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격려 - 이케다 SGI 회장과 서원(誓願)의 동지 (23)
용기의 깃발을 내걸어라
〘니가타〙
니가타시에는 벚꽃이 지난 4월 7일에 피었다. 14일 ‘니가타의 날’에는 30년 전 그날의 기쁨과 마찬가지로 틀림없이 활짝 필 것이다.
1983년 4월 14일, 이케다(池田) SGI 회장이 조에쓰신칸센을 타고 니가타를 방문했다. 12년 만의 방문이었다. 니가타역에서 내려 “12년분의 활동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힘찬 목소리였다. SGI 회장을 맞이한 이날은 맑고 포근했다. 니가타이케다문화회관 일대는 벚꽃이 만개해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오후에 SGI 회장을 태운 차가 회관에 도착했다.
1년 전에 창가반원이 된 이토 도미지(기타권 권장) 씨는 회관 ‘백조문’ 밖에서 맡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동지가 잇달아 길가에 몸을 내밀었다. 돌발 사태에 대비해 이토 씨도 양손을 벌려 서행하는 차와 나란히 달렸다.
힐끔 차를 보니 뒷좌석 열린 창문에서 손을 흔드는 가네코 여사가 보였다.
이 모습이 격려 또 격려하는 ‘황금 같은 나흘간’의 시작이었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차가 회관에 들어오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고 다시 문 밖에 서 있는 이토 씨에게 ‘창가반 집합!’하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 앞으로 달려가자 SGI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열 맨 왼쪽에 서 있는데, 가운데 계실 줄로 생각한 SGI 회장이 이토 씨 바로 왼쪽 대각선 앞으로 왔다. 이토 씨는 웃으며 “너무 긴장해서 찡그린 모습으로 찍고 말았습니다” 하고 말했다.
“자, 무사고 임무를 부탁합니다!”
SGI 회장은 그렇게 말하고 다음 사람을 격려하기 위해 나아갔다.
이날 열린 니가타총회에서 SGI 회장이 쓴 ‘용기’라는 휘호를 물들인 현(縣) 깃발을 공개했다. 그 이튿날 15일에 열린 근행회에서 SGI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용기 있게 실천하는 데에 보람이 있습니다. 행복해지려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집안을 지키는 데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신앙자의 첫째 조건은 ‘용기’입니다.”
‘용기’의 두 글자가 많은 동지와 마찬가지로 이토 씨의 마음을 관통했다.
이때의 방문에서 발표한, 이듬해에 열 ‘니가타청년평화문화제’에서 중요 식순인 꾸미기체조에 반드시 나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회사의 배려가 없으면 날마다 해야 하는 맹연습에 참가할 수 없었다.
“저는 창가학회원입니다.”
당시 근무하던 골판지 제조회사의 사장과 공장장에게 큰맘 먹고 선언했다.
“내년에 니가타에서 문화제가 열립니다. 중요 식순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문화제에 두 분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사장과 공장장은 흔쾌히 응원해주었고 그 이듬해인 1984년 9월 문화제에 참석했다. SGI 회장이 바라보는 가운데 이토 씨는 맨 밑에서 5층 원탑을 지탱하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굉장했어!”
이튿날 사장과 공장장이 이토 씨에게 가장 먼저 건넨 말이었다. ‘용기’와 ‘음지의 사람을 소중히’라는 말은 이토 씨에게 생애 잊을 수 없는 지침이 되었다.
현재 같은 기타권에서 지부장을 역임하는 호리 겐이치로(요코하마지부) 씨도 30년 전에 니가타이케다문화회관에서 직접 격려를 받은 한 사람이다.
당시 니가타대학교 3학년이었다. 회관에서 묵묵히 행사 요원으로서 작업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날마다 있는 회합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SGI 회장은 그런 호리 씨를 포함해 대학부원 4명과 만났다. 16일 오후 효코에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어머니를 소중히 여기세요!”라고 말하고 SGI 회장은 4명과 굳게 악수했다.
호리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선생님의 눈은 ‘진정한 제자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찾는 듯한 진지함 그 자체였습니다.”
호리 씨는 지금 합판 제조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학회에서는 제일선의 지부장을 맡으며 청소년육성협의회 회장 등 지역에서 일을 다섯가지 맡고 있다.
호리 씨는 30년 전 뒤에서 대학부원을 격려해준 스승에게 “누가 보지 않더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솔선해서 한다. 그것이 학회 정신입니다.”
20년 뒤를 목표로 힘내라!
“이것이 20년 전 이케다 선생님과 한 약속입니다.”
1983년 4월 14일 현총회에 참석한 나카자와 도시이(니시권 부권장) 씨의 가슴에는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20년 전 약속은 1963년 10월 4일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이날 SGI 회장은 니가타시체육관에서 열린 도호쿠 제2· 제3본부 합동 결성대회에 참석했다. 종료 뒤 시나노강 부근에 있는 니가타회관(당시)으로 옮겨 밤까지 간담이 계속되었다.
1년 전(1962년)에 입회하고 창가반의 전신인 ‘수송반’이던 나카자와 씨도 회관 밖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간담을 잠시 멈추었을 때쯤 SGI 회장이 ‘시나노강 부근을 걷고 싶다’며 밖으로 나갔다.
“경비를 서고 있군요. 노고 많습니다!” 나카자와 씨에게 말을 걸었다. SGI 회장은 잠시 간부와 대화를 하고 다시 “이름은 무엇입니까? 입회는 언제 했나요” 하고 말을 걸었다.
스물두 살인 그는 입회한지 1년이 되었다고 전하자 SGI 회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가요. 힘내세요! 20년 뒤를 목표로 학회와 나를 따라오세요!”
그리고 굳게 악수하며 이렇게 말했다. “얼굴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손의 감각은 기억하겠습니다. 힘내세요!”
그러고 나서 SGI 회장은 곧바로 동지들에게 둘러싸였다. 시나노강에 가는 것을 그만두고 계속 격려했다.
취직을 하려고 나가오카에서 니가타에 왔지만 친구도 적고 소극적이던 나카자와 씨가 이때부터 바뀌었다. ‘신심은 틀림없다!’고 마음먹고 정신없이 광포를 위해 꿋꿋이 뛰며 지부장으로서 맞이한 것이 20년 뒤에 열린 현총회였다.
4월 16일 근행회에서는 SGI 회장이 붓으로 쓴 지부증도 받았다.
‘다음 20년은 어떻게 될까.’ 나카자와 씨는 생각했다.
“다음은 ‘평생’이다. 평생 선생님과 학회 곁을 떠나지 않겠다!”
올해 그 원점으로부터 50년을 맞았다. 학회활동과 지역공헌에 ‘총마무리의 인생을’이라고 정했다.
◇
이케다 SGI 회장에게 받은 ‘장자’의 휘호를 긍지로 삼고 나아가는 장자지부의 동지들.
스승과 원점을 새긴 지 30년. 기쁨이 넘치는 고자쿠라지부의 벗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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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전언, 지부증, 지구증 그리고 스스로 작사한 니가타현 노래 ‘설산의 길’ 등 30년 전 니가타에 머물며 SGI 회장이 쓴 휘호는 50개가 넘는다. 격려하고 또 격려하며 쓰고 계속 쓴 나흘간이었다.
14일에 열린 현총회에서 SGI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풍요롭고 신심의 기쁨을 상찬할 줄 아는 ‘묘법(妙法)의 장자(長者)’가 되기 바랍니다.”
그 ‘장자’라고 적은 지구증이 있다. 니가타시에 ‘장자 마을’이라는 지명과 장자 지구가 있다는 사실을 듣고 SGI 회장이 붓으로 쓴 것이다.
“선생님이 ‘장자’라고 써주셨어요!”
부인부 간부의 들뜬 전화 목소리를 듣고 장자지구 지구부인부장인 사사가와 마사코(히가시권 지부부부인부장) 씨도 뛸 듯이 기뻤다. 나중에 사사가와 씨의 남편인 지구부장 쓰구누키(부지부장) 씨가 회합에서 받았다.
‘장자’의 이름은 그 뒤, 지부에도 붙여 광포를 짊어질 ‘묘법의 장자’를 많이 배출하는 모범의 지구와 지부로 발전했다.
SGI 회장이 야마가타로 출발하기 직전인 17일 자유근행회 때 니가타이케다문화회관에 고자쿠라지구의 벗을 초대했다. 부지구담이던 기타가미 교(주오권 지부부부인부장) 씨도 아이 세 명과 함께 달려간 일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다.
낭랑하게 제목을 부른 뒤 SGI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나를 기다린 것처럼, 벚꽃이 활짝 피어서 매우 기쁩니다.”
그리고 피아노에 앉았다.
“고자쿠라지구 여러분이 와 계시지요. 그럼 ‘벚꽃’을 연주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연주한 ‘벚꽃’ 노래는 생명 깊숙한 곳까지 울리는 듯했다.
그 뒤, 고자쿠라지구는 지부로 발전했다. 4월 17일을 ‘지부의 날’로서 해마다 그리고 달마다 성장의 마디로 삼고 있다.
30년 전 SGI 회장은 이렇게 읊었다.
끝없이
아 활짝 핀
벚꽃
에치고(越後) 여행
나는 잊지 않으리
SGI 회장은 그날들을 영원히 잊지 않는다. 니가타 벗도 잊지 않는다. 지금 니가타 벚꽃이 30주년의 결의를 비추는 것처럼, 니가타 거리를 물들이고 있다.
태양의 격려 (23) 용기의 깃발을 내걸어라 - 니가타.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