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반야바라밀은 바로 보현행이다. 관자재보살은 일체 중생을 섬기고 공양하는 보현행을 통해 깊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게 되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허망하고 공함을 알아 일체의 고액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본래 자리가 불생불멸이요 불구부증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화엄경 십지품 제6 현전지에는 공하고 모양 없는 데 들어가면 원하는 것이 없고 오직 대비만 남는다(如是入空無相已 無有願求 唯除大悲爲首)…그리하여 대비를 일으키어 중생을 버리지 않으면 반야바라밀이 나온다(而恒起大悲 不捨衆生 卽得般若波羅蜜現前).고 말한다. 자비에서 반야가 나오고 자비가 바로 반야바라밀인 것이다.
“자비는 인간이 가지는 본래 생명의 체온이다. 본래 생명은 육체에 갇힌 생명이 아니다. 육체 한 사람 한 사람 모든 사람의 육체, 마음을 창구로 하고 있어도 그 본체, 본 생명은 무한성이며 영원성이며 절대적인 존재다. 그가 가지는 그런 본래 생명의 체온, 이 체온은 버릴 수가 없다. 생명이 가지고 있는 그 체온은 버릴 수가 없다. 조건이 있어서 주어진 것도 아니다. 무한대로, 무진장으로 그냥 주기만 하는, 그것이 불교의 자비다.
자비를 행해서 성불을 바란다거나, 자비를 통해서 복되기를 바란다거나 그런 것은 복이 오고 성불을 하지마는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자비의 본질은 그와 같은 본체 생명, 진실 생명이 지니는 따뜻한 체온, 그것은 만인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佛性)이 만인의 가슴에 피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누구든 자기를 통해 진리의 꽃이 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서로가 아끼고 키워줘야겠다(금하광덕의 1986년 1월 6일 KSB 방송 ‘11시에 만납시다’에서 발췌)”.
금하광덕은 반야를 굉장히 강조한 선지식인데, 그는 반야행을 보현행원이라고 말한다. “반야대행은 보현행원이다. 서로 존경하고 찬탄하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공양하는 것이 바로 반야행이다” 광덕 메아리 없는 골짜기 200쪽
첫댓글 86년 당시는 스님도 초청하여 방송을 했다니 참으로 좋은 시절이네요.
불교의 위상을 느낍니다.
자비에서 반야가 나오고 자비가 바로 반야바라밀이다!
되새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_()()()_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