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23) 갠지스강은 왜 천국으로 흐르나
인도 사람들에게
갠지스강은
성스러운 강으로
통합니다.
모든 인도인에게
그런 건 아닙니다.
자이나교나 이슬람교를
믿는
인도인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힌두교를 믿는
인도 사람들에게만
갠지스강은
성스러운 강입니다.
13억 명에 달하는
인도 인구 중에서
80%가
힌두교를 믿습니다.
힌두교에는
수억의 신이 있다고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세 신이 있습니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
유지의 신 비쉬누,
그리고
파괴의 신 시바입니다.
창조와 유지,
그리고
파괴.
이들 세 신은
세상이 숨을 쉬며
돌아가는
이치를 상징합니다.
먼 옛날 인도에
대홍수가 났습니다.
그때
한 브라만(힌두교 성직자)이
하늘에 기도를 했습니다.
땅 위에 넘치는 물을
하늘로 가져가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천신들이
땅의 물을 하늘로
모두 가져갔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로 인해
땅이 마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너무 가물어서
사람들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브라만이
다시 기도를 했습니다.
하늘의 물을
다시
내려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물의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한꺼번에 내렸다가는
다시 대홍수가 날 게
뻔했습니다.
그때
수미산에 사는
시바 신이 나섰습니다.
하늘의 물이
시바의 머리를 타고
땅으로
흘러내리게끔 했습니다.
그렇게 내려온 물이
땅에서 강이 됐습니다.
그게 갠지스강입니다.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 갠지스강은
히말라야 설원에서 내려와
인도 동쪽의 벵골만을 통해
바다로 흘러갑니다.
동쪽으로 가는
강물의 방향이 잠시
수미산이 있는
북쪽으로 흐르는 지점이
바로
바라나시입니다.
인도 사람들이
보기에는
다른 강들은 모두
동쪽으로 흐르는데,
유독 바라나시의
갠지스강만
북쪽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은
신들이 사는
천국으로 흐른다고
믿게 됐습니다.
지금도
인도의 힌두교 신자들은
죽은 후에
시신을 화장해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 뿌리면
영혼이 강물을 따라
천국으로 간다고 믿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시점이 되면
힌두교 신자들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일도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의 육신을
화장한 유해가
갠지스강을 따라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
(23) 갠지스강은 왜 천국으로 흐르나
붓다는 생각했다.
이 묘한 깨달음의 이치를 누구에게 먼저 설해야 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상대는 알라라 깔라마와웃다까라마뿟다였다.
출가 직후에 자신이 몸담았던 수행 공동체의 스승들이다.
그들은 싯다르타를 향해
“만약 해탈을 얻게 되면 가장 먼저 이곳에 와서 법을 설해 달라”고 부탁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붓다는 다시 생각했다.
누구에게 먼저 법을 전하면 좋을까.
그러자 자신을 떠나간 다섯 비구가 떠올랐다.
네란자라 강가의 고행림에서 싯다르타가 고행을 멈추었을 때, 다섯 비구는 실망했다.
싯다르타가 단식을 멈추고 우유를 먹자, 그들은 “배신자”라고 욕하며 떠나갔다.
<인도의 힌두교 신자에게 갠지스강은 성스러운 강이다.
힌두교 신자였던 마하트마 간디의 유해도 화장한 뒤에 갠지스강에 뿌려졌다.>
당시 다섯 비구는 코살라국의 바라나시에서 수행 중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고행을 하고 있었다.
바라나시는 인도인들이 신성시하는 갠지스강이 흐르는 곳이다.
당시 바라나시에는 많은 수행자가 살고 있었다.
붓다는 길을 떠났다.
깨달음을 이룬 붓다.
사람과 자연과 우주를 관통하는 이치를 얻은 붓다가 길을 떠났다.
보드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무려 320㎞였다.
멀고도 긴 여정이었다.
인도는 겨울이 지나 3월이 되면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낮에는 40도, 50도까지 올라가는 일도 예사다.
장거리 여행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옛날에는 맨발로 다녔을 터이다.
뜨거운 낮을 피해, 새벽과 저녁 무렵에만 이동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바라나시로 가는 길에 가야 지방에서 붓다는 한 나그네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우빠까였다.
육사외도(六師外道·붓다 당시 베다 경전의 권위를 부정했던
여섯 사상가와 그 유파)에 속한 수행자였다.
붓다의 얼굴과 걸음새가 예사롭지 않자, 우빠까는 말을 걸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이고, 당신이 배우고 있는 법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붓다는 직설적으로 답했다.
“나는 스승 없이 깨달음을 성취했다.
마음은 항상 고요하고 평화롭다.
나는 번뇌의 소멸에 도달했다.
나는 ‘지나(Jina, 승리자)’이다.”
‘지나’는 깨달은 이를 말한다.
번뇌를 이긴 자다.
최고의 승리자다.
인도의 모든 수행자가 번뇌를 소멸하고, 윤회를 끊고,
해탈에 드는 ‘지나’가 되고자 열망한다.
우빠까의 바로 앞에
“나는 ‘지나’다”라고 말하는 이가 서 있었다.
우빠까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어쩌면 그럴지도”라고 말하고선 붓다를 지나쳤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다섯 비구에게 법을 설하기 전에 먼저 마주친 이가 우빠까였다.
그러나 그는 붓다를 알아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눈이 열린 만큼 안목이 생기고,
그 안목의 깊이만큼 알아보는 법이다.
우빠까는 그가 정말 지나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긴 여정 끝에 붓다는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붓다는 자신을 떠났던 다섯 동료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바라나시의 갠지스강에서 멀지 않은 사르나트였다.
사슴들이 뛰어논다고 해서 ‘녹야원’(사슴동산)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지금도 녹야원에 가면 사슴들이 동산을 거닐고 있다.
붓다는 녹야원에 들어섰다.
다섯 명의 옛 동료는 멀리서 걸어오는 싯다르타를 알아보았다.
그들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된 사실은 알지 못했다.
뚜벅뚜벅, 걸어오는 싯다르타를 보면서 그들은 말했다.
“저기, 싯다르타가 오고 있다.
그는 신성한 고행을 버리고 유미죽을 먹었다.”
“맞아. 그는 수행을 저버리고 음식을 탐하며 타락하고 말았다.”
“싯다르타가 이곳에 오더라도 일어서서 맞이할 필요가 없다.
그냥 모른 척하자.”
그들은 그렇게 입을 맞추었다.
막상 붓다가 앞에 오자 달라졌다.
서로 맞춘 약속은 온데간데없었다.
붓다에게서 우러나오는 위엄을,
그들은 모두 느끼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싯다르타의 발우를 받아들고, 앉을 자리를 마련하고, 씻을 물을 구하러 갔다.
붓다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나는 깨달음을 이루었다. 불사(不死)의 길을 얻었다.”
다섯 동료는 반박했다.
“당신은 고행을 중단하고 음식을 탐하며 욕망에 빠지지 않았소?”
붓다는 이렇게 답했다.
“수행자여, 두 개의 극단을 조심하라.
하나는 쾌락에 빠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나친 고행에 빠지는 것이다.
둘 중 어느 쪽도 지혜롭지 않으며, 성스럽지도 않다.
오히려 몸과 마음을 해치고, 판단력도 해친다.
이 둘 사이에 난 길이 있다.
그게 바로 중도(中道)다.
그 길로 가라.
중도의 길은 번뇌를 쉬게 하고 지혜를 키운다.”
그날부터
붓다는 다섯 명의 옛 동료에게 깨달음의 이치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수행의 동료 관계가 아니었다.
붓다는 어느새 그들의 스승이 돼 있었다.
[출처:중앙일보]백성호: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