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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논란의 핵심은 결국 비껴가. 공정가치법의 적용이 문제였다는 판단은 명확하지만, 만약 공정가치법을 정당하게 적용했다고 한다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적절한 가치는 얼마인지 과연 누가 답해줄 수 있을까. 가치평가의 이슈로 시작된 문제였음에도 그에 대한 해답은 들을 수 없어.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급변하는 산업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로 시장의 자율에 맡기고 시장에서 평가 받을지 아니면 가이드라인을 주고 합당한 평가를 기대할지는 당국이 판단할 문제. 단순히 징계를 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합의를 이끌어내야 이번 사건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
감사인에게 경쟁을 말하지만, 이번 사건을 보면 감사인의 경쟁력은 이미 차고 넘쳐. 오히려 차고 넘치는 경쟁력으로 인한 독립성의 상실을 유심히 살펴봐야. 기업의 기를 살리기 위해, 혹은 기업에 회계인력을 유입시키기 위해 당국이 펼치는 정책이 과연 합당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냉정한 분석이 필요해. 감사인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업계 내의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는 것 역시 요원한 일, 당국은 이런 점을 고려해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가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 논란에 대한 길고 긴 다툼이 드디어 끝났다. ‘원칙중심’을 악용하여 자의적으로 회계기준을 적용한 회사의 회계처리에 대해 징계를 내린 증선위의 결정을 청년회계사들은 환영하는 바이다. 아울러 회계사들에게 내려진 징계들도 씁쓸한 부분이지만 겸허히 받아들이며, 이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반복적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회계업계 내부적으로 이어져온 잘못된 관행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한 회사와 회계법인 뿐 아니라, 회사의 내부감시기구에 대한 적절한 징계가 없는 점은 계속 개선이 되지 않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증선위원들의 인식 개선도 촉구하는 바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업계의 일선에서 뛰고 있는 청년회계사들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의 결론에 대해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한가지 있다. 바로 논란이 된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에 대한 문제다. 증선위의 징계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변경함에 따른 공정가치법 적용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그 근거로 콜옵션부채를 인식할 경우 자본잠식이 우려되는 상황을 들고 있었다. 멀쩡한 회사를 종속기업에서 관계기업으로 변경하는 것이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가지는 의문은, 콜옵션부채의 가치가 적정한 수치라고 한다면 적자투성이의 기업을 5조원으로 평가한 기업가치가 적절한 것으로 보았냐는 점과, 만약 회사가 회계기준에 따라 투자주식의 평가방식만 공정가치법으로 바꾸었더라면 이러한 회계변경을 용인해 주었을 것이냐는 점이다.
이 점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삼성물산의 합병 논란에도 맞닿아있다.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배력을 획득함에 따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산/부채를 공정가치로 평가했고, 그 때 바이오에피스의 가치는 이미 과대평가되었다. 굳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에 그 가치를 반영하지 않더라도 삼성물산의 합병에는 이미 바이오에피스가 5조원짜리 회사로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번 감리에서는 종속기업->관계기업의 변경만을 놓고 따지다보니, 금액에 대한 적정성을 판단하지 않았지만 금액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사실 이 논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금액과 관련 이슈는, 회계업계의 자정을 요구하고 나설 청년회계사들에겐 중요한 이슈다. 4차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급변하는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청년회계사들은 앞으로 이러한 도전을 훨씬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다. 지금도 우버와 같은 스타트업의 가치가 몇조원이라 말하고, ICO와 같이 미래가치를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부풀려진 미래가치로 투자자들의 눈물을 뽑아내는 일도 존재한다. 미래기술이라고 불리는 불확실한 일들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항상 위험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회계사들이 일부의 이익에 치우쳐 의사결정을 해서는 안 되지만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에 대한 우리사회의 합의가 없는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최근의 상장폐지와 관련한 논란에서는 깐깐한 감사라고 반발하는 기업과, 회사를 살리라는 소액주주의 입장 사이에서 감사인은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본시장에 큰 영향을 준 이러한 사건들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고 넘어가야 한다. 대우조선해양에서도 처벌만 있었을 뿐, 아무런 교훈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회계부정에 대한 결론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가치평가의 인정범위와 적절한 가치평가의 방식 등에 대해, 더 나아가 감사인의 권한과 의무에 대해 더 많은 논의와 고민이 우리에겐 숙제로 남아있다.
회계사들이 기업을 위해 회계처리 변경과 가치평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일각의 비판이 맞다면, 회계사들은 이미 전문성은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회계사들에게 부족한 것은 결국 독립성이다. 처벌과 회계사들의 자발적 각성 이외에 회계사들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정부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회계사들이 엄정한 판단을 하길 주문하지만, 정부에서는 기업의 기를 살린다며 회계사들이 독립성을 축소하는 대책을 내놓기 일쑤다. 또한 기업에 회계사가 많아야 한다며 회계사 선발인원의 확대도 고려하고 있다. 기업에 있는 회계사가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감사인이 독립적으로 의견 내면 불편한 것은 회사들이고, 그래서 제도가 바뀔 때마다 회사들의 엄살은 끊이지 않는다. 이번사건 역시 감사인의 독립성이 부족하여 발생한 사건인만큼, 정부는 회계에 관해서만큼은 기업의 기를 살리기 보다는 감사인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기를 바란다.
반복되는 회계부정의 대응 방식을 보면 항상 비판의 대상을 두고, 그러한 구조나 구조를 만든 당국의 책임은 피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는 바뀌는 것이 없다. 제도도 그대로고 인식도 그대로라면, 제2, 제3의 삼성바이오가, 혹은 대우조선해양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비판의 열기가 식고나면 기업들은 또 회계사들에게 협조를 요구할 것이고, 사회는 회계사들에게 기업이 어렵다며 침묵을 요구할 것이며, 그에 동조하는 회계사들은 나오게 된다. 결국 독립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사회의 이중성 사이에서 회계사들의 외줄타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회계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사회는 경쟁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손상되는 독립성은 애써 외면한다. 이미 젊은 회계사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경쟁은 차고 넘치게 하고 있다. 부디 정부는, 이러한 사태를 계기로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숙의하길 바란다. 기업들은 4차산업혁명 타령을 하며 규제를 혁파하라고 하고, 이번 결과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더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원칙중심이라는 허울 속에서 자율의 영역과 규제의 영역은 경계가 어디일지, 잘못된 관행이 사라질 때 겪을 불편함을 우리 사회는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이번 징계가 남긴 숙제는 아직 많다. 부디 이번에는 교훈을 얻고, 개선해 나가는 사건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치르고 있는 비용은 너무나도 크기에 그저 잘못으로만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