은 국정교과서로 하는 게 당연했던 틀을 깨고, 다양한 어린이책으로 어린이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어린이책에 맛들이는 수업이라니, 저 또한 그 수업에 함께 하고 싶더군요.
조성순은 「독자를 안고 현실을 찾아 나서는 진지한 시선」에서, ‘전미화 그림책’을 중심으로 다룹니다. 어른의 부재와 그 부재에 분투하는 존재들을 일관되게 다루면서 가난과 맞서는 부모와 이를 온몸으로 견디는 작은 존재들을 돌아봅니다.
“기획”에서는 여름방학과 놀이, 그리고 시간을 다루고자 했습니다. 학기 때보다 시간이 많은 여름방학 때 어린이는 무엇을 할까, 그리고 어른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색다른 시간을 보낸 사람들을 찾고 싶었습니다.
이진하는 「이 여름, 모두의 숙제」에서 노는 일에는 끝이 없다는 조카와 만나 체력이 바닥난 현실을 드러냅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는 학교에 가지 않고 종일 놀기 위해 방학을 기다렸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놀고 싶은 아이들이 제대로 놀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홍표가 쓴 「택견과 자전거」는 독특합니다. 택견 사부인 저자는 아이들과 주말에 자전거를 탔고, 1박 2일 캠프를 하는가 하면 여름에 자전거 캠프를 갑니다. 때로 국외로 자전거 캠프를 가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페달을 밟으며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경험을 드러낸 글입니다.
전정임의 「어린이의 여행」에서는 아이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어린이의 변화를 지켜봅니다. 어린이의 여행이 물동그라미 같다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무채색이었던 어린이가 여행에서 힘을 얻어 조금씩 색을 찾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어린이와 함께”에서는 두 어린이와 함께 「어린이와 방학」을 이야기했습니다. 방학이라 해도 학원에 갔다가 조금 쉬었다가 다시 공부하는 빡빡한 일정이 이어집니다. 놀이공원과 친구네 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한 경험이 잊지 못할 방학이고, 특별한 체험학습도 있답니다. 어린이가 제대로 놀고 싶다는 표현이 마음에 걸립니다.
“삐뚤빼뚤”에서 어린이가 쓴 글들을 엿보면, 간결하면서 재기발랄합니다. 어린이 시 다섯 편이 모두 소중하고 귀합니다.
“이야기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김진경의 「구아라니 족에 대한 명상」을 실었습니다. 『고양이 학교』를 쓴 계기와 동북 신화를 언급합니다. 특히 안데스 산맥을 떠돌며 사는 신비한 부족인 구아라니 족이 흥미롭습니다. 안데스 산맥의 환경 이변이 일어나는 장소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부족이 ‘1’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우리에게 ‘1’의 논리는 무엇일까요?
“목소리”에서는 문재현의 「인형이 데려다준 세상에서 만나는 우리」를 실었습니다. 1인 인형극단 아토를 운영하며, 인형으로 만드는 선물 같은 시간을 소개했습니다. 목각인형 말로가 관객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공연을 본 뒤, 어린이가 말로의 모습을 그려서 보내줬답니다. 관객들과 소통하면서 받은 선물들을 함께 느꼈으면 합니다.
“서평”에서는 책 세 권을 다루었습니다.
김성희의 「판타지로 만나는 우리의 장신구」에서는 『빨간 조끼 여우의 장신구 가게』를 봅니다. 장신구를 좋아하는 여우는 보름마다 장신구 가게를 찾아가고, 그때 받는 장신구는 귀불노리개, 배씨 댕기입니다. 따뜻한 색감과 아기자기한 이야기가 미소를 짓게 합니다.
박규연의 「까먹어서 행복해지는 세상 속으로」에서는 유은실의 『까먹어도 될까요』를 읽습니다. 오래오래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작가의 말처럼 지진으로 큰 고통을 겪는 튀르키예의 아이들도 잘 견뎌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소중합니다.
채은랑의 「완벽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나요?」는 『두근두근 두뇌성형 프로젝트』를 다룹니다. ‘EC 프로젝트’라는 혁신적인 기술로 아이들에게 칩을 이식하는 어른들과 칩 이식을 거부하는 어린이가 충돌합니다.
“그림책의 그림을 읽다”에서는 「오늘도 날지 못하는 천사들이 잠수하는 세상에서」로 『여름의 잠수』를 돌아봅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작품으로 드러내는 일이 품은 의미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림책이 주는 위안이 여러분에
게 가닿기를 바랍니다.
“특집”으로 ‘5·18문학상’에 선정된 작품을 소개합니다. 이아름이 쓴 「24시 목욕탕의 비밀」입니다. 목욕탕과 5·18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할머니가 밤새 목욕탕을 지키는 이유도 간절합니다. 일상에서 풀어낸 역사는 힘이 셉니다. 그 힘을 기억하셔서 어린이 독자들을 만나는 작가가 되길 기원합니다.
이번에는 투고 작품들이 꽤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동시에서만 선정되고 동화와 청소년소설에서는 안타깝게도 선정작을 뽑지 못했습니다. <어린이와 문학>은 여전히 원고를 기다립니다. 잡지에 활자가 실리는 짜릿한 경험은 생각보다 큽니다. 자존감이 높아지고 또 다른 글을 쓸 힘을 줍니다. 지면이 부족해서 실린 글에 대한 평을 싣지 못하지만, 소중한 원고를 보낸 여러분들을 끝까지 응원합니다. 글동무로 같이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름호를 준비하는 동안 갑작스러운 부고를 들었습니다. <어린이와 문학>에 작품을 실었던 윤동희 작가의 소식에 한동안 멍했습니다. 선생님이 남긴 글을 온전히 그대로 읽으려 집중하는데도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한 번도 뵙지 못했지만, 어쩌면 반갑게 손을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네요. 부디 평안하시길……. 이 지면을 빌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김하은 (본지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