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름나무님 소장석 제목: 대붕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어 그 이름을 곤(鯤)이라고 하는데, 그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지를 못한다. 그것이 변화해서 새가 되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하며 이 붕의 등 넓이도 몇 천리나 되는지 알지를 못한다. 이
새가 한번 기운을 내어 날면 그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 기운이 움직일 때 남쪽 바다로 옮겨가려고 하는데 남쪽
바다란 天池를 말한다.
<제해>(齊諧)란 기괴함을 적은 것으로 거기에 이런 말이 있다.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물결을 치는 것이 삼천리요,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나 올라가 육 개월을 가서야 쉰다.」하였다.
- 장자 (莊子)
소요유(逍遙遊)-
대학 3학년 노장사상강독시간에 처음으로 장자를 만났을때 노교수님은 낭낭한 목소리로 먼저 한문원문을 낭하시고 다시
중국어 병음으로 읽어 주셨다. 그 유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과 장쾌한 대자유의 사상에 매료되어 장자는 늘 나의 손을 떠나지 않는 애독서가
되었고 삶의 지침이 되어 주었다.
한번 날면 구만리 장천을 날아 육개월을 가서야 쉬는 소요유(逍遙遊:세상의 어느것에도 억매이지
않고 대자유를 누리며 노니는것)야 말로 나의 궁극적 삶의 목표요 이상향이었다.
마음이 울적할때나 생각이 많을 때에는 나는
무위의 푸름나무님의 개인석실에 가서 논다. 한점한점 클릭하여 감상하고 있노라면 그 부드럽고 장중한 작품하나하나에 매료되에 금새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작품이 워낙 많아서 몇 번씩 몇 번씩 보았음에도 문득문득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그러다 얼마전 님의 석실에서 대붕이란 작품을 보게
되었다. 야미도산의 자그마한 작품이었지만 그 안에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대붕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작품에 대붕이라는 이름을
붙이신 푸름나무님에 심미안에 감탄하며 무릎을 쳤다. 그리고 작품이 그분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난번 통화에서
전화선을 타고 전해지던 그분의 마음고생과 고뇌가 다시 떠올랐다. 웹상에서 이런 장을 만들고 수 많은 회원들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뼈아픈 경험을 통해 아는 까닭에 그분의 아픔이 고스란히 내것인양 느껴지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러한 모든
시시비비에 대하여도 모두 용서와 화해를 통해 해결해 가야한다고 대인적 풍모를 보이셨다.
수석생활을 하면서 한번도 수석회등의 모임에
참가하거나 지역의 몇몇분들 외에는 타지역 수석인들과의 교분을 갖지 못한탓에 늘 수석인들과의 교분과 그분들의 작품에 대한 궁금함 그리고 수석의
흐름등에 대한 정보교류등에 목말라 하던 나로서는 요즘 무위수석이 얼마나 감사한 공간인가를 실감하고 있다. 전국의 수석인들을 만나고 그분들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안방에 앉아 감상하며 공부할수 있으며 특히 수석한점 놓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석담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공간이 아니면
가능이나 하겠는가? 그러한 의미에서 무위수석은 처음에는 푸름나무님 개인과 몇몇분들의 열정으로 시작되었지만 앞으로는 수석계의 대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분열이 아닌 화합으로 반목이 아닌 이해로서 전국의 수석인들이 서로서로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장으로 말이다.
장자는 소요유의 앞의 구절에 바로 이어 다음과 같은 구절로 논리를 이어간다.
「대체로 물이 고인 곳이 깊지 못하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한 잔의 물을 뜰의 패인 곳에 부으면 하나의 지푸라기는 배 마냥 뜨지만 술잔을 띄우면 가라앉는다. 물은 얕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이 쌓인 것이 두텁지 않으면 저 붕새의 큰 날개를 날리기에는 무력할 것이리라. 그러므로 구만리쯤이나 올라가야 바람이 그 밑에 있게
되고, 그런 뒤에야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날아가는데, 가로막는 것이 없어야 곧 남쪽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대붕이라 하여도 물이 깊지 못하고 바람이 쌓인 것이 두텁지 못하면 날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무위수석이 대붕으로서 날아오르기 위하여는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두텁게 쌓인 바람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되새겨 보았다. 뒤이어 나오는 장자의 비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매미와 메까치는 이를 비웃는다.
“우리는 훌쩍 솟아올라 느릅나무나 박달나무가 있는 곳까지 가려 해도 때로는 이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지고 마는데, 어째서 구만리나 올라가서 남쪽으로 가려 하는가?”
가까운 들판으로 가는 자는 세 끼니만 먹고
돌아와도 배가 여전하지만, 백리를 가는 사람은 전날 밤부터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리를 가는 자는 3개월 동안의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법이니,
이 두 마리 벌레들이 또한 무엇을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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