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이 수필집 『물한리의 소나무』
1989년 동양문학 신인상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한 민영이 작가의 수필집 『물한리의 소나무』가 오늘의문학사(문학사랑 수필선 192)에서 발간되었습니다. 이 수필집은 ‘작가의 말’ ‘1부 저 눈밭에 사슴이’ ‘2부 머나먼 여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민영이 작가는 충청북도 영동군 출신으로 한국방송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대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분입니다. 1989년에 동양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을 받아 등단한 이래, 소설과 수필을 창작해온 분입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회원, 행우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영동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
소설집 ‘어머니의 땅’(1997), ‘긴 밤의 여로’(2005), 수필집 ‘보헤미안의 꿈’(2002)을 발간한 후 2021년에 충북문화재단의 우수작품 지원을 받아 수필집 『물한리의 가을과 겨울 사이』를 발간하였습니다. 충북 영동군에 사는 사람들의 일과 생각, 자신에 대한 여러 상황들, 그리고 지역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깊습니다.
= 서평
#1
두 번째 수필집을 발간하는 민영이 작가의 『물한리의 소나무』에는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살고 있는 작가의 다양한 삶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노년의 삶 중에서, 가족의 ‘치매’가 안타까운 정서를 환기합니다.
<새벽 4시가 넘도록 잠도 안 자고 난동을 부리던 그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링거 줄을 뽑고 침대에서 내려와 바닥을 기고.
당직 간호사는 할 수 없이 그이의 손발을 침대에 묶었다.
그러자 그이는 벼라 별 말을 다 하다가 잠들었다.
죽도록 피곤하던 나는 잠자는 시간을 놓친 탓인지 오히려 초롱초롱해졌다.
창밖은 부옇게 여명이 밝아 왔다.
어둠을 걷어내는 여명을 내다보다가 문득 나는 온 몸을 휘감는 전율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환희였다.
자는 그이의 모습은 갓난아이보다 더 천진하다.
치매로 하여금 다시 태어난 갓난 아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쾌감이 다시 나의 온 몸을 휩싼다.>
작가의 ‘머리말’ 앞부분에서 부군의 상태, 이에 따른 여러 조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눈물겨운 시선이 오롯하게 투영됩니다. 밤이 깊도록 잠을 자지 않다가 배우자가 잠들었을 때의 안도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삶의 진정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는 그이의 모습은 갓난아기보다 더 천진하다/ 치매로 하여금 다시 태어난 갓난아기>를 돌보는 작가의 내면이 곱습니다.
#2
민영이 작가의 수필집에는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시기의 정서가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 밤 무서리에 호박잎이 다 시들었다./ 우리 집 앞 가로수 감나무는 단풍도 들기 전에 된서리를 맞고 잎사귀가 다 말라버렸다./ 그러나 물한리 우리 집 소나무는 우람하고 씩씩하게 더욱 푸르르다.>고 밝힙니다.
그리하여 간병하고 있는 배우자와 함께 찍은 사진, <아득하게 느껴지는 지난 어느 날 찍은, 그이도 나도 아름답게 건강하던 옛 사진을 보느라 늦도록 잠>을 잊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선생은 젊은 날의 사진을 보듯이 <부질없는 지난 삶의 궤적들을 얼기설기> 수필집으로 엮었다고 겸양의 정서를 밝힙니다. 수필집 『물한리의 소나무』를 통하여 독자들은 작가의 삶, 작가의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조락(凋落)의 계절을 맞았으면서도, 물한리에 있는 작가의 집 소나무가 우람하고 씩씩하게 푸르른 것처럼, 배우자께서 쾌유하시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문학평론가 리헌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