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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 아하즈
이사 7-8장
오늘은 이사야 예언자가 역사적으로 어떤 상황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예언자의 삶에 대해 들어다 보는 시도를 해보려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텍스트로부터 역사적인 내용을 먼저 살펴보기로 하는데 이사야와 아하즈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예언자의 이름이고, 아하즈는 유다 임금입니다.
이사야서 7장, 8장, 9장 6절까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이사야 7장
1 우찌야의 손자이며 요탐의 아들인 유다 임금 아하즈(אחז) 시대에, 아람 임금 르친(רצין)과 르말야의 아들인 이스라엘 임금 페카(פקח)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왔지만,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2 아람이 에프라임에 진주하였다는 소식이 다윗 왕실에 전해지자, 숲의 나무들이 바람 앞에 떨듯 임금의 마음과 그 백성의 마음이 떨렸다.
일단 세 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하즈(אחז)와 르친과 페카
유다의 임금 아하즈는 우찌야의 손자이며 요탐의 아들이자, 그리고 아람 임금 르친과 르말야의 아들 페카. 이 세 명이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역사적 인물입니다. 이사야서 7장이 있기 전에도 시대적인 언급이 나옵니다.
1,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의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
이 1,1절은 이사야 예언서 전체의 제목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그리고 6,1절을 보면
6,1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솟아오른 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2절부터는
이사야의 환시, 그리고 환시 중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이사야가 듣게 됩니다. 6,1절에서 이사야가 환시 중에 부르심을 받게 되는 것은 예언자로서의 부르심이 아니라 그 후에 있게 될 7장 이하에 대한 부르심인 것 같습니다.
이사야가 예언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면 1장에서 나와야 하는데 6장에서 나왔다고 주석가는 설명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연구가들은 이사야서 1,1절부터~5장까지는 이사야가 우찌야와 요탐 시기에 예언자로서 했던 예언, 활동이 1장부터 5장의 내용인 것이고, 그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6장) 환시를 하고 7장부터는 아하즈 시기에 이사야 예언자가 어떻게 활동하고 있었나? 하고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라고
이사야 연구가들은 이사야 편집자의 시간적 배열을 알아듣는 것입니다.
우찌야, 요탐, 아하즈에서 요탐의 역사적 비중이 적습니다.
우찌야가 말년에 한센병이 걸립니다. 그래서 아들 요탐이 왕좌의 입장에서 통치를 하면서 거기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라던지 특이점은 잘 발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찌야 아하즈 히즈키야 정도가 될 텐데요.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은 슬라이드를 봅니다. 고대 이스라엘과 유다에 왕들의 족보입니다.
유다의 왕가는 다윗부터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모두 한 왕조, 다윗 왕조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조는 유다 왕조처럼 직선으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중간에 점선들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왕을 죽이고 왕조가 바뀌었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남유다는 단일한 왕조인데, 북이스라엘은 거의 열 지파가 모여있다 보니 그 안에서 정권의 교체나 권력의 이동이 일어나면서 여러 왕조가 있었던 것입니다. (구약 역사서 도움책 172-173쪽)
대략으로 보면 북이스라엘의 왕조,
예로보암- 바아사-지므리- 오므리-예후- 살룸-므나헴- 페카-호세아
왕조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유다부터 살펴보면,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므나쎄- 아몬 - 요시야- 여호야킴- 여호아하즈- 치드키야- 여호야킨
우찌야부터 시작해서 남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임금들에 이름입니다.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정도가 되겠습니다. 반면에 같은 시기에 북이스라엘의 왕조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좌우로 넓어집니다. 예로보암2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로보암 2세가 죽고 즈카르야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살룸이 즈카르야를 죽입니다. 그리고 잠시 임금이 되었다가 그 살룸을 므나헴이 죽이고, 므나헴이 죽고 프카흐야 아들이 임금이 되었다가 페카가 프카흐야를 죽입니다. 페카는 호세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그리고 호세아 때 북이스라엘 왕국이 멸망합니다. 점잖지 못한 표현으로 콩가루라는 말을 씁니다. 북이스라엘 왕조를 콩가루였다고 볼수 있습니다.
남유다의 맨 꼭대기에 있는 우찌야, 북이스라엘의 꼭대기에 있는 예로보암 이름이 있는데, 이 두 역사를 서로 평행하게 보기 위해서 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중요한 임금들의 이름만 가지고서... 오른쪽은 북이스라엘 왼쪽은 남유다입니다.
남유다 | 북이스라엘 | 아시리아 |
783 예로보암 2세 | ||
769 우찌야 | 748 므나헴 | 745 티글렛 필에세르 3세 |
735 아하즈 [친아] | 740 페카 | |
732 호세아 | 727 살만에세르 V | |
720 히즈키야 [반아] | 722 사르곤 2세 | |
705 산헤립 | ||
690 므나쎄 [친아] | ||
661 에사르 하똔 | ||
639 요시야[반아] | 669 아슈르바니팔(에즈 4,10) |
783년에 예로보암 2세가 임금이 되고 769년에 우찌야가 남유다의 임금이 됩니다. 748년 므나헴이 북이스라엘의 임금이 되고, 740년에는 페카가 북이스라엘의 임금이 됩니다. 그리고 735년에는 아하즈가 남유다의 임금이 됩니다. 732년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의 임금이 되고 722년에는 사마리아가 멸망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생각해보면 다윗이 왕국을 만든게 주전 1000년 경입니다.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의 시기를 거쳐서 왕국이 분열합니다(930년 정도)
왕국이 분열하고 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는데 일단 북이스라엘이 군사적인면에서 남유다보다 더 우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위에 시리아가 있었고, 시리아는 성경에서 아람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 중심 도시는 다마스쿠스입니다. 이 세 지명이 동일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시리아= 아람= 다마스커스)
이 시리아가 굉장히 강한 왕, 강한 나라여서 특히나 하자엘이 임금이었을 때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굉장히 위축될 수 밖에 없었는데, 하자엘이 죽고 나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도 조금 숨쉴 틈이 생겨서 나라를 부강하게 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 시기가 바로 북이스라엘은 783년 예로보암 2세부터이고 남유다는 769년 우찌야 시기입니다. 시리아가 하자엘 이후에 약해진 이유는 시리아보다 동쪽에 있었던 아시리아가 점점더 세력을 키우면서 시리아는 약화되었고, 그 틈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들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므나헴이 748년 정권을 찾게 되는데, 이 므나헴은 처음에는 아시리아에게 조공도 바치고 아시리아와 잘지내다가 시리아와 손을 잡으면서 아시리아에 저항하려는 시도를 한것 같은데 성공하지 못합니다.
페카로 권력이 넘어가고 이 페카의 시기에는 페카와 시리아가 손을 잡고 반아시리아 동맹을 만듭니다. 그 반아시리아 동맹을 만든후 아하즈에게 옵니다.
시리아 - 북이스라엘- 남유다가 모두 힘을 합쳐서 아시리아에 저항을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그랬을 때 남유다의 임금 아하즈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의 동맹이 남유다를 공격하고 약탈하게 됩니다.
그러자 아하즈가 아시리아에 도움을 청하고 아시리아가 북이스라엘과 시리아를 공격해서 그 두 나라에 큰 피해를 주는 역사적 배경이 이사야서 7장~8장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2열왕 16장을 보면 아하즈의 유다 통치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1 르말야의 아들 페카 제십칠년에 유다 임금 요탐의 아들 아하즈가 임금이 되었다.
2 아하즈는 스무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다. 그는 자기 조상 다윗과는 달리 주 그의 하느님의 눈에 드는 옳은 일을 하지 않고,
3 이스라엘 임금들의 길을 따라 걸었다. 그는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역겨운 짓을 따라, 자기 아들 마저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니까 야훼 하느님께 충실한 임금이 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아하즈에 대한 열왕기 하권에서의 평가는 좋은 평가가 아니고 이사야서에서도 역시 그렇습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찌야 시대는 2역대 26장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2열왕 15장에서도 우찌야의 시대를 다루는데 거기에서는 우찌야를 아자르야라고 부릅니다.
요탐에 관해서는 2역대 27장이 다루고 있고,
아하즈에 관해서는 2역대 28장,
히즈키야에 관해서는 2역대 29장~32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대기와 함께
2열왕 16장에서는 아하즈에 관해서,
2열왕 18장~20장에서는 히즈키야에 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한 임금에 대해서 역대기에 정보와 열왕기에 정보, 그리고 아하즈에 경우, 히즈키야의 경우에는 이사야 예언서에서 정보.
이렇게 세 가지 성서적인 소스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소스들이 오늘날의 연구가들에게는 대단히 힘든 문제들이 생깁니다.
주전 몇년에 그들이 임금이 되었는지 관한 숫자에 관해서 주석자들 의견이 다릅니다. 역대기에 나온 정보, 열왕기에서 나온 정보, 이사야 예언서에서 나온 정보에다 고대 근동에 다른 역사적인 연대기들, 메소포타지역에 남아 있는 고대 근동에 역사에 기록들, 이집트에 남아 있는 고대 근동의 역사에 관한 기록들이 다 서로 비교했을 때 정확한 시간이 나오질 않습니다.
문제가, 2열왕 18장
9 히즈키야 임금 제사년, 이스라엘 임금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가 사마리아로 올라가 그곳을 포위하고,
10 세 해 만에 함락시켰다. 곧 히즈키야 제육년, 이스라엘 임금 호세아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 것이다.
아시리아 기록을 보면 사마리아가 함락된 것은 주전 722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히즈키야 제육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었다면 히즈키야가 임금이 된건 주전 727년입니다.
그런데
13 히즈키야 임금 제십사년에,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으로 올라와서 그곳들을 점령하였다.
이것은 산헤립의 유다침공인데, 701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이 기록을 보면 히즈키야가 임금이 된 것은 714년이 됩니다.
722년??? 714년???
당장 2열왕 18장에 나오는 기록만 보더라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나온 아시리아 연대기와 숫자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20년째 이 문제를 가지고 생각하시는데,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표에서 히즈키야 720년 정도로 대충 생각하자! 타협적인 숫자로 적어두셨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학자들마다 이런 연대표시에 있어서 한 10년정도의 차이가 날수도 있고, 그것을 지금의 기록으로 역사적으로 어떤게 맞고 어떤게 틀리다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 것 같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런 순서로 이런 흐름으로 고대 근동의 역사가 흘러갔다로~
여기서 2열왕 18장에서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가 나옵니다.
2열왕18,13에는 산헤립이라는 아시리아 임금이 나옵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역사에서 결국 아시리아가 그 멸망의 주체였기에 아시리아 역사도 조금 되짚어 보기로 합니다. 머리에 쥐가 나겠지만!! 천천히 정리를
아시리아 역사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는,
아시리아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패권을 쥐게 되는데 그때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은 745년에 아시리아 임금이 된 티글랏필에세르, 그리고 727년에 임금이 된 살만에세르, 그런데 사르곤이 살만에세르에게 왕권을 빼앗아 옵니다. 그리고 사르곤, 산헤립, 에사르하똔, 아슈르바니팔, 이렇게 네명의 임금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아시리아의 사르곤 왕조라고 부릅니다.(722년~699년)
그리고 아슈르바니팔 이후에 아시리아의 힘이 점점더 약해지면서 결국은 20~30년이후 바빌로니아에게 패권을 넘겨주게 되고 아슈르바니팔이 아시리아 임금의 마지막 왕조입니다.
이 아시리아 역사를 유다, 북이스라엘과 합쳐 놓으면 위에 표가 나오고 숫자보다 임금의 순서로,
예로보암- 우찌야- 므나헴- 티글랏 필에세르- 페카 - 아하즈- 호세아.
정도로 그리고 나서 살만에세르 흐름으로 !
2열왕 16장을 보면
5 그때에 아람 임금 르친과 이스라엘 임금 르말야의 아들 페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 아하즈를 포위하였지만 정복하지는 못하였다.
아까 말씀해 주신대로 아람 임금(아람=시리아)과 북이스라엘의 임금 페카가 남유다로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했지만 정복하지는 못했다.
7 아하즈는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에게 사신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임금님의 종이며 아들입니다. 올라오시어, 저를 공격하고 있는 아람 임금과 이스라엘 임금의 손아귀에서 저를 구해주십시오."
8 아하즈는 주님의 집과 왕궁의 창고에 있는 은과 금을 거두어, 아시리아 임금에게 선물로 보냈다.
9 아시리아 임금은 그의 말을 들어 주었다. 아시리아 임금은 다마스쿠스로 올라가 그곳을 점령하였다. 그러고는 그 주민들을 키르로 사로잡아 가고, 르친도 죽였다.
(다마스쿠스는 시리아의 중심도시)
아람(시리아, 다마스쿠스)이 북이스라엘과 함께 남유다를 공격했습니다. 남유다가 그들과 함께 반아시리아 동맹을 이루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아시리아 임금이 쳐내려왔는데 시리아 임금은 죽었고, 북이스라엘의 임금은 호세아라는 인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호세아가 이때부터 권력을 잡습니다. 하지만 호세아는 큰 권력을 잡지는 못했고,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그 주변의 일대, 북이스라엘이 근근히 독립을 유지했었고, 그러면서 아시리아에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표에서 보면 티글랏 필에세르에서 살만에세르로 권력이 넘어갈때, 아시리아에서도 바뀐 임금 살만에세르가 전체적으로 아시리아를 장악하지 못했습니다(힘이 약했다). 그랬을 때 호세아가 반아시리아적인 움직임을 가져가고, 살만에세르가 북이스라엘을 쳐내려와서 결국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됩니다.
2열왕 18장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기억합니다.
9 히즈키야 임금 제사년, 이스라엘 임금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가 사마리아로 올라가 그곳을 포위하고,
10 세 해 만에 함락시켰다. 곧 히즈키야 제육년, 이스라엘 임금 호세아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가 호세아를 죽이고 나서도 사마리아가 임금 없이 3년을 저항합니다. 하지만 결국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이로써 북이스라엘은 역사속에서 사라집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그 점이 드러나는데요, 표를 보시면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에 관해서 2역대 26장, 27장, 28장,29장~32장까지 내용을 전하는데, 2역대기에서는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에 임금들이 있었는데 그들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습니다. 따라서 역대기 저자의 관점에서는 북이스라엘은 멸망했고 더이상 하느님 백성이 아닌겁니다. 하느님 역사에서 무의미한 시간들이 된 것입니다.
2열왕 15장,16장, 20장에 이르기까지 북이스라엘의 역사가 함께 기술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열왕기 저자는 아직 북이스라엘을 하느님 백성으로 보고있습니다.
하지만 역대기 저자는 북이스라엘은 더이상 하느님 백성이 아니고 남유다만이 남아있는 상황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역사를 놓고 2역대 28장을 보면 북이스라엘과 시리아가 함께 남유다를 공격하러 왔을때 아하즈는 속절없이 당합니다. 2역대기는 열왕기와 조금 다른 역사를 보여줍니다.
2역대 28장
16 그때에 아하즈 임금이 사신을 보내어 아시리아 임금들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17 에돔인들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포로들을 끌고 갔기 때문이다.
18 필리스티아인들도 평원 지대와 유다 남부의 성읍들을 공격하여 벳 세메스, 아얄론, 그데못, 소코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팀나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 김조와 거기에 딸린 마을들을 점령하고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도움을 청한 이유가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 아니라 에돔과 필리스티아가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2역대기 저자는 아하즈에 잘못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 이스라엘 임금 아하즈가 유다에서 멋대로 행동하면서 주님을 배신하였으므로, 주님께서 유다를 낮추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때 아시리아가 아하즈를 돕지도 않은듯 합니다.
20 그리하여 아시리아 임금 티글랏 필에세르가 아하즈에게 왔지만, 힘을 보태 주기는커녕 오히려 아하즈를 포위해 버렸다.
21 그래서 아하즈가 주님의 집과 왕궁과 내신들의 집에서 재물을 빼앗아 아시리아 임금에게 주었으나, 그는 아하즈를 도와주지 않았다.
따라서 열왕기에 내용과 역대기에 내용이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나오는 유다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읽어보는 것도 상당히 오늘날 이스라엘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한 것이, 아하즈는 시리아와 에프라임 동맹에(시리아와 북이스라엘)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하즈는 친아시리아적인 정책을 펼쳤다.(아시리아에게 조공을 바치고, 또 아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남유다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하즈에게 이사야 예언자가 갑니다!
이사 7,3
3 그러자 주님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아들 스아르 야숩과 함께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길가 윗저수지의 수로 끝으로 나가서 아하즈를 만나,
4 그에게 말하여라.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르친과 아람, 그리고 르말야의 아들이 격분을 터뜨린다 하여도
이 둘은 타고 남아
연기만 나는 장작 끄뜨머리에 지나지 않으니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7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8 아람의 우두머리는 다마스쿠스요
다마스쿠스의 우두머리는 르친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순다섯 해만 있으면
에프라임은 무너져 한 민족으로 남아 있지 못하리라.
9 에프라임의 우두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우두머리는 르말야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
야훼 하느님께서 이사야에게 이야기는 합니다. "너는 아하즈를 만나는데 너의 아들 스아르 야숩('남은 자들은 돌아올 것이다.')과 함께 가는데...., "
이사야는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들은 예언을 자신의 아들들의 이름으로 만듭니다. 그러면서 '마전장이 밭'에 이르는 길가 윗저수지의 수로 끝으로 나가서 → 이 부분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표현이 다시 한번 나오고, 탈출기에서 모세를 파라오에게 보낼 때에도 '아침 일찍 나일강변으로 가서 그곳에 나와있는 파라오를 만나라.' 여기에서도 하느님이 이사야 예언자가에게 수로 끝으로 나가서 아하즈를 만나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고대 근동 임금들에게는 물을 살피는 것이 중요한 업무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진정하고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그렇게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쳐내려왔지만 너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강해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너는 네 마음이 약해지는 일이 없어지도록 하여라.
신부님께서 구약과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명령이 있는데, 그것은
"두려워하지 마라." 입니다. 온갖 세속적인 위협과 위험에 대해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이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7,7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그 우두머리가 르친이고 그 우두머리가 르말야의 아들인데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런데 이사 7,8절의 두번째 줄을 보면
이제 예순다섯 해만 있으면
에프라임은 무너져 한 민족으로 남아 있지 못하리라.
예순 다섯해의 의미는? 맨처음에 시리아와 에프라임이 유다에 내려오고 나서 10년있다가 북이스라엘이 망하는데 왜?? 예순 다섯해라고 했을까? 많은 주석학자들이 생각해 보았는데..
1. 잘모르겠다.
2. 아니면 예순 다섯해가 있다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데 우리가 잘 모르는 사건인 듯 하다.
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거의 모든 주석가들이 여기에 나오는 예순 다섯해를 해석하려고 했지만..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마지막 문장!
너희가 믿지 않으면 정녕 서 있지 못하리라.
너희가 야훼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면 너희는 더 이상 서 있지 못할 것이다.
이 부분이 이사야를 통해서 아하즈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첫번째 말씀입니다.
7,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다시 이르셨다.
여기서는 예언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표현이 되었습니다만,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하느님께: 예언자들 통하여)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고대 이스라엘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 세상이 있고 저 하늘에는 하느님의 천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땅밑 깊은 곳에는 셔올이라는 저승이 있다는(하늘, 땅, 지하) 세계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것이든 저 저승 깊은 것이든 무엇이든 청하라 하셨고, 아하즈는 청하지 않겠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대단히 훌륭한 태도로 보이지만 주님을 시험하지 않고 그런 표징을 보지 않고 당신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하면 정말 훌륭한데,
12 아하즈는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제 뜻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 다음 부분과 논리적으로 조금 부딪힙니다.
이사 7,13
13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2절과 13절이 부딪히는 것으로 보아 전승자체가 단일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7,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15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될 때, 그는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입니다.
젊은 여인의 아들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수 있게 되기 전에 임금님께서 혐오하시는 저 두 임금의 땅은 황량하게 될 것입니다.
17 주님께서는 아시리아의 임금을 시켜, 임금님과 임금님의 백성과 임금님의 부친의 집안에, 에프라임이 유다에서 떨어져 나간 날 이후 겪어 본적이 없는 날들을 닥치게 하실 것입니다.
임마누엘= 임마누(우리와 함께) + 엘(하느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름이 갖고 있는 신학적 함의입니다. 그러니 그 아이가 채 자라나기 전에 지금 유다를 위협하는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아람과 에프라임)은 곧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라는 예언을 알아듣게 됩니다.
이사야서 8장으로 넘어가서, 야훼 하느님이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을 전하시는 부분입니다.
8,1 "너는 커다란 서판을 가져다가, 거기에 보통 글씨로 '마헤르 살랄 하스바즈를 위하여.'라고 써라."
서판은 나무나, 가죽, 혹은 흙으로 구운 서판일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보통글씨로는?
사람들이 쓰는 일반적인 필기도구입니다. 옛날엔 나무나 가죽이나 도기에다가 글씨를 새겨넣었는데, 쇠일수도 있고 나무로 만든 것일수도 있습니다.
마헤르살랄 하스바즈를 위하여( 신부님의 번역: 약탈을 서둘러라!, 서둘러 약탈해라!)
같은 의미를 다른 언어로 써서 반복하는 형태로 번역하셨습니다.
2 그래서 나는 사제인 우리야와 여베레크야의 아들 즈카르야를 믿을 만한 증인들로 내세웠다.
우리야 사제는 2열왕 16장에 나오는 인물,
즈카르야는 2열왕 18장, 2역대 9장(아하즈의 장인?? 싶습니다)
이렇게 둘 이상의 사람이 증인이 되었으니까(더군다나 높은 사람들) 믿을만한 일이다.
3 그런 다음 나는 여예언자를 가까이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분부하셨다. "그의 이름을 마헤르 살랄 하스 바즈라고 하여라.
여기서 여예언자라는 것은 여성이면서 예언자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예언자의 부인을 의미하는 것인지? 관해서 학자들의 토론이 있습니다.
이사야의 가족 사항이 나오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예언자, 스아르 야숩(아들), 마헤르 살랄 하스바즈(아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이 첨가됩니다.
"그의 이름을 마헤르 살랄 하스바즈라고 하여라.
4 이 아이가 '아빠',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마스쿠스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전리품이 아시리아의 임금 앞으로 운반될 것이기 때문이다."
직역 하자면: 이 아이가 나의 아버지, 나의 어머니라고 말하기 전에 다마스쿠스(시리아의 중심도시)의 재물과 사마리아(북이스라엘)의 전리품이 아시리아의 임금 앞으로 운반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 멸망하고 약탈당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느님께서 이사야에게 내리시는 부분.
8장 5절부터 다시 봅니다.
5 주님께서 나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6 이 백성이 잔잔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업신여기고 르친과 르말야의 아들 앞에서 용기를 잃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이사야 예언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실로아 물(루카 13장, 요한 9장에 나오는 실로암이라는 예루살렘의 못)
르친은 시리아의 임금이고, 르말야의 아들은 북이스라엘의 임금을 뜻합니다. 그들 앞에서 용기를 잃었다.(두려워 하였다)
7 그러니 보라, 주님께서는 세차고 큰 강물이, 아시리아의 임금과 그의 모든 영광이 그들 위로 치솟아 오르게 하시리라.
그것은 강바닥마다 차올라 둑마다 넘쳐흐르리라.
8 그리하여 강물은 유다로 밀려들어 와 목까지 차게 되리라. 그 날개를 활짝 펴서 너의 땅을 온통 뒤덮으리라.
아, 임마누엘!
7절: 유다가 시리아와 북이스라엘 앞에서 용기를 잃은 것이(두려워하는 것이), 결국 하느님의 심판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은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을 향합니다. 실로아의 잔잔한 물이 아니라 세차고 큰 강물이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을 덮치게 될 것인데, 그 세차고 큰 강물이 바로 아시리아다.
8절: 그리하여 강물이 유다로 밀려와 목까지 차게 되리라.(유다가 사라지지는 않지만 굉장히 위협적인 상황)
그 날개를 활짝 펴서 너의 땅을 온통 뒤덮으리라.(아시리아가 유다까지 공격해서 유다가 거의 목숨이 갈딱하게 되는 상황,
뒤이어
아! 임마누엘: 7장의 임마누엘이 나왔는데 여기서 반복되는 8장의 임마누엘, 이사야서 연구가들은 이사야서 7장, 8장, 9장 6절까지를 "임마누엘 섹션"이라고 부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그 개념으로 전체에 신학적인 흐름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 다음 구절에서 확인됩니다.
9 민족들아, 발악해 보아라. 그러나 질겁하고 말리라. 세상의 먼 나라들아, 모두 귀를 기울여라.
허리를 동여매어라. 그러나 질겁하고 말리라. 허리를 동여매어라. 그러나 질겁하고 말리라.
여기서 민족들아 발악해 보아라는 것은? 전투의 상황에서 적들의 사기를 죽이기 위해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너희가 소리를 질러대도 질겁하고 말리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나라들아 너희들이 들어봐. 발악하는 소리가 들리는지 안들릴껄? 왜냐하면 그들은 겁에 질려서 조용해졌을거야. 허리를 동여매는 것도 전투에 나서는 모습이지만, 너희는 질겁하고 말것이야.
왜 이 부분이 두번 반복되었는지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수사본을 복사한 사람이 덧쓴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10 계획을 의논해 보아라. 그러나 깨져버리리라.
결의를 말해 보아라. 그러나 성사되지 못하리라.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
너희가 어떤 계획이라도 세우지만 그것 안될걸? 결심을 하겠지만 그건 안될걸?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 ki immanuel
- ki : 왜냐하면
- Immanuel: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마이크 타이슨이 이런말을 했다고 합니다. "모두가 다 계획은 있다. 링에 올라와서 쳐맞기 전에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훈련을 해도 링에 올라와서 나한테 한대 맞으면 다 소용없을 걸?!
이사야서 8장 9절 그리고 10절이었습니다. "임마누엘" 이라는 말에 예언자가 갖고 있는 신학적인 화두를 계속해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11 주님께서 당신 손으로 나를 붙잡으시고 이 백성의 길을 걷지 말라고 경고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12 이 백성이 모반이라고 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모반이라고 하지 마라. 그리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무서워하지도 마라.
모반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결국 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반아시리아 동맹을 만드는 계획을 의미하고, 그리고 그들이 유다를 위협하는 것을 사람들이 두려워하는데 그렇게 두려워하지 마라.
13 너희는 만군의 주님만을 거룩히 모셔라. 그분만이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시고 그분만이 너희가 무서워해야 할 분이시다.
- 만군의 주님: 야훼 쪄바웉(יהוה צבאות)
다른 세속적인 권력, 무력은 우리가 무서워하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14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의 두 집안에게 성소가 되시고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가 되시며 예루살렘 주민들에게는 덫과 올가미가 되시리라.
이스라엘의 두 집안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그들에게 거룩한 장소가 되시고 하지만 예루살렘 주민들에게는 덫과 올가미가 되시리라. 따라서 야훼 하느님은 두려워해야 하고, 무서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끝없는 자비와 보호의 하느님이시지만, 하느님을 잊고 거스리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은 차여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되게 하시고, 걸려 비틀거리게 하는 바위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15 많은 이들이 거기에 걸려 비틀거리고 넘어져서 깨어지며 걸려들어 사로잡히리라.
하느님의 심판을 체험하게 되리라. 따라서 아하즈와 함께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리고 남유다의 사람들이 하느님께 마음을 두지 않고 하느님을 믿지 않을 때, 이사야 예언자가 아하즈에게 가서 처음으로 얘기했죠?
"너희가 믿지 않으면 서 있지 못하리라."라는 내용들이 다른 언어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결국 아하즈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따르지 않았기에 이사야 예언자의 절망을 느낄수 있는 부분이 16절부터 나옵니다.
16 나는 이 증언 문서를 묶고 나의 제자들 앞에서 이 가르침을 봉인하리라.
더이상 예언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나중에 요한 묵시록에서 보면 봉인된 문서를 다시 푸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이사야서 8장과 연결되는 이미지이고, 여기서 아하즈는, 유다는 더이상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17 그리고 주님을 기다리리라. 야곱 집안에서 당신 얼굴을 감추신 분
나는 그분을 고대하리라.
주님은 떠나가시는 것입니다. 야곱 집안에서 ~
야훼 하느님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당신 얼굴을 감추시고 떠나가셨기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집니다. 영광이 성전을 떠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속적인 권력을 두려워하면서 기대려고 하는 아하즈, 남유다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느님께서 떠나가신겁니다.
18 보라,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과 나야말로 시온산에 계시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세우신 표징과 예표이다.
시온산에 계시는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세우신 표징과 예표이다.
자녀들(스아르 야숩, 마헤르 살랄 하스바즈) 그리고 나 자신이 말로 시온산에 계시는 야훼 쪄바웉(만군의 주님)이 이스라엘에 세우신 표징이다.
표징이라는 것은? 앞서 말씀하신 "그것이, 당신이 하는 이야기가 정말로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해 보십시오." 라고 하는 것으로,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시면서 구마, 치유와 기적같은 것을 보여주시는데, 하나의 표징이 됩니다.
어떤 표징이 돼냐면?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는 복음인 "너희는 모두 회개하고 믿어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 말씀이 정말로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복음서 후반에 가서보면 그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구나! 라고 깨닫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여기서는 나와 내 아들들이 야훼 쪄바웉이 이스라엘에 세우신 표징이다. 나를 보고 나의 두 아들들을 보고 내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너희는 믿었어야 했다. 그런데 너희는 그렇지 않았고 나는 이제 그 문서를 묶고 봉인한다. 이사야 예언자의 절망을 느낄수 있는 부분입니다.
반면에 이사야 예언서의 편집자는 이사야와 아하즈의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9장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8장에서 커다란 절망으로 증언문서를 봉인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백성이 지켜야할 희망을 노래합니다.
9,1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빛이신 하느님이 떠나면서 백성은 어둠 속에 남겨집니다. 그들에게 큰 빛이 비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2 당신께서는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당신 앞에서 기뻐합니다. 수확할 때 기뻐하듯 전리품을 나눌 때 즐거워하듯
대단히 긍정적인 내용입니다
3 정녕 당신께서는 그들이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신 그날처럼 부수십니다.
여기서 주석가들이 헤깔리는데, 남유다가 유배를 가는게 587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는 시기이고, 여기는 아직 그때가 아닌데.....???? 이 시기는 사마리아가 멸망하는 722년의 사건인데 왜? 멍에를 짊어지고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가 나오지? 그렇다면 아시리아에 의해서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이야기인가?
또 어떤사람은 "아니아니, 이사야서 전체가 편집되면서 나중에 그들이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지만, 그들에게 그런 바빌론으로 유배가는 하느님의 심판이 내렸지만, 그들을 다시 해방시키신다는 예고를 이사야서 편집자가 앞당겨서 이야기한것이야." 하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미디안을 치신 그날처럼에서 이 미디안은, 구약에서보면 모세의 장인 이트로가 미디안의 출신일 때는 호감이 가는 내용인데, 판관기 6장부터 기드온이 미디안의 폭력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내는 판관으로 소개됩니다.
미디안은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와 평화로운 관계를 맺는 주변 민족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판관기나 이스라엘 역사에서)
4 땅을 흔들며 저벅거리는 군화도 피 속에 뒹군 군복도 모조리 화염에 싸여 불꽃의 먹이가 됩니다.
그 모든 것이 정화되는 이야기.
5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
앞선 7장,8장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태어나는 아기 관한 이야기.(7장부터 9장이 같은 의미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표징, 아들, 그리고 임마누엘)
놀라운 경륜가는 지혜로운 사람을 의미하고, 왕의 역활 중에서 판관(재판관)의 역할을 의미합니다.- 예를들면 솔로몬의 재판
그 옛날엔 삼권분립이 아니여서 모든 권력은 왕이 갖고 있어서 최종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지혜로운 재판관이었다.
용맹한 하느님은 장군의 모습, 나가서 싸워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임금, 하느님이라고 표현했지만 용맹함의 절정.
그리고 영원한 아버지는 자유로운 통치자의 모습이고, 평화의 군왕은 이방민족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닌, 주변의 다른 민족들을 굴복시킬 수 있는 평화.
백성의 문제에서는 지혜로운 재판을 하고, 백성을 지키기 위한 강한 장수의 모습, 백성에게는 자애롭고 이방민족에게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그런 임금이 우리에게 태어났다.
5절을 가장 좁은 의미로 해석해보면 아하즈에 뒤를 이을 임금에 대한 희망입니다.(히즈키야)
6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놓인 그 왕권은 강대하고 그 평화는 끝이 없으리이다. 그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공정과 정의로 그 왕국을 굳게 세우고 지켜 가리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시리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나탄 예언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내린 축복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셨다. 다윗 왕가는 결코 멸망하지 않으리라. 너희들이 잘못하면 심판은 하겠지만, 너희 가운데 내가 메시아를 보낼 것이다."
이사야 예언서의 가장 중심이 되는 사상인 메시아 사상입니다.
지금은 하느님의 벌을 받고 있지만, 언제가는 메시아가 와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메시아니즘)
그 출발점은 나탄 예언자를 통한 다윗 왕가에 대한 축복입니다.
이제부터 영원까지는 공정과 정의에서, 공정과 정의는 구약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단어로,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공정은 재판에 있어서에 공정하고 정확한 판결.
정의라고 했을 때는 율법에 관한 충실함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재판관이 공정하고 정확하게 재판하는 세상을 꿈꾸었고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의 법에 충실한 것을 이사야 예언자는 꿈꿨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공정과 정의는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대목이겠죠?
미국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AI가 가장 필요한 곳은? 이라고 물었을 때 '재판관들을 AI로 바꿔야 한다.'고 대답으로 나왔다고, 미국에서도 공정과 정의로운 재판이 많이 무너져 있는 것 같습니다.
만군의 주님은 히브리어로 야훼 쪄빠웉(יהוה צבאות) 은 강력한 하느님에 대한 그림(번역하면,군대들의 하느님)
야훼가 갖고 있는 가장 특별함은 군대들을 동원할 수 있는, 전쟁에 있어서 탁월함을 갖고 있는 야훼에 대한 신관을 호칭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열정은 히브리어로 '킨아(קנאה)‘라고 하는데 비슷하게 발음되는 카나(קנא)는 질투죠.
하느님을 부르는 호칭 중에 하나가 '엘카나((אל קנא)׳ 인데 우리 야훼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키나와 까나는 공격적인 감정입니다. 무언가를 감싸 안는 감성의 언어로 헤섿(하느님의 자비, 사랑)이 있지만, 여기서는 무언가를 향해서 자신을 불태우는 공격적인 감정입니다.
그 야훼 쩌바웉이 지금은 우리를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메시아와 함께 하느님께서 다시 공정하고 정의로운 왕국을 세우실 것이고, 그 메시아의 왕국은 강대하고 그 평화는 끝이 없을 것이다! 예언자의 예언적 감사송!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감사드리는)
오늘날 신학적 용어인,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사야 예언서 7,1~9,6이라는 문학적 단위가 마무리됩니다.
이사야서 37장 32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 하루도 묵상해 보시는 것도^^
남은 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오고 생존자들이 시온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주님의 열정이 이를 이루리라.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열정적인 하느님이라고 이사야 예언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화두와 함께 아하즈와 만남을 규정짓는 모습을 7장에서 9장 6절에서 만나게 됩니다.
신이 우리편인가?라는 질문이 아닌 우리가 신의 편인가? 라고 말한 아프키니스탄 전투에 관한 오바마 대통령의 말의 오리지널은 링컨 대통령의 우리가 신의 편인가?처럼.
이사야 예언자는 묻습니다. 열정적인 우리하느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고자 하는가? 우리의 삶 안에 그분의 자리가 있는가?
첫댓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