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버리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이사를 잘 하지 않았고 수납공간이 충분한 집에 살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제 기능을 상실해 버린 이런 저런 물건들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약간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니 다시는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버려야 할 필연적인 이유를 찾지 않고서야 구석에 잘 쟁여두는 편이다.
그렇다고 물건에 남다른 집착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주는 것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 아직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서 전해주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그 물건을 간직하고 있을 때도 있다. 하여 우리 집은 늘 복잡하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를 들어가는 것인지 가끔 내가 세상에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본다. 몇 명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유품을 정리할 기회가 있었기에 드는 생각일 수도 있다. 물론 내 손이 닿지 못하고 처박혀 있는 물건들이 눈에 밟혀서 그런지도 모른다. 내가 정리할 수 있는 물건, 손이 닿는 한도의 물건만 소유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에 한두 가지씩 정리를 한다. 오늘은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눈에 잘 들어오게 정리해 두었다. 지나가 버린 서류들도 눈에 보이는 데로 처분했다.
정리를 하다보면 지금의 내 상태를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어떤 물건의 필요여부를 가늠할 수 있고 소비계획을 정확하게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물건 정리에 소요되던 시간, 넓은 공간을 선물로 받게 된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자는 미니멀라이프에 공감하는 이유이다.
글을 쓸 때도 비슷했다. 처음 글을 쓸 때에는 가능성 있는 글감이나 생각을 좀처럼 버리기가 힘들었다. 늘 언젠가 쓰여 지게 될 다음을 염두에 두고 글감이나 문장을 아끼면서 사용했다. 누가 그랬다. 아끼면 똥 된다고. 이리 저리 재다가 똥 된 글감이 벌써 제법 된다.
그래서 요즘은 싱싱한 글감을 그때마다 사용해 버린다. 싱싱한 재료가 싱싱한 맛을 낸다. 퍼낼수록 신선한 우물 안의 물처럼 내 글도 항상 생기가 넘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