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30여 년 전에 같은 직장에 다니던 동생들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그 중 한명이 86년도 수녀원엘 갔고 그리고 한 3년쯤 후에 대녀가 또 수녀원엘 가면서
우리의 만남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리고 한꺼번에 만나기는 그리 쉽지가 않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지만. 그 당시 우리는 매주 주일이면 명동에서
무조건 12시 미사를 봉헌한 후 밥 먹고 차 마시며 얘기의 꽃을 끊임없이 나누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뭐 특별한 이야기도 없었던 것 같다. 기억에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것을 보면. 그래도 그때는 그렇게 지내는 것이 삶의 일부분이었던 것 같다.
연말에는 서로 바쁘니까 11월쯤 만나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4명
만나는 약속 일자를 잡는 것이 그리 녹녹치가 않았다.
일단 수녀원에 간 수녀님이 출근을 하는 곳에 근무를 하니 토요일과 일요일 중에서 약속을
잡아야만 했고, 주말이면 나름 일들이 많아서였다.
개인적으로 만날 때는 밖에서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만나는 것이 자유스러워 보통은 우리
집에서 만났는데, 엑소더스 영화를 꼭 보고 싶다고 하여 조금 일찍 만나 이른 점심을 먹고
12시에 하는 영화를 보자고 예매를 하였다.
이 영화는 예전의 십계와 같은 내용으로 만든 영화인데 흥행면에서는 그리 성공을 하지
못했나보다. 예전의 피카디리(지금은 롯데시네마로 바뀌었음) 극장에서만 딱 1회 상영을
하여 할 수 없이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탈출기의 아는 내용을 각각 다른 방법으로 각색을 하였는데, 예전에 보았던 십계의 주인공인 찰톤 헤스톤과 율 브린너의 강력한 인상때문이었는지, 어쨌든 대작이긴 하지만 예전의 그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동생들과 함께 영화를 보니 그때 함께 어울렸던 생각이 마구 떠올라 그
당시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일찍 점심을 먹기로 한 것을 영화가 끝나고 먹자고 하였기에
종로3가에서 인사동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우리는 걸어서 인사동의 한 한정식집을 찾아가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동생들도 이제 50살이 다 넘어서인지 암수술을 받은 동생(대녀), 이곳저곳이 많이
아프다는 수녀님, 이제 우리가 그럴 나이가 되었나보다.
오후 5시에 기도시간에 맞추어 수녀원으로 가야하는 수녀동생만 수녀원으로 가고 우리 셋은
명동성당으로 가서 5시 미사를 드리기로 했다. 세례와 견진을 명동성당에서 받았기에 그곳엘 가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푸근해진다. 친정집이라 그런가? ...
명동성당은 주일은 거의 시간마다 미사가 있는데 오늘 5시미사에도 성당이 꽉 차고 사람들이 통로에 앉아 있기도 하였다.
교황님 방한 후 쉬었던 교우들이 냉담을 풀고, 예비자들도 많이 온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났다. 성당의 신자들도 시대에 따라 많이 변했던 것 같다.
어느 때는 성탄 자정미사 때는 들어가는 입장권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던 때도 있었고
어느 때는 들어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갔는데 좌석이 있어 들어가서 미사를 봉헌한
때도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니 성당 앞에는 여전히 볏짚으로 단장한 구유가 있었다.
내일이 보름이라 그런지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삼왕과 함께 와서 아기예수님을 찬미하듯
밝은 보름달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오늘은 삼왕까지 와서 아기예수님께 경배를 드리고 있으니 구유가 꽉 찬 느낌이었다.
마음의 영성을 꾸미고 있는 안신부님도 삼왕 중 한 분인 발다살이 세례명이시니 오늘이
신부님께는 의미있는 날이시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구유경배를 하고 명동길로 내려오니 아, 이곳은 아직 변하지 않았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거리를 꽉 채웠다.
얼마 전 여의도에서 본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 같았다. 물론 이곳을 채운 사람들의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 관광객이라고는 하지만...
점심 먹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헤어지기가 조금 아쉬워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들어가기로 하고 천천히 걷다가 명동칼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왠일인지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이 집이 관광객들한테는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인지 여러 번 왔다가 줄을 선 모습에 발길을 매번 돌렸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아, 우리가 5시미사 끝나고 6시쯤 왔기 때문에 조금 한가한 때였구나.
살다보면 참 예정했던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바꾸어진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참 많다. 당장 오늘만 해도. 우리 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밖에서 만났고, 예전에
돌아다니던 그 코스를 예정하지 않았는데 그대로 돌아다녔던 것을 보면.
아마 우리 맘을 너무도 잘 아시는 우리의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동생들과 함께 좋은 시간
보내라고 그렇게 엮어주셨는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밤하늘에 빛나는 명동성당이
정말 아름답네요.^^
지난 시절의 옛추억을 더듬으며 영화도 보구 식사와
차를 마시며 무척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네요.^^
살면서 바쁜중에도 꼬옥 시간을 내어 해야 될 값진 하루가 아닐까요?
개인적으로는 가끔 만났지만 이렇게 만난지가 꽤 오래되었거든요. 물론 이중에 4명정도가 더 있는데
부산에 있는 수녀님은 못오고, 나머지는 많이 떨어져 있어 연락을 못했어요.
다음 만날때는 일단 모두 연락을 해봐야겠어요.
마리아언니♡
명동성당의 밤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요..
언니의 행복하셨을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우리도 길상사 아닌 명동에서 함 뵐까요~^^♡
실비아, 명동에서 만나는 것도 좋아요. 그런데 왠지 우리는 길상사가 더 많이 어울릴것 같은 생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명동성당을 보여주시어 감사합니다.
따뜻한 이야기도 고맙구요.^^
아, 그러세요? 언제 오실수 있을 때 온다고 연락하시면 함께 할 용의가 있어요.
아무래도 직장이 명동성당 건너편에 있었기에 이곳은 제가 잘 안내할 수 있을것 같아요.
즐거운 시간 보냈셨네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명동 나들이를 통해 저의 학창시절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저는 샬트르 수녀님들을 만나러 방학이면 많이 드나들었거든요.
명동성당 뒤에 샬트르 본원이 있어서 성소모임에도 갔었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집전하신 좋아하는 수녀님의 종신서원식에도 갔었구요.
행복한 만남,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려요. ^^*
아, 그러셨네요. 알게 모르게 스쳐지날수도 있었겠네요.
예전에 직장 다닐때 점심시간에는 식사후에 언제나 명동성당 뒷쪽으로 산책을 다녔거든요.
본원에 아는 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성당 뒤쪽으로 정원도 아주 많이 좋아했거든요.
예전에는 계성초등학교도 있었는데, 오래전에 강남으로 이사가고, 이제 계성여고도
다른 곳으로 이전할 계획이래요.
저도 특별한 주일미사나 대축일미사때 김수환추기경님 미사에 많이 참석하고
그분이 주시는 성체도 참 많이 모셨었는데....
명동성당을 멀리서 보기는 했지만 그렇군요. 귀한 인연 귀한 분들 이시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새해 주님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명동성당이 프랑스 어느 성당의 오분의 일 축소판으로 지어졌데요. 지하성당에는 지금은 성인품에 오르신
성 앵베르 범 주교님, 샤스탕 정신부님, 성 모방신부님, 성 김성우 안토니오,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들의
유해가 모셔져있고, 파리외방 선교회의 푸르티에 신부님과 프티니콜라 신부님, 그리고 무명순교자 두분의
유해도 함께 모셔져 있어요. 그래서 명동성당이 성지이지요.
어쩌면 글을 이렇게 멋있게 쓰시는지...작년에 서울 갔다가 명동칼국수집 줄서서 먹은 기억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한참 기다리셨지요? 예전에도 사람들이 많이 가기는 했는데 요즘은 일본관광객과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 그렇게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맛있기는 해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1.05 17:11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1.06 16:01
맛갈나는 글에 제 추억이 되살아나 행복한 느낌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아, 이곳에 추억이 많이 있으셨나봐요. 행복하게 느끼셨다니 저도 기뻐요. 감사합니다.
올 한해도 영육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명동성당으로 오르는 언덕길은 제가 계성유치원을 다니던 추억의 길입니다.
계성국민학교 1학년 때 6.25가 터져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답니다.
달밤에 성아의 손에 이끌려 남산길을 산책하던 기억이며
마리아상 앞에서 성호경을 바치지 않으려고 떼를 썼던 개구장이시절이 떠오릅니다.
달이 구름 사이를 달리던 밤하늘을 보며 꿈에 부풀었던 시절도 그립구요.
저는 나마리아님의 글을 읽는 동안 그런 생각들이 사무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그 추억의 성당으로 오르는 언덕길도 성역화 리모델링으로 많이 변했어요. 조금은 서운하시겠네요.
6.25 때 포격앞에서도 견디어 내신 성모님상이 예전보다 조금 뒤쪽으로 모셔져 있고 그 앞에 건물을
지어 성모님상이 잘 보이지 않아 조금 섭섭했었어요. 그러나 복잡한 명동 한 복판에 성당과 수녀원등
푸근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힐링 장소에요. 생각이 사무치신 그 마음이 왠지 조금은
이해가 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