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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우정은 지속적인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고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 하는 것과도 상관없는 조용하고 꾸준한 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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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가, 『궁핍한 날의 벗』
천하에서 가장 친밀한 벗으로는 곤궁할 때 사귄 벗을 말하고, 우정의 깊이를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는 가난을 상의한 일을 꼽습니다. 아! 청운靑雲에 높이 오른 선비가 가난한 선비 집을 수레 타고 찾은 일도 있고, 포의布衣의 선비가 고관대작의 집을 소매 자락 끌며 드나든 일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절실하게 벗을 찾아다니지만 마음 맞는 친구를 얻기는 어려우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벗이란 술잔을 건네며 도타운 정을 나누는 사람이나, 손을 부여잡고 무릎을 가까이하여 앉은 자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벗이 있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으나 저도 모르게 저절로 입 밖으로 튀어 나오는 벗이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벗에서 우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략…)
『시경』에 “옹색하고 가난한 내 처지! 힘든 줄 아는 자 하나도 없네!”라는 시구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가도 남들은 털끝만큼도 자기 것을 덜어 보태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이 베푼 은혜에 감동하거나 원한에 사무쳐 하는 세상사가 일어납니다.
가난한 사정을 감추고 말을 꺼내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남에게 부탁할 일이 전혀 없을까요? 하지만 그는 집문 밖을 나서서는 억지로라도 웃는 얼굴을 하고 만나는 사람과 정담을 나눕니다. 그가 차마 오늘 먹어야 할 밥이나 죽에 대해서 몇 번이나 운을 뗄 수 있을까요?
작가_ 박제가 _ 조선 후기의 실학자, 산문가, 화가, 서계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을 체계화 함. 지은 책으로 『북학의』 『정유각집』등이 있음.
낭독_ 이상구 – 배우. 연극 『리어왕』, 『싸리타』, 『유리알눈』등에 출연.
배달하며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정을 털어놓을 사람은 역시 친구밖에 없습니다. 궁핍할 때의 벗을 가장 좋은 벗이라고 하는 이유는 허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딱한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랬던 벗들이, 지금보다는 젊었을 적에는 몇 명인가 곁에 있었던 것 같은데 돌아보니 아무도 없네요.
어렵게 만나자고 청해온 사람의 이유가, 어쩌면 내일 먹어야 할 밥에 대해 말을 꺼내기 위해서인지도 모릅니다. 무릎을 조금 가까이 하여 앉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정을 지키는 가장 어렵고도 쉬운 방법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야기하다!
옛 사람들의 글을 읽는, 가을입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출전_『궁핍한 날의 벗』(태학사)
음악_ Back Traxx / nature 중에서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양연식
첫댓글 이 글을 읽으면서 제가 확실히 아는것은 저의 궁핍한 날의 진정한 벗은 제 남자친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