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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을 흑(黑)
얼굴에 먹으로 문신을 새기는 모습
요즘은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지만, 옛 중국에서의 형벌은 어땠을까요?
죄인을 잡아 임시로 감옥에 가두기는 하였지만, 요즘처럼 몇 년씩 감옥에 두지는 않았습니다. 몇 년 동안 공짜로 밥을 먹여줄 수 없었으니까요. 당시의 형벌은 머리 자르기, 배 가르기, 다리 자르기, 생매장, 코 베기 등이 있었습니다. 형벌(刑罰)은 대부분 칼을 사용하기 때문에 형벌 형(刑)자나 벌할 벌(罰)자에 칼 도(刂)자가 들어갑니다.
이후 주나라 때부터 오형(五刑)이라고 해서 사형(死刑), 궁형(宮刑), 월형(刖刑), 의형(劓刑), 묵형(墨刑) 등 5가지 형벌이 있었습니다.
이중 사형(死刑)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항상 있어 왔던 가장 엄한 형벌입니다. 사형 다음으로는 거세를 하여 남자의 생식 능력을 없애는 궁형(宮刑)이 있었습니다. 한나라의 역사가인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86년)은 궁형을 당했지만, 굴욕을 참고 역사에 길이 남는 《사기(史記)》를 완성했습니다.
☞ 발자를 월(刖)
톱으로 한쪽 혹은 양쪽 다리의 종아리 아래 부분을 잘라 걷지 못하게 하는 형벌인 월형(刖刑)은 죄수나 노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한 엽기적인 형벌입니다. 월(刖)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톱으로 다리를 자르는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읽어보면, 춘추전국시대에 월형을 당한 사람들이 신는 신발(한쪽이 높게 만든 신발)이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자(孫子)도 월형을 당했습니다.
가벼운 형벌로는 코를 베는 의형(劓刑)과 피부(주로 얼굴)에 먹으로 문신을 새기는 묵형(墨刑)이 있었습니다. 묵형(墨刑)은 죄수나 전쟁 포로를 노예나 첩(妾)으로 삼기 위해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묵형(墨刑)은 경형(黥刑)으로도 불렀는데, 잘못한 사람을 꾸짖을 때 '경(黥)을 칠 놈'이라는 이야기는 '얼굴에 문신을 새길 놈'을 의미합니다. 동양에서의 문신은 이와 같이 죄나 벌과 연관되어 있어서 서양과는 달리 함부로 문신을 하지 않았습니다. 묵(墨)형이나 경(黥)형에 검을 흑(黑)자가 모두 들어가는데, 검을 흑(黑)자는 사람 얼굴에 먹으로 문신을 새긴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따라서 검을 흑(黑)자는 나쁜 의미의 글자에 들어갑니다. 중국에서는 컴퓨터 해커(hacker)를 '검은(黑) 손님(客)'이란 뜻의 흑객(黑客)이라고 부릅니다.
- 흑(黑)자가 들어가는 글자
▶ 묵(墨:墨:) : 먹 묵, 흙 토(土) + [검을 흑(黑)→묵]
▶ 당(黨:党:党) : 무리 당, 검을 흑(黑) + [오히려 상(尙)→당]
▶ 묵(默:默:) : 잠잠할 묵, [검을 흑(黑)→묵] + 개 견(犬)
▶ 점(點:点:点) : 점 점, 검을 흑(黑) + [점칠 점(占)]
▶ 훈(熏:熏:) : 연기낄 훈, 검을 흑(黑) + 연기 모습
먹 묵(墨)자는 '검은(黑) 흑(土)으로 만든 것이 먹이다'는 뜻입니다. 필묵(筆墨)은 '붓(筆)과 먹(墨)'을 일컫고, 수묵화(水墨畵)는 '물(水)로 먹(墨)의 짙고 엷음을 조절하여 그린 그림(畵)'입니다. 수묵(水墨) 혹은 묵화(墨畫)라고도 합니다. 백묵(白墨)은 '흰색(白) 먹(墨)'이란 뜻으로, 분필(粉筆: 가루가 생기는 붓)을 말합니다.
무리 당(黨)자는 검은(黑) 무리들이 큰 건물(尙)에 모여 있는 모습에서 '무리'라는 뜻이 생겼습니다. 무리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다고 해서 검을 흑(黑)자가 들어갔습니다. 오히려 상(尙)자는 큰 건물의 상형입니다. 당파(黨派)는 이해를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뭉쳐진 단체이고, '친구(朋)나 무리(黨)'라는 뜻의 붕당(朋黨)은 조선 시대에 같은 지방 또는 서원 출신의 친구나 무리들을 이르던 말입니다. 붕당정치(朋黨政治)의 폐해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잠잠할 묵(默)자는 '개(犬)는 말을 할 줄 몰라 침묵(沈默)한다'는 뜻입니다. 묵념(默念)은 '잠잠하게(默) 마음속으로 생각하다(念)'는 뜻입니다.
장점(長點), 결점(缺點), 지점(地點), 관점(觀點) 등에 들어가는 점 점(點)자는 '검은(黑) 색으로 점을 찍다'는 뜻입니다. 이후 '점→점을 찍다→표를 하다→불을 켜다→불을 피우다→조사하다→검사하다' 등의 뜻이 생겼습니다. 점심(點心)은 '마음(心)에 점(點)을 찍다'는 뜻으로 마음에 점을 찍듯이 가볍게 먹는 음식을 의미하며, 중국에서 만든 단어입니다. 점등(點燈)은 '등불(燈)을 켜다(點)'는 뜻이고, 점화(點火)는 '불(火)을 피우다(點)'는 뜻입니다. 점수(點數)는 '시험을 검사하여(點) 매긴 수(數)'이고, 점호(點呼)는 '조사하기(點) 위해 부르다(呼)'는 뜻으로,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 인원이 맞는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 연기낄 훈(熏)
연기낄 훈(熏)자 아래에 들어가는 검을 흑(黑)자는 불꽃으로 인해 검게 그을린 구멍이나 굴뚝의 모습으로 얼굴에 문신을 새기는 검을 흑(黑)자와는 상형문자의 모습이 다릅니다. 즉, 훈(熏)자는 검은 굴뚝(黑) 위로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입니다. 훈제 바비큐, 훈제 오리, 훈제 연어 등에 나오는 훈제(燻製)는 '연기(燻)로 만든다(製)'는 뜻입니다.
매울 신(辛)
문신을 새기는 침의 모습
라면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매울 신(辛)자는 묵형(墨刑)을 집행하기 위해 얼굴에 문신을 새기던 침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또 침은 문신을 새길 뿐만 아니라, 죄수나 노예의 한쪽 눈을 찔러 애꾸눈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하였습니다. 즉 노동력을 유지하면서 거리감을 없애 반항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후 '침→죄(罪)→슬프고 괴롭다→고통스럽다→맵다'는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사천(四川, 쓰촨) 지방과 일부 남쪽 지방을 제외하고는 매운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보통의 중국 사람들은 매운 맛을 고통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천신만고(千辛萬苦)는 '천(千) 가지 매운(辛) 것과 만(萬) 가지 쓴(苦) 것'이라는 뜻으로, 온갖 어려운 고비를 다 겪으며 심하게 고생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사진] 매운 신(辛)라면
어쨌든 매울 신(辛)자는 죄(罪)나 벌(罰)과 관련되는 글자에 들어갑니다. 또 다른 글자에 들어갈 때 아이 동(童), 첩 첩(妾), 글 장(章)자에서 보듯이 설 립(立)자처럼 간략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문신과 관련되는 글자
▶ 동(童:童:) : 아이 동, 매울 신(辛→立) + 마을 리(里)
▶ 첩(妾:妾:) : 첩 첩, 매울 신(辛→立) + 여자 녀(女)
▶ 장(章:章:) : 글 장, 매울 신(辛→立) + 일찍 조(早)
☞ 아이 동(童)
'아이(童)들의 이야기(話)'란 뜻의 동화(童話)와 '아이(童)들의 노래(謠)'라는 뜻의 동요(童謠)에 나오는 아이 동(童)자는 어원을 살펴보면 동화나 동요가 주는 좋은 느낌은 고사하고, 끔찍하다 못해 엽기적입니다. 동(童)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매울 신(辛→立), 눈 목(目), 사람 인(人), 흙 토(土)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즉, 땅(土) 위에 서 있는 아이(人)의 한쪽 눈(目)을 침(辛)으로 찌르는 모습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다른 부족을 정벌하면, 아이들의 한쪽 눈을 찔러 보이지 않게 하여 노예로 삼았던 풍습에서 나온 엽기적인 글자입니다. 나중에 눈 목(目)자와 사람 인(人), 흙 토(土)자가 합쳐져 마을 리(里)자가 되었습니다.
☞ 백성 민(民)
아이 동(童)자와 비슷한 어원을 가진 글자로는 백성 민(民)자가 있습니다. 백성 민(民)자의 상형문자도 눈(目)에 침을 찌르는 형상입니다. 모든 고대 국가가 그러했듯이, 당시 지배계층과 전쟁을 하는 병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백성이 노예였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배우는 국가의 발달과정을 보면 봉건제 이전의 사회를 노예제사회라고 부릅니다. '노예였던 백성(民)이 주인(主)인 국가(國家)'라는 뜻의 민주국가(民主國家)는 역사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법 헌(憲)자도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법 헌(憲)자는 해칠 해(害)자의 변형 자에 눈 목(目→罒)자와 마음 심(心)자가 합쳐진 글자입니다. 한쪽 눈(目→罒)을 해(害)하여 애꾸눈을 만들었던 형벌(刑罰)에서 법(法)이라는 의미가 생겼습니다. 나중에 이런 법을 '마음으로 지킨다'고 해서 마음 심(心)자가 들어갔습니다. 헌법(憲法)은 나라 최고의 법(法)이고, 제헌절(制憲節)은 '헌법(憲)을 만든(制) 것을 축하하는 명절(節)'이며, 사헌부(司憲府)는 '법(憲)을 맡은(司) 관청(府)'으로 고려와 조선 시대에 관리가 법을 어기는지 비리를 저지르는지 조사하여 그 책임을 묻는 일을 맡아보던 관청이며 오늘날의 감사(監査) 기관입니다.
첩 첩(妾)자는 '잡혀오거나 죄를 지은 여자(女)의 얼굴에 문신(辛→立)을 새겨 첩으로 삼다'는 뜻으로 만든 글자입니다. 서기 100년경에 완성된 중국 최초의 한자 자전인 《설문해자》를 보면 "남자가 죄를 지으면 노예가 되는데 이를 동(童)이라 하고, 여자의 경우는 첩(妾)이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 글 장(章)
글 장(章)자는 문신을 새기는 침(辛→立)과 문신의 모습(早)이 들어 있는 글자입니다. 일찍 조(早)자는 문신의 모습으로 원래의 의미와는 상관없습니다. 문신은 그림을 새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죄목 등을 글로 새기기 때문에 '글'이라는 의미가 나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글월 문(文)자도 몸에 새긴 문신을 새긴 사람의 모습입니다. 문신(文身)이란 말 자체가 '몸(身)에 새긴 글(文)'이란 뜻입니다. 문장(文章)을 원래의 뜻 그대로 풀이하면, '문신(文)과 문신(章)'이란 뜻이 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검은 먹물을 뿜는 문어(文魚)를 중국에서는 장어(章魚)라고 합니다.
- 죄를 다스리는 글자
▶ 재(宰:宰:) : 재상 재, 집 면(宀) + 매울 신(辛)
▶ 사(辭:辞:辞) : 말씀/사양할 사, 매울 신(辛) + 다스릴 란(𤔔)
▶ 피(避:避:) : 피할 피, 갈 착(辶) + [피할 피(辟)]
재상(宰相)은 임금을 돕고 모든 관리를 지휘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아보던 이품(二品) 이상의 벼슬입니다. 재상 재(宰)자는 형벌을 주는 도구(辛)가 있는 집(宀)이란 의미로, 옛날에는 재상(宰相)이 형벌을 준 데에서 유래한 글자입니다.
말씀 사(辭)자는 원래 '죄(辛)를 다스리다(𤔔)'는 뜻입니다. 이후 '죄를 다스리다→타이르다→말씀→사양(辭讓)하다'는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사전(辭典)은 '말(辭)을 풀어 놓은 책(典)'이고, 사표(辭表)는 '자리를 사양하는(辭) 표시(表)'라는 뜻으로 어떤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적은 글입니다.
☞ 피할 피(辟)
피할 피(避)자에 들어가는 피할 피(辟)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꿇어앉아 있는 사람(尸) 옆에 형벌 기구(辛)가 있는 모습입니다. 사람(尸) 아래에 있는 입 구(口)자는 상처의 상형입니다. '형벌로 죄를 다스리다'는 뜻과 함께 '이러한 형벌을 피하다'는 뜻도 있읍니다. 나중에 '피하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갈 착(辶)자가 추가되어 피할 피(避)자가 되었습니다. 피난(避難)은 '어려움(難)을 피하다(避)'는 뜻이고, 피서(避暑)는 '더위(暑)를 피하다(避)'는 뜻입니다. 또 학교 체육시간에 하는 피구(避球)는 '공(球)을 피하는(避) 경기'입니다.
- 재판에 관련된 글자
▶ 변(辡:辡:) : 죄인서로송사할 변, 매울 신(辛) + 매울 신(辛)
▶ 변(辯:辩:) : 말잘할 변, 말씀 언(言) + [죄인서로송사할 변(辡)]
▶ 변(辨:辨:) : 분별할 변, 칼 도(刂) + [죄인서로송사할 변(辡)]
죄인서로송사할 변(辡)자는 두 명의 죄인(辛)이 서로 소송(訴訟)하며 싸우는 형상입니다. 이 글자는 단독으로 사용되지 않고, 다른 글자와 함께 사용됩니다.
말잘할 변(辯)자는 '두 명의 죄인(辛)이 서로 소송하여(辡) 싸울 때 말(言)을 잘해야 이긴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변호사(辯護士)는 '말을 잘해(辯) 도와주는(護) 선비(士)'라는 뜻으로 재판에서 소송을 대행해 주는 사람입니다. 웅변대회(雄辯大會)는 ‘씩씩하고(雄) 말 잘하는(辯) 사람을 뽑는 큰(大) 모임(會)’입니다.
분별할 변(辨)자는 '두 명의 죄인(辛)이 서로 소송하여 싸울 때 칼(刂)로 물건을 자르듯이 누가 잘못했는지를 분별하다'는 뜻입니다. 변별력(辨別力)은 '분별하여(辨) 나눌(別) 수 있는 힘(力)'입니다.
- 소리로 사용되는 경우
▶ 신(新:新:) : 새로울 신, [매울 신(辛→立)] + 가를 석(析)
▶ 친(親:亲:) : 친할 친, [매울 신(辛→立)→친] + 나무 목(木) + 볼 견(見)
새로울 신(新)자와 친할 친(親)자는 매울 신(辛)자가 소리로 사용된 경우입니다.
새로울 신(新)자는 '도끼(斤)로 나무(木)를 쪼갠 자리가 깨끗하고 새롭다'는 뜻입니다. 신생대(新生代)는 '새로운(新) 생물(生)이 살았던 시대(代)'라는 뜻으로, 현재 살고 있는 포유류, 조류, 어류 등이 번성하는 시대입니다. 지질 시대에서 가장 새로운 생물(生物)이 살고 있다고 해서 신생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신생대는 3기와 4기로 나누어집니다. 원래 1기와 2기가 있었으나, 1기는 중생대 말기로, 2기는 신생대 3기로 포함되면서 사라졌습니다.
친할 친(親)자는 '나무(木)를 가까이서 살펴보다(見)'는 뜻입니다. 이후 '(가까이서) 살펴보다→가깝다→친하다→친척→부모'라는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 행(幸)자가 들어가는 글자
▶ 집(執:执:) : 잡을 집, 다행 행(幸) + 알 환(丸)
▶ 보(報:报:) : 알릴/갚을 보, 다행 행(幸) + 병부 절(卩) + 또 우(又)
▶ 역(睪:睪:) : 엿볼/죄인 잡을 역, 눈 목(目/罒) + 다행 행(幸)
벌을 주는 것과 관련되는 글자로 매울 신(辛)자와 비슷하게 생긴 다행 행(幸)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침의 모습을 본떠 만든 매울 신(辛)자와는 달리 행(幸)자는 손이나 발, 혹은 목에 채우는 차꼬의 상형문자입니다. 현대의 수갑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아마도 '죄인을 잡아 다행이다'라는 뜻에서 '다행'이라는 의미가 생긴 듯합니다.
☞ 잡을 집(執)
잡을 집(執)자는 꿇어앉아 있는 사람(丸)의 두 손에 수갑(幸)을 채운 형상으로, 죄인을 잡아 놓은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알 환(丸)자는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 꿇어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집권(執權)은 '권력(權)을 잡다(執)'는 뜻입니다.
☞ 알릴/갚을 보(報)
알릴 혹은 갚을 보(報)자의 상형문자를 보면 꿇어 앉아 있는 사람(卩)에게 수갑(幸)을 채운 모습 옆에 손(又)이 있는 모습입니다. 아마도 재판을 받는 모습으로 추측됩니다. 이후 '재판하다→(재판 결과를) 알리다→(벌로 죄를) 갚다'는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1920년에 창간된 《동아일보(東亞日報)》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쪽(東) 아시아(亞)에서 일어나는 일을 날마다(日) 알려주는(報) 신문'이라는 뜻입니다. 보복(報復)은 ‘되돌려(復) 갚다(報)’는 뜻입니다.
엿볼 역(睪)자는 눈(目/罒)으로' 죄수(幸)를 엿보면서 감시하다'는 뜻입니다. 이 글자는 단독으로 사용되지는 않고, 다른 글자와 만나서 소리로 사용됩니다. 통역할 역(譯)자나 역 역(驛)자가 그런 예입니다.
그물 망(网/罒)
물고기를 잡는 그물
그물 망(网)자는 그물을 쳐 놓은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다른 글자 내에서는 간략형인 망(罒)자로 더 많이 사용됩니다. 그물 망(罒)자는 그릇 명(皿)자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그릇 명(皿)자는 다른 글자의 아래에 쓰고(盃, 盆 등), 그물 망(罒)자는 다른 글자의 위에 씁니다(罪, 罰 등). 또 그물 망(罒)자는 종종 눈 목(目)자를 90도 돌려놓은 글자로도 사용됩니다. 덕 덕(德), 꿈 몽(夢), 엿볼 역(睪), 해바라기벌레 촉(蜀), 법 헌(憲)자 등에 쓰인 그물 망(罒)자는 눈 목(目)자를 90도 돌려놓은 글자입니다.
그물 망(网/罒)자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뜻하는 글자에도 들어가지만, 잘못한 사람을 꾸짓거나 형벌을 주는 뜻의 글자에 들어갑니다. 죄인을 가두어 놓은 곳이 나무를 격자로 만들어서 그물처럼 밖에서 안이 보이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그물로 물고기를 잡듯이 죄 지은 자를 잡아들이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합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법망에 걸리다' 혹은 '법망을 빠져나가다'는 말에서 법망(法網)은 '법(法)의 그물(網)'이란 뜻인데, 그물 망(網)자가 들어가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 죄나 벌과 관련되는 글자
▶ 죄(罪:罪:) : 허물 죄, 그물 망(网/罒) + 아닐 비(非)
▶ 벌(罰:罚:) : 벌할 벌, 그물 망(网/罒) + 말씀 언(言) + 칼 도(刂)
▶ 파(罷:罢:) : 파할 파, 그물 망(网/罒) + 능할 능(能)
▶ 서(署:署:) : 관청 서, 그물 망(网/罒) + [사람 자(者)→서]
허물 죄(罪)자는 '비리(非理)가 있는 사람을 그물(罒)로 잡아 죄(罪)를 벌하다'는 뜻입니다. 범죄(犯罪)는 '죄(罪)를 범하다(犯)'는 뜻입니다.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는 '죄(罪)와 형벌(刑)은 법(法)으로만 정(定)해진다는 주의(主義)'로, 어떤 행위가 범죄인가 아닌가, 또는 그 범죄에 대하여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인가 하는 것은 법률에 의해서만 정할 수 있다는 주의(主義)입니다. 근대 자유주의 형법의 기본 원칙입니다. 즉, 예전에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였다는 이야기입니다
벌줄 벌(罰)자는 '그물(罒)로 잡은 죄인을 말(言)로 꾸짖고 칼(刂)로 베어 벌(罰)을 주다'는 뜻입니다. 형벌(刑罰)은 죄 지은 사람에게 주는 벌입니다.
파할 파(罷)는 원래 '그물(罒)에 걸린 곰(能)을 놓아주다'는 뜻입니다. 이후 '놓아주다→내치다→마치다→파하다' 등의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파면(罷免)은 '직무를 파하거나(罷) 벗어나게(免) 하다'는 뜻이고, 노동자가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벌이는 파업(罷業)은 '일(業)을 파하다(罷)'는 뜻입니다.
참고로, 능할 능(能)자는 곰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입니다. 곰이 재주를 잘 피우는 데에서 '능하다'라는 의미가 생겼습니다. 이후 곰이란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불 화(火/灬)자를 추가하여 곰 웅(熊)자를 만들었습니다. 곰의 털에서 고운 빛의 광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웅(熊)자는 '빛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웅담(熊膽)은 '말린 곰(熊)의 쓸개(膽)'로 한약재로 사용됩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웅녀(熊女)는 '곰(熊)이 변해 된 여자(女)'입니다.
관청 서(署)자는 관청에서 죄인에게 벌을 주므로 죄(罪)나 벌(罰)을 의미하는 그물 망(罒)자가 들어갑니다. 경찰서(警察署)는 '법을 어기는 사람이 있는지 경계하고(警) 살피는(察) 관청(署)'입니다.
- 그물과 관련된 글자
▶ 망(罔:罔:) : 없을/그물 망, 그물 망(网/罒) + [망할 망(亡)]
▶ 망(網:网:) : 그물 망, 실 사(糸) + [그물 망(罔)]
▶ 라(羅:罗:) : 벌일 라, 그물 망(网/罒) + 실 사(糸) + 새 추(隹)
▶ 치(置:置:) : 둘 치, 그물 망(网/罒) + [곧을 직(直)→치]
▶ 매(買:买:) : 살 매, 조개 패(貝) + 그물 망(网/罒)
그물 망(罔)자는 그물 망(网)의 변형 자에 소리를 나타내는 망할 망(亡)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물의 실 사이가 비어져 없다고 해서 '없다'는 뜻도 생겼습니다. 나중에 본래의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실 사(糸)자가 추가되어 그물 망(網)자가 만들어졌습니다. TV 사극을 보면 자주 나오는 대사 중에 '성은이 망극하오이다'의 망극(罔極)은 '끝(極)이 없다(罔)'는 뜻입니다. 망막(網膜)은 '시신경이 그물(網)처럼 퍼져 있는 얇은 막(膜)'으로, 빛에 의한 자극을 받아들이는 시세포가 분포합니다.
벌일 라(羅)자는 원래 새(隹)를 잡기 위해 실(糸)로 만든 그물(罒)을 뜻하는 글자입니다. 이후 '그물→그물을 치다→(그물을) 벌여 놓다→벌이다'는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나열(羅列)은 '죽 벌여 놓다'는 뜻이고, 나침반(羅針盤)은 '침(針)을 벌여 놓은(羅) 쟁반(盤)'입니다.
위치(位置)나 배치(配置)에 들어가는 둘 치(置)자는 '물고기나 짐승을 잡기 위해 그물(罒)에 곧게(直) 세워 두다'는 뜻입니다. 영어의 전치사(前置詞)는 '다른 단어의 앞(前)에 위치(置)한 낱말(詞)'이란 뜻입니다. 정치망(定置網)은 '일정한(定) 자리에 배치(置)한 그물(網)'로, 한곳에 쳐 놓고 고기 떼가 지나가다가 걸리도록 한 그물입니다.
살 매(買)자는 '그물(罒)로 조개(貝)를 잡는 모습입니다. '그물(罒)로 돈(貝)을 끌어 모아 물건을 사다'는 해석과 '그물(罒)로 조개(貝)를 끌어 모으듯이 물건을 사 모으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매매(賣買)는 ‘물건을 팔고(賣) 사고(買) 하는 일’입니다.
- 새를 잡는 그물
▶ 리(離:离:) : 떠날 리, 새 추(隹) + [떠날 리(离)]
▶ 금(禽:禽:) : 날짐승 금, 떠날 리(离) + [이제 금(今)]
▶ 금(擒:擒:) : 사로잡을 금, 손 수(扌) + [날짐승 금(禽)]
▶ 필(畢:毕:) : 마칠 필, 그물 모습
☞ 떠날 리(离)
그물 망(罒)자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을 뜻하는 반면, 떠날 리(離), 날짐승 금(禽), 사로잡을 금(擒)자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떠날 리(离)자는 새를 잡기 위한 그물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로 원래는 '잡다'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물에 걸린 새가 도망간다'고 해서 '떠나다'는 뜻도 생겼습니다. 이후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새 추(隹)자가 추가되어 떠날 리(離)자가 되었습니다. 이별(離別)은 '떠나서(離) 헤어지다(別)'는 의미입니다. 이산가족(離散家族)은 '떨어져(離) 흩어진(散) 가족(家族)'입니다.
날짐승 금(禽)자는 '그물(离)로 날짐승을 잡다'는 뜻입니다.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은 '날짐승(禽)과 짐승(獸)이 회의(會議)한 기록(錄)'이란 뜻으로, 개화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던 안국선이 1908년 발표한 신소설이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판매 금지된 소설입니다. 꿈속에서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새 등 8마리 동물들의 회의를 참관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였는데, 이 동물들은 인간의 비리를 상징합니다. 즉, 까마귀처럼 효도할 줄 모르고, 개구리처럼 분수를 지킬 줄 모르며, 여우같이 간사하고, 벌처럼 정직하지 못하고, 창자가 없는 게보다 못하고, 파리처럼 동포를 사랑할 줄 모르고, 호랑이보다 포악하며, 원앙이 부끄러워할 정도의 부정한 행실 등을 폭로함으로써 인간세계의 모순과 비리를 규탄합니다.
사로잡을 금(擒)자는 '손(扌)으로 날짐승(禽)을 산채로 사로잡다'는 뜻입니다.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일곱(七) 번을 놓아주고(縱) 일곱(七) 번을 사로잡다(擒)'는 뜻으로 무슨 일을 제 마음대로 함을 일컫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제갈공명이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준 이야기에서 유래합니다.
☞ 마칠 필(畢)
마칠 필(畢)자도 그물의 모습을 본떠 만든 글자로, 그물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가차되어 '마치다'는 뜻이 생겼습니다. '세금 필납'의 필납(畢納)은 '납세(納)를 마쳤다(畢)'는 뜻입니다. '필생의 노력'이나 '필생의 소원'에 나오는 필생(畢生)은 '생(生)을 마치다(畢)'는 뜻으로 평생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필사의 노력'에서 필사(必死)는 '반드시(必) 죽을(死) 힘을 다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