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가수.(본명 김명선, 1938년 1월 28일 ~ ) 대한민국 연예계의 거물 중에 한 명이다. 가족관계상으로만 따져도 가수 노사연의 이모! 그 외에 배우한상진 역시 그녀의 조카다. 80년대 후반에 '사랑은 유리같은 것'으로 유명한 인기가수였던 원준희는 현미의 며느리. 어르신도 이런 어르신이 없다. 더군다나 현미는 나이[3]는 말할 것도 없고 연예인으로서도 최불암보다 선배다.[4] 21세기가 된 이후 그녀가 연예계에서 언니라고 불러 본 사람은 엄앵란 한 명 밖에 없다.[5]
현미는 주로 이런 연예계 선배나 가족관계 등으로 젊은 층에게 회자가 되는 편이지만 사실 음악계에서의 평가는 이미자, 패티 김, 그 다음이 현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평가하고 있는 대가수다. 1962년 <밤안개>[6]로 데뷔해서 이 노래를 통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후 <보고싶은 얼굴>을 불러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던 당시 그들의 아픔을 노래로 달래주었다.
현미가 가수로 데뷔하게 된 동기는 이렇다. 1957년 미8군 위문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방송을 펑크낸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1958년 미8군 SHOW 무대에서도 활동하였다. 그 때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으로 음반을 만들어줬고 현미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봉조가 만든 노래만 불렀던 현미는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현재 53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방송프로그램에서도 자주 출연하는 동시에 노래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개그맨 박명수가 2000년대 초반부터 방송에서 웃기려고 10년 이상 일년에 한번정도 주기적으로 치는 전용 지식개그 드립 중에 음악의 고모 현미 드립이 있다. 주로 방송에 가수나 작곡가 등 대중음악가가 나와서, 다른 출연자들에게 (가수인) 박명수가 그 가수와 비교당할때 한번씩 쓴다. "음악의 음자도 못 배운 놈들이"라고 시작하면서 하는 드립인데, "음악의 아버지 누구야? (바흐) 그럼 음악의 어머니 누구야? (헨델) 음악의 고모 누구야?" >> (상대방 대답 못함) >> "현미! 현미! 그것도 모르면서 말이야!"라고 하는 드립.[7]
[출처 : 나무위키]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밤안개'의 텐더 보이스 가수 현미
(서울신문)
[서울신문] 여전히 파워풀한 에너지가 가득 넘치는 가수 현미(68)씨. 그녀의 활달함은 본인만의 세 가지 생활철학에서 비롯된다.'무던하게 살기','되도록 많이 이해하기','남 앞에서 울지 않기'. 그러나 그녀도 끝내 눈물을 보였다. 지난 6월9일 진주에서 열린 '이봉조 가요제' 무대에서다.
천재의 비범함과 예술가의 파격을 두루 갖췄다고 평가받는 작곡가 고(故) 이봉조(1931∼87년)씨를 기리는 이 추모 가요제에서 그녀는 온갖 회한이 한꺼번에 오버랩되었을 터.
이봉조씨와는 가요계의 소문난 명콤비이자 잉꼬부부. 이들 음악커플의 로맨스는 한편의 영화처럼,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노래들처럼 격렬하고 정열적이었다.
1962년 '밤안개'를 시작으로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애인' '아빠 안녕' '비련십년' '두 사람' '몽땅 내 사랑'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세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던 이 커플. 이들의 첫 대면은 59년, 명동 재즈카페 '은성살롱'에 출연할 무렵에서였다. 그녀는 '벨라'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아울러 베리, 바니 등으로 불리던 가수 김정애, 현주와 함께 3인조 여성보컬 '현시스터즈'를 결성해 활동했다.
이 무렵 현미씨는 한 달에 40회 이상 부킹(출연 예약)을 받으며 다른 가수들이 12만환에서 많게는 18만환의 월급을 받을 때 25만환의 파격적인 개런티를 받을 만큼 인기를 누렸다. 이들 현시스터즈가 미8군 쇼 단체인 '스윙스타'에서 '뉴 앤 뉴' 그리고 '퍼스트 나이터스'로 전속을 옮겨 활동하던 때 밴드마스터인 색소폰 연주자 이봉조씨를 다시 만나게 된다.
현미가 나이 스물한 살에 덕성여대 무용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여대생 가수라는 프리미엄과 함께 절대적 인기를 누리던 쇼단의 메인가수였다면, 이봉조씨 역시 스물여섯 살로 아직 무명이었지만 한양공대 출신의 패기만만한 뮤지션. 이들은 처음 서로 '소 닭 보듯' 했다. 현미 입장에서는 자신 월급의 반도 채 안 되는 신출내기 밴드 마스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봉조씨 역시 콧대 높은 이 도도한 여가수가 도무지 못마땅했다.
# 가요계 명콤비 작곡가 이봉조·가수 현미의 불꽃 만남
쇼의 간판이나 다름없던 마스터와 메인가수가 이러다보니 자칫 사이가 틀어지기라도 하면 좋은 공연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 단장은 '이봉조-현미 사이좋게 만들기 작전'까지 펼쳤다. 그 작전 중 하나가 바로 나이트클럽에 둘을 데리고 가 분위기 띄우기.
"당시엔 남녀가 춤을 출 때 손바닥 사이에 손수건을 끼우는 게 신사숙녀가 갖추어야 할 예의로 여겼던 시절이었죠. 남녀가 유별한데 어떻게 맨 손을 잡고 춤을 출 수 있느냐는 의미로 당연히 남자 쪽에서 손수건을 준비하는 게 상례였죠. 그러나 이러한 관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봉조씨는 그냥 손을 덥석 잡고 마구잡이로 춤을 추더군요. 뿐만 아니라 얼마나 춤이 서툴던지 매번 발을 밟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하고 어딘가 순수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죠."
현미씨의 회고다. 이렇게 시작된 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쇼단의 운영이 위협받을 정도로 늘 붙어다녔다. 결국 단장은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밴드 마스터 교체 조짐을 내비치자 아예 둘은 함께 미련 없이 쇼단을 나온다.
이 무렵 작곡가 손석우씨가 현미를 찾아온다. 영화 '동경에서 온 사나이'의 주제가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의 취입을 제의해온 것으로, 무대가수 현미에게도 음반을 취입할 기회가 주어진 것. 그런데 놀랍게도 현미 데뷔음반은 독집음반으로 기획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신인가수가 첫 데뷔음반을 독집으로 발표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 1960년대 '개성시대´ 질주한 히트곡 제조 커플
더구나 이 음반에는 당시 최고 작곡가인 손석우씨의 곡 '당신의 행복을 빌겠어요'를 비롯한 다섯 곡과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자리매김하는 길옥윤·이봉조씨의 곡이 함께 수록된, 이들 작곡가의 작곡 데뷔음반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활동 중 잠시 귀국한 길옥윤씨가 이들 커플에게 헌정한 곡 '내 사랑아'와 함께 특히 이봉조씨가 편곡한 번안곡 '밤안개(It's A Lonesome Old Town)'는 취입 당시 현미의 성량이 너무 커 마이크에서 두 세 걸음 떨어져 취입했을 만큼 대형가수로서의 가창력과 저력을 유감없이 표출하고 있다.
이들의 데뷔곡이자 대표곡이 된 '밤안개'의 빅히트를 시작으로 이봉조-현미 커플은 밤무대와 방송활동을 함께 하며 많은 히트곡을 잇달아 발표한다. 아울러 현미씨는 한명숙, 이금희씨와 함께 '3대 여성 허스키보이스' 시대를 열며 60년대 '개성시대'를 거침없이 질주했다.
현미는 풍부한 무대 경험만큼이나 감정처리와 테크닉이 매우 뛰어났는데, 이봉조씨는 되레 그것을 경계했다. 때문에 취입할 신곡의 악보를 대부분 녹음 당일에서야 건넸다. 그는 테크닉보다 '악보 그대로' 부르기를 유독 강조했던 것.
현미씨 또한 노래 욕심이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신데렐라 정훈희양을 일약 국제가수로 급부상시킨 '안개'는 줄곧 '강짜'의 대상이었다. 왜 이렇게 멋진 곡을 다른 여가수에게 주었냐는 것.
"내가 투정을 부리자 봉조씨는 갑자기 결심한 듯, 노래로 우주여행을 시켜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새로운 곡에 몰두하기 시작했어요. 그 무렵 라디오 드라마 '빨간 양말의 시인'의 주제가를 당시에는 정훈희양이 불렀는데 음반으로 나올 때는 제목을 '바람'으로 바꿔 내게 주었지요. 아울러 그 이후부터 아예 작정하고 곡을 만드는데 제목들이 가관이었죠.'구름' '하늘' '태양의 유혹' '별' 등등…. 말하자면 노래로 우주여행을 시켜주겠다던 약속을 하나 둘 지켜가기 시작했던 셈이지요."
그 중 '별'은 71년 제4회 그리스국제가요제 '송 오브 올림피아드'에 입상하기도 했다. 이어 이들이 구상하고 있던 곡은 '천둥'. 그러나 이들 부부는 19년간의 로맨스를 끝내고 별거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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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미디어스 기사 발췌]
가수 현미의 ‘남편 바람기 잡는 법’이 인터넷상에 큰 화제가 됐다. 21일 KBS 2TV 여유만만에 출연한 현미는 ‘어떤 남자가 열 여자를 마다하겠냐.’ ‘잘난 사람과 살 때는 50%만 차지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평범한 남자를 만났다면 몰라도 잘생기고 유능한 남자를 만난 이상 바람은 감수해야하는 것.’이라는 충격적인 폭탄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현미의 말은 통합하여 “잘난 남편과 살려면 바람은 감수해야”로 명명됐다. 온통 인터넷을 뒤덮은 강렬한 헤드라인을 보며 ‘에이, 설마 저런 말을 방송에서 했을라구. 과장한 것이 아닐까.’ 했었는데 막상 방송을 보고나니 그런 생각이 싹 가신다. 딱딱한 문체로 축약된 기사의 정보는 그나마 그녀를 변호해준 수준이었다. 현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폭력과도 같았다.
"내가 볼 때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해요. 바람이라는 거는.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면 저도 바람 펴요. 왜?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이 있을 땐 한 번 더 쳐다보게 되는 게 본능이에요. 우리 여자는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못하는 것뿐이지.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 그건 내 자유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참 똑같은 사람을 보다가 새사람을 보면 한 번 더 보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잖아요? 그러니까 전 그렇게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요."
이날 여유만만의 주제는 ‘내 남편 바람기 잡는 법’이었다. 이미 방송가에 파다한 바람둥이 남편을 참아주고 살았던 안개의 가수 정훈희와 밤안개의 현미가 출연해 전 간통전문 형사 구무모, 민성원 소장과 함께 남편의 바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수다를 떨었다.
현미는 남편 고 이봉조를 연예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최고의 바람둥이라 칭했다. 이봉조는 마치 코디네이터를 앞세우는 남자 아이돌처럼 아내의 친구 정훈희를 데리고 다니며 일명 ‘바람막이’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을 당한 정훈희 또한 바람의 상처를 안고 있다. 거의 해탈의 경지에 오른 그녀는 이제 “남자들 속에서 살아서 남자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바람이 끝나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돌아오는 남편이라면 용서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배려해주고 이해해주고 용서해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라고 정훈희에게 던진 조영구의 질문을 현미가 받아들어 거든다. “하도 이봉조란 남자가 잘생기고 연주할 때 그 모습이라는 거는…… 여자들이 보면. 남자끼리도 반해요. 그러면 여자가 열로 섰어요. 어떤 남자가 그렇게 (여자들이) 열로 서서 사랑한다고 하는데 (불륜) 안 할 사람이 있으면 백 명에 하나 나와 보라고 그래요!” 마지못해 웃는 여자 MC의 밍밍한 리액션이 블랙 코미디 같다.
현미와 정훈희의 발언은 그녀 자신들이 겪었던 트라우마와 고통을 호소하는 형식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선택을 아랫세대들이 가르침 받아야 할 어르신의 지혜처럼 설파하는 것이라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미담이나 자랑거리처럼 내 남편은 연예가 최고의 바람둥이였다고 열변을 토하는 현미는 소위 여자 마초라 불리며 같은 주제로 스트레스를 주는 엄앵란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엄앵란 씨하고 나하고는 한 말이 있어요. 잘난 사람하고 살 때는 50%만 차지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자.”
그녀들 표현대로 잘난 남편을 둔 죗값으로 너무 쉽게 용서해버린 바람둥이 남편을 향한 회고를 딱히 나무랄 생각도 없고 참견하고 싶지도 않다. 덧붙여 내 남자의 바람도 모자라 친한 언니 동생 사이에, 언니 남편의 불륜을 도운 셈이나 다름없었던. 혹은 내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친한 동생마저 이용당해야했던 잔혹한 여자의 일생사에 연민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다. 나는 왜 공영방송에서 ‘내 남편 바람기 잡는 법’이라는 주제를 놓고 일평생 남편의 불륜에 치를 떨어야했던 경험자의 ‘불륜 저주’가 아닌 ‘불륜 옹호’ 혹은 ‘불륜 지향’에 대한 소견을 시청자가 새겨들어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며 두 사람의 약속이다. 간통죄가 폐지됐대도 평생 서로에게 충실해야 할 ‘정조의 의무’는 결혼의 기본 의무다. 이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애초에 결혼이라는 서약이 존재해야 할 필요가 없다.
한국 드라마의 거장 김수현 작가는 2006년 그녀의 명작 ‘사랑과 야망’을 리메이크한다. 갖가지 인간군상의 일대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아직도 잊지 못하는 명장면은 착해빠진 남편 홍조(전노민 분)의 바람을 알게 된 아내 선희(이유리 분)의 새벽 울음이다.
그야말로 선인을 넘어선 성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홍조가 첫사랑 미자(한고은 분)를 잊지 못해 밤새도록 그녀의 창문을 응시하며 집 앞을 서성인다는 사실은, 사실 선희뿐만이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같은 통증의 배신감이 스몄다.
사실을 알고도 참고, 참고 또 참던 선희는 스며들어오는 송곳 같은 아픔에 잠들지 못하는 새벽녘 소리 죽여 울음을 터뜨리고야 만다. 하얀 잠옷을 입고 입을 막은 채 꺽꺽 우는 이유리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애처로우면서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한 여인의 소리 죽인 비련으로 끝나고야 말 것 같았던 이 장면은 며느리의 통곡을 목격한 시어머니의 어마무지한 대응으로 통쾌하게 마무리된다. 그토록 성치 않은 다리의 며느리를 못마땅해 하던 시어머니 박준금은 아들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부모 죽인 원수를 본 것처럼 달려든다.
급기야 팬티 하나만 입고 내쫓아 보내라는 그녀의 일갈은 그토록 쓰라렸던 홍조를 향한 배신감을 씻은 듯이 치유해줬다. 격동의 시대를 다룬 이 작품은 그 시대상에서도 혹은 70을 바라보는 노장 김수현의 생각에서도 ‘잘난 남편을 뒀으니 바람 정도는 용서해라.’는 고리타분하고 폭력적인 사상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
잘난 남자를 가졌으면 바람기는 감수해야 할 몫이며 이런 남편은 50%만 차지해도 만족하자는 현미의 발언은 분명 시대착오적이다. 무차별적인 그녀의 참고 사는 여성을 향한 찬미, 남편의 바람 옹호론을 들으며 언어폭력이 따로 있을까? 싶었다. “웬만한 바람은 눈 감아줬다. 나 하나만 참으면 가정이 편안하니까 참았다. 그것을 파헤치면 뭐하겠나. 오늘이 중요하지 어제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손 꼭 부여잡고 “우린 이 남자의 50%만 가진 것도 감사해야해.”를 나눴을 엄앵란과 현미의 대화를 떠올리니 문득 연민이 스친다. 엄앵란 또한 여자의 할 도리는 무조건 참고 사는 것이라는 폭력적 조언을 쨍쨍한 목소리로 외치던 이 방면의 대가 아니었던가.
너무나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은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인식할 여유조차 갖지 못한다. 딱딱하게 굳어져버린 상처를 급기야 철학처럼 위장하고 당당히 아침마당에 출연해 “남편의 바람쯤이야 참아주는 것이 여자의 미덕!”을 외치는 그녀들이 정말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배우자의 바람을 고통으로 인식하지 못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에 차라리 그 사실을 부정하고 철저하게 남자 중심의 가치관을 도덕과 미덕으로 정립하는 것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방법이었을 테니까.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런 남자를 이해해줄 수 있었느냐는 MC의 질문에 정훈희가 답한 “저는 남자들의 세계에 속해서 남자들의 편에 서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라는 항변이 애잔하게 박힌다.
그녀들에겐 선희의 시어머니가 없다. 바람피운 아들을 팬티 바람으로 내쫓아줄 올곧은 정신과 가치관을 정립한 어르신이 존재치 않았다. 왜 저런 남자를 만나? 라며 현미 언니를 이해 못하던 정훈희는 급기야 비슷한 또 하나의 남자를 만나 이제는 2014년의 대한민국 TV에서 왜 그런 남자를 만났어요? 라는 질문을 되받고 있다.
상처와 고통을 자책으로 떠넘긴 그녀들은 이제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가치관을 하나의 지침서처럼 만들어 아랫세대에게 전파하고 있다. 나는 결코 틀리지 않았노라고. 어쩜 이날 논란이 된 현미의 발언은 차라리 편집하지 않은 제작진이 더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남편의 바람기 잡는 법’이라는 주제를 놓고 시대의 희생양인 그녀들을 출연시켰다는 것이 더 문제다. 이제 대한민국 아침 프로도 진짜 어르신의 가르침이 필요하다. 바람피운 아들을 팬티 벗겨 내쫓아보낼 수 있는 홍조 어머니의 당당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