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연경의 내용은 앞에서 본대로 매우 수준 높은 중도를 설한 귀중한 가르침입니다. 이와같은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부처님과 그 직제자들이 생존하던 척肉【?� 이 가전연경이 제자들간에 자주 입에 오르내렸던 것은 물론, 소승불교를 거쳐 대승불교에서도 오직 이 경전이 언급될 정도였습니다. 이하에서 이 경전이 불교의 교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점검해 보고 후대의 여러 경전에서 이 경전과 관련하여 언급된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여래는 두 극단을 떠나서 중도를 말하느니라
그때 천타(闡陀)는 존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이제 마땅히 나를 위하여 법을 설하여 나로 하여금 법을 알고 법을 보게 하소서." 그때 아난이 천타에게 말하였다.
"나는 직접 부처님에게서 들었는데, (부처님은) 마하가전연을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거꾸로 되어 두 극단에 의지하니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 경계를 취하여 마음이 문득 분별하여 집착한다.
가전연아, 만일 자아에 대하여 감수하지도 아니하고 취하지도 아니하고 머물지도 아니하고 헤아리지도 아니하면 이 괴로움이 생할 때에 생하고 멸할 때에 멸한다.
가전연아, 여기에서 의심하지도 아니하고 미혹하지도 아니하여 다른 것에 말미암지 아니하고 능히 스스로 아니 이것을 바른 견해라고 이름하며, 여래가 말한 바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가전연아, 세간의 모임集〕을 여실히 바로 보면 세간은 없다는 견해가 생할 수 없으며, 세간의 멸함을 여실히 바로 보면 세간은 있다는 견해가 생길 수 없느니라.
가전연아, 여래는 두 극단을 떠나서 중도를 말하느니라. 이른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느니라. 말하자면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나고, 늙고, 병 들고, 죽음과 근심, 슬픔, 번뇌, 괴로움이 멸하느니라."
아난존자가 이 법을 말하였을 때 천타비구는 티끌을 멀리하고 때를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하게 되었다.
時闡陀語尊者阿難言......
今當爲我說法하여 今我知法見法하소서 爾時阿難語闡陀言호대 我親從佛聞하니
敎摩訶迦 延言하시대 世人은 顚倒하여 依於二邊하니 若有若無라 世人은 取諸境界하여
心便計着하니라 迦 延아 若不受不取不住不計於我하면 此苦生時에 生하고 滅時에
滅하니라 迦 延아 於此에 不疑不惑하고 不由於他而能自知하니 是名正見이며
如來所說이라 所以者何오 迦 延아 如實正觀世間集者 則不生世間無見이요
如實正觀世間滅 則不生世間有見이니라 迦 延아 如來離於二邊하여 說於中道하느니라.
所謂此有故彼有며 此生故彼生(亦生)하니 謂緣無明有行하여 乃至生老病死憂悲惱苦集하느니라 所謂此無故彼無며 此滅故彼滅하니 謂無明滅則行滅하며 乃至生老病死憂悲惱苦滅하느니라 尊者阿難說是法時에 闡陀比丘는 遠塵離垢하고 得法眼淨하니라
[雜阿含 第十 ; 大正藏 제2권 p. 66中-下]
이 경의 줄거리는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지 오래 되지 않은 때에 천타(闡陀)비구가 많은 비구들과 함께 녹야원(綠野苑)에 살면서 비구들에게 법을 물었으나 누구도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타비구는 '아난존자가 지금 코삼비국의 고오시타동산에 계신다. 그분은 일찍 세존을 공양하고 친히 뵈었으며 부처님이 찬탄하시는 모든 청정한 수행자들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분은 반드시 나를 위해 설법하여 나로 하여금 법을 알고 법을 보게 할 수 있을 것이다'하고 생각하고 그 밤을 지내고 코삼비로 떠나 아난존자를 찾아 뵙고 법을 알고 법을 보게 해 달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아난이 답변한 것은, 부처님이 옛적에 가전연에게 설한 법문이었던 것입니다. 즉 있다거나 없다는 두 극단을 멀리 여의고, 생하거나 멸하는 것을 연기의 도리에 입각하여 올바로 관찰하는 것이 바른 견해라는 것입니다.
아난 존자에게 남긴 부탁 - 차익비구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차익비구를 내가 열반한 후에 청정한 법답게 다스려서, 만약 마음이 조복되어지면 마땅히 가 전연경을 가르칠 것이니 (그리하면) 곧 도를 얻을 것이니라."
佛告阿難하시대 車匿此丘를 我涅槃後에 如梵法治하여 若心濡代이어든 應敎迦 延經이러니 卽可得道니라. [大智度論 제2권 ; 大正藏 제35권 p.66하]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열반하실 때에 아난존자에게 남긴 부탁의 말씀입니다. 차익(車匿)비구는 다름아닌 부처님께서 야밤에 성을 넘어 출가하실 때에 말을 몰던 마부입니다. 그런데 그는 성질이 고약하고 길들이기가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 말씀을 잘 안 듣고 행동을 바로 하지 못해서 부처님께서는 그것이 걱정이셨습니다.
'내가 있을 때는 그를 억제하여 데리고 지냈지만 내가 가고 난 뒤에는 누가 그를 이끌어 줄 것인가, 그를 어찌해야 하는가' 하는 심려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난존자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그의 마음이 얼마간 잡히거든 중도를 말한 가전연경을 가르치면 마침내 그도 도를 얻을 것이라고 예견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부처님께서도 이 가전연경을 중요하게 취급하셨던 것을 우리는 잘 엿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능히 능히 있음과 없음을 멸하시니
가다연나계경에서 말씀하시되, 세간에 두 가지 견해가 있으니 첫째는 있다는 견해요 둘째는 없다는 견해이니라.
迦多衍那契經中에 說호대 世有二見이니 一者有見이요 二者無見이니라
[大毘婆沙論 ; 大正藏 제27권 p.1002下]
이 말은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에 나오는 것입니다. 대비바사론은 가전연이 발지론(發智論)이란 논서를 지었는데, 그 뒤 오백명의 큰 비구들이 모여서 발지론을 장황하게 해설한 것입니다. 백권이나 되는 발지론을 지은 가전연은 부처님 당시의 가전연이 아니고 이름만 같은 다른 가전연입니다. 이 논은 소승불교의 논장 가운데서도 분량이 매우 큰 논장인데 거기에 가전연경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소승불교에서도 가전연경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능히 있음과 없음을 멸하시니, 가전연을 교화하는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있음을 여의고 없음을 여의라고 하셨다.
佛能滅有無하나 如化迦 延의 經中之所說에 離有亦離無하 [中論 ; 大正藏 제3권 p.20中]
용수보살은 중론(中論)을 지어 삿됨을 깨뜨리고 정법을 밝혀서 부파불교시대 소승의 변견을 부수어 버리고 중도의 정견을 복구시킨 분입니다. 그 중론에 인용된 경전이라고는 오직 이 가전연경 한가지 뿐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용수보살이 중론을 지을 때 가전연경도 의지한 것이 확실하다고 봅니다. 그만큼 용수보살도 이 가전연경을 근본불교의 골자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의 여러 가지 예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전연경이 대 소승을 통틀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다시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