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덩이가 되어 빛을 내는 교회
37: 17-24
17. 그가 또 정금으로 등대를 만들되 그것을 쳐서 만들었으니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받침과 꽃이 그것과 한 덩이로 되었고
18. 여섯 가지가 그 곁에서 나왔으니 곧 등대의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왔고 등대의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왔으며
19.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저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받침과 꽃이 있어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가 그러하며
20.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의 잔 넷과 꽃받침과 꽃이 있고
21.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는 꽃받침이 있게 하였으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였고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였으니
22. 이 꽃받침과 가지들을 줄기와 연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서 만들었으며
23. 등잔 일곱과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을 정금으로 만들었으니
24. 등대와 그 모든 기구는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었더라
=========================================================================
요즘 저희 교회에서는 성막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 듣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넉 주일 전 금요합심기도회에서 성막에 대한 말씀을 드렸고 지난 월요일부터 새벽기도회에서 성막을 강해하고 있는데 이 성막 강해는 연말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서 지낼 때 하나님께 예배 드리던 장소인데 이와 같이 성막에 대해 집중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는 성막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성막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구약은 모두 929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20분의 1이 넘는 50장이 성막 이야기입니다. 신약의 히브리서에도 성막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구약의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것인데 그 가운데서 예수님을 가장 완전하고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성막입니다. 가장 정확한 모델 하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막은 영적 진리에 대한 가장 위대한 총체적인 실물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저희 교회가 성막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막은 거룩한 장막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다.
성막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말씀이 있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기 때문에 회막(會幕)이라고도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을 꼭 만나고 가시기 바랍니다.
흔히 초대교회를 교회이 원형이라고 하는데 성막교회는 그보다 먼저 세워진 교회의 원형입니다. 저희 교회가 이 교회를 닮기 원합니다.
또 성막에는 여러 장소와 기구들이 있는데 하나 하나가 다 의미가 있습니다. 성막의 뜰, 성소, 지성소, 이런 장소들이 의미가 있고 법궤, 등잔대, 진설병을 두는 상(떡상), 번제단, 물두멍, 이런 기구들이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됩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교훈에 집중되어 있습니다.목양교회는 지금 성전을 신축하고 있는데 신축성전의 장소와 기구들도 그런 의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저희 교회가 있는 곳이 수지읍 동녘 동, 내천, 동천리(東川里)인데 우리는 이 일을 에스겔서 47장의 말씀과 연결해서 의미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서 47장은 목사님들이 설교의 본문으로, 또는 설교 가운데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고 저 역시 그러해서 몇 번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에스겔이 환상을 보는데 동으로 향한 성전 문지방 밑에서 -저희 교회 신축 성전도 동향입니다-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는데 이 물이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목양교회가 그와 같은 생명역사의 근원인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성막을 강조하고 있는데 앞으로 몇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금요합심기도회에서 OHP를 사용해서 성막의 모습들을 살펴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저희 교회에서 한 시간 반 걸리는 곳에 성막 수양관이 있습니다. 그 안에 성막의 모형을 만든 것이 있는데 은빛대학, 성경공부모임, 선교회 모임 때 그 곳을 방문하도록 장려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교회에서는 아무래도 주일 예배가 중요한데 주일 예배에서 성막에 대한 말씀을 종종 전하는 것입니다.
이 계획에 따라서 오늘 성막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데 등잔대를 통해 한 덩이가 되어 빛을 내야하는 교회의 사명을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며칠 전 새벽기도회에서 출 25:31∼40을 살피면서 등잔대에 대해 살핀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복되는 부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25장에서 3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성막을 만들라, 만들되 이와 같이 만들어라" 지시하는 것이고, 출애굽기 35장은 성막을 만들 준비를 하는 것이고 36장부터는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양식대로 만들었습니다" 보고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 곳에 와서 성전을 짓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전을 다 지었습니다" 보고할 수 있는 날, 출애굽기 36장 이하를 기록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등잔대는 성막의 성소 안에 있는 기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초를 일곱 개 꽂을 수 있는 촛대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줄기가 있고 가지가 이쪽으로 셋, 저쪽으로 셋, 합해서 모두 일곱 개가 있고 그 위에 초 꽂는 곳에 살구꽃 형상의 잔이 있습니다. 그 잔에 감람 기름을 붓고 끊이지 않게 빛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끊이지 않게 빛을 내도록 살피는 것이 제사장이 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등잔대가 주는 교훈들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교회는 빛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은 이 불빛이 조금 흐려진 느낌이 있습니다.
지난주간 수요일에 감리교를 비롯한 13개 교단의 중진목회자들로 구성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하나님과 국민 앞에 우리 자신을 고발합니다"라는 참회의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이 성명서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우리는 한국 기독교가 고난으로 점철된 민족 역사와 운명을 같이 하여 왔으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순교의 피를 흘렸던 신앙선배들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오늘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 성명서는 이어서 최근에 교회의 빛이 흐려지게 한 일들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연루된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이는 한국 교회를 향한 준엄한 하나님의 채찍임을 깨닫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있음을 인식합니다.
고급 옷 로비 의혹 청문회, 모 교단의 교단장 선거 부정 시비, 만민중앙교회 신도들의 MBC-TV 방송중단 사건, 그릇된 종말론 추종 신도들의 집단 가출충격, '신애양 사건'에서 보여진 사이비 이단의 부도덕성과 폐해, 모 교단의 감독 비리 시비, 정치·경제·사회의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구속된 그리스도인의 모습 등은 오늘날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빛이 많이 흐려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성명서가 발표된 직후에 교회의 불빛을 흐리게 하는 몇 가지 사건이 더 발표되었는데 목사님이 가짜 졸업장으로 자격증을 받았다가 법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는 것과 어제(11일) 부산에서 일어난 목사 피살 사건입니다.
이 성명서를 인용하는 것이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끝 부분을 소개해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소망이며, 능력의 근원입니다! 그리스도가 변한 것이 아니고 교회의 본질이 변한 것도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새 천년을 앞두고 바른 신앙과 바른 삶,바른 목회를 이루고 시대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참된 교회를 힘써 세우고자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이와 같은 고발의 현실에 직면하지 않도록 교회 일치와 개혁, 그리고 나눔과 섬김의 삶을 향한 연대를 이루어 나가며,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와 의를 위 하여 힘차게 전진하겠습니다.
"주여,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소서!"
우리는 밝은 빛을 내는 교회가 되어야하고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합니다.
지금 소개해 드린 성명서 앞부분에 "오늘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들이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반열에 들어 있어야합니다.
아까 의미부여 말씀을 했습니다만 저희 교회가 있는 곳이 광교산(光敎山) 자락입니다. 빛 광자, 가르칠 교자입니다. 빛을 가르치는 산 끝자락에 새 성전을 세우고 있습니다.
빛이 되고 빛을 전하는 일에 앞장을 서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등잔대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교훈 가운데 또 하나는 연합입니다.
이 등잔대는 순금으로 되어 있는데 금 조각들을 가져다가 나사나 접착제로 붙인 것이 아닙니다. 한 덩어리입니다. 21절에 "연결하였고"라는 말이 세 번나옵니다. 「개역개정」에는 "연하였고"라고 되어 있지요. 이 말은 다른 둘을 연결했다는 뜻이 아니고 중간 부분에 꽃받침이 있다는 뜻입니다.
34절을 보면 순금 한 달란트의 금을 가지고 등잔대를 만들었습니다. 한 달란트가 요즘 무게로 얼마냐 하는 것에 대해서는 34Kg이다, 45Kg이다, 68Kg이다, 여러 가지 주장이 있는데 대개 34Kg 설을 택합니다.
이 금괴를 17절 "쳐서" 만들었습니다. 두들겨서 만들었습니다. 두들겨서 만든 유기를 방짜 유기라고 하는데 등잔대도 방짜 등잔대입니다.
쳐서 만들었다는 것은 교회는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속회 공과가 "고난과 영광"이었지요. 신앙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처럼 교회는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많이 두들겨 맞을수록 정교한 작품, 명작이 나올 것입니다. 명검(名劍)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없이 두들겨야 한다고 합니다.
목양교회는 이 점에서 많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두들겨 맞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근본 하나의 덩어리입니다.
교회 안에 속회들이 있고, 선교회들이 있습니다. 교회학교가 있고 성가대가 있습니다. 선교부가 있고 교육부, 여러 부서가 있습니다. 집사님들이 있고 권사님들이 있고 장로님들이 있습니다.
모두 한 덩이입니다.
이것을 나무에 비교해서 생각해 봅니다.
나무의 가지 가운데 어느 가지는 좀 크고 어느 가지는 작고, 어느 가지는 동쪽을 향했고 어느 가지는 북쪽을 행했습니다. 어느 가지는 늘어졌고 어느 가지는 위로 향해 있습니다.
어느 가지는 오래 전에 생겼고 어느 가지는 이제 막 돋기 시작했습니다. 어리고 연한 가지를 북한에서는 "나무아지"라고 합니다.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거기에서 "아지"를 따다가 이런 말을 만들었습니다.
한 그루 나무는 줄기에서 나온 이런 가지들이 합해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나치게 자기 교회 중심적이고 다른 교회를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개교회주의(個敎會主義)라고 부릅니다. 우리 나라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 가운데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들도 있는 곳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특징이 각기 다르지만 본래 한 덩이입니다.
감리교, 장로교, 성결교, 구세군, 순복음, 침례교, 그 밖의 여러 교파들, 강조하는 것이나 예배 형식이 약간 다르지만 한 덩이입니다.
숲 속에 들어가면 소나무도 있고 전나무도 있고 상수리나무도 있고 단풍나무도 있습니다. 그것들이 어울려 숲이 됩니다.
한 종류의 나무를 비슷한 크기로 가지고 있는 것은 나무들을 파는 곳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아, 저 나무들 비싸겠는데", 이렇게 돈으로는 계산해도 생동하는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모든 교파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덩이에서 나온 가지요, 잔이요, 꽃받침이요, 꽃들입니다.
개신교는 왜 그리 교파가 많으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교파가 많기는 해도 우리 모두 한 덩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서로 이해하고 협력한다면 그것이 더 아름답습니다.
넥타이나 옷도 한 색으로 되어 있는 것은 단조롭습니다. 여러 색깔이 어울려서 어느 한 색의 분위기를 내는 것이 고급 취급을 받습니다.
다일공동체라는 선교단체가 김현철 씨가 기부하는 돈을 거부해서 화제가 된 일이 있습니다. 이 선교단체는 청량리 부근에서 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창녀들에게 전도하는 것으로 출발했는데 지금 행려병자(行旅病者)들을 위한 천사 병원을 짓고 있습니다. 다일(多一)이라는 이름은 다양성과 일치, 다양성의 일치라는 말에서 첫 자를 딴 것입니다.
교인들도 다양, 교회도 다양, 교파도 다양하지만 예수님에게 일치되어야 합니다.
강릉에 있는 경포호(鏡浦湖)는 바다 바로 옆에 있는 호수인데 이 곳에 가면 달이 여러 개라고 합니다. 하늘의 달, 바다에 비치는 달, 호수에 비치는 달, 강단에서 말하기는 좀 어울리지 않습니다만 술잔에 비치는 달, 그대 눈동자에 비치는 달, 달이 다섯 개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달입니다. 하나의 달이 여러 곳에 비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모두 한 예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그릇들입니다. 혹은 바다, 혹은 호수, 또는 강일 수 있겠지만 한 에수님의 형상을 그 안에서 보여 주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인류의 대제사장으로서 드린 최후의 기도에서 이것을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오늘 예배를 시작하는 묵도 시간에 봉독한 요한복음 17장 21절과 22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다시 한 번 읽어 드립니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 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을 약속하셨는데 축복 가운데 하나가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예레미야서 32장 38절과 39절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한 마음을 갖고 한 길을 걸어야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과 우리는 한 근원에서 났다고 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히브리서 2장 11절의 말씀입니다.
주보에 보면 오늘이 교회연합주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교회연합주일은 교회연합운동을 하는 기관들,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영문약칭 KNCC를 위하여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는 것이 강조됩니다만 그와 함께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한 덩이에서 나온 가지들이다" 하는 사실을 생각해야합니다.
교인들이 하나 되고 -요즘 여선교회 회원들, 하나가 되어 고추 바자 얼마나 열심히 합니까?-, 교회들이 하나가 되고 교파가 하나가 될 때, 교회는 사회를 하나되게 할 수 있습니다.
지역감정의 골을 메울 수 있습니다.
계층간의 갈등을 치유하는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나 집단들을 화해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남북도 하나되게 할 수 있습니다.
두 주일 전에 여선교회가 탈북자 정착지원기관인 하나원을 방문해서 탈북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주일에 담임목사 칼럼에 썼습니다만 "무슨 선물을 가지고 갈까?" 생각하다가 세 가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떡, 과자, 음료수, 이런 것들입니다.
또 하나는 자명종입니다. 가서 파라찬양선교단원들이 탈북자들을 둘러싸고 축복송을 부르고 탈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직접 전달했습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도 중요한데 아주 감동적인 방법으로 전달했습니다.
거기 직원 가운데 감리교 장로님이 헌신적으로 수고해서 탈북자들이 주일예배와 수요예배를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이들이 제일 즐겨 부르는 찬송이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까지 드립니다. 새벽기도회에 늦지 말라고 자명종을 준비한 것입니다.
하나를 더 준비했습니다. 에스겔서 37장 17절에 "네 손에서 둘이 하나가 되리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분열된 이스라엘과 유다가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말씀인데 이 말씀을 붓글씨 잘 쓰는 집사님에게 부탁해서 써 가지고 표구를 잘 해서 갖다 주었습니다.
아주 좋아하더군요.
근본적으로 한 덩이인 교회 안에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덩이가 되어 빛을 내야 합니다.
중국 진(晉) 나라의 차윤(車胤)이라는 사람은 공부를 하는데 등불을 켤 기름을 살 돈이 없어 반딧불들을 잡아다가 주머니에 넣어 그 빛으로 공부를 해서 이부상서(吏部尙書)가 되었다고 합니다.
반딧불을 하나하나 흩어져 있을 때는 "아, 저기 반딧불이 있구나!" 알게 하는 일밖에 하지 못합니다.
요즘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반딧불의 역할이 하나 더 늘기는 했습니다. 반딧불은 일급 청정지역에 살기 때문에 반딧불이 있으면 "여기는 오염되지 않은 곳이로구나!"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그칩니다.
반딧불이 모여서 한 덩어리가 되었을 때 책도 읽게 해 줍니다.
여기서 개똥벌레 형(螢) 자가 들어간 형설지공(螢雪之功)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설(雪)'자가 들어간 것은 손강(孫康)이라는 사람이 눈에 반사된 빛으로 책을 읽어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딧불이 한 덩이가 되었을 때 이렇게 좋은 말의 유래가 되어 두고두고 교훈을 줍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교회의 원형인 성막에 등잔대가 있었습니다.
등잔대는 빛을 내는 것을 사명으로 합니다.
우리는 빛을 내는 존재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등잔대는 한 덩이입니다.
우리는 한 덩이가 되어 빛을 내야합니다.
한 덩이가 되어 빛을 내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