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에 대한 인과의 도리]
우리는 인과의 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 잘못을 지르면서도 악업인지 모르고 삽니다.
《무량수경》에 있는 말 그대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선한 일을 하면 선한 과보가 오고,
도를 닦으면 깨달아
생사가 없는 경지에 이른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사람이 죽으면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은혜를 베풀면 복이 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선악에 대한 인과의 도리를 믿지 않고,
그런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믿으려 하지도 않고 있다.
이처럼 비뚤어진 소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바른 생각을 가졌다고 내세운다.
세상이 어지럽고 인심이 거칠어지고
사람들이 애욕을 탐하게 되면
진리를 등지는 사람은 늘고
그것을 깨닫는 사람은 줄어들게 된다.
세상은 항상 어수선하여
믿고 의지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거나 낮은 사람이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부자이거나 세상일에 얽매여 허덕이고,
저마다 가슴에 독毒을 품고 있다.
그러한 독기 때문에
눈이 어두워 함부로 일을 저지르는 것이다.
깊이 헤아리고 생각하여
온갖 나쁜 일을 멀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착한 일을 찾아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애욕과 영화는 오래갈 수 없다.
언젠가는 내게서 떠나가고 말 것들이기 때문이다.”
계율은 무엇입니까?
계율은 바로 인과율을 자기 내면의 것으로,
실천의 기준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
계율을 지키면
저절로 중생의 괴로움을 벗어나게 됩니다.
부처님은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
중생이 지켜야 할 계율을
쉽고 간단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족이나 친척들은 서로 공경하고 사랑할 것이며,
미워하거나 시기해서는 안 된다.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은
서로 보살피며 돕고,
재물을 탐하거나 아껴서는 안 된다.
항상 부드러운 말과 화평한 얼굴로 대해야 한다.
만약 마음속에 남을 미워하는 생각을 두면
금생에는 비록 조그마한 말다툼일지라도
다음 세상에는 그것이 큰 원수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장에는 충돌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음속으로는 깊은 원한을 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사를 되풀이하면서
서로 앙갚음을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나라가 불교국가였던 신라나 고려시절,
나라에는 왕사나 국사제도가 있었습니다.
왕이 개인적으로 스승으로 모시는 왕사王師 스님,
혹은 덕과 수행이 높아
온 국민이 받드는 국사國師 스님을 추대하였습니다.
출가 사문은 세속을 떠나고 명리를 떠나는데
왜 그런 제도를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중생세간의 욕망과 다툼을 벗어나
참된 진리의 입장을 되돌아보기 위한
국가적 장치는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임금의 스승: 국사國師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권력과 재물을 둘러 싼 인간 군상들의 다툼입니다.
이기면 절대 권력을 손에 넣지만
지면 역적이 되어 일가친척이 망하고 맙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처절하게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싸움만 되풀이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불행하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눈앞의 것만 보면서
아등바등 하는 중생들이 한 번쯤 절대 진리,
욕망이 아닌 깨달음의 눈으로 자신을 되돌아봄으로써
어리석음과 다툼을 해소하려는
소박한 마음이 담긴 것은 아닐까요?
여든 나이 어른도
세 살 아이에게 배울 점도 있다고 했습니다.
왕사 국사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커다란 명예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서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아닙니다.
물음에 대한 자문을 뿐이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왕의 스승,
나라의 스승으로 덕과 수행을 겸비한 어른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위안을 삼을 수 있습니다.
그 맑고 청정한 생활과 높은 정신세계를 우러러 보면서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에 영향을 끼쳐 온 것이 불교의 영향력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착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가 가진 문화유산입니다.
부처님의 오신 날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직도 세계 속에서 한 곳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로 세계의 평화가 깨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명을 다한 일들이
우리에게는 참혹할 정도로 쓰라린 일제침략으로 겪었습니다.
중국도 그랬고,
우리나라에게도 그랬듯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 쓰라린 상처였고,
쉽게 잊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우리는 자비로 지우려지만,
지금은 그들은 평화롭게 지내는 듯하지만
그들의 나라에서는 종종 큰 재난들이 그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산하대지가 노여움을 표출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국민의 아픔을 대신하여 지진과 해일과 쓰나미로
완전히 모두를 쓸어내는 것처럼 인과응보의 선과와 악과는
그 도리를 언젠가는 겪게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과 악은 언제나 충돌을 하게 되겠지만
결국에는 악이 지고, 선이 이길 수밖에 없습니다.
선은 둥굴고, 악은 모가 납니다.
우리는 둥글둥글 매사를 만나면서 악을 깎아 내어
선으로 다듬어 내는 수행의 길이 되시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2024년 04월 13일 오전 07:10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雲月野人 진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