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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14회 해양문학상 일반부 소설 부문 장려상 수상작품입니다.
국어사전에 '물마중'은 '봄에 농민들이 논밭에 댈 물을 보고 환성을 올리며 춤을 춤. 또는 그 일.
물마중을 나오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바다에서는 해녀가 깊은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처음 육지로 올라올 때, 힘겨운 상태에 있는
해녀의 손을 잡아주고 망사리를 들어주기 위해 가족들이 마중 나온다는 의미로 씁니다.
물마중/강순덕
엄마는 아침 햇살이 나비치는 창가를 좋아했다. 새벽녘 화장실을 자박자박 다녀오다가 그대로 소파로 가서 가만 앉아 있곤 했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엄마의 걸음 소리는 서늘하게 내 의식을 파고들었다. 어둠 속을 걷는 엄마의 모습을 쫓아갔다. 발바닥을 재빠르게 끌며 걷는 소리는 가볍고 단단했다. 등이 굽은 허리를 지탱하는 다리 근육이 엄마의 걸음을 점점 어렵게 하고 있음이다. 엄마가 화장실을 나와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거실 쪽으로 향하고 있다면 새벽이 오고 있다는 증거이다. 몸이 기억하는 대로 새벽을 여는 엄마를 따라 나도 잠에서 깨어났다.
엄마는 지금 소파에 앉아 커튼 사이로 동살 잡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 곧 어슴푸레 떠오르는 햇귀에 엄마는 '휴'하고 깊은숨을 내려놓을 것이다. 새벽잠을 설친 나는 더 누워있고 싶지만, 하릴없이 일어나야만 한다. 문틈 사이로 들어온 엄마의 한숨 소리가 내 몸을 일으켰다. 엄마는 무언가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아이처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기력 없는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엄마는 어느새 떠오른 해를 보며 좀 더 깊게 숨을 내쉬고 있다.
엄마는 굽은 검지를 천천히 들어, 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해가 성산포에서 왔느냐?”
“응. 엄마. 저 해가 성산포에서 왔어.”
엄마는 내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빙그레 웃었다. 아침 창가에서 뜨는 해를 볼 때마다 몇 번이고 내게 물었던 질문이다. 엄마의 눈빛이 촉촉이 젖었다. 아마도 엄마는 성산포 시흥리 앞바다나 오조리 귤밭 어딘가를 서성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서 엄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살았고, 가장 큰 슬픔을 삼켰으며, 그 후로 오랜 세월 떠도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하기에 엄마는 60년이란 세월을 거슬러 그곳을 그리워하며, 날마다 그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엄마는 무슨 말인가를 더 하고 싶은지 입술을 달싹거렸다. 엄마의 가슴 깊은 곳에서 자맥질하는 서러운 것들은 언제쯤 다 쏟아져 나올까. 가슴속에 가라앉은 그 많은 이야기가 어찌 쉽사리 입 밖으로 나올 것인가. 나는 엄마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바싹 마른 손을 잡았다. 거친 삶을 일궈온 손가락들이 겨울 나뭇가지처럼 거칠고 차갑다. 찬 바람 앞에서 꺾어질 듯 꺾어지지 않고, 휘어질 대로 휘어진 채 삶을 붙들어 온 두 손을 쓸었다.
엄마의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햇살은 성산포의 일출처럼 찬란하다. 나는 엄마의 손을 놓고 일어나 따뜻한 물을 한 잔 가져왔다. 물기가 가신 화분에 물 한 바가지를 따라주듯이 엄마의 입술을 적셨다. 엄마는 입을 작게 벌리어 한 모금을 마셨다. 한 모금의 물이 천천히 엄마의 목울대를 내려가는 걸 기다렸다. 다시 물잔을 가져다 엄마의 입술을 축였다. 물 마시는 모습이 어미 닭을 따라 하는 햇병아리 같다. 한평생 햇볕 아래를 떠돌았을 엄마의 몸은 햇볕 중독이다. 엄마는 오전 내내 물 한 잔을 겨우 마시고, 소파에 누워있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무언가를 입에 넣어주면 고개를 저으며 혀로 밀어냈다. 그냥 햇볕만 마신다. 창가에 둔 화분들처럼 물과 햇볕만으로도 살아갈 것 같다.
엄마는 성산포에서 온 햇덩이를 뜨개질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는 엄마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주름이 깊게 파인 이마와 푹 꺼진 양 볼, 살짝 열린 입술 사이로 낮은 숨소리가 비어져 나온다. 지금까지 엄마는 얼마나 힘들게 바다를 건너왔을까. 엄마의 가슴을 가만 쓸었다. 깊은 바다처럼 고요하다. 꿈속에서 엄마는 고향 바다 어딘가를 자맥질하고 있을 것이다. 눈 밑의 잔주름 사이로 짙어진 검은 반점들이 꿈틀댔다. 풍랑이라도 만난 걸까. 엄마의 이마가 파도처럼 거칠게 움직거렸다. 엄마는 아직 성산포 올레길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분이는 며칠째 누워만 있는 어멍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어멍은 가끔 눈을 떠 천장을 바라보다가 헛것을 보았는지 신음을 하며 몸서리를 쳤다. 허공에서 두 팔이 무언가를 찾는 듯 안간힘을 쓰다가 허우룩 꺼져버리곤 했다. 얼굴은 창호지처럼 투명하고, 손은 바짝 마른 나무처럼 가벼웠다. 어멍의 입술을 벌려 숟가락으로 물을 흘려 넣었다. 물은 어멍의 목으로 넘어가지 않고 입 밖으로 나와 입꼬리를 따라 주룩 흘러내렸다. 열이 펄펄 끓는 어멍의 이마에 차가운 물수건을 올려놓았다.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어멍의 뜨거운 몸을 주무르다가 끝내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어멍의 얼굴에 떨어지는 눈물을 닦으며 엎드려 울었다. 가슴을 방망이질하는 불안과 절망에 몸을 떨었다. 이제 어멍은 죽는 걸까. 분이를 두고 죽는 걸까. 어멍 죽으면 어떵할꼬. 분이는 어떵할꼬. 어멍 죽으면 어떵 살꼬.
어느새 봄이 오고 있었다. 돌담 너머 유채밭에는 노란 꽃망울이 터지고, 유채밭을 따라 바다로 가는 길섶에 수선화가 두엇 피어났다. 추운 겨울에도 수선화는 피었었다. 어멍이 물질하고 집으로 오는 시간에 맞춰 바다로 갈 때면 수선화는 늘 웃고 있었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몰아치는 바람 앞에서 어떻게 저리도 고운 웃음을 머금고 피어날까. 수선화를 닮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며 살고 싶었다. 어멍만 곁에 있다면 수선화처럼 씩씩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멍이 저 길을 걸어오고 있겠지. 저 길 끝에 가면 손 흔드는 어멍이 보이겠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길을 걸어 바다로 뛰어가곤 했었다.
성산포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봄이 왔다고 따뜻해지는 건 아니다. 바람은 사철 무섭게 불었다. 바다처럼 힘이 세고 사나운 바람은 바다와 힘을 합쳐 모든 것을 포악스럽게 빼앗아갔다. 바다와 바람은 사람의 것을 흔적 없이 집어삼키는 괴물이었다. 봄바람이 유채 꽃을 피워 세상을 환하게 밝혀도 사람들은 거친 풍랑 속을 건너가야 했다.
성산포 사람들은 아무리 사나운 바람이 부는 날에도 바다에 갈 수밖에 없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아 와 밥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바다는 무섭지 않았지만 바람은 무서웠다. 바람이 바다를 만나는 날을 두려워했다.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삶이었다. 그러나 식구들의 밥을 위해 바람 부는 바다라고 피할 수 없었다. 한 달 전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분이의 아방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같이 배를 타고 나갔던 사람 중에 돌아온 사람은 옆집 석이 아방뿐이었다. 아마 내년 이맘때가 되면 몇몇 집에서 제사를 지낼 것이다. 그렇다고 석이 아방이 그 제삿밥을 먹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물 허벅을 지고 집을 나서는 분이에게 석이 아방이 말했다.
“분이야. 니 아방은 이어도로 갔져.”
“이어도가 어디꽈? 아방 찾아줍서. 안 그러면 우리 어멍 죽으쿠다. 어떵하우꽈.”
분이는 석이 아방의 다리를 붙잡고 울며 매달렸다.
“분이야. 잘 들어 보라게. 이어도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여. 이어도는 착한 사람들한테만 보여. 바당에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다 똑같이 죽은 게 아니여. 어떤 사람은 죽어서 하늘로 가지만, 이어도에 가서 평생 사는 사람도 있주게. 이어도는 분이 아방처럼 맘씨 곱딱한 사람들만 갈 수 있는 좋은 곳이라. 그러니까 분이는 아방 죽었다고 울지 마라. 아방은 죽지 않았어. 어멍 말 잘 듣고, 열심히 살면 아방은 살아있는 것이다. 맹심해라.”
“그게 정말이꽈? 아방이 착하니까 이어도로 간 거꽈. 게난 아방은 돌아올 수 이수꽈?”
“맞다. 아방은 죽지 않았어. 이어도로 간 거라.”
“경허믄 우리 어멍은 무사 안 일어남수꽈. 밥도 안 먹고 꼭 죽을 거 같수다.”
“분이야. 걱정하지 마라. 이제 어멍도 일어나주. 설마 니를 놔두고 죽기야 하겠냐.”
“알았수다. 고맙수다.”
분이는 진심으로 석이 아방의 말을 믿었다. 아방은 이어도에 갔다. 고기 잡아 돈을 많이 벌면 배를 타고 다시 돌아올 거다. 아방은 어멍과 분이를 사랑하니까 꼭 돌아올 거다. 아방이 이어도로 갔다고 생각하니 분이는 힘이 나서 웃을 수 있었다.
성산포 바람은 사람들의 삶을 부숴버리곤 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남자들은 때때로 돌아오지 않았다. 뱃사람들은 바람이 매서운 날에는 이어도를 본다고 했다. 이어도를 본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이어도를 볼까 두려워 평생 배를 타지 않았다. 뱃사람들은 이 세상이 사는 게 힘들어 이어도라는 환상의 섬을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타고 나갔던 부서진 배와 죽은 사람들의 몸이 파도에 실려 돌아오면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기다려도 오지 않으면 남은 가족들은 눈물을 멈추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번엔 분이 아방 차례였다. 아방도 이어도를 보았을까. 이어도에서 좋은 꿈을 꾸고 있을까. 분이도 아방은 이어도로 갔다고 생각하며 잊어야 했다.
어멍이 죽지 않을 거란 석이 아방의 말을 믿었지만 일어나질 못했다. 분이는 열세 살에 어멍을 성산포 바닷가에 묻었다. 아방을 이어도에 묻은 지 겨우 석 달 만이었다. 아방을 찾아갔을까. 어멍은 마지막으로 분이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을 뿐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겨울에는 수선화가 피고 보리가 자라는 곳, 성산포에서 뜨는 해를 제일 먼저 보는 곳, 꿈속에서 이어도를 보게 되면 아방을 찾아갈 수 있도록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돌담 밭에 묻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목욕한 엄마에게 옷을 입혔다. 야자수 잎사귀가 그려진 초록색 티셔츠였다. 엄마는 이 옷을 좋아했다. 한번 입었다 하면 도무지 벗으려 하지 않는 옷이다. 나는 엄마에게 이 옷을 누가 사주었냐고 물었다. 엄마는 한참 망설이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그 아이가 사준 옷이라며 웃었다.
“응? 그 아이? 그 아이가 누군데?”
나는 깜짝 놀라서 다시 물었다. 사실 그 옷은 준혁이 사 줬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아이라니,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손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습을 보자 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놀란 마음을 억누르며 다시 물었지만 역시 기억이 안 나는지 엄마는 우물쭈물 중얼거렸다.
“거. 있잖아. 그 아이….”
“그러니까. 그 아이가 누구지? 누구길래 이렇게 이쁜 옷을 엄마에게 사줬을까.”
엄마는 고개를 숙이고, 난처한 표정이 되어 입을 다물어 버렸다. 고개 숙인 엄마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엄마는 요즘 최근의 기억을 잊어가고 있다. 나는 혹시나 준혁이 이름마저 잊었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엄마는 가끔 이십 년 전 어느 누추한 골목길을 헤매거나, 육십 년 전 가슴 아팠던 순간들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마다 여지없이 엄마의 입에서는 한숨처럼 새어 나오는 말이 있었다. ‘어떵헐꼬. 어떵헐꼬.’엄마의 망연자실했던 순간들이 그 말에 담겨있었다. 나는 엄마의 입에서 또 그 외마디가 터질까 봐 가슴이 두근거렸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는 이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부드럽게 말했다.
“아. 준혁이 말하는구나. 엄마가 사랑하는 손주. 준혁이.”
엄마는 준혁이라는 이름에 갑자기 얼굴이 환해졌다.
“응. 그래. 이쁜 준혁이.”
“아이구. 이쁜 준혁이가 이쁜 엄마에게 이쁜 옷을 사줬네.”
엄마는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빙그레 웃었다. 준혁이가 옷을 사 왔을 때를 기억하는 듯 더 활짝 웃었다. 기분이 좋아진 엄마는 바깥에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번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보라색 스웨터를 가져왔다.
“이 옷은 누가 사준 거야?”
나는 혹시나 이 옷을 기억하고 있을까? 의구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누가 사주긴. 내가 샀지. 시집오기 전에.”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몇 년 전에 시장에서 같이 산 옷인데, 시집오기 전에 샀다고 말하는 엄마의 천진스러운 표정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엄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엄마의 텅 빈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엄마는 나를 보며 그저 웃고 있다. 내 앞에서 숨을 쉬지만, 먼 곳으로 뒷걸음질 치며 꿈을 꾸는 사람 같다.
이제 세상에는 분이 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십 리 길을 걸어서 물을 길어 오고, 말똥을 주어와 불을 때서 밥을 했다. 아방과 어멍을 빼앗아간 목숨 줄이 달려있기에 숨을 쉬는 것이고, 숨을 쉬는 한 삶을 멈출 수는 없었다. 먹고 배설하고, 잠이 들고 깨어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가야 했다. 그 모든 것에 일이 있었다. 일하면서 고통을 잊었고 배고픔도 잊었다.
바람이 센 날에는 새벽부터 바다로 나가서 날듬북을 걷어 말렸다. 시커멓고 어두컴컴한 바다로부터 하얀 파도가 끝도 없이 밀려왔다. 파도에 실려 까만 날듬북이 따라왔다. 파도를 넘나들며 날듬북을 끌어다가 모래밭에 펼쳐놓았다. 파도로부터 날듬북을 끌어올리는 작업에 쓰러질 지경이 되면 아침이 밝았다. 여명의 빛들이 바다를 드러내고 일출봉 너머로 붉은 햇덩이가 솟아오를 무렵이면 흰 모래밭은 온통 검은빛으로 출렁거렸다.
분이는 동네 사람들을 따라서 밭일도 했다. 성산포의 겨울바람은 사정없이 불어 돌담을 무너뜨릴 것처럼 무서워도 사람들을 살게 했다. 매서운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어도 흙 속은 따뜻했다. 밭에는 당근이 자라고, 유채가 자라고, 무와 파가 자랐다. 새벽부터 당근을 캐다가 언 몸에 뜨거운 국물도 없이 차갑게 식은 보리밥을 밀어 넣었다. 식은 보리밥도 달았다. 살기 위해 일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밥을 먹었다. 슬픔을 잊고 바쁘게 살기 위해 물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석이 어멍이 분이의 손을 잡고 시흥리 불턱으로 데리고 갔다. 불턱은 해녀들이 물질을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바다에 나갈 채비도 하고, 추운 날엔 몸도 녹이는 곳이었다. 성산포에서 가장 오래 상군해녀로 물질을 하다가 이제는 하군 해녀들을 가르치는 복산 할망이 분이를 맡아 가르치기로 했다.
복산 할망은 분이에게 물질을 하는 것에 앞서 바닷속에서 숨을 쉬는 법과 숨을 참는 법을 가르쳤다. 물질을 잘하는 것은 물숨을 참는 거라고 했다. 육지에서는 숨을 잘 쉬어야 살지만, 바다에서는 숨을 잘 참아야 살 수 있다고 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숨을 잘 알아야 하고, 그만큼만 물질을 해야지 조금이라도 더 욕심을 내면 물숨이 찾아와 죽는 건 순간이라고 했다. 분이는 복산 할망의 말을 잘 알지 못했다. 왜 숨을 참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바다에 들어간 후 알게 되었다. 바닷속은 보물창고였다. 가지고 싶은 게 널려 있었다. 숨을 참으면 많은 것들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다고 다 자신의 손에 쥘 수는 없었다. 분이는 많은 것들을 욕심내지 않았다. 어멍이 헤엄쳤던 바다를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어멍의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길 기다리는 아기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바다는 또 하나의 어멍이 돼 주었다.
바다 위에 테왁을 올려놓고 바닷속으로 내려가는 시간이 기다려졌다. 바다는 욕심내지 않아도 많은 것을 주었다. 언제나 빈손으로 내려가도 망사리 가득 소라와 전복을 채워주는 바다가 신기했다. 처음에는 바다로 들어가는 게 죽을 것처럼 두려웠지만 막상 해보니 사는 것보다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무서웠던 바다가 분이를 키웠다. 복산 할망은 분이가 숨이 길어서 물질을 잘할 수 있는 몸이라고 했다. 얕은 바다에서 물질을 배운 분이는 점점 깊은 바다로 갔다. 이제 소라와 전복도 딸 수 있었다. 처음으로 전복을 따던 날의 기쁨을 잊지 못했다. 전복을 따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바위에 붙은 전복을 쉽게 알아볼 수 없었으나 차차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솔방울처럼 하나둘도 아니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매달려 있었다. 그것이 전복인 걸 알아차리고, 검은 바위에 붙은 단단한 물체 밑으로 빗창을 쑥 밀어 넣었다. 끈끈한 생명력이 손끝에 전해졌다.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바위로부터 떼어내고, 바다 위에 올라와 첫 숨비소리를 냈다. 테왁을 가슴에 안고 휘파람 소리를 내니 눈물이 나왔다. 어멍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멍도 나처럼 이렇게 ‘호오잇’ 하고 숨을 쉬었겠지. 어멍의 길고 큰 숨비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물질이 끝나면 바다에 나간 어멍의 숨비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던 곳에 앉아서 지는 노을을 보았다. 해가 지도록 어멍의 무덤가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어두워지면 집으로 돌아왔다. 노을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의 외로움과 그리움들이 녹아 내려갔다. 어멍이 내 숨소리를 들으면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위로를 받았다.
바다는 아방을 데려갔다. 그리고 이젠 어멍마저 없는 아이를 키워주는 바다가 되었다. 어멍의 무덤가에 피던 수선화가 피었다가 지기를 여섯 해가 지났다. 분이는 바다를 오가며 아이에서 비바리가 되었다. 두 눈은 바다처럼 깊어졌고, 까맣게 그을린 팔다리는 시원한 야자수처럼 길게 뻗어내렸다. 단단한 등 위로 흙빛의 긴 머리가 찰랑거렸다.
물질을 끝내고 불턱에서 옷을 갈아입는 분이를 보며 복산 할망이 말했다.
“우리 분이 하영 컸져. 이제 시집가야 되크라.”
“할망. 시집은 무슨 시집이영 햄수꽈. 난 시집 안 가쿠다.”
분이는 깜짝 놀라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눈망울을 더욱 크게 뜨며 말했다.
“무사 시집을 안 간당햄시니. 요렇게 곱딱한 얼굴 아까웡 어떵하크라.”
복산 할망은 분이의 깜짝 놀라는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그거 누게 있잖수꽈. 부 씨 할망 조카가 오조리 산다는데 아주 좋은 총각이란 말 들었수다.”
석이 어멍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받았다.
“아이. 삼춘까지 무사 경햄수꽈?”
분이는 정말 알 수가 없었다. 시집이라니.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속에서 치오르는 소리가 입속에서 머뭇거리고, 목이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석이 어멍아. 부 씨 할망 조카라면 나도 들어본 적 있주게. 말이 나온 김에 퍼뜩 분이랑 만나게 나서보라.”
복산 할망은 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석이 어멍에게 말했다.
“할망. 난 바당에서 살다 죽으쿠다. 다신 그런 말 하지 맙서. 서방은 필요 없수다.”
분이는 더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어 도망치듯 불턱을 빠져나왔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어멍에게 돌렸다. 언젠가부터 어멍의 무덤가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멍이 내 손을 잡고 무덤으로 들어갈 것 같았다. 그러면 나는 어멍에게 가리라. 어멍이 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어도를 불렀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아, 분이는 어멍이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시집을 가리라. 어멍 없는 내가 누구를 위해 시집을 가나.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가슴속에서 터지는 한숨과 눈물은 노래가 되었다.
석이 어멍과 복산 할망을 만나기가 두려워서 며칠 동안 바다에 나가지 않았다. 석이 어멍에겐 몸이 아파 물질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프다는 핑계를 댄 것이 병이 되었는지 분이는 몇 날 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온종일 방안에 누워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설핏 잠에서 깨니 방안 가득 해가 들어와 있었다. 온몸에 퍼지는 햇살이 분이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가 지고 있는지 뜨고 있는지 알 수도 없었다. 천천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쪽마루에 보자기가 덮인 그릇이 있었다. 삶은 지슬과 보리죽이었다. 지슬을 하나 집어서 한입 베어 먹었다. 방금 찐 것인지 햇살에 데워졌는지 따뜻했다. 지슬의 따뜻한 촉감이 입에서 목구멍으로 가슴팍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지슬이 지나간 자리마다 감각이 살아났다. 산 사람은 이렇게 먹고, 사랑하고, 가족을 만드는 것이구나. 혼자서는 살 수가 없구나. 이 험한 바다에서 무슨 수로 혼자 살 것인가. 생각하니 눈물이 흘렀다. 어멍도 없는 나를 키워주고 사랑해 주는 석이 어멍과 복산 할망이 고마웠다. 분이는 물을 마시려고 비척비척 일어나 정지에 다녀오고는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저녁노을이 쏟아지는 물결은 검붉은 고등어의 지느러미처럼 팔딱거렸다. 성산포 앞바다에는 한 떼의 돌고래들이 춤을 추며 먼바다로 돌아가고 있었다. 검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감자꽃이 하얗게 피어났다. 바닷가에는 보라색 순비기 꽃이 바람에 살랑대고 있었다.
분이는 아직 열세 살의 어린 소녀였다. 순비기 꽃을 따며 바다에 나간 어멍을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어멍의 숨비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어멍의 숨비소리는 높고 길었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가장 먼 곳까지 퍼져나갔다. 분이를 부르는 어멍의 숨비소리를 더듬어내며 바다로 걸어갔다. 석이 어멍이 손을 흔들며 지나가고, 멀리 복산 할망이 허리를 굽혀 망사리를 접고 있는 모습이 다가왔다. 복산 할망의 허리 위로 파도가 밀려오며 하얗게 부서졌다. 파도 너머 어멍이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분이도 어멍을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어멍은 파도를 넘고 해안가로 걸어왔다. 소라와 전복이 가득 들어있을 망사리를 끌고 쓰러질 듯 육지로 올라서고 있었다. 분이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빨리 달려가 어멍의 손을 잡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발을 떼려 하면 할수록 진흙에 빠진 것처럼 자꾸만 밑으로 주저앉아버렸다.
어멍은 망사리가 무거운지 힘겨운 몸짓으로 한 발을 겨우 땅 위에 올려놓고 서 있었다. 어멍의 등 뒤로 파도가 달려왔다. 분이는 어멍이 바다로 휩쓸릴까 무서웠다. 멀리서 커다란 물고기가 어멍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분이는 어멍과 물고기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온 힘을 다해 어멍을 불렀지만, 외침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그 물고기는 어멍의 뒤에서 망사리를 잡아당겼다. 어멍은 망사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분이는 울면서 다시 한번 어멍을 불렀다. 분이의 목소리는 파도처럼 부서져 어멍에게 닿지 않았다. 애타는 분이의 눈물 앞에서 어멍이 망사리와 함께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어멍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분이는 어멍을 소리쳐 부르며 까무러쳤다.
참으로 이상한 꿈이었다. 꿈속에서 어멍은 망사리를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육지에 오르려고 안간힘을 쏟는 어멍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어멍은 거친 파도와 함께 바닷속으로 쓸려가 버리고 말았다. 분이는 어멍의 손을 잡지 못했다. 어멍에게 다가가려고 몸부림쳤으나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처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파도에 휩쓸려 바닷속으로 잠기는 어멍의 마지막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서워서 파들파들 떨던 감각이 살아 온몸을 휘감았다. 꿈속에서 어멍을 만난 게 정말 꿈일까.
분이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물질 준비를 하고 석이 어멍에게 갔다.
“삼춘. 고맙수다. 지슬 잘 먹었수다.”
분이는 간밤의 악몽을 떨쳐버리려고 애써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래. 이젠 어떵 괜찮으냐. 물질은 해지크냐. 좀 더 쉬주게.”
석이 어멍이 분이의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니우다. 삼춘 덕에 힘이 하영 남수다. 앞장서 걸읍서.”
분이는 석이 어멍을 따라 걸으면서 어멍을 만난 꿈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왠지 바다가 무서워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분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석이 어멍은 걸음을 멈췄다. 뒤를 따라오던 분이의 손을 잡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이의 몸은 누구보다 단단했고, 숨이 길어서 물질을 잘할 수 있는 체격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해 왔다. 그러나 물질을 잘할 수 있는 조건은 단순히 몸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바다가 선택한 몸이라야 했다. 분이는 바다가 살리는 몸일까. 바다가 데려가는 몸일까.
“분이야. 아무래도 니는 이제 물질하면 안 되겠져. 어멍이 물질하지 말라고 꿈에 나온 거 닮다. 잘 들어봐라. 니가 처음에 물질할 때 복산 할망이 말한 거 기억햄시냐? 물질을 잘하는 것은 물숨을 잘 참는 거라 했지. 지금까지 분이는 누구보다 잘해 왔어. 그런데 물질을 잘하는 만큼 중요한 게 있주게. 그것은 물질을 끝내고 육지로 올라올 때라. 그때 누군가 손을 잡아줘야 하는 거주게. 바닷속에서 참았던 숨을 뱉어가며 육지에 오르는 건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힘든 고개라. 지금은 니가 젊어서 그까짓 거 하겠지만, 서른만 넘으면 그게 쉽지가 않주. 어떤 날에는 정말 저승 가는 길처럼 무서울 때도 있주게. 온몸이 무겁고 발이 안 떨어져. 그걸 니 어멍이 꿈에서 보여준 거라. 니는 물질하면 안 되는 팔자인 거주게. 오늘부터 물질을 접어라. 큰일을 당할 거 같아 무서워. 어서 집에 들어가서 하루 더 쉬고 있으라. 내가 저녁에 물질 끝내고 갈 테니까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분이는 석이 어멍의 말이 어멍의 말처럼 느껴졌다. 어멍이 석이 어멍의 몸을 빌려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갑자기 바다가 무서워졌다. 바다가 아방을 데려갔듯이 아방이 분이를 이어도로 데려갈지 모른다. 분이의 발길은 어멍에게로 향했다. 온종일 어멍의 무덤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소가 길게 누운 듯한 우도와 커다란 궁전처럼 우뚝 솟아 있는 일출봉 사이로 푸른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저 바다 너머 분이가 보지 못한 이어도가 있다. 이어도에 아방이 있다. 이어도로 간 사람을 그리워하면 이어도로 가게 된다고 복산 할망이 말했었다. 물질을 안 하면 이제 무엇을 할까. 난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 아니 먹고 사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살아가야 한다면 어멍의 품처럼 푸근한 바닷속이 그리울 뿐이다. 온종일 성산포 바다가 분이 앞에서 너울거렸다. 바닷속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두려움이 다시 밀려와 행복한 기억들을 부숴버렸다.
저녁나절에 석이 어멍이 찾아왔다. 물질을 끝내고 온 석이 어멍의 몸에서 성산포 깊은 바닷내가 풍겼다. 분이는 어멍의 몸에서 나던 푸른 바닷내를 떠올리며 석이 어멍을 보았다. 석이 어멍은 아무 말 없이 한참 동안 지는 해를 바라볼 뿐이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져서야 무겁게 입을 열었다.
“분이야. 니도 이제 스물이 되었구나. 어멍이랑은 친자매처럼 오랫동안 서로 위해주멍 살았지. 내가 석이를 낳고, 니 어멍이 분이를 낳고…. 서로 젖도 나누면서 니들을 키웠져. 이담에 둘이 각시와 서방이 돼서 행복하게 살도록 하자고 약속도 했지. 석이는 아직 할 줄 아는 게 없고, 분이를 지켜줄 만한 힘도 없어. 다행히도 분이가 물질을 잘해 바다에서 힘을 기르고, 바다를 넘나들며 우리랑 같이 살길 바랐지. 분이야. 바다는 아무한테나 마음을 주지 않아. 바다는 분이에게도 쉽지 않은 삶이 되리란 걸 느꼈어. 게난 내가 결심했다. 지난번에 말한 오조리 총각, 내가 부 씨 할망을 통해 그쪽에 대해서 물어봤주게. 경했드니 한번 만나고 싶대. 그 집이 오조리에서 일등가는 부자야. 당근밭이랑 유채밭도 있고 귤낭도 하영 있어. 물질을 안 해도 걱정 없이 산댄 안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니랑 딱 맞는 짝이라. 니 어멍이 그 오조리 총각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꿈에 나타난 거 같아. 니가 제대로 시집을 가서 살아야 어멍도 눈을 감지. 싫다고 하지 말고 한번 만나나 보라.”
석이 어멍은 어떡해서든 분이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쓰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잘 알았수다. 삼촌 말 들으쿠다. 한번 만나 보쿠다.”
분이는 석이 어멍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이고. 참 잘 생각했져. 이렇게 착한 분이를 데려가는 그 총각도 복이여게.”
석이 어멍은 눈물을 흘리며 분이의 팔을 쓰다듬었다.
“복은 무사 복이꽈. 어멍 아방 아무것도 어신디. 나를 데려가기나 하쿠꽈.”
분이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며 말했다.
“경 모르는 소리 마라게. 우리 분이는 곱딱하고 요망지고 착하기로 성산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비바리란 마씸. 하하하.”
석이 어멍은 기분이 좋아 분이의 손을 잡고 울었다. 분이도 어멍을 생각하며 울었다. 석이 어멍의 눈물 고인 웃음이 편안했다. 이제 세상에서 분이를 지켜줄 사람은 석이 어멍뿐임을 알기에 그의 말을 따르는 게 잘한 거라고, 그의 말이 어멍의 말이라고 믿기로 했다.
며칠이 지나 석이 어멍의 집에서 영철이를 만났다. 분이는 거울 앞에서 웃음을 지어보기도 하고,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으며 매무새를 살폈다. 참으로 오랜만에 거울을 본 듯도 하고, 그런 자신의 얼굴이 낯설기도 했다. 밝은 표정을 하려고 애써 웃음을 지으니 마음도 따라 웃는 것 같았다. 영철이라는 오조리 총각은 부리부리한 눈매처럼 성격도 좋고 다정했다. 게다가 키도 훤칠하고 잘 생겼다. 분이는 바다에서 물질만 하다가 처음 만난 남자에게서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안절부절못하고 앉아서 뛰는 가슴을 누르느라 진땀을 뺐다. 영철이 묻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다. 분이에게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영철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로 들렸다. 분이에게 어디 가고 싶냐고 물으면 시집을 가고 싶냐는 말로 들렸다. 영철이 웃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떨리고 얼굴이 뜨거워져 더 말을 못 했다.
분이는 영철과 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지만, 그의 환한 웃음이 눈앞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멍에게 가서 영철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어멍이 보았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어멍이 있었으면 떳떳한 마음으로 시집을 갈 수 있을 텐데. 너무나 좋은 사윗감이라고 어멍은 또 얼마나 행복해할까. 혹시나 꿈에서라도 어멍을 만나게 될까 봐 날마다 어멍의 무덤을 찾아갔다. 어멍의 다정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바람결에라도 어멍이 나타날까 기다렸다. 한참을 앉아 있으니 눈물이 났다. 눈물은 마르지도 않는지 어멍 생각만큼이나 뜨겁게 흘렀다. 분이의 들썩이는 어깨에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영철이 싱긋 웃는 얼굴로 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철의 손에는 보랏빛 순비기 꽃이 들려 있었다. 영철은 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분이는 영철의 손을 잡지도 못하고 엉겁결에 일어났다. 눈물도 닦지 못한 얼굴이 부끄러워 영철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영철은 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분이의 두 손에 순비기 꽃을 안겨주며 말했다.
“분이야. 순비기 꽃 닮은 분이야. 울지 마라게. 순비기 꽃처럼 씩씩하게 살아야주. 나는 분이에게 장개갈 거야. 그래서 분이가 울지 않도록 하영 소랑해 줄 거야.”
분이는 영철의 뜻밖의 고백에 깜짝 놀랐다. 영철이가 다녀간 후 석이 어멍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영철이 분이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무슨 말이 있었을 텐데 아무 말이 없으므로 그냥 끝났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게 잘된 거라고 체념하던 참이었다.
“정말이꽈. 나는 아무것도 어수다. 어멍도 아방도 아무것도 어서마씸.”
분이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날 소랑하면 되주게. 느영나영 고치 소랑하며 살자.”
분이는 꿈만 같았다. 기쁘고 부끄러운 마음에 순비기 꽃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영철은 분이를 가슴에 안고 말했다.
“분이야. 이제부터 내가 분이 어멍 아방 대신 더 많이 소랑해 줄게. 게난 내가 보는 앞에서 절대 울면 안 된다. 알안?”
“알았수다. 울지 않으쿠다.”
“우우우.”
소파에 누운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다. 엄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고 있다. 요즘 엄마의 얼굴은 파도가 지난 바다처럼 매양 고요하다. 텅 빈 눈동자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허공을 휘젓고 있는 엄마의 두 손을 잡았다. 허리가 아픈 엄마를 일으키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엄마 스스로 일어나려고 하지만 몸이 좋지 않은 날엔 숨비소리처럼 우우우 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엄마를 비스듬히 소파에 앉힌 다음 가슴에 안았다. 엄마가 우유를 마실 시간이다. 엄마는 아이처럼 물보다 우유를 좋아했다. 엄마의 몸이 중심을 잡고 앉을 수 있도록 쿠션을 길게 세워 의지를 해주고 냉장고에서 우유 반 잔을 따라 왔다.
“엄마. 우유 마시자.”
엄마는 겨우 우유 두 모금을 마시고 입술에 남은 우유를 지우며 말했다.
“고맙다. 네가 있어서 좋구나,”
“나도 엄마가 있어 좋아. 사랑해.”
“내가 죽어야 하는데, 죽어지지가 않는구나.”
엄마는 저녁노을이 물드는 창밖을 보며 슬픈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너 위로 언니가 있었는데, 살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 혼자 힘들게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엄마는 또다시 언니 얘기를 꺼냈다. 나는 사실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죽어서 세상에는 엄마와 단둘만 있다고 생각해 왔다. 엄마는 아버지나 가족에 대하여 전혀 말을 하질 않았었다. 어려서는 먹고살기 바쁜 엄마와 한가하게 옛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고, 철이 들 무렵부터는 엄마를 떠나서 살았으니 들을 기회가 없었다.
엄마는 요즘 함께 있으면 옛이야기를 자주 했다. 아니 그날들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성산포와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은 아버지를 추억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열세 살 아이였다가, 스무 살 비바리가 되었다. 엄마의 눈동자에는 비와 바람을 허리에 지고, 혼자 걸어온 세월처럼 파도가 넘실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내 위로 있었던 언니를 불쑥 꺼내놓고 한탄했다. 엄마의 가슴속에만 살아있던 언니의 존재를 처음 듣고 나는 많이 울었었다.
분이는 스무 살 가을에 시흥리에서 오조리로 시집을 갔다. 일출봉을 사이에 두고 시흥리는 왼쪽에 오조리는 오른쪽에 있었다. 두 마을은 한라산을 뒤에 두고 일출봉을 앞에 두고 나란히 이웃했다. 오조리로 가는 풍경도 낯설지 않았다. 왼쪽엔 푸른 바다가 오른쪽에 검은 돌담 밭이 펼쳐져 있었다. 영철의 집으로 가는 올레길은 밀감들이 노란빛으로 익어갔다. 봄이면 일출봉 자락을 노랗게 물들이던 유채밭에는 배추가 푸르게 자랐다. 영철의 집 앞마당은 밀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전등을 달아놓은 것 같았다. 영철은 작은 밀감을 하나 따서 쭈글쭈글한 껍질을 벗겨 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분이는 새콤달콤한 밀감을 입에 넣고 눈을 감았다. 아, 정말 이렇게 달콤한 맛이 있을까. 처음 맛보는 단맛에 마음이 다 녹아내렸다. 세상 모든 시름이 달보드레한 밀감 속으로 사라졌다.
분이의 신혼은 입속에서 퍼지는 밀감 향처럼 달고 행복했다. 건강하고 젊은 분이는 시집간 지 열 달이 되자 첫딸을 낳았다. 영철은 돼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했다. 시흥리에서 석이 어멍과 복산 할망이 찾아와 축하를 해주었다. 분이는 어멍을 만난 것처럼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바다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석이 어멍이 고개를 저으며 안될 말이라고 했다. 이렇게 훌륭한 신랑이 곁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말했다. 죽을 결심을 해야 들어가는 바다를 왜 잊지 못하냐고 야단을 쳤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문턱에 와 있었다. 봄에 심은 깨밭에 꽃이 지고 깨가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바람에 묻어오는 쌉싸름한 깨 향을 맡으며 분이는 희고 고운 딸을 안았다. 젖을 물리며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영철은 집으로 올 때마다 익어가는 밀감을 따와 분이에게 주었다. 분이는 밀감을 입에 넣으며 행복하게 웃었다. 딸을 품에 안은 분이는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모든 게 꿈 같았다. 비현실적으로 완전한 행복이었다.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뜨거운 바람이 야자수 나무를 잡고 흔들었다. 긴 잎들이 방향 없이 부는 바람에 귀신처럼 울부짖었다. 걸어 잠근 방문을 금방이라도 열어젖힐 듯 휘몰아쳤다. 덜컹거리는 문소리에 아기가 깨어 울었다. 아기의 몸은 며칠째 뜨거웠다. 부풀어 오른 입술은 젖도 물지 않았다. 분이는 보리를 끓여 차가운 물을 아기의 작은 입에 흘려 넣었다. 아기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울뿐 물을 넘기지 못했다. 찬 수건으로 아기의 온몸을 닦으며 열을 식히려 애썼다. 잠시 내렸던 열은 다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할 뿐 차도가 없었다.
영철은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며 밤새 집을 들락거렸다. 문이 덜컥거릴 때마다 분이는 아기의 가슴에 손을 가만히 얹고 토닥였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지붕을 벗겨낼 것처럼 사나웠다. 통째로 집을 날려버릴 듯 흔들었다. 밀감나무에 달린 밀감들이 떨어지는 소리에 심장이 멎고,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에 온몸이 부서졌다. 영철은 지친 몸으로 새벽에 들어와, 깨가 다 떨어지겠다고 혼잣말을 하며 잠들었다. 분이는 열에 들뜬 아기와 쓰러져 잠든 영철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눈물이 났다. 모든 게 자신의 허물 같았다. 하필이면 복 없는 여자를 만난 영철에게 미안했고, 어쩌다가 복 없는 어멍을 둔 딸아이가 불쌍했다. 잠시 왔던 행복은 꿈이었고, 내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은 자신이 불러온 재앙이라고 여겼다. 내 행복을 바라고 시집을 온 게 잘못이란 걸 깨달았다. 답답하고 원통한 마음을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왔다. 밀감밭을 지나 바닷가에 있는 깨밭으로 갔다. 비바람에 깻대가 쓰러져 서로 엉키고, 고랑에는 깨들이 쏟아져 있었다. 정신없이 깻대를 세우고 치마폭에 깨를 쓸어 담았다.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바람이 자고 있었다. 멀리 시흥리 어멍의 무덤을 가늠하며 어멍을 불렀다. 더 멀리 이어도에서 아방이 분이를 부르고 있는 듯했다. 아방을 원망하며 바다를 향해 뛰어갔다. 모래밭에 엎드려 밀려오는 파도 앞에서 울부짖었다.
“아방. 분이를 데려갑서. 우리 불쌍한 아기를 제발 살려줍서.”
하얀 파도 너머에서 아방이 손짓하는 걸 보았다. 아방을 향하여 분이는 나를 데려가라고 절규하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파도가 분이를 집어삼킬 듯 달려들었다. 파도에 실려 바닷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이어도로 가자. 아방에게 가자. 멀리서 손을 흔들며 부르는 아방을 보며 쓰러졌다. 어느새 영철이 달려와 바다로 뛰어드는 분이를 껴안았다. 영철은 분이를 안고 온몸으로 소리쳤다.
“바당이 다 뒤엎어졌는데 죽으려고 가냐게. 날 두고 분이만 가면 나는 어떵 사느냐? 정신 차려라. 분이야.”
“분이는 죽으쿠다. 제발 날 죽게 놔둡서.”
분이는 아방이 부르는 바다를 향하여 온몸을 던지며 울부짖었다.
영철이 분이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아기가 숨을 거둔 후였다. 그렇게 뜨겁던 아기의 몸이 싸늘히 식어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기를 안고 절망했다. 아기의 얼굴에 눈물을 쏟으며 어서 눈을 뜨라고 흐느껴 울었다.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미안하다는 말도 나오질 않았다. 분이는 몸져누운 채 일어나질 못했다. 영철은 혼자서 아기를 돌담 밭에 묻었다. 언젠가 또 다른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는 소망을 안고, 아기의 무덤 옆에 작은 동산을 만들었다. 동산에는 순비기나무를 심었다. 짧았던 이승의 삶이었지만 동산에서 마음껏 뛰놀며 순비기 꽃처럼 예쁘게 잘 자라라고 기도했다. 태풍이 지나고 바람이 잔잔해졌다. 사람들은 다시 바다에 나가고, 영철은 밀감밭에서 부러진 나뭇가지와 떨어진 밀감을 내다 버렸다. 아기를 잃은 분이의 가슴은 보랏빛 순비기 꽃처럼 오래도록 멍이 들었다.
이른 저녁을 먹은 엄마는 소파에 기대어 있다가 나를 부른다. 저녁노을이 가득 나비치는 엄마의 방으로 들어갈 시간이다. 아침나절 성산포에서 왔던 해가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간다. 서쪽에 자리 잡은 엄마의 방에 다시 일몰의 빛이 넘친다. 엄마는 침대에 누워 창가에 스며드는 햇살을 깊이 들이마신다. 엄마는 누군가를 부르는 듯 허공에 손을 내민다. 나는 엄마의 망연한 손을 가만 잡는다. 내 손을 잡은 엄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엄마의 유순한 눈동자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살려고 했으면 벌써 세상을 떠났을 엄마의 삶이었다. 살아야 했기에 살았고, 살아진 삶이었다. 엄마는 힘들고 괴로운 날들을 살았다. 행복은 늘 멀리 있었다. 옆에 있다가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아버지와 엄마를 잃고 딸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는 삶을 살았다. 하나의 파도를 넘으면 다시 넘어야 할 파도는 끝도 없이 밀려왔다. 엄마는 그 괴로움을 어떻게 견디면서 살아왔을까. 가끔 엄마에게 그 힘든 날들을 어찌 살았냐고 물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어딘가에 있을 엄마의 엄마에게 대답하듯 말했다.
“어떵 살기는 어떵 살아. 살아지난 살았지. 그래도 힘들 때마다 난 혼자가 아니라서 좋았어. 내 손을 잡아주는 누군가가 있었지. 지금 너처럼.”
엄마는 참으로 지독한 운명과 싸우며 살았다. 사는 동안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오는 파도에 몸을 실었으리라. 엄마의 의지로는 막지 못하는 파도였다. 이제 그 마지막의 파도를 기다리며 잔잔한 물결 앞에 엄마가 서 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놓지 않겠다. 거친 바다를 건너온 엄마가 이제는 떠돌지 않기를…. 엄마는 오늘 밤도 바다에 누워 성산포로 가리라. 아침이 올 때까지 깊은 바다를 헤엄쳐 어멍이 잠든 올레길을 찾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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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엄마에 대한 상념이 깊군요. 숨비소리도 그립고~
착한 남편과 사랑하는 딸은 이어도에서 잘 살고 있겠지요.
아직도 성산포를 더듬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날만합니다.
잘 썼어요. 최우수상 감입니다. 제주 향토 작가가 되면 더욱 성공할 듯~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의 모습이 떠나질 않네요.
언제 엄마 손을 다시 잡을 날이 오려나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렇게 모진 세월이었을 텐데, 엄마는 자꾸만 성산포만 그리워하시네요.
다시 건강해지셔서 그 바다를 손잡고 가는 날 왔으면 좋으련만...
분이가 곧 엄마이군요.
윗 단계 작품들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지만 장려상은 좀 박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더욱더 좋은 작품을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장려상이지만,
아마도 엄마가 제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와 제주도 사람ㆍ ㆍ바다와 바람ㆍ삶과 죽음은 작가님의 글 자산입니다 ㆍ구성도 좋고 진한 이야기도 좋고 향토색 짙은 문장도 좋고 ㆍ좋은 소설입니다 ㆍ
감사합니다.
신작가님의 칭찬이 보약이 되서 앞으로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섬, 그리고 섬>도 올려주세요.
@윤슬 강순덕 퇴고중입니다ㆍ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서요
분이를 어멍으로 두고 있는 분은 그 한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군요. 몇 년 전, 성산을 마주 보고 있는 지미오름에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바다가 파도를 깨우고 파도는 바다를 부르는 외침 소리가, 마치 분이의 어멍 아방이 부르는 ‘내 새끼’하고 애타게 부르는 숨비소리라는 것을 오늘에야 알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제주에는 수많은 소리가 있죠.
바다와 파도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 바람과 바람을 가르는 바람 소리,
내새끼 부르는 해녀들의 숨비소리, 제주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울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