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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회 사무엘 하권 6장-11장
2사무 6,1-23 다윗이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다
이 본문은 두 개의 주요 주제, 즉 예루살렘으로 계약 궤를 옮김(1-15.17-19절), 미칼과 다윗의 불화(16.20-23절)로 이루어져 있다. 사무엘기 상권 4-6장에 이어 계약 궤 운반 전승이 이 본문에서 마무리된다. 이 계약 궤 운반 전승은 아마도 다윗 통치 말 혹은 솔로몬 통치 초기에 예루살렘의 사제 모임에서 집필했을 것이다.
“다윗이 다시 이스라엘에서 정병 삼만 명을 모두 소집하였다. 다윗은 유다 바알라에서 하느님의 궤를 모셔 오려고,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떠났다. 그 궤는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불렸다”(1-2). 1절은 5장 17-27절에 나온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와 연결된다. ‘정병 삼만 명’은 종교 의식의 진행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전투에 더 적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군사 동원은 계약 궤를 일시적인 보관 장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위한 평화적 원정이었다.
2절에서는 하느님의 궤가 ‘유다 바알라’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무엘기 상권 6장의 ‘키르얏 여아림’에서 유다 지방 ‘바알라’로 옮겨진 것인가? 여호수아기 15장 60절과 18장 14절에서는 ‘키르얏 바알’이 곧 ‘키르얏 여아림’이라고 하고, 15장 9절에서는 ‘바알라’가 곧 ‘키르얏 여아림’이라고 한다. 아마도 ‘유다 바알라’와 ‘키르얏 여아림’은 서로 인접한 장소였다가 후에 동일시되었을 것이다. 계약 궤가 ‘주님의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이 주님의 이름으로 불린 것처럼 계약 궤도 주님께 속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3절의 “새 수레”는 정결하고 효율적인 운반 기구로 거룩한 물건을 운반하는 데 적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민수기 7장 9절에 의하면, 계약 궤를 수레로 운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 계약 궤는 어깨에 메고 운반해야 했다.
“그들이 나콘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였다. 소들이 비틀거리는 바람에 우짜가 손을 뻗어 하느님의 궤를 붙들었다”(6). 6-7절에서 우짜의 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오늘날 독자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우짜는 아마도 사무엘기 상권 7장 1절의 엘아자르와 같이 계약 궤에 대한 책임을 맡기 위해 성별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계약 궤가 떨어지는 것은 하나의 징표로 해석하여 그 행사를 막으시는 주님의 뜻을 알아차렸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그리고 계약 궤를 적절한 방법(어깨에 멤)으로 옮기지 않음으로 거룩함을 훼손하였고, 손으로 만지는 것이 금지되었음에도 계약 궤를 손으로 만지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행위들은 주님의 뜻을 방해하거나 경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떻든 사람들은 우짜의 죽음을 주님의 형벌이나 경고로 해석했다. 역대기계 역사가는 이 사건을 계약 궤를 레위인들이 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1역대 15,13).
8절의 “다윗은 주님께서 우짜를 그렇게 내리치신 일 때문에 화가 났다.”라는 구절은 매우 이례적인 표현이다. 구약 성경에서 주님은 거의 인간에게 분노의 대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봐이하르’를 ‘화가 났다’가 아니라 ‘비탄에 빠졌다’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다윗 역시 이 사건을 하나의 경고로 여겼을 것이다. 특히 그가 이 사업을 시작할 때 주님께 여쭙지 않았다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9-10절에서 다윗은 주님의 분노(경고)를 경험하고 계약 궤를 ‘갓 사람 오벳 에돔’의 집으로 옮긴다. 여기서 나온 ‘갓’을 굳이 필리스티아의 성읍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오벳 에돔’이라는 이름은 필리스티아인의 이름이 아니라 이스라엘인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갓 사람 오벳 에돔은 아마도 갓 출신이지만 필리스티아에 고용된 용병일 것이다. 다윗도 한 때 갓에 머물렀다.
“주님께서 하느님의 궤 때문에 오벳 에돔과 그의 모든 재산에 복을 내리셨다는 소식이 다윗 임금에게 전해지자, 다윗은 기뻐하며 오벳 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하느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12). 11-12절에서 오벳 에돔의 집에 내린 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가정에 어떤 재앙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같은 사실은 계약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려는 다윗의 의도를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해석되었다.
“주님의 궤를 멘 이들이 여섯 걸음을 옮기자, 다윗은 황소와 살진 송아지를 제물로 바쳤다”(13). 13절에서 계약 궤는 이제 더 이상 소가 끄는 수레가 아니라 사람의 어깨에 메여 운반된다. 이 제사에서 다윗이 직접 (사제로서) 제사를 지냈을 가능성이 있으나, 역대기 상권 15장 26절에서는 레위인들이 제사를 지낸 것으로 기록하여 전한다.
14절의 “아마포 에폿”은 사제의 복장이다. 이 옷은 길게 늘어드린 옷이었으나 다윗은 온 힘을 다하여 격렬한 춤을 추었기 때문에 미칼에게 비난의 빌미를 제공했다(20절). 역대기계 역사가는 다윗과 미칼과의 갈등 이야기를 최소한 축소시킨다(1역대 15,29).
“주님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갈 때,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서 뛰며 춤추는 것을 사울의 딸 미칼이 창문으로 내려다보고,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16). 16절은 20-23절을 예비하는 구절이다. 미칼은 “사울의 딸”이라 불린다. 이 본문에서 “사울의 딸”이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등장한다. 미칼은 계약의 궤의 경신례를 비웃은 탓에 다윗에게 후계자를 낳아 주지 못한다.
17절에서 계약 궤가 “미리 쳐 둔 천막 안 제자리에” 옮겨짐으로써 마침내 “계약 궤 운반의 과업”이 완수되었다. 계약 궤를 모신 천막은 모세가 광야에서 만든 만남의 천막과도 같지 않고(2역대 1,3-4참조),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축소판도 아니었다. 계약 궤 운반은 희생 제사로 시작되었듯이(13절),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침으로 마무리된다.
18-19절에서는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다 바친 다음 다윗이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했다. 이 축복의 기능은 얼마 후 레위인들의 임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신명 10,8). “그는 온 백성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 모든 군중에게 빵 과자 하나와 대추야자 과자 하나, 그리고 건포도 과자 한 뭉치씩을 나누어 주었다. 그 뒤 온 백성은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19). 계약 궤 이야기는 일상적인 식사가 아니라 음식을 나눠 줌으로써 끝난다. 다윗이 나누어 준 음식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를 두고 고대 번역본들마다 차이가 보인다. 칠십인역은 “빵 과자와 고기와 구운 과자”로, 대중 라틴 말 성경은 “빵 과자와 구운 쇠고기와 고운 밀가루 과자”로, 타르굼은 “빵 과자와 한 몫과 한 부분”으로, 시리아 말 역본은 “빵 과자와 고기 한 조각과 과자”로 이해한다. 이러한 음식의 나눔은 제의적 의미를 지닌다.
20-22절에서 주님을 위해 춤을 추는 다윗은 일반 백성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할 뿐 아니라 인정해 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주님의 궤 앞에서 보인 다윗의 행동은 자기가 주님과 백성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의 행동이다. 자신이 하느님과 백성에게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아는 까닭에 두려움도 수치심도 없이 그는 춤을 춘다. 다윗은 자기 하느님과도 평화롭고 자기 백성들과도 평화로운 까닭에 벌거벗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주 하느님에 대한 불합리한 두려움에서 벗어났고 백성이 자기를 두고 어떻게 말할까 하는 공포감에서도 벗어난 자유인이다. 계약 궤 전승에서 다윗은 자연스러움과 계획성이 미묘한 결합을 이룬 인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모습은 자신이 하느님과 백성에게 선택되어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또 자신이 그 역할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그는 자기가 적절한 때에 등장한 적절한 인물임을 알고 있고, 그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미칼은 다윗이 품위 없이 몸을 드러내고 보기 흉한 행위를 했다고 비난하면서 그를 맞이한다. 이에 다윗은 자신이 주님께서 선택하신 임금이며, 미칼은 하느님께서 거부하신 임금의 딸임을 상기시킨다. 결국 다윗은 미칼의 의견보다 여종들의 존경을 더 귀하게 여긴다. “나는 이보다 더 자신을 낮추고, 내가 보기에도 천하게 될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말하는 저 여종들에게는 존경을 받게 될 것이오”(22). 자신을 더 낮추었다가 여종들에게 존경을 받게 될 것이라는 다윗의 말 속에서 저자는 그가 밧세바와 몸을 섞은 다음 나탄에게 단죄를 받은 다음, 솔로몬을 낳음으로써 다시 영예로게 되리라는 사실을 미라 가리키는 것이다.
23절의 미칼 사건은 그에게 평생 아이가 없었다는 말로 끝맺는다. 미칼은 자신의 남편을 업신여길 뿐 아니라 주님까지도 경멸했다. 하지만 다윗의 의도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었다. 결국 교만한 미칼이 주님의 형벌을 받음으로써 사울 가문은 미래에 참여하지 못하고 완전히 버림을 받게 된다.
다윗은 계약 궤를 예루살렘에 들여옴으로써 주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그 오래된 상징을 지파들의 삶의 중심에 다시 모셔 놓게 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의 옥좌’가 있는 곳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옥좌’가 있는 곳으로도 만들었으며 이로써 새것과 옛것이 나란히 존재하며 서로를 보완하게 된 것이다.
2사무 7,1-17 나탄의 예언
이 본문은 하느님 백성의 역사, 특히 유다 지파의 역사 속에서 가장 소중히 보존되어 온 말씀들 중 하나이다. 이 말씀 가운데 일부는 다윗 재임 기간 직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이후 4세기동안 유다 임금들의 대관식 전례에서 엄숙히 선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부분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것과 매우 흡사한 ‘계약’을 통해 다윗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이셨음을 나타내 보여준다(창세 15,1-21). 이것은 하느님께서 다윗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고 계심을 나타내는 ‘일방적인’ 계약이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다윗과 그 후손들에게 영원토록 계약으로 묶어 놓으시는 것이다.
이 본문의 문학적인 구조는 배경 및 서론(1-3절), 예언 말씀(4-16절), 결론(17절)으로 구성되었다. 4-16절의 예언 말씀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주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다윗의 소원을 거절하는 부정적인 말씀(4-7절), 2) 다윗이 명성과 권세를 누리게 된 것에 대한 간략한 고찰(8-11ㄱ절), 3) 다윗 왕조에 대한 예언이다(11ㄴ-16절). 이 가운데 3)이 가장 오래된 본문이다.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2). 2절에서 다윗은 새로운 궁전에 자리 잡게 되자 자신의 웅장한 궁전에 비해 주님의 계약 궤를 모신 초라한 장막이 대조되어 마음이 쓰인다. 나탄 예언자는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통치하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예루살렘 무대에 등장하여 예루살렘 세력의 일부로 등장한다(1열왕 1장). 그 후 그의 아들들 중 두 아들은 중요한 관리가 된다(1열왕 4,5). 나탄은 12장에서 다윗을 비판하려고 나서는 궁정 예언자로 묘사된다. “향백나무 궁”은 페니키아 기술자들이 건축한 것이었다(2사무 5,11 참조).
“나탄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3). 3절에 따르면 다윗의 계획에 나탄이 긍정적인 대답을 한 것이 분명하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는 다윗이 누리는 축복의 비밀을 밝혀 준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셔서 다윗은 복을 받고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느님께서 다윗과 함께 해주심은 단 한 번이 아니라 영원히 지속된다.
그런데 5-7절은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의 제안을 무조건 거절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현재의 문맥에서 3절은 나탄이 보인 최초의 반응이고 5-7절은 후에 성전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며 성전 건축을 일시적으로 연기하는 것으로 읽힌다.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과 함께 옮겨 다니던 그 모든 곳에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어느 지파에게, 어찌하여 나에게 향백나무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한마디라도 말한 적이 있느냐?”(7).
아마도 다윗에게 주어진 예언은 원래 긍정적이었을 것이다. 다윗이 계약 궤를 위한 집(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기 소원을 예언자에게 말했을 때, 나탄은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라며 그것을 허락한 것 같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다윗 집안(왕조)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다윗 통치 말기는 내분과 내란으로 얼룩져(압살롬, 세바 등의 반역) 다윗은 자신이 제안한 성전을 지을 수 없었고(1열왕 5,17 참조), 그에 합당한 준비만 할 수 있었을 뿐이다(1역대 22,2-5). 그렇게 되자 다윗이 성전 건축을 제안한 사실보다는 다윗 왕조에 대한 약속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4-7절의 건축 제안 거부 이야기는 성전이 파괴된 유배 초기 시대에 첨가되었을 것이다. 이 거부는 후에 일어난 성전 파괴에 대한 설명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즉, 성전은 처음부터 주님께서 요구하시지 않은 것이었기에 소멸되었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또한 성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에 대한 예증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신명기적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들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 본문은 다음의 세 단계를 거쳐 형성되었을 것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1) 나탄이 했던 최초의 예언 내용은 주님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고 말한 다윗의 의도와 관련하여 다윗에게 한 왕조가 약속되었다(1ㄱ. 2-3. 11ㄴ-12. 13ㄴ-15ㄱ절)는 것이다.
2) 성전과 다윗에 대해 비교적 비호의적인 어떤 예언자들의 무리에 속한 저자가 이 원문서를 확장시켰다(4-9ㄱ. 15ㄴ). 그는 여기서 하느님께는 성전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분이 원하신 것도 아니었으며, 다윗이 성공한 것은 온전히 하느님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3) 신명기계 역사가의 편집 단계로(1ㄴ. 9ㄴ-11ㄱ. 13ㄱ. 16절 등), 그는 성전에 대한 부정적 견해(5ㄴ-7절)를 솔로몬 성전에 대한 긍정적 지지로 바꾼다. 즉,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않은 이유는 그의 통치 기간이 시기적으로 적당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4절은 예언의 서두로 잘 알려진 “그런데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로 시작한다. 이 예언의 서두는 구약에서 약 200회 정도 나온다. “그날 밤”은 하느님의 계시가 꿈이나 환시를 통해 온 것임을 시사한다.
5절에서 “가서 말하여라.”는 하느님의 사자(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 ‘말씀 전달자’)로 임명하는 말로 예언서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나의 종 다윗”은 신명기계 역사가의 표현이다. 그러나 ‘종’이라는 용어는 고대에서 기원한 것일 수도 있다. 고대 근동에서는 임금들을 흔히 신(神)의 종으로 표현하곤 했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는 일반적으로 말씀 전달자가 전하려는 말씀(예언)앞에 하는 말로, 전할 말씀에 권위를 부여하다.
예언은 수사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네가’는 강조의 의미로, 현재 문맥에서는 반대의 대상이 다윗임을 시사한다. 또한 13절에서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지을 ‘그’와 대비시키면서 편집자는 영구적인 반대로 보이는 5-7절을 일시적인 반대로 바꾸어 놓는다.
5-7절이 쓰인 시기는 바빌론 유배 초기로 보인다. 주님의 집(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은연중에 설명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성전을 요구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마치 실로 성전과 같이(예레 7,12) 사라진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성전의 비극적인 운명을, 다윗 가문의 운명과 동일하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그 가운데 계셨다. 이러한 생각은 성전과 성전의 의식에 회의적이던 일부 예언자들 사이에 펴져 있었다.
이와 같이 ‘사건 이후의 예언’이 지닌 목적은 비극적인 사건, 즉 주님의 집의 파멸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을 제공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 역학을 했다. 이 해석적인 예언의 내용을 신명기계 역사가가 수용하였고, 13절을 덧붙였다.
6절은 사무엘 시대에 계약 궤가 있었던(1사무 3,3) 실로 성전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 같다(판관 18,31; 1사무 1,7. 24; 3,15). 실로 성전의 몰락은 예레미야 시대에까지 알려진 사실이다(예레 7,12.14).
6-7절은 하느님의 무한한 자유를 강조한다. 하느님의 자유는 “천막과 성막 안에만 있으면서 옮겨 다녔다.”라는 말마디로 표현된다. 계약 궤 운반 전승(1사무 4-6장과 2사무 6장)에서는 이미 계약 궤를 조종하려는, 즉 하느님을 조종하려는 어떤 시도도 반드시 재앙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주님의 말씀이 4절부터 계속해서 나탄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너는 나의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8). 8-9절은 다윗이 권좌에 오른 과정에 대한 간략한 개요, 즉 모든 주권은 만군의 주님께 있으며, 다윗의 성공 원인은 오직 하느님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하느님은 비천한 목동이었던 다윗을 당신 백성들을 이끌 선택된 임금으로 세우셨다. 8-9ㄱ절은 주님께서 다윗에게 해주신 일을 회고하고, 9ㄴ-10절은 미래의 발전을 예고한다. 주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승리(9ㄱ절)들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고(9ㄴ절), 동시에 하느님의 백성들을 위한 땅을 확보해 주었다(10ㄱ절). 이로써 여호수아가 부분적으로 이루었던 과업을 다윗이 완성시켰다.
주님께서 다윗과 함께 있음은 다윗 권력 상승 전승에서 되풀이되는 신학적 모티프이다(1사무 16,18; 17,37; 18,14. 28; 2사무 5,10; 7,3).“모든 원수”(9절)는 외부의 적 특히 필리스티아인들뿐만 아니라 사울이나 이스 보셋과 같은 내부의 적도 포함한다.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9절)는 것은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시편 89편의 28ㄴ절에서는 “세상 임금들 가운데 으뜸으로 세우리라.”고 함으로써 이 구절의 핵심을 말한다.
10절의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고”는 가나안 땅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다윗에게 주신 축복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백성들은 판관시대에 겪은 초기의 억압과는 달리 안전하게 살게 될 것임을 나타낸다. 판관시대 동안 억압을 당한 것은 이스라엘이 주님을 거슬러 죄를 지은 때문이기에(판관 3,7-8; 10,6-7; 13,1), 평화의 약속은 조건적인 것이 되었다. 비록 주님께서 당신의 자애를 영원히 빼앗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할지라도(15절) 이와 같은 원인과 결과의 원리는 다윗 임금에게도 적용될 것이다(14절 참조).
11절은 ‘집’이라는 낱말을 가지고 언어유희를 한다. 하느님께 향백나무로 지은 ‘집’, 곧 언제까지나 머무실 수 있는 성전을 마련해 드리고자 하는 다윗에게 하느님은 오히려 하나의 ‘집’을 세워(집안을 일으켜) 후손들을 통하여 언제까지나 이어질 주권, 곧 왕조를 주시겠다고 하신다.
12-15절은 현재 형태에서 솔로몬에게 하시는 하느님 약속의 말씀으로 여겨지며, 왕조 전체에 대해서는 암시만 될 뿐이다. ‘나의 이름을 위한 집’(13절)은 신명기계 역사가의 표현이며, 하느님의 현존을 더욱 추상적으로 나타낸다. 하느님의 거처는 하늘에 있지만(신명 4,36; 26,15; 시편 33,13-14; 이사 63,15),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13). 13절은 주님을 위해 집을 지을 다윗의 계승자와 다윗을 위한 집, 즉 다윗의 왕좌를 세우실 주님 사이에 대구를 이룬다. 이 왕권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며, 이러한 주제는 다윗의 기도에 반영되어 있다(7,24-26.29).
14절의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에서 드러나듯 다윗 혈통의 임금은 주님의 아들로 믿어졌다(시편 2,7-8; 89,27-28). 하지만 이 부자 관계는 친자 관계가 아니라 양자 관계이며, 계약과 왕권의 허락과 관계된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세 가지 합법적 계약의 당사자들에게 적용되었다. 계약이라는 표현은 나탄의 예언에 나오지 않지만 15절에 전제되어 있다. ‘자애(헤세드: 계약에 기초한 책임 있는 지속적인 사랑이다. 헤세드라는 말은 은혜, 은총, 긍휼, 인애, 자비, 우의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됨)’는 계약의 본질을 뜻하기 때문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나탄은 이 모든 말씀과 환시를 다윗에게 그대로 전하였다”(16-17).
이 본문은 신명기계 역사가의 관념적 절정이요 후대에 메시아 대망의 모체가 된 부분이다. 특히 왕조에 대한 예언은 실제적인 다윗 가문의 권리에 해당되었다. 즉, 왕조의 원리와 다윗 혈통 임금들의 통치를 합법화시켰다. 원래 본문은 다윗 가문의 합법성과 왕조 계승권을 의심했던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이 시도는 다윗 가문이 망했을 때조차도 나탄의 예언이 미래의 세대들과의 관련성을 유지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주님께서 자신들과의 계약을 이루시되 비록 즈루빠벨과 같은 당시 인물이 아니더라도 미래의 메시아적인 인물을 통해서 이루실 것으로 확신했다. 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이르러 다윗의 진정한 후손이자, 하느님께서 다윗의 왕좌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루카 1,32) 안에서 성취되었다.
2사무 7,18-29 다윗이 드리는 감사 기도
이 본문은 1-17절에 기록된 나탄의 예언에 대한 다윗의 반응이다. 이 기도는 감사 기도(18-24절)와 청원 기도(25-29절)로 구성되어 있다. 기도의 핵심 내용은 주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계약)을 이루어 달라는 간구이다. 따라서 다윗과의 계약이 깨어진 듯 한 불안한 상황에서 드린 기도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기도의 역사적 배경은 바빌론 유배 시대로 볼 수 있다. 유배 공동체의 소망과 두려움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기도인 것이다.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 나아가 앉아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18). 18절에서 사용하기 시작하는 ‘주 하느님(아도나이 야훼)’이라는 호칭은 이 기도에서 일곱 번 사용된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사무엘기에서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이 호칭은 에제키엘 예언서에서 200번 넘게 사용된다. 이러한 사실로도 이 기도의 시대적 배경이 바빌론 유배 시기임을 짐작케 한다.
“제가 누구이기에”는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하는 말이다(1사무 18,18; 1역대 29,14). 여기서는 하느님의 은혜와 놀라운 인도하심에 찬미를 드리는 말이기도 하다. 다윗의 ‘집안’이라는 표현은 이 기도에서 일곱 번 사용된다.
“주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이 또한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 되기를 바랍니다”(19). 19절에서는 주님께서 과거에 다윗과 함께하셨던 것처럼 미래에도 다윗의 집안과 함께하시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안정적인 왕위 계승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이 다윗이 당신께 무슨 말씀을 더 드릴 수 있겠습니까? 주 하느님, 당신께서는 당신 종을 알고 계십니다”(20). 20절의 “당신 종을 알고 계십니다.”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뜻한다(시편 38,10; 139,1-4)
“그러므로 주 하느님, 당신께서는 위대하시고 당신 같으신 분은 없습니다. 저희 귀로 들어 온 그대로, 당신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습니다”(22). 22절에서는 주님께 드리는 찬미를 시작하며, 주님과는 그 누구도 비교할 만한 상대가 없음을 강조한다.
“또한 당신을 위하여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당신의 백성으로 튼튼하게 하시고, 주님, 당신 친히 그들의 하느님이 되셨습니다”(24). 24절은 계약 용어를 사용한다. 즉, “나는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너희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탈출 6,7; 레위 26,12 등)라는 계약의 핵심 말씀을 변형시켜 사용한 것이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 종의 귀를 열어 주시며, ‘내가 너에게서 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종은 이런 기도를 당신께 드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27). 27절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너에게서 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선포하셨는데, 다윗은 이러한 하느님의 계약에 비추어 기도를 드린다.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는 하느님 이름은 예레미야서 산문 부분에서 32이나 나온다. 다른 곳에서는 1역대 17,24; 이사 21,10;37,16; 스바 2,9에만 나온다.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29). 하느님의 말씀에 다윗이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다윗의 간절한 기도 내용이다. 29절에서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테다베르'는 기본형이'다바르'로 주어의 능동적인 행동을 강조하는 동사이다. 따라서 이 말이 강조하는 바는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다윗 가문에 대한 축복의 약속을 선포하셨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이 다윗이 하느님의 일방적인 약속의 선포를 의미하는 동사를 사용했다는 사실은 그가 하느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사무 8,1-14 다윗이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다
1-14절에서는 다윗이 자기 백성을 원수들과 억압자들로부터 구원해 내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는 이상적인 임금의 한 단면이다.
“그 뒤에 다윗은 필리스티아인들을 쳐서 굴복시키고, 필리스티아인들의 손에서 메텍 암마를 빼앗았다”(1). 1절에서 “그 뒤에”라는 말이 시작되는 것을 보면 보는 순간 8장의 정복 사업(征服事業)이 7장에 언급된 다윗 약속 이후에 일어난 일인 줄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경우에는 다윗이 모든 대적을 파한 후 평안히 궁에 거했을 때 다윗 약속을 받았다고 한 7,1에 혼란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그 뒤에'란 용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예히 아하레 켄'이 반드시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용어는 서로 다른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단순 접속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이 용어는 여기서 내용 전개가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연결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다윗이 다윗 약속을 받은 때는 본장에서와 같은 정복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윗 통치 말기의 일임을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이다.
여기에서 '메텍 암마'는 어느 한 지명(地名)을 의미하지 않고, 필리스티아 사람들에게 속한 여러 성읍들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메텍 암마'란 '어머니의 굴레'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고대근동 지방에서는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켜 '어머니'라고 불렀다. 또한 성경에서도 한 나라의 수도의 통치를 받는 주변 성읍들을 그 수도의 '딸들'이라고 기록하였다(여호 15,45). 이렇게 볼 때 '어머니'란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다섯 성읍 중 주도권을 장악했던 '갓'을 가리킴에 틀림없다. 그리고 여기서 '굴레'라는 말은 누구에겐가 종속(從屬)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말은 갓에 종속된 필리스티아의 네 성읍들(가사, 아스톳, 아스클론, 에크론, 여호 13,3)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사실에 의거할 때 결론적으로 다윗이 메텍 암마를 빼앗았다는 말은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들의 연맹 도시들, 즉 수도인 갓와 나머지 네 성읍 모두를 빼앗았다는 의미라고 하겠다(1역대 18,1). 따라서 이날의 다윗의 승리는 필리스티아에 대한 완전한 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또 모압을 치고 그들을 땅에 눕힌 다음 줄로 쟀다. 두 줄 길이 안에 든 사람들은 죽이고, 한 줄 길이 안에 든 사람들은 살려 주었다. 그러자 모압은 다윗의 신하가 되어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2).
사해 동쪽에 위치했던 모압(Moab)은 이스라엘과는 비교적 좋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신명 2,9;룻 1,1)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을 때 그에게 큰친절을 베푼 나라이기도 하다(1사무 22,3, 4). 그런데 다윗이 이러한 나라를 정복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다스린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이후 다윗을 알지 못하는 자가 모압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 다윗과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아무튼 이처럼 다윗이 모압을 정복하고 그들을 조공국으로 삼은 것은 발람의 예언(민수 24,17)이 성취된 사건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2절에서 줄로 잰다는 것은 사람의 길이를 의미한다. 다윗이 죽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장정(壯丁)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주로 소년과 노약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다윗은 싸움에 임할 수 없는 자들은 살려 주고 대신 싸움에 임할 수 있는 자들만을 죽임으로써 모압 사람들의 씨를 말리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유대 전승(Midrash)은 이러한 다윗의 행위를 가리켜 정당한 복수였다고 주장한다. 즉 과거 다윗이 도피 생활 중에 있을 때 자기 부모를 모압 왕에게 의탁한 적이 있는데(1사무 22,3) 그때 저들이 다윗의 부모를 살해하였으므로 이제 다윗이 그 원한을 갚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전승에 불과하므로 그 사실성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다윗은 르홉의 아들, 초바 임금 하닷에제르가 유프라테스 강 가에 자기 세력을 일으키러 갈 때 그를 쳐서”(3). 3절에서 초바라는 곳은 다마스커스 북쪽과 레바논 산지의 동쪽에 위치했던 아람의 작은 나라이다. 다윗의 통일 이스라엘 왕국 당시 아람인들은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개의 소국가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가장 강력했던 소국이 바로 초바로서 그 영향력은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까지 뻗쳐 있었다. 즉 당시 초바는 요르단동편과 시리아의 통치권을 놓고 이스라엘과 다툴 정도로 최강적이었다. 때문에 초바는 사울, 다윗,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자주 전투를 하였다(10,16-18;1사무 14,47;1열왕 11,23, 24;2역대 8,3).
초바 왕 하닷에제르의 이름의 뜻은 '도움은 하닷이시다'이다. 그런데 '하닷'은 당시 시리아의 태양신의 이름이었다. 그는 이방 신을 숭배하던 자였음을 알 수 있다.
3절에서 “자기 세력을 일으키러 갈 때”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때문에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먼저 1사무 14,47에 의하면, 초바 왕이 사울 왕과 싸워 패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 잃은 지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가 다윗에게 도전했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사울 왕의 말기(末期)에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극도로 쇠약해져 필리스티아군에게 위협 당하는 입장이었는데(1사무 28-31장), 초바 왕이 그때를 놓치고 다윗 왕 때에 비로소 그 잃은 지역을 회복하려 했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2절의 주어를 하닷에제르가 아닌 다윗으로 보는 견해이다. 즉, 다윗은 과거 하닷에제르에게 빼앗겼던 유프라테스 강 지역을 회복하기 위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다마스쿠스의 아람인들 가운데에 수비대를 두었다. 그리하여 아람인들도 다윗의 신하가 되어 조공을 바쳤다. 주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도와주셨다”(6). ‘수비대’에 해당하는 '네치브'는 '나차브', 즉 '공고히 하다', '배치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는 내정 간섭을 위한 총독부나 통치 기관이 아니라 군사적인 도전을 막기 위한 군사 기지(軍事基地)를 의미한다(1사무10,5;13,3).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가 승리한 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것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널리 성행했던 계약 관계였다. 즉, 그 당시 국가 관계를 보여 주는 헷족의 계약 문서를 보면 속국의 왕은 종주국의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조공을 바침으로써 종주국의 불가침 조약(不可侵條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속국의 왕은 여전히 자주권을 가지고 자기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는데 대신 그 계약을 반드시 이행하여야만 했다. 한편 이상에서처럼 다윗이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던 아람족을 정복하며 다마스쿠스에 수비대를 두며 또한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게 된 것은 일찍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약속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의 국경이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까지 이를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세 15,18).
“하맛 임금 토이는 다윗이 하닷에제르의 군대를 모두 쳐부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아들 요람을 다윗 임금에게 보내어 문안하고, 다윗이 하닷에제르와 싸워 그를 쳐부순 것을 축하하였다. 토이는 하닷에제르와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은 기물과 금 기물과 청동 기물들을 보내왔다”(9-10).
하맛(Hamath)은 아람 초바 바로 윗쪽(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아람 소국이다. 즉 이 나라는 오론테스 강 유역에 건설된 도시 국가였으며 아람 초바와 더불어 유프라테스 강으로부터 레바논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나라이다. 따라서 예언자 아모스는 이를 '큰 하맛'이라고 불렀다(아모 6,2). ‘토이’라는 이름의 뜻은 '방황하다'이다. 일명 '토우'(Tou)라고도 하는데 이는 '웃는 것'이란 뜻이다(1역대 18,9).
토이는 자기 아들 요람을 다윗에게 보낸다. 1역대 18,10에는 요람(Joram)이 하도람(Hadoram)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한 사람의 이름이 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하나는 히브리식 발음이며, 또 하나는 아람식 발음이기 때문이다. 즉, 하람에서 '하도르'(Hador)는 시리아의 신(神)의 이름으로서 이는 아람식 발음이며, 요람은 '주님은 높으시다'는 뜻으로 히브리식 발음인 것이다. 한편, 토이가 한 나라의 왕자를 사절로 보냈다는 사실은 그가 다윗 왕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한 것을 의미한다.
초바와 하맛은 아람 소국들 중 자웅(雌雄)을 겨루는 강력한 국가들이었다. 특히 이 두 나라는 인접(隣接)하여 있었기 때문에 잦은 전투를 벌였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초바에 대한 다윗의 승리(3-8절)는 하맛 왕 토이에게는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윗에게 자기 아들을 보내어 감사를 표하고 또한 양국 간에 화친(和親)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다윗 임금은 이것들도 그가 정복한 모든 민족들에게서 거둔 은과 금과 함께 주님께 바쳤는데”(11). 11절에서 다윗은 전쟁의 승리를 통해 거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친다. 다윗이 모든 정복 전쟁에서 승리할 뿐 아니라 토이로부터 경하(慶賀)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하느님께서 다윗의 힘이 되어 주셨기 때문이었다(6,14절). 즉 다윗의 전쟁은 주님의 거룩한 전쟁이었으며 그 가운데서 다윗은 오직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주시는 승리를 거둘 뿐이었다. 따라서 이제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을 하느님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하느님께 바친 것이다. 한편 이 모든 헌물들은 훗날 솔로몬에 의해 성전 건축에 사용되었다(1열왕 6장;7,13-51).
“그는 에돔에도 수비대를 두었다. 에돔 전지역에 수비대를 두자 에돔 전체가 다윗의 신하가 되었다. 주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도와주셨다”(14). 수비대는 속국의 군사적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적 요새, 또는 기지를 가리킨다. 에돔 전체가 다윗의 신하가 되었다는 것은 에돔이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음을 의미한다(6절). 그런데 이 같은 사건은 장차 에돔이 이스라엘을 섬기게 되리라는 이사악(창세 27,39)과 발람의 예언(민수 24,18)이 성취된 것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하느님의 약속은 때가 되면 온전히 성취됨을 볼 수 있다(1사무 15,29).
2사무 8,15-18 다윗의 관리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모든 백성에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였다”(15). 15절에서는 모든 백성에게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고 복지를 구현하는 다윗의 또 다른 이상적 모습이 그려진다. 이는 다윗이 주 하느님의 통치 특성을 반영하여(시편 89,4) 통치한 때문이다.
16-18절에는 다윗의 주요 관리 명단이 나온다. 이 명단에서는 세 쌍의 관리가 소개된다. 즉, 군대 지휘관 두 명(요압, 브나야), 최고 민간 관리 두 명(여호사팟, 스라야), 사제 두 명(차독, 아히멜렉)이 그들이다. 이러한 복수 조직은 권력 집중을 막으려는 것일 수 있다.
요압(16절)은 군대 지휘관으로 이스라엘 지파들을 소집하는 책임을 맡았고, 브나야(18절)는 용병들을 관할했다. 요압이 브나야보다 책임이 더 컸다. “기록관”은 국가의 여러 기록과 문서들을 관리하는 기록자였을 것이다.
스라야(17절)는 평범한 서기관이 아니라 탁월한 서기관이었다. 국가의 주요 비서 가운데 하나로 최고 위치에 있는 민간 관리들 중 하나였다. 그는 서기관 혹은 왕실 비서라고 할 수 있다.
이 본문에서는 “차독과 에브야타르의 아들 아히멜렉”이 사제로 나온다. 20장 23-26절에 나오는 두 번째 명단에서도 ‘다독과 에브야타르’는 사제로 나온다. 에브야타르는 사울이 놉의 사제들을 학살하던 현장에서 도피하여 다윗에게 합류한 인물이다(1사무 22,20-23). 그러므로 이 본문(17절)을 ‘차독과 아히멜렉의 아들 에브야트로’로 바로 잡으면 좋을 것이다.
브나야(18절)는 다윗의 호위대장(2사무 23,23), 즉 ‘크렛족과 펠렛족’으로 기술된 용병 부대의 대장이었다. 다윗의 아들들이 지녔던 직분인 ‘사제’는 아마도 일시적이었던 것 같다.
다윗 왕국의 행정 모형은 아마도 가나안 도시 국가들(특히 예루살렘)의 행정 형태 혹은 가나안을 통해 전해 받은 이집트 왕실의 행정 형태일 것이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서 관리들의 도움을 받아 의로운 통치를 했다.
2사무 9,1-13 다윗이 요나탄의 아들에게 호의를 베풀다
“하루는 다윗이 물었다. ‘사울 집안에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탄을 기억하여 그에게 자애를 베풀고자 한다”(1).
다윗 왕이 이처럼 사울 가문에 대하여 관심을 표명하게 된 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분명치 않다. 단지 추정해 보면 이스라엘과 필리스티아 간의 길보아 전투(1사무 31장)가 있은 지 약 20여년이 지난 때 곧 다윗의 40년 통치 기간 중, 중반기 때(5,4)의 일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길보아 전투 당시 므피보셋은 고작 5세에 불과했으나(4,4) 지금은 어엿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있기 때문이다(12절). 따라서 지금 므피보셋의 나이는 아무리 적게 쳐도 20세는 넘었음이 분명한 것이다. 한편 이때는 다윗이 어느 정도 이스라엘을 안정 궤도에 올려 놓은 때이다. 즉 그들은 모두들 그 동안 눈코 뜰새 없이 강력한 통일 이스라엘 왕국 건설에만 전념했던 다윗이 이제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서자 그 옛날 절친했던 친구 요나탄과의 약속(1사무 20,14, 15, 42)을 기억했을 것이다.
다윗이 이처럼 사울의 후손, 그것도 특별히 요나탄의 후손을 찾아 자애를 베푸려고 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즉 첫째, 요나탄은 다윗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다윗은 요나탄 생전에 그의 가족을 보호해 주기로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윗이 은혜를 베풀기 위해 사울 가문의 남은 자를 찾고 있음은 요나탄과 다윗 간의 우정이 죽음 이후에도 계속될 만큼 깊고도 성실한 것이었음을 증거해 준다(1사무 18,1-3;20,42).
‘자애’란 구약에서 은총 또는 은혜에 해당하는 말로는 '헨'과 '라촌', '헤세드' 등이 있다. 이 중 '헨'은 단순히 '즐겁고 아름다운 것'을 의미하며, '라촌'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를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의 은총에 해당하는 '헤세드'는 이와는 달리 약속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즉, 이 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약속대로 택한 백성에게 부어 주시는 것과 같은 풍성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에서 다윗이 지난번 요나탄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그의 후손에 대한 지극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1사무 18,3).
2절에 의하면 다윗은 사울의 집안의 종 치바는 훗날 압살롬의 난을 피해 유랑길에 나섰던 다윗에게 자기의 주인 므피보셋을 모함하고선 그 재산을 차지하는데 이로써 그가 나쁜 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자 임금은 “사울 집안에 아직 살아남은 사람이 없느냐? 그에게 하느님의 자애를 베풀고자 한다.” 하고 말하였다. 치바가 임금에게 “요나탄의 아들이 하나 있는데, 두 다리를 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3).
‘하느님의 자애’는 최상의 자애를 말하는 것이지 다우시이 감하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자애를 베풀겠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하느님’은 최상급 표현을 대신하도록 쓰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곧 다윗이 요나탄의 후손에게 베풀고자 하는 자애가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의미한다. 즉 이제 다윗은 하느님께서 지금껏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자애를 기억하고 그도 타인에게 그 같은 자애를 베풀려 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는 다윗이 요나탄과 맺은 맹세가 곧 하느님을 증인으로 삼은 것이었다. 이제 그 하느님 앞에서 맹세한 대로 성실히 이행하려 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즉 다윗은 사울 가문에 자애를 베풀려는 것은 비록 자신이지만 자애를 베풀도록 자신을 주장하신 이는 오직 하느님이심을 이 말을 통해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무슨 일에서든 먼저 하느님께 영광 돌리기를 잊지 않는 아름다운 신앙자세가 아닐 수 없다(1코린 10,31).
므피보셋은 다섯살 때에 사울과 요나탄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 급히 도망하던 유모의 팔에서 떨어져 불행히도 절뚝발이가 되었었다(4,4). 한편 본장에는 므피보셋이 절뚝발이란 사실이 두번이나 언급되고있다(13절). 이는 곧 더 이상 사울 가문에 희망이 없음을 의미함도 있지만 여기서는 무엇보다 므피보셋이 절뚝발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친아들처럼 사랑한 다윗의 사랑과 인격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윗이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의 아버지 요나탄을 기억하여 너에게 자애를 베풀고자 한다. 너의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땅을 너에게 돌려주겠다. 그리고 너는 늘 내 식탁에서 음식을 먹어라.”(7). 왕위에 오르면 일단 정적(政敵)과 그 일가 친족들을 모조리 진멸하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한 일반적 관례이다. 따라서 므피보셋은 그 같은 관습에 따라 다윗 왕이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염려하였을 터인데 본절은 바로 그러한 므피보셋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려는 다윗의 애정 어린 분부이다.
사울의 모든 땅 즉 기브아에 있던 그의 사유지를 의미하는데(1사무 10,26) 아마도 이 말은 그 동안 치바가 관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다윗의 이러한 약속은 간교한 치바에게는 큰 실망거리였으나 마카르의 집에 숨어 살던 므피보셋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었을 것이다. 다윗을 므피보셋을 자신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하였다.
“그러자 므피보셋이 절하며 말하였다. ‘당신 종이 무엇이기에 죽은 개와 같은 저를 보살펴 주십니까?”(8). 유다인들은 개를 멸시하였다. 더구나 '죽은 개'란 시체를 의미하는데 모세 율법에서 시체는 아주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여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레위 22,4). 따라서 8절은 가장 보기 싫고 하찮은 인간을 비유한 말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처럼 므피보셋이 자신을 극도로 비하시켜 표현한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다윗 왕의 큰 은혜에 감격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 자신이 다윗 왕의 은혜를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므피보셋은 예루살렘에서 살며 늘 임금의 식탁에서 음식을 먹었다. 그는 두 다리를 절었다”(13). 므피보셋의 약점과 그에 대한 다윗의 은혜를 서로 대조시키고 있는 구절이다. 즉 이와 같이 저자는 이 둘을 대조시켜 놓음으로써 므피보셋에 대한 다윗의 사랑이 극진하며 또한 헌신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사무 10,1-19 다윗이 암몬과 아람을 쳐부수다
“그 뒤에 암몬 자손들의 임금이 죽자, 그의 아들 하눈이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 다윗은 ‘하눈의 아버지 나하스가 나에게 자애를 베풀었듯이, 나도 그의 아들 하눈에게 자애를 베풀어야겠다.’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다윗은 신하들을 보내어, 그에게 그의 아버지에 대한 조의를 표하고자 하였다.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들의 땅에 들어가자”(1-2).
나하스가 다윗에게 언제 어떠한 은총을 베풀었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음과 같이 각기 다르게 추측하고 있다. 아마도 나하스가 다윗의 즉위식에 특사를 보내어 축하해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또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다닐 때 나하스가 그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즉 사울에게 패배한 나하스(1사무 11장)가 같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는 다윗을 동정하여 그를 도와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나하스가 다윗에게 베풀어 주었다고 하는 '은총'이란 히브리어로 '헤세드'인데, 이는 '약속적인 호의'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2절은 쌍방간에 불가침 조약과 같은 모종의 계약을 체결한 것을 가리킬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3절에 다윗의 호의에 대한 암몬 장수들의 오해이다. “이 성읍을 샅샅이 살피고 염탐하여 이곳을 뒤엎으려고, 다윗이 자기 신하들을 임금님께 보낸 것이 아니겠습니까?”(3) 이와 같은 저들의 오해는 분명 다윗의 세력 확장에 대한 저들의 염려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다. 즉 저들은 가나안 지역의 최강자 필리스티아와 이웃 나라인 모압이 다윗의 군대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사실(8,1)을 알고 저들의 미래를 은근히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웃 나라인 모압이 다윗에게 패배한 이후에 끔찍한 형벌을 받은 사실(8,2)은 그들에게 더욱 큰 경계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이 다윗의 호의를 그들을 정복하려는 저의(底意)로 오해하게 된 것도 무리(無理)는 아니다.
“그래서 하눈은 다윗의 신하들을 붙잡아 턱수염을 절반씩 깎아 버리고, 예복도 엉덩이 부분까지 절반씩 잘라 낸 뒤에 돌려보냈다”(4). 고대 근동지방에서 남자의 수염은 명예와 권위를 상징하였다. 또한 수염을 기르는 것은 자유인의 권리를 상징한 것이었다. 따라서 다윗의 특사들이 수염을 깎이운 것은 노예처럼 취급된 최고의 수치였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러한 관습은 아랍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 그들은 수염을 깎이우는 것을 죽음보다 더한 수치로 여기고들 있다.
여기서 '예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두'는 '펼치다', '확장시키다'는 뜻의 동사 '마다드'에서 파생된 말이다. 즉 이는 발목까지 길게 내리운 옷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람인들은 다윗 신하들의 긴 옷을 엉덩이 윗부분까지 잘랐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겉옷 속에 내의를 입지 않았으니 그들의 이러한 행위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선 지독한 모욕(侮辱)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다윗에게 보고하자, 임금은 그들이 심한 모욕을 당하였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그대들의 턱수염이 다 자랄 때까지 예리코에 머물러 있다가 돌아오시오.’ 하고 말하였다”(5).
다윗은 신하들에게 예리코에 머물다가 수염이 어느 정도 자라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한 것은 저들의 수치를 감추어 주기 위한 배려임에는 분명하다. 왜냐하면 랍바 성에서 가장 가까운 예리코는 비교적 이스라엘의 변방(邊方)으로서 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삼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의 이같은 말에는 보다 암시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즉 5절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는 말 다음에는 아무 말이 없긴 하지만 이는 분명 '머물다가 돌아오라 그 동안에 너희가 당한 수치는 내가 반드시 갚아 주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예리코(Jericho)의 뜻은 '향기로운 성읍' 또는 '달의 도시'이다. 그런데 이곳은 종려나무 산지로 유명하였으므로 일명 '종려나무 성읍'으로도 불리웠다. 한편 이곳은 랍바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위치하였는바 곧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28km 지점이다.
“암몬 자손들은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을 사게 된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암몬 자손들은 사람을 보내어, 벳 르홉의 아람인들과 초바의 아람인 보병 이만 명, 천 명의 군사를 거느린 마아카 임금, 그리고 톱 사람 만 이천 명을 고용하였다”(6).
다윗의 사신들을 모독하므로 일종의 선전 포고(宣戰布告)나 다름없는 짓을 자행한 암몬 왕 하눈(4절)은 이처럼 인근 4개국의 군대 3만 3천명을 고용하여 다윗 군대와의 일전(一戰)에 대비하였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식하고 돌이키기는 커녕 오히려 다윗을 대적하기 위해 무력을 갖춘 것이다. 이는 곧 회개할 만한 마음 자세가 되어 있지 못하기에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해 하는 악인의 전형적인 표본이 아닐 수 없다.
“용기를 내어라. 우리 백성을 위해서, 우리 하느님의 성읍들을 위해서 용기를 내자. 주님께서는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이루실 것이다”(12).
암몬과 아람군과의 싸움에 임하기에 앞서 요압이 일사 각오의 정신으로 아비사이의 용기를 돋우는 장면이다. 이러한 요압의 각오는 단지 돈을 받고 전쟁에 임한 아람 군대의 정신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요압은 이스라엘의 성읍을 이처럼 '하느님의 성읍'(the cities of our God)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와 같은 요압의 발언은 이스라엘의 모든 재산이 하느님께서 선물로 그들에게 주신 것이라는 확신에 근거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이러한 발언 속에는 이스라엘의 한 치의 땅도 적들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각오가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요압은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을 위한 명분 있는 싸움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닷에제르를 따르던 모든 임금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에게 패배한 것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한 뒤에 이스라엘을 섬겼다. 그리고 아람인들은 두려워서 더 이상 암몬 자손들을 돕지 않았다”(19).
하닷에제르에게 속한 왕들이란 하닷에제르을 지원하여 다윗을 대적했던 아람 소국의 왕들을 의미한다(16절). “이스라엘과 화친한 뒤에”란 고대 근동 지방에서 전쟁을 치르고 난 후 승자와 패자 간에 맺는 종주권 계약(宗主權契約)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때에 패자는 승자에게 조공을 바쳐야만 했다. 아무튼 이처럼 이스라엘이 암몬군과 아람군에게 연전 연승(連戰連勝)한 것은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7,11)의 성취라는 의의를 지닌다.
2사무 11,1-27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밧 세바를 차지하다
암몬 자손과,그리고 아람 자손과 치른 전쟁(10,1-19)은 다윗이 저지른 간음과 살인이라는 범죄의 배경이 된다. 우리야가 요압과 함께 암몬의 수도를 포위하면서 전쟁터에 있을 때 다윗은 그의 아내 밧 세바와 간음을 저지른다 간음을 숨길 수 없게 되자 다윗은 전쟁터에서 전사하기 쉬운 장소에 우리야를 배치하라고 요압에게 지시하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다윗은 밧 세바를 아내로 삼는다.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2). 다윗이 낮잠을 자고 일어난 사실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물론 이러한 낮잠은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한 풍습이긴 하였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초긴장 상태에 있던 당시의 상황으로는 용납하기 힘든 자세이다. 즉 다윗은 낮잠을 잘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여야 마땅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다윗은 영적으로 나태한 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나태하고 게으른 자의 낮잠은 비극을 부르기 마련이다(4,5,6). 한편, 여기서 '저녁때'는 늦은 오후를 의미한다(1사무30,17).
잠에서 깬 다윗이 저녁녘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기 위해 지붕 위를 산책한 것을 가리킨다. 아마도 이는 다윗의 일상적인 습관이었을 것이다. 당시 다윗 궁은 높은 시온 산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그 인근 주민의 집 안마당을 잘 내려다 볼 수 있었다.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 것을” 혹자는 밧 세바의 이러한 목욕 행위가 다윗 왕을 유혹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의 주거 형태를 살펴볼 때 지나친 억측이다. 왜냐하면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집 안마당의 우물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그럴 경우 지붕 위에서 이웃집을 내려다 보는 행위는 금기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 왕의 간음 사건(3,4절)은 밧세바의 유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안목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 다윗 자신의 범죄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장수 우리야를 전쟁터로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애도 기간이 끝나자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다윗의 아내가 되었는데, 여인은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그러나 다윗이 한 짓이 주님의 눈에 거슬렸다”(27). 장수 우리야의 죽음을 내몰은 다윗은 아무 죄책감도 없이 그의 죽음을 전해 듣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한다. 밧세바가 낳은 아들은 다윗과의 부정한 관계에서 출생한 죄악의 씨앗이다(4,5절). 따라서 12장에 의거하면 하느님께서 다윗의 죄악을 징치(懲治)하시는 차원에서 그 아이의 생명을 거두어 가심을 볼 수 있다. 한편 이 아이외에도 밧세바는 이후 다윗에게서 네명의 아들을 더 낳았는데 곧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이다(1역대 3,5). 11장 전체에 걸쳐 다윗이 계획하고 실행했던 모든 행동이 악하다고 결론지어진 것은 하느님의 사람 다윗도 정욕에 사로잡혔을 때 결국 주님 앞에서 악인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음을 교훈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