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리 플로렌스 힐"(Riley Florence Hill : 許日夫人)
"라일리 플로렌스 힐"(Riley Florence Hill)은 1891년 영국에서 출생하여
만국 사관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구세군 선교사로 1909년 독신으로 조선에 왔다.
"호가드" 사령관의 비서로 일하면서 "호가드" 사령관의 부인과 충정지방, 전북 지방, 경북지방을
말을 타기도 하고, 때로는 걸어 다니며 전도와 집회를 인도하고 부인 사업을 헌신적으로 수행하였다.
1910년에 구세군 선교사로 입국한 "윌리엄 알프레드 힐"(William Alfred Hill : 허일)과 동역하다가 1913년 결혼했다.
남편 "윌리엄"이 충정 지방관에서 조선의 구세군 사관학교 3대 교장에 임명되어 부부가 함께 남녀 사관 양성에 동역하였다.
서울로 옮겨 부인회 집회 인도와 여자 사관학생의 교육을 담당하면서 순직 선교사에 관한 글도 썼다.
1922. 1. 5 사관학교 사택에서 빈혈로 31세의 젊은 나이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墓가 둘이고 墓碑도 둘이 있다.
"라일리 플로렌스 힐"(Riley Florence Hill)선교사의 墓.
오벨리스크 형식의 墓碑에는
"東出十三年餘之生命 爲朝鮮民族獻身日日歡迎",
(한국에서 13년 동안 자신의 생명을 조선 민족을 위해 날마다 헌신하다)
"求世軍參謨正尉許日夫人" 라고 씌어있고,
하단에는
“Jesus, Jesus, Precious Jesus"(예수, 예수, 고귀한 예수)라 씌여 있다.
남편 "윌리엄"(William Alfred Hill)의 아들 "윌프레드 힐"(Wilfred O Hill)의 墓.
"라일리"(Riley Florence)가 별세한 후, 남편 "윌리엄"(William Alfred Hill)은 재혼하여,
이듬해인 1926년 11월에 아들 "윌프레드 힐"(Wilfred O Hill)을 낳았으나, 1927년 5월에 사망하였다.
"윌프레드 힐"(Wilfred O Hill)은 "라일리" 사관 옆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