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동화
청룡이 나타났다
박경선
나는 새장 속이 싫고 무서웠어. 두 꼬마 녀석은 심심하면 베란다에 있는 새장 속에 꼬챙이를 넣어 오빠와 나를 괴롭혔어.
“훌쪼쪼, 싫어. 싫다고!”
우리가 소리쳐도 두 꼬마는 저희 말만 했어.
“좋지. 좋지? 몸 튼튼해지라고 운동 시켜주는 거야.”
그러다가 저녁에 꼬마의 엄마가 퇴근해 오면 쪼르르 달려가 자랑을 해대었어.
“엄마, 엄마! 오늘도 십자매에게 재주놀이 운동 시켜줬어요.”
그 말에 우리 오빠가 ‘훌쪼쪼, 꼬챙이로 쑤셔 우리 깃털이 다 빠졌어요.’ 소리쳐도 꼬마의 엄마는 꼬마들 말만 듣고 칭찬해 주었어.
“오구 오구. 재미있게 잘 놀았어?”
보다 못한 내가 오빠한테 화를 내었어.
“훌쪼쪼. 오빠, 저 사람들은 멍청이 귀머거리야?”
“훌쪼쪼. 맞아. 귀 기울여 들어야 우리말을 알아듣지. 도망치자. 오빠랑!”
어느 날, 꼬마가 새장 문을 열자마자 오빠는 빛의 속도로 도망쳐 날아갔어. 새장 문이 화다닥 닫히는 바람에 나 혼자만 남았어. 오빠는 몇 차례 다시 돌아와 베란다 주변을 돌며 틈을 봐서 나오라고 불러대었지만, 기회가 없었어. 그 뒤로는 오빠도 나타나지 않았어. 멀리 날아갔는지. 누군가에게 잡혔는지….
내가 새장을 빠져나갈 궁리를 하며 둥지 뒤쪽에 딱 붙어있던 어느 날, 작은 꼬마가 ‘새가 안 보이네!’ 하며 새장 문을 열었어. ‘앗싸!’ 나는 잽싸게 새장을 빠져나와 날았어. ‘우리 오빠는 어디에 있을까?’ 아파트 주위의 공원 숲을 돌아다니며 찾았어. 새장에 갇혀 있어도 오빠랑 있을 때는 든든했어. 우리 오빠는 날카로운 눈과 높은 소리로 울며 몸의 털을 부풀려 두 꼬마를 위협해 주었거든. 그런데, 폴폴 돌아다니며 오빠를 찾던 내 눈에 황갈색 점퍼를 입은 비쩍 마른 아저씨가 보였어. 우리 오빠 몸 색깔처럼 친근하게 느껴졌어. 가까운 나무에 앉아 아저씨를 지켜보았어. 털모자를 쓴 아저씨는 공원 벤치에 앉아 새들이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었어. 내가 좋아하는 좁쌀이었어. 모이가 없어지고 새들이 날아가 버리자, 아저씨는 팔짱을 끼고 눈이 날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쳐다보았어.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내어 눈을 받아먹더라. ‘바보인가?’ 쓸쓸한 기운이 내 마음을 끌어당겼어. 나는 바보 아저씨와 눈을 맞추면서 조심조심 다가가 보았어.
“안녕! 십자매, 이 한파에 춥지. 내 점퍼 호주머니 속에라도 들어올래?”
아저씨가 자기 점퍼 주머니를 벌려 보였어. ‘바보가 아닌가?’ 난 경계하는 눈빛으로 뒤로 물러났어. 차차 눈발이 크게 날리고 몸이 오들오들 떨려왔어. 추워질수록 아저씨가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닌 것도 같았어. ‘한 번 더 오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하며 들어갈 텐데….’
나는 애절한 눈빛으로 아저씨를 바라보았어. 아저씨는 팔짱을 풀고 일어서서 집에 갈 듯하더니 내 눈을 보며 한 번 더 물었어.
“너희 십자매도 추위를 잘 못 견딘다던데, 혼자 괜찮겠냐?”
하며, 아까처럼 점퍼의 호주머니를 열어 보였어. ‘에라, 모르겠다!’ 나는 추위에 쫓겨 주머니 속으로 폴짝 날아들었어. 둥지보다 더 포근하고 따스했어.
“십자매야, 너는 사람을 잘 따르는 새구나. 반갑다 야!~”
아저씨는 호주머니 속의 나를 살짝 건드려봤어. 내가 가만히 있자 내 등을 조심스럽게 쓰담쓰담하더니 ‘우리 집에 가볼래?’ 물었어. 나는 고개만 까딱까딱해 보였어.
아저씨 주머니 속에서 고개만 빼내고 있는데, 한참 걸어가더니 초등학교 담장을 돌아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서 현관문을 여는데, 신비한 냄새가 ‘확’ 달려드는 거야. 크고 작은 네모 천들이 그림을 담고 벽에 겹쳐 서 있고 널브러진 장난감들이 ‘뭐야. 뭐야?’하며 나를 보더군.
“유화 물감 냄새가 좀 나서 미안해. 그림을 그리거든. 하지만, 널 새장에 가두지는 않을 거야. 앵무새랑 잘 지냈는데 하늘로 가버렸어. 내가 멍청하지. 살아있는 생명을 새장에 가뒀으니…. 날마다 용서를 빌어도 살아오지 못해!”
“홀쪼쪼, 장난감 같은 게 그림물감이에요? 냄새는 괜찮아요. 실은 나도 새장이 싫었어요. 오빠가 빛의 속도로 도망치는 바람에 혼자 남아서….”
“하하. 빛의 속도라고? 그래 도망칠 때는 빛의 속도로 도망쳐야지. 오빠를 찾아야겠네. 너희 십자매는 여러 마리가 자매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붙여진 이름이라며? 그리고 목욕 좋아한다며? 이 사발에는 하늘로 간 앵무새를 그려뒀어.”
“홀쪼쪼, 귀요미네요?”
“그래. 귀요미 자매였지. 물통으로도 쓰고 목욕통으로도 쓰렴.”
그 말에 그림 속 앵무새 자매가 ‘방긋’ 웃었어. 먹이통에 그려져 있던 앵무새 자매도 ‘방긋’ 웃었어. 나는 마음이 좀 놓였어. 아저씨는 흰 천을 넓게 펴서 모래를 깔아주며 화장실로 쓰라고 했어.
그다음부터 나는 아저씨랑 날마다 공원에 산책하러 나갔어. 아저씨는 갈 때마다 나무 밑에 좁쌀을 놓아두고 벤치에서 먹이를 쪼아 먹는 새들을 지켜보았어. 하늘로 간 앵무새를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럴 때마다 나는 공원 숲속으로 들어가 실례를 하고 왔어. 집에 오면 아저씨는 내게 계란 껍데기도 빻아주고 채소 잎도 주며 내 먹이에 꽤 신경을 써주었어. 내가 머리를 디밀고 긁어달라고 흔들면 알아듣고 긁어주었어. 아저씨께 발꼬랑내가 난다고 발가락을 쪼아대면 얼른 가서 씻고 왔어. 차차 서로에게 스며들며 편하게 지냈어. 잠잘 때도 아저씨 품속에서 오래도록 이야기를 주절거렸어.
“홀쪼쪼, 나는 푸른 하늘을 날아오르는 꿈을 자주 꿔요. 올해가 청룡 해라던데, 청룡도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나요?”
“왜, 청룡이 부럽니? 청룡 사진 보여줄까?”
아저씨는 손전화기 속의 청룡 그림을 찾아 보여주었어. 그림을 보는 순간, 힘찬 기운의 청룡이 입에 문 구슬을 내게 뱉어 주었어. 얼른 받아 입에 물자 내 몸이 청룡이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었어.
다음 날 새벽, 아저씨는 11층 아파트 창문을 열고 초등학교 운동장이 있는 쪽을 내려다보며 말했어.
“밤에 눈이 엄청나게 왔어. 운동장이 커다란 도화지가 되었어. 저기 봐!”
나는 쪼르르 날아가 아저씨 어깨에 앉아 새하얀 도화지를 내려다보았어. 눈이 부셨어.
“야, 지금은 겨울방학 중이니까 개구쟁이들도 없는 안전한 도화지야. 저기에 너를 청룡 모습으로 그려줄게. 어때?”
아저씨는 분명 내가 구슬을 받은 꿈을 훔쳐본 것 같았어. 대답 대신 몸을 뱅그르르 돌리며 춤을 추자, 아저씨는 씩 웃으며 점퍼를 걸치고 털모자랑 장갑을 찾았어. 나도 아저씨 호주머니로 날아들었어. 아저씨는 경비아저씨가 눈길을 쓰는 일을 도우더니 싸리비를 빌렸어. 운동장에 오자 나는 아저씨가 벗어 둔 털모자에 들어가 목을 빼고 보았어.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싸늘한 공기 속에서 아저씨는 싸리비로 눈을 쓸어 모으기도 하고 흩기도 하면서 용을 그리기 시작했어. 얼굴 모습이 용감해 보였어. 오빠 모습이 언뜻 스쳐 갔어. 양쪽에는 사슴뿔을 그리니 청룡의 머리가 되었지.
“십자매야, 네 머리가 청룡 머리로 변한다고 상상해 봐. 어때?”
“홀쪼쪼. 황홀하죠.”
내게 사슴뿔이 있다면 사슴처럼 달려 오빠를 찾아갈 것 같은 기운이 솟았어. 아저씨는 눈덩이를 뭉쳐 동근 알 하나를 만들더니 청룡 입에 딱 물렸어.
“여의주야. 네가 소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영묘한 구슬이지. 너 소원이 뭐니?”
“홀쪼쪼, 오빠를 찾는 거지요.”
“그래, 오빠를 찾도록 여의주를 잘 물고 있어. 이제 네 몸통을 그리자.”
아저씨는 내가 청룡으로 변한 듯, 용의 허리를 휘게 그리느라 아저씨 몸이 춤추듯 리듬을 타며 이마에 땀까지 맺혔어.
“이제 꼬리를 그리자. 빛의 속도로 날려면 꼬리 끝에 불꽃도 그려야지.”
”홀쪼쪼! 아저씨는 저번에 내가 ‘빛의 속도’라고 한 말까지 기억하고 있네요!“
정말 고마워서 내 마음에도 불꽃 꼬리가 달려 올라오는 것 같았어.
“자, 이 청룡은 너니까, 그림 밑에 네 발자국을 새겨봐.”
얼른 털모자에서 나와 발자국을 찍으며 걷는데 재미있는 놀이였어. 차가운 발가락을 통해 찌르르한 느낌이 온몸으로 올라왔어. 희망이랄까? 새 힘이 솟는 기분이었어.
기분 좋게 청룡을 그려두고 우리는 동네 해장국 식당에 들렀어. 아저씨는 북엇국을 먹고, 나는 아저씨 물컵의 물도 쪼아 먹고 밑반찬으로 나온 푸른색 채소도 쪼아 먹었어. 기분 좋게 집에 돌아왔는데 손전화 기에서 카톡 새가 울었어. 아저씨는 내가 카톡 새를 좋아한다고 스피커 기능을 크게 켜두고 전화를 받는데 아저씨 친구의 전화였어.
“자네, 지금 누리소통망(SM)에 돌아다니고 있는 청룡 그림 좀 봐. 자네 작업실 있는 동네 학교 운동장이 캔버스로 사용되었네. 자네 작품이지?”
“자네, 비밀로 해주게. 이미 내 그림이 아니야. 우리 집 십자매에게 선물로 준 거야. 잘 봐! 십자매 발자국이 사인으로 꼭꼭 찍혀있을 거야.”
“그래? ‘청룡이 나타났다’며 접속자 수가 순식간에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어. 누가 사진 찍어 올렸는지….”
전화가 끝나자, 아저씨와 나는 창문을 열고 운동장을 내려다보았어. 청룡 한 마리가 신비한 하늘빛 색깔을 내뿜으면서 하늘로 날아오를 기세로 우리 쪽을 보고 있었어. 나는 아까 아저씨가 내 발자국을 남기라고 하던 이유를 그제야 알아차렸어. 여의주를 입에 물려주며 내 소원을 진정으로 응원해 주던 아저씨의 마음이 뿌듯하게 전해오자. 내 마음에 여유도 생겼어.
“아저씨, 혼자만 독차지하기는 미안해요. 나처럼 자유를 찾고 싶은 새나 사람이나, 가족을 찾고 싶은 새나 사람이나 모두 함께 저 기운을 나누고 싶어요.”
내 말에 아저씨는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 내 마음은 청룡의 몸속을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어. 더 힘찬 삶을 향하여. 2024. 1. 17. 2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