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카약킹에 홀릭이 되는 이유와 이후 증상들

[거북이]

급류 카약킹은 즐기거나 해보지 않은 이들의 관점에서는 어렵고, 위험하며, 무모하기까지 느껴지는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사실 카약커들 중에서 처음부터 '난 급류를 탈테야'라고 카약킹을 시작하는 경우도 단 몇 퍼센트도 안되니까요. 하지만 카약 스쿨에 입교해서 급류 카약으로 카약킹 기술을 배우고 실습투어를 경험한 이들 중에는적어도 반 수 이상은 급류 카약킹에 전격적으로 몸을 던지게 되는데요. 대체 급류 카약킹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렇듯 적극적이 되며, 급류 카약킹을 본격적으로 즐기게 되면 어떤 증상들이 생기는지 필자 나름의 경험을 들어 정리해봤습니다. 

강물만 보면 - 전에 없던 엉뚱하고 위험한 습관이 생긴다. 운전 중에 강물이라도 보이면 강물에 한눈을 팔게 된다. 하얀 포말이나 파도가 보이기라도 하면 바로 갓길에 차를 세운다. 그 순간 자신이 대체 어딜 가려고 운전하고 있었는지 잠시 잊는다. 눈으로 급류 난이도를 매겨보면서 실제 도전 가능성도 판단해보거나 위시리스트에 올려보기도 한다.

근육 - 전과 달리 샤워할 때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매가 분명 조금씩 변모하고 있음에 기분이 좋아진다. 여기저기 근육에 힘을 줘보기도 하느라 샤워시간이 예전보다 조금은 더 길어진다. 이참에 프리스타일로 넘어가서 식스팩도 한번 만들어 볼까라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 주변으로부터 몸이 좋아졌다라는 얘기를 듣는 것도 기분 좋아지는 포인트다.

꿈 - 멀리 가지 않고 시내 한복판에서 급류를 탈 수 있는 급류 파크 하나만 만들어졌으면, 가뭄에도 물 걱정 않고 급류를 종일 탈 수 있는 급류 파크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꿈을 꾸게 된다. 우리나라 급류 카약커라 봐야 여전히 고작 100명 남짓하니 부질없는 꿈인데도 얼마나 급류를 타고 싶었으면 이렇게 꿈까지 꿀까?

냄새 - 마른 땅에 비가 내리면 맡게 되는 야릇한 탄 냄새, 헬멧과 구명조끼를 입을 때마다 훅 풍기는 쾌쾌한 냄새, 파랗고 하얀 포말이 빚어내는 오묘한 물 냄새. 전에는 인상을 썼을 법하지만 지금은 그리 싫지 않다. 카약을 탈 때를 알리는 냄새라고 느낀다.

도전과 환희 - 처음 들이대는 급류, 도전해보지 못한 크고 험한 급류 앞에서 입이 바짝 마르고 땀이 흐르면서 '내가 정말 저길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불확실함을 이기고 혼신을 다해 뚫고 나왔을 때 그 느낌!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해냈다!"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스스로를 칭찬하게 된다.

동지애 -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인데 무섭고 까다로운 강을 하나 타고 내려갈 때마다 함께 했던 카약커들과의 사이에서 생기는 묘한 감정이 생긴다. 이유도 확실치 않은데 엄청 중요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다. 누구와 함께 했었는지 어지간해선 잊어 먹지도 않을만큼 기억이 강력하다. 이것 때문에 더 빠져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드라이백 - 이게 뭐 별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단순하며 값도 몇 푼 하지도 않지만 정작 써 보면 정말 편리하고 유용해서 여자가 외출할 때 드는 가방처럼 절대 빠뜨리지 못하게 된다. 사실 그 속에 넣고 다니는 것이 뭐 특별할 것도 없지만...ㅋㅋㅋ

득템 - 가볍고, 단단하고, 빠르고, 향상된 성능, 멋진 디자인, 뽀송뽀송한, 따스한...'이런 장비... 나도 갖고 싶다. 정말 갖고 싶다'며 자기 최면을 걸게 된다. 실제 그걸 갖게 되면 그 순간만큼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든 아이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 "급류야 기다려라 내가 간다~"

레벨 - 급류에도 수준이 있고 어느 강이나 매일 시시각각 그 레벨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자기 카약킹 기술의 레벨을 높힌 만큼 더 높은 레벨의 급류를 즐길 수 있고 더 높은 레벨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낮은 레벨에서 놀던 시절의 시각, 생각, 대화의 수준이 얼마나 빈곤했고 허접했는지 절절하게 느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점점 더 높은 레벨로 올라가고 싶어진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힘들지 않을까? 위험하진 않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든다.

모험 - 자연 그대로 흐르는 강을 First Descent(어떤 강을 카약으로 처음 타고 내려가는 기록사적 도전)하거나 해외 원정에 나서면 손에 땀이 나면서 심장이 콩닥콩닥거리고 머릿 속이 하야지긴 하지만 그 시간동안 만큼은 자신의 삶이 무언가 특별하고 거대한 자연 속에서 우뚝 선 나름 위대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난 것이 모험이고, 인생도 모험이다.

완전 무장 - 예전엔 '내 몸은 소중하니까'였지만 지금은 '단단히 무장한 모습이 더 멋지다'라는 생각이 들어 더 견고하고 타이트한 장비로 무장하게 된다. 전 같으면 불편하다고 느꼈을 법한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여행 -  어차피 인생이 여행이다. '카약은 여행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이게 팩트다. 급류 카약킹의 또 다른 즐거움은 그 동네 먹거리를 즐기고 유명한 볼거리도 함께 둘러보는 것이다. 급류타기에 너무 미쳐 이런 걸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은 카약이 갖고 있는 팩트를 느끼기엔 아직 멀었다는 증거다.

영상 - 자신이 카약으로 급류를 타는 사진과 동영상을 친구와 직장동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진다.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잘 나온 사진 하나 큼지막하게 인화해서 거실에 걸어두고 싶어진다. 하지만 아직 가족들에겐 애써 공개하긴 좀 그렇다. 혹시 극구 말릴지 모르니까!

유튜브 - 컴퓨터를 켜면 어느새 유튜브 검색창에 'Whitewater Kayaking'을 쳐 넣게 된다. 전체 화면, 고화질, 최대 음량... 어느새 내가 카약을 타고 급류를 내려가고 있다는 착각이 들어 몸을 쓰기도 한다.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밤 늦게까지 새로 올라온 동영상 찾아보기는 예사. 유튜브는 뗼레야 뗄 수 없는 내 친구가 되었다. 

장거리 운전 - 급류가 어디에 있던 상관없다. 급류만 좋다면 몇 시간이 걸려도 아무리 졸리고 힘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왜냐고? 그만한 응분의 보상을 충분히 받을테니까! 함께 타고 갈 동료가 있다면 4~5시간 정도 운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금방이다.

젠(Zen) - 단번에 급류의 모든 속성과 철학적 의미를 깨닫기란 쉽지 않다.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고 손에서 패들을 놓는 순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지금 자기 눈 앞에 보이는 급류를 정말 다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길에서 내려다 본 급류와 그 속에 들어가서 본 급류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에 '보이는게 다가 아니다'는 것을 느끼는 수준에 오르면 Zen의 경지에 오른 것일까? 천만에!

줄서기 - 급류에서 줄을 서게 될 줄은 몰랐다. 새치기를 하거나 장시간 웨이브를 차지하다가 '우~' 소리를 듣게 될 줄도 몰랐다. 그렇다. 급류타기 위해서는 줄서기 매너도 기본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애가 타게 된다.

페스티발 - 한국인에게 페스티발은 그렇게 쉽게 참여하고 그 속에서 하나가 되어 즐기는 문화가 아님에 분명한데, 어느새 그것을 기다리고 흔쾌히 참여하고 만끽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호쾌하고 멋진 급류 카약커들과 어울려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축제는 결코 그냥 지나치기 힘든 매력이 있다.

핑계 - 급류에서 뒤집히고, 탈출하고, 헤엄치는 것 따위에 죄다 그럴싸한 핑계를 댈 수 있다. 다른데서는 조롱받고 비웃음거리가 될지 몰라도 여기서는 아니다. 격려를 받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 도전을 다음으로 미루고 카약을 들어 나르는 것을 선택하면 오히려 현명함과 자제력이 있음에 박수를 받을 수도 있다.

휴가 - 길면 길수록 좋다! 물만 좋고 함께 갈 동료만 있다면 가족이고 뭐...걍 자 잊고 그냥 주구장창 며칠씩  여러 강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급류들을 타고 싶어진다. 정작 문제는 체력이고 어떻게든 휴가를 쓸 작심이다. 

급류 카약커 여러분은 또 어떤 매력을 느끼셨나요? 그리고 아직 해보지 못하신 분은 새해에는 급류 카약킹 맛 좀 보실래요?

[경호강지기-푸우라고불러주세요ㅎ]

어쩜 저의 증상을 아시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