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단서
신성한 매실 758
마찬가지로 책상 위에도 그 흔한 잡지 하나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별거 없죠?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채원이가 많이 달라졌어요. 이전에 그리 잘 꾸리고 예쁘게 치장하던 아이가 서서히 달라지더군요.”
언제 들어왔는지 여자가 뒤에 서 있었다.
“그렇군요. 그게 언제지요?”
“채원이가 대학 3학년 때였어요.”
“그럼, 그때 이후에 채원 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
최림은 건조하게 물었다.
그런데 여자는 갑자기 낯빛이 바뀌었다.
“어떤 종교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습니다.”
“종교요? 어떤?”
“네, 기독교이긴 한데, 일반적인 교회는 아니었어요.”
“그렇다면 이단에 빠졌다는 말씀이신지?”
최림은 뭔가 이상한 기분이 자꾸 들었다.
“그런 셈이죠. 그런데 우스운 건 뭔지 아세요?”
여자가 팔짱을 낀 채 최림을 노려보았다.
“무슨?”
“최초에 부모님이 먼저 그 종교에 빠졌습니다. 그때 채원이는 결사반대했었죠.”
“아, 처음부터 채원 씨가 그 종교를 믿은 건 아니네요.”
“물론입니다. 채원이는 부모님이 사망한 후 항의차 그 단체를 찾아갔어요.”
최림은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당장 묻고 싶지만, 그냥 듣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물론 무모한 일이었죠. 저도 나중에 안 사실인데, 동생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부모님이 남기고 간 휴대전화로 그놈, 교주와 통화를 한 모양이었습니다.”
“교주와 통화를요?”
“네, 그러더니 곧장 그곳으로 건너가 그놈을 직접 만났습니다.”
최림은 여자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요?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스물두 살 여대생의 몸으로 이단 종교 단체를 찾아갔다는 게?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만.”
“저도 잘 모릅니다. 어쨌든 동생은 교주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다더군요. 하나는 돌아가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 둘은 그동안 헌금 한 피해액의 반은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최림은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야말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그래서 성공했나요?”
최림은 자신이 생각해도 우스운 질문을 하고 말았다.
그의 말에 여자는 피식, 하고 웃었다.
“아뇨. 동생은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긴 했습니다.”
“만신창이라면?”
“생각하신 그대로입니다. 폭력, 구타, 성폭행 등등.”
그제야 최림의 입에서는 아, 하는 탄식이 나오면서 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이후로 동생분이 집을 나갔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동생은 이 집에서 일 년을 더 머물렀습니다.”
최림은 여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 아프시겠지만, 그 일 년 동안 동생분의 행적은요?”
“그냥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죠. 그때 저는 당장 먹고살 일이 급해 하루 몇 건씩 아르바이트하느라 사실상 동생을 내버려 뒀었습니다.”
그때, 현관에서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참! 오늘 싱크대업체에서 오기로 했어요. 너무 낡아서 바꾸기로 했거든요.”
여자가 방에서 나가자 최림은 재빨리 민채원의 방을 뒤졌다.
마침 책상에 딸린 서랍이 층층으로 4개가 있었다.
최림은 차례대로 서랍을 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서랍은 별것이 없었다.
하지만 세 번째 서랍에서 두툼한 책 한 권이 있었다.
‘이게 뭐지?’
나태주는 얼른 봉투를 열었다.
그런데 그건 어제, 경찰서 복도에서 마주친 여자가 떨어뜨린 책이었다.
‘666의 비밀’
그리고 책 옆엔 두툼한 편지 여러 통이 있었다.
최림은 얼른 그중 하나, 가장 날짜가 빠른 걸 읽어봤다.
편지는 민채원과 전두태 간의 서신이었다.
내용은 전두태의 일방적인 교리 설명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말미엔 이상한 내용도 있었다.
그건 둘만의 사적인 내용이었다.
사랑, 존경, 순종 같은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쓰여있었다.
‘뭐야? 둘이 연애하는 건가?’
최림은 그렇게 이해하였다.
그런데 편지가 끝나는 부분에 나온 걸 보고 최림은 무릎을 쳤다.
‘지리산으로 내려와서 앞일을 예비하라.’
그제야 최림은 피해자였던 그녀가 전두태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걸 눈치채었다.
그녀는 전두태의 신도였다.
최림은 얼른 책과 편지를 사진으로 찍었다.
그때, 그녀의 언니가 들어왔다.
“일은 다 보셨나요?”
“네,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길로 최림은 경찰서로 내려오기 위해 남부 터미널로 향했다.
택시 안에서 최림은 경찰서 서장 비서실로 급히 전화했다.
마침 비서가 받았다.
“형사팀 최림입니다.”
“네, 알아요. 지금 서울 출장 중이시죠? 그런데 무슨 일로?”
“어제 서장님에게 어떤 여자가 왔을 겁니다.”
“네, 왔었죠. 아주 미인인 그분.”
“그 여자 이름과 어떤 일로 방문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러자 비서는 방문 기록을 찾았다.
“네, 여기 있네요. 이름은 민서라. 방문 목적은, 잠시만요.”
‘민채원이 아닌 민서라?’
최림은 이름이 달라 약간 의아했다.
그때 비서가 답했다.
“방문 목적은 단순하네요. 그냥 인사차 왔답니다.”
비서의 말에 최림은 되물었다.
“여자 혼자 인사차 서장님을 방문했다고요?”
“이분은 단순한 개인 자격이 아니에요. 요한 공동체 마을 사무국장인데요?”
‘요한 공동체 마을?’
“혹시 주소도 있습니까?”
“네, 명함을 받아두었거든요. 필요하시면 문자로 넣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최림은 뭔가 단서를 잡은 것 같아 마음이 급했다.
한편, 지리산 수색 작전에 앞서 형사팀 전원은 CCTV 사본을 보고 있었다.
사건 당일, 범인들은 원지 둔치 주차장에서 지리산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후, 한동안 국도에 나타나지 않던 오토바이는 덕산면 방면에서 잠깐 보였다.
그곳은 지리산 중산리와 대원사 방면으로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오토바이는 각각 다른 길로 갔다.
한 대는 중산리, 나머지 한 대는 대원사 방면이었다.
다급해진 권 팀장은 자신이 직접 마우스로 중산리 쪽을 찾았다.
하지만 오토바이는 겨우 5분 여를 달리다 농로로 빠져버렸다.
“이런! 어이! 대원사 쪽 보여줘 봐!”
나머지 한 대, 즉 대원사로 향하던 오토바이도 마찬가지였다.
범인은 마찬가지로 10여 분 달리다, 좌측 산 쪽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끝입니다. 더는 범인들의 흔적이 없습니다.”
범인들은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놈들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CCTV에 안 걸리고 덕산면까지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재차 농로와 산길을 이용하여 그들의 목적지로 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최종 목적지는 중산리도 대원사도 아닌 천왕봉?’
권 팀장은 잠시 고민하다 김유리 형사를 불렀다.
“이봐! 김 형사. 어제 내가 부탁한 것 모두 파악했어?”
팀장의 말에 김유리는 재빨리 지도를 그의 앞에 펼쳤다.
“여기 빨간 점으로 표시된 게 오늘 수색할 곳입니다.”
지도를 보던 권 팀장도 깜짝 놀랐다.
“뭐야? 산속에 서원, 사원, 점집, 기도원, 기도 터가 이렇게 많아?”
어림잡아 80곳이 넘는 것 같았다.
“그것도 해당 면사무소에 등록된 곳만 이렇다는 말입니다.”
“뭐야?”
“무허가 점집, 기도원을 합치면 최소 100곳이 된다고 합니다.”
김유리는 행여 팀장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런!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종교 공화국이 되었어! 쯧!”
“네?”
“아니, 최초 발상지인 나라에서는 쇠퇴일로에 있다던데, 우리만 성행하잖아!”
“…….”
김유리가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껌뻑거렸다.
“잘 생각해 봐. 요즘 미국이나 유럽에서 교회나 성당에 신도들이 있어? 기껏해야 늙은이 몇 정도로 유지하고 있잖아.”
“그건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형교회만 몇 개야? 유교는 또 어때? 발상지인 중국은 조용한데, 우리만 아직도 공자 운운하며 각처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고, 불교 발상지인 그곳은 이미 태반이 이슬람교로 개종했는데. 우린, 초파일 날 봐. 절에 얼마나 사람이 많아?.”
김유리는 팀장의 비유가 다소 황당했지만, 뭐라고 대꾸할 수가 없었다.
“저도 동감합니다. 그런데 팀장님.”
“뭐?”
“문제는 이 장소들이 모조리 산 중턱이나 그 위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승용차는커녕 자전거로도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수색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김유리의 말에 권 팀장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이란. 당연히 두 발로 뛰어야지.’
그리곤 그는 수색 작전의 조를 짜서 팀원들에게 지시했다.
권 팀장과 김유리가 한 조, 나머지도 2조로 만들었다.
마침내 세 대의 봉고차가 경찰서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