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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텔링
이 소설은 선도仙道 도사들의 구름 잡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도무지’와 그 도반들이 천방지축 고통스런 수도를 해나가는 과정이다. 유체이탈! 어느 정도 축기가 된 도반들은 단전에 기통氣通이 뚫려서 자유자재 하늘을 날아다닌다. 현실과 이상 세계를 왔다갔다 드나드는 것이다.
육체는 그대로 방바닥에 놓고 혼魂만 나와서 단군, 소크라테스, 히틀러 등을 만나 토론도 한다. 이 소설은 현실의 고통스런 일상에서 깊은 골짜기 찬물로 샤워하듯 우리들에게 엉뚱하고 유쾌한 힐링을 준다. 독자 여러분들도 ‘똥물에도 파도가 있다!’는 혜안에 눈 뜨면 단숨에 유체이탈이 가능하다. 가짜 뉴스인지 아닌지? 이 소설과 소통해 보세요.
기차는 세속을 탈출하고 있었다.
벌써 몇 번째 연기 끝에 지리산을 찾아가는 것이다. 이번에 참석 못하는 사람은 아예 제명시킨다는 엄포도 있어서 만사 젖혀놓고 가기로 했다. 정 갈 수 없다면 나 혼자라도 찾아 나서겠다고 작정했던 것이다. 누구를, 무엇을 찾아나서겠다는 것인가. 스스로의 반문에 웃음이 어금니 새로 밀려 나왔다. 난감할 적이면 나도 모르는 새에 일어나는 반사작용이다.
지리산 천왕봉에 무엇이 앉아있단 말인가. 바람이 앉아 있을까. 아니면 정녕 우리들이 갈구하는 도사가 앉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겨울 햇살 한 조각? 바람은 대관절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일까?
“어디서 불긴 어디서 불어와? 이라크 사막에서 불어오지.”
깜짝 놀래어 쳐다보니 바로 앞자리에 앉은 지공(知空) 스님이 아무렇지도 않게 창밖을 내다보며 말한다. 그 소리는 나에게 하는 대답이 아니고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바람은 무슨 색깔을 하고 있지? 하얀색, 노란색, 누르스름한 색? 아니 색이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몰라. 무색?
“지랄하고 자빠졌네? 무색이 어디 있어? 아닐 비짜, 비색이면 몰라도. 또 비색이 어디 있어? 바람은 바람색이지.”
나는 두 번째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지공은 여전히 창밖의 풍경에만 몰두해 있었다. 환청일까. 요즘 특히 난 이상해졌다. 아내가 이번 여행을 강요 아닌 강요를 한 것도 이러한 신경쇠약이랄까 하는 이상 증세 때문이리라. 수련에 너무 열중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하는 법이니까, 기분전환도 할겸 바람이라도 쏘이고 오면 좀 나을 것이라며 아내가 서둘러 앞장 선 여행이기도 하다.
남에게 정신 수양을 지도하는 법사가 오히려 정신 이상이라면 좀 웃기는 일이고 실상, 나는 금년 들어 한 단계 경지가 높아지는가 싶더니 하늘과 땅 사이를 무시로 넘나들었다. 구름 속으로 치솟았다가는 손오공마냥 구름과 구름 사이를 뛰어 다니기도 하고 축구를 하기도 했다. 옛날 도사들이 하던 흉내를 내는 것이다. 또 그러한 나의 모습이 영화를 보듯 확연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나를 보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폭포수 끝에서 아래로 떨어질 수가 있으며, 거꾸로 서서 맨 밑바닥에서 위로 솟구쳐 오를 수가 있는 것이다. 마음 속에 설악산 12선녀 폭포를 부르면 그 폭포수가 달려와 곧바로 내 이마 위에 떨어지는 것이다. 백두산 장백폭포를 부르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폭포가 내 앞에 얌전히 대령해 있다.
하도 이상해서 찬찬히 뜯어보면 동아 백과사전에 천연색으로 실린 그대로가 나타나 있는 것이다. 물소리까지 시원하게 콸콸콸 흐르는 것이다. 내가 그곳으로 날아간 것인지 그 폭폭가 내 앞으로 달려온 것인지 그것까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 기이한 초현실을 누구에게 얘기할 수도 보여줄 수도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오르내리락 하는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쉬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폭포수 옆 바위 위에 드러눕는 나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다. 몇 달간 계속되는 이런 초능력을 가지고 마누라에게 기어코 말했더니, 그 천주교 신자는 나를 이렇게 지리산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는 마누라는 천주교를 믿지만, 또한 나를 믿으며 나의 선도 수련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도와주는 선녀이다. 물론 초능력도 믿는다. 노량진 성당의 신부는 버들가지 하나로 땅 속 깊은 곳의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샘물을 파주고 한다지 않는가. 아니 추기경이 되려면 어떤 이적이 보여져야 된다지 않는가.
이적이든 기적이든 진정한 확신에는 반드시 초능력이 나타난다. 확신, 그렇다. 확신이 중요하다. 그러나 털끝만한 의심이 없이 확신이 선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오히려 지극한 의혹과 의념의 질곡 속에서 확신이 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확신 좋아하네. 그렇게 바람에 대해서 의혹을 갖는 작자가 무슨 놈의 확신이고 초능력이야? 다 사기야 사기.”
내가 세 번째 고개를 들었을 때야 지공은 은밀한 미소를 던져왔다. 나는 비밀 연애 편지를 읽다가 들킨 사춘기 소년처럼 귀밑이 빨갛게 달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공은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김 법사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눈을 똑바로 쳐다 보십시오.”
“할! 이 소리는 얼마나 무거우냐? 하고 화두에 잡혀 있군요.”
“바로 그겁니다. 방금 김 법사님은 바람에 대해서 궁구하고 계셨지요.”
“서로 지극하게 통하면 이심전심으로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 보세요. 재미있을 겁니다.”
지공은 토굴에 있다가 나와서인지 지난 달에 만났을 때보다 더욱 창백해 있었다. 그러나 눈동자 하나는 더욱 에메랄드같이 빛났다. 아마 진짜 에메랄드 보다 더 빛날지도 모른다. 참새 깃털같이 가벼운 그는 무엇을 찾아 그렇게 고행하는지 모른다. 그의 다람쥐 같은 몸매는 더욱 말라 비틀어져 있다.
개목걸이보다 더 작은 그의 허리띠가 금방 흘러 내릴 것같고, 호박 속살같이 노랗게 부어오른 그의 얼굴은 만지면 노란 물이 주루룩 흘러 쭈그러들 것 같다. 그 위에 박힌 새카만 보석 두 개만 빛날 뿐이다. 그것만큼은 고오타마, 싯달타 몸에서 나온 사리같이 도끼로 내리쳐도 핵으로 폭발시켜도 그대로 남을 눈동자이다.
뒤돌아보니, 구암九岩거사가 국회의원 비서고 마누라의 새파란 팔목을 은근히 잡고 기를 넣어 준답시고 기를 쓰고 있었다. 그는 지금 리버사이드 호텔에다가 방을 하나 얻어놓고, 장안의 명사들에게 기氣 치료를 해주고 있다. 이름 석자만 대면 대번 쩌르르한 누구누구들이다.
텔레비전에 단골로 나오는 모 대학 교수며, 연예인, 모모 장군들, 정계 거물들 그리고 더욱 웃기는 것은 모 제약회사 사장이다. 언론매체에다 대형 광고를 연속적으로 내면서도 정작 자기 회사 제품으로는 약효가 안 나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약 장사인지 만성 성인병을 고친답시고 몰래몰래 한강변 호텔로 모여 드는 것이다.
또 웃기는 것은 구암거사의 치료 방법인데 상대방 환자의 양 손목을 쥐고 그냥 마주 앉아 있는 것이다. 그리하면 구암의 단전에 축적된 기(氣)를 환자의 몸 속에 이전시켜 준다는 꿈 같은 얘기이다. 피 한방울 안 흘리고, 약 한 봉지, 주사 한 방 안맞고 치유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장난 같은 방법인데도 만성 불치병에 차도가 있는지, 그 저명 인사들이 아예 호텔 방을 얻어서 구암으로 하여금 자기들만 전적으로 치료해 달라고 묶어 놓은 것이다. 조금은 경제적으로 허덕이는 구암으로서는 밑천 안드는 장사여서 좋겠지만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또 그는 몇 사람 지성으로 해주다 보면 자기가 기진맥진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건강한 기를 환자에게 다 빼앗기고 환자의 병든 기를 대신 자기가 몸으로 받기 때문이라는 알쏭달쏭한 설명이다. 우리도 어떻게 그 비전의 비술을 배울 수 있을까 하여 그의 발바닥을 살살 긁어 보았지만 그는 결코 전수해 주질 않았다. 이번 지리산 여행에서 어디 천왕봉 꼭대기에서라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그의 말대로 쉽사리 가르쳐 줄거라 하는 또 하나의 기대를 안고 가는 것이다.
우리도 국선도랍시고 어느 만큼의 경지에 들어섰으므로 그가 몇 번만 잡아 주면 간단하게 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기란 것은 나무의 접목과 같은 것이어서 한 번만 접목되면 그대로 세포가 융합되는 것이다. 무당에게서 한 번 신이 내리면 내리 무당이 되는 것이라고 할까.
구암은 어린애들까지 끼어 거의 열 명이나 되는 일행들의 손목을 전부 한 차례씩 잡아 주고는 ‘당신은 지금 몸 어디 어디가 안 좋다’며 쪽집게로 집어내듯 병소를 밝혀 주었다. 그 병명을 들은 사람들은 거의가 경탄해 마지 않았다. 양의사가 청진기로 진찰하거나, 한의사가 진맥을 한 것 이상으로 평소의 지병을 정확하게 짚어내기 때문이다.
지공은 비밀한 냉소를 지으며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했다. 한 가지에 몰두해 있으면 누구나 가능한 법이거늘, 더구나 구암같이 자기 장인에게 오랫동안 터득했다면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 인술을 사술로 쓰여서는 안될 뿐이라는 것이다. 구암도 원래는 천주교 신자로서 배꼽이 떨어지자마자 어머니에게 이끌려 13년간이나 성당에 나간 열렬한 천주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혼 이후, 사업에도 실패하고 몸도 허약해지고 해서 처갓집에서 요양하다가, 당시 이름난 거사였던 장인어른에게서 불경을 공부하면서 선도(仙道) 공부도 했던 것이다. 백암거사라 했던 장인은 몇 가지 비술도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구암은 금강경에 심취해 많은 공부를 했다. 그것이 거짓이 아닌 것이 백암에게서 같이 공부한 도반이 이번 일행 중에 끼인 홍승동 씨인 것이다.
백암이 열반에 들고난 후 뿔뿔히 흩어졌다가 우연히 두 사람이 만난 것이 지난해 가을이다. 우연이라기 보다, 전국에 숨어 있는 도사를 찾으러 수소문해 다니다가 인천에 산다는 의술 도사를 알아내어 추적해 보니 바로 구암이었던 것이다. 홍승동씨는 이름만 듣고도 아앙, 했던 것이다. 한때 면도날로 머리를 깨끗이 밀고, 깨끗이 절로 들어가려고도 했던 홍 선생은 구암을 만나자 매우 기뻐했다.
나이야 차이가 많지만 가장 고뇌할 때의 옛 도반이 아닌가. 홍 선생은 내가 언제 절에 가려고 했던 적이 있었더냐 싶게 어여쁜 자기 마누라를 어깨에 걸치고 큰 아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잠재우고 있다. 그의 다정한 손길과 굳건한 어깨에 어린애와 함께 큰 어린애인 그의 각시도 잠푸록하게 나비잠을 자고 있었다.
하나의 소시민으로서, 민주 시민으로서 그는 보통 사람의 보통 행복에 만족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무원 연금 공제회의 공무원으로서, 착실한 가장으로서 그의 조그만 행복이 어쩌면 큰 행복인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자기가 생각하기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마누라가 준비해 온 간식을 꺼내어 나누어 준다. 김밥이며 삶은 계란 그리고 다감한 마음들을 나누어 먹었다. 비서관 마누라가 담배를 하나 꺼내어 물었다. 아직도 여대생 티가 가시지 않은 그미는 아까부터 열심히 공책에 무엇을 끄적거렸다. 보름달 같은 그의 아들이 그미의 품에서 산토끼같이 나들명거린다.
어느덧 어둠이 창가에 웅크리고 앉은, 이런 밤차엔 그미의 퍼런 담배 연기가 애련한 낭만을 기억시켜 주는 것같다. 그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왕년에 K대 총학생회 회장이었던 그미의 애인? 국회의원을 따라 중국 북경에 가는 바람에, 이번 여행에는 참석을 못한 자기의 남편이 된 애인을 생각할까? 밤은 깊어 가는데 왜 이렇게 화두가 잡히지 않는 것일까.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일까.
산 넘어 남쪽, 남쪽에는 누가 살길래?
지구본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태양계를 한눈 안에 잡아 본다. 다시 우주에서 내려다 본 지구. 아니 인공위성에서 내려다본 지구, 동글동글한 지구, 어디에서 어디로 바람이 부는 것일까. 어디에서 처음부터 바람이 발생하는 것일까. 스티븐 호킹은 지구의 팽창론만 장황하게 얘기했지, 지구의 생명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우주의 영혼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생명이 없는 우주는 처음부터 하나의 자연 과학일 수밖에 없을 뿐이다. 눈물이란 함수탄소와 신경계 홀몬의 작용이라고 하는 것이 자연 과학자들의 한계이다.
“똥물에도 흐름이 있지. 어느 선사가 자기 궁둥이 밑에 흐르는 똥물의 파도를 보고 크게크게 무릎을 치더란 얘기 우스개로 들어 보았지요. 해답은 질문이 시작되는 바로 그 곳에 있답니다. 꽃이 진 자리에 다시 꽃이 피듯, 해답은 끝난 곳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참만에 지공이 침묵을 깨었다.
2
가을의 지리산은 춥고 삭막했다. 홍승동 씨가 예약해둔 대로 우리는 순조롭게 민박을 할 수가 있었다. 여인네들과 아이들만 먼저 식사를 시키고 우리는 토속 막걸리로 해갈을 했다. 구암 선생이 지난 날 장인이었던 백암 선생에게서 도를 닦던 얘기를 꺼냈다.
“야, 이거 죄송합니다, 중국에 갔다가 지금 돌아오는 길입니다.”
G국회의원 비서 최원호 씨가 김포 비행장에서 곧장 왔는지 호박같이 둥글넙적한 얼굴로 해바라기같이 웃으며 들어섰다. 마누라에게서 국제전화를 받았었다며 뒤에 시커먼 원숭이를 하나 달고 들어왔다.
“이 친구는 그 유명한 지리산 털보인 지리산 귀신입니다.”
이런 밤중에 이런 털보 모습으로 산 속에 나타난다면 정말 고릴라인 줄 알고 기절할 정도로 그의 얼굴은 시커먼 숲으로 덮여 있었다. 그는 배낭과 등산복을 벗어 던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빈 대접을 내밀었다. 구암 선생이 철철 넘게 막걸리통을 기울였다. 산 사나이답게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이 오히려 좋았다. 수인사를 하고 거들먹 거리고 하는 것보다 얼마나 시간 절약이 되고 부담감이 덜어지겠는가. 도시만 탈출해 나오면 사람들은 다 원래의 자연성으로 되돌아가는 모양이다.
“지리산에는 자주 오는가 보죠?”
“자주가 아니라 아예 정기적으로 출장을 오고 있습니다. 매주 금요일이면 왔다가 일요일 밤차나 월요일 새벽차를 타고 올라가죠.”
“매주 그렇게 산을 타면 피곤하시지 않아요?”
“오히려 산을 못 타면 더 피곤하지요. 무당마냥 전신이 찌푸둥해요. 마누라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이제는 잘 이해를 해주고 있어요. 마누라와 인연이 된 것도 지리산 등산 길에서 만났으니까요. 벌써 제가 거의 십년을 이 지리산에 다니는데도 아직도 못 가본 데가 많아요. 새로운 골짜기를 탈 적마다 신비로움이 더 한다니까요. 요즘 같아선 아예 초막을 치고 이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미칠 수 있다는 것도 대단히 행복한 일이 아닙니까. 털보 양반은 최소한도 정신병원에 안 가도 될테니까요.”
“여기가 제 정신병원인걸요. 천당이고 극락이지요. 어디 유토피아가 따로 있습니까. 참, 내일 제가 좋은 곳을 안내해 드리지요. 저 뒤쪽 능선을 타고 토끼굴 쪽으로 올라가면 고로쇠나무라는 게 있습니다. 아주 시원한 물이지요. 젖이 안 나오는 사람이 이 물을 마시면 콸콸 쏟아지지요. 야간작업에서 시원찮은 사람은 그 물 한 번 쭈욱 당겨 보세요. 십년 막혔던 수채구녕 터지듯 대포알같이 터져나갈 것입니다.”
고로쇠나무라는 것을 잡지에서 더러 보았지만 그게 이곳에서 나오는 것인지는 몰랐다. 최원호 씨와 그 털보는 밤새도록 얘기를 나누었다. 고교 시절인가 동창생이라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보니 우리뿐인 줄 알았던 등산객들이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에 적잖게 올라가고 있었다.
“들길이면 질러가고, 물길이면 돌아가고…. 당신을 위해 살다가 당신 탓으로 죽으렵니다.”
아직도 술이 덜깬 지공스님이 골짜기를 올라가며 유행가인지 자작곡인지 흥얼거리며 휘청거렸다. 지공은 구암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밤새도록 한 상자의 막걸리를 비웠다. 누가 그의 가슴을 진정시켜 줄 것인가. 그의 가슴엔 그 무엇도 속에 차지 않았다.
그의 부친은 재벌축에는 못들지만 갑부라 할 수 있고, 그의 형과 누님들은 판사며 교수로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이다. 어려서부터 약골인 지공은 병치레하느라고 절간에서 휴양을 많이 했다. 그 덕분에 아예 절에 눌러 앉아 버린 꼴이다. 절에 있으면 편안한데 세상에 나가면 몸살이 나고 오한이 난다고 했다.
그게 운명이란 것인지 모르지만 심약한 만큼 그는 세상과 우주에 대한 깊은 사색에 잠기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지금 한창 열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토굴 속에 앉아있다가 기진해 쓰러지면 세상에 나왔다가, 정신이 들면 다시 토굴로 들어간다. 기를 쓰고 기어 들어가는 것이다.
술을 마셨다 하면 며칠이고 폭음을 하다, 술에서 깨어났다 하면 또 마시는 것이다. 그렇게 몸부림 치지만 우주의 해답은 그에게 아직도 없는가 보다. 세상에 대한 명쾌한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부축을 해도 뿌리치며 지공은 혼자서 흥얼흥얼 올라 간다. 산중턱의 어느 농장에 닿았을 때는 대개들 기진해 있었다.
일정이 촉박하므로 천왕봉 가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위 아래 허연물과 노란물이 시원하게 나올 수 있다는 고로쇠나무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털보는 혼자 뱀사골로 간다며 이미 새벽녘에 사라졌다.
“종교는 사랑이지 계율 안에서 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은 끊임없이 사랑과 은혜를 베풀 뿐입니다.”
“신이 누군데?”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마누라가 지공을 위로한답시고 한 말인데 그의 일격에 대답을 잃고 말았다.
“신이 신이지 누구긴 누구야.”
“신은 신발짝이고 부처는 똥통 속의 똥 막대기야. 알겠어? 사람에 따라서는… 다만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문제일 뿐이야.”
“신발짝이고 똥 막대기고 스님같이 낭비적인 고민만 한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공연히 쌀이나 축내고 시간만 죽이는 거지요. 얼마나 많은 고승과 선사들이 스님같이 고민하다가 사라졌어요. 그래도 그 사람들이 뭐 하나 해결해 준 것은 없잖아요. 문제만 던져 놓고 반복적으로 죽어 갔을 뿐이에요. 스님도 또 하나의 반복이고.”
“반복이라? 그거 아주 적절한 말인데요. 반복… 반복이라. 거참 오늘 좋은 화두가 잡혔는데 그랴.”
산 속으로 들어갈수록 산은 많은 얘기를 해 주었다. 바람은 지난 역사를 소리치고 있었고, 나뭇잎들은 처절했던 원한을 호소하는 것 같았다. 지리산! 우리의 근세사에서 얼마나 잔인한 살육이 반복되었던가. 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민족 분단의 모순과 비리는 지금도 고통으로 계속되고 있다.
작은 바위들이 계곡을 덮은 곳에 이르자 아이들이 먼저 와아 하고 뛰어 올라 갔다. 고로쇠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 나무들 줄기에는 비닐 봉지가 여기저기 매여 있었다. 나무 줄기에 상처를 내어 그 상처에서 나오는 수액을 비닐 봉지에 받아 마시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이현상 빨치산 대장이 잡힌 곳이지요.”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 온 민박집 큰아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이현상뿐이 아니라 그를 비롯한 그 많은 빨치산들이 이 골짜기 일대에서 총격을 받고 핏물이 튀었을 것이다.
우리도 새삼 주위를 휘휘 둘러 보았다. 가을 햇살이 토끼굴 쪽에 잠포록하게 앉아 있고 응달진 고로쇠 숲에는 양 손이 위로 묶여진 나무줄기 허리에 깊숙한 칼침을 맞은 나무들이 허연 피를 처절하게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현상은 축지법을 썼대요. 지리산을 완전히 포위한 군인과 경찰들이 바로 코 앞에 나타난 이현상을 잡으려면 어느새 산꼭대기에 올라가 양손을 흔들며 그들을 놀리곤 했다니까요.”
“그것은 축지법이 아니라, 저쪽 토끼굴을 보니까, 산세가 사방팔방으로 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천연 요새일 뿐이지요. 사방 어느 쪽에서 기습을 해도 탈출할 수 있는 능선이에요.”
최 비서관이 포병장교 출신답게 과학적으로 설명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축지법이 어느 만큼 도통한 경지가 아니면 그런 재주를 부리기가 어렵지요.”
“스님 말이 맞아요. 이현상은 이곳 지리산이 고향인데다가 옛날에 도술공부를 해서 그날 일어날 일을 훤히 내다보고 있었데요. 그래도 안 잡히는 건데 체포당한 부하 하나가 앞잡이 노릇을 하며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 청년은 이현상이 지리산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다. 며칠 전에는 중국과 무역대표부가 교환 개설 되더니 며칠 후에는 소련의 고르비가 제주도를 방문한다고 하지 않는가.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동구권에 대해서는 각종 원조며 미소의 손수건을 흔들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 등에 대해선 점점 찌푸린 인상을 보내고 있는 느낌이다.
미국의 우루과이 라운드나 일본의 고질적인 무역 역조현상이 국익을 최우선한다는 국존경쟁을 피부감으로 느끼기 때문이리라. 언론에서는 소련의 최고 지도자가 북한에 한 번도 간적이 없는데 우리나라를 방문한다고 호들갑이다. 일본까지 왔다가 한국에 한 번 들러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국내가 벌집 쑤시듯 하는 것인가.
고르비도 다 계산이 있을 것이다. 심각한 소련의 빵 문제는 이번에 고르비의 퇴진을 몰고 올 정도로 위험 수위에 와 있다. 그러니 일본과 한국에서 원조해 주기로 한 수십 억 달러의 쇠푼을 기왕이면 빨리 달라는 구걸 행각일 뿐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한국 정부에서는 막대한 소련 시장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지만 정치적인 계략이 더 크다.
수서 사건이니 범물지구 사건이니 월계수 문제이니 악화된 국민 여론에서 시급하게 도망가려면 무엇인가 충격 요법이 필요할 게다. 5공시절에는 땅굴 발견 등으로 그 비슷한 정치적 요법을 써 먹지 않았던가. 지방자치회 의원 선거도 뭣인가 시원치 못하자 광역의원 선거도 앞당겨 치르는 것이다. 요즘 언론들의 놀아나는 꼴을 보니 재미있다. 정치판과 언론판이 같이 디스코를 추는 격이다.
수서 사건에서 언론사 기자들은 또 얼마나 촌지에 오염되어 있었겠는가. 그 중에서도 유일한 씨 딸인 유재라 씨의 쾌거는 또 다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약 2백 억이나 되는 평생의 재산을 그대로 장학기금으로 그의 아버지와 같이 훌훌 털어 기증한 것이다.
대개의 재벌이 교묘한 탈세 등의 방법으로 땅 속에 묻는데 비해 유한양행과 같은 재벌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래도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낙동강에 죽음의 페놀 오염물을 시커멓게 쏟아부은 두산 그룹에선 아직도 변병하기 바쁘다. 외국제품을 들여와 비싼 로열티를 물어가며 마시고 취하게 만들어 돈을 벌고 있는 두산 기업군에 비하면 유한양행의 기업정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니 저어기 저기 좀 보세요. 지공 스님이 저 산꼭대기에 앉아 있어요.”
아이들의 손 끝을 따라 바위 끝을 쳐다보니, 이현상이가 만세를 불렀다는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어느 새 날아올라 갔을까. 어쩌면 스님도 축지법을 썼는지 모른다. 아까 올라올 때도 술취한 듯한 걸음걸이었지만 그렇게 발 뒤꿈치에 바람을 말아 올리며, 걸으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자기가 걷는 게 아니라 바람이 걷는 거란다. 그런 식으로 걸으면 산 몇 고개를 넘어도 거뜬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발에 힘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걸음 걸을 때 뿐이 아니고, 우리는 세상 일에 힘을 많이 주고 산다. 때로 필요 이상으로 힘을 주게 된다.
발목에 힘을 주면 발목이 아프고, 목에 힘을 주면 메가지가 아픈게 아닌가. 지나치게 목에 힘을 주면 메가지에 기브스를 하는 거지 별 수 있겠는가. 마음에 힘을 주면 욕심이 생긴다. 욕심이 지나칠수록 마음이 괴로워지는 법이다.
“걸을 때는 말입니다. 내가 내 몸에서 싹 빠져 나와 내가 나의 걷는 모습을 지켜보며 걷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 자신은 하나도 지치지 않지요. 무거운 짐일수록 나 아닌 나에게 잔뜩 지워주고 나는 두 손만 휘적거리면 됩니다. 그렇게 마음만 먹어 보세요. 누구나 그렇게 됩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요. 사물은 껍데기에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강남성모병원 영안실. 어머니의 영정을 앞에 놓고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꼭 남의 상가집에 와 있는 느낌이다. 좀 빨리 돌아가시긴 했어도 어머니 죽음은 예견된 것이었고 구체적으로 준비도 해왔던 것이다. 다만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의사의 진단결과를 어머니에게 그대로 알려야 되느냐 숨겨야 되느냐로 식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했던 것뿐이다.
아내와 같이 성당에도 열심히 다니며 종교잡지에도 글을 발표하는 등 남편 없는 삶이지만 만년을 즐거움 속에서 활기있게 사시던 어머니이기에 정말 믿기지 않았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도 의사가 다른 사람 것을 가져온 것같이 덤덤할 뿐이었다. 겉으로는 멀쩡한 어머니도 병원생활이 답답한가 보다.
“얘야, 이젠 집에 가자꾸나. 별 치료도 없이 링겔만 꼽고 입원비만 축내지 않니?” 하고 재촉했다.
“네에, 그래요. 어머니 제 등에 업히세요. 아무 것도 아닌 일 가지고 의사들이 괜히 야단인걸요 어머니!”
나도 맞장구 치면서 어머니를 들쳐업고 계단을 내려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동생과 아내는 심각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같이 자신의 임종 때를 알고 죽음에 대비해서 충분한 마지막 준비 기간을 어머니에게도 알려 드리는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이 아니냐고 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그것이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것같이 잔인하게 들렸다. 내일쯤엔 꼭 말씀 드리자고 했지만 하루 종일 적당한 계기를 찾지 못했다.
평소와 같이 즐겁게 이웃 할머니들과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며 웃음이 가득한 어머니에게 어떻게 ‘이제 어머님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하고 말씀을 드릴 것인가. 이런 때는 그 동안의 나의 수련이 얼마나 보잘 것 없었던가를 자괴스럽게 한다. 산에서 생식하면서까지 흰 눈 속에서 뼈를 말리던 고행도 한낱 껍데기를 좇아 수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이다.
어머니와 친한 친구분한테 간접적으로 말씀을 부탁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던 어느날 아침, 부엌에서 요리를 하시다가 머리가 아프다고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 길로 어머니는 다시금 눈을 뜨지 않으셨다. 많은 조문객 사이에서 낯선 사내가 하나 쭈볏거렸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친구나 친척들이 찾아오니 반갑고 미안하다.
한국인들의 속 깊은 심성을 이런 데서 또 한 가지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식에는 참석 못해도 장례식에는 빠지지 않는다는 게 기쁨도 좋지만 슬픔에는 꼭 동참하겠다는 인정이다. 수 인사를 하고보니 옛날 한참 방황하던 시절 같은 도반이 보낸 동생이다. 그 도반은 지금 대구에 살고 있는데 집안에 결혼식 날짜를 잡아 놓고 있어 오지 못하고 대신 서울에 사는 동생을 조문객으로 보낸 것이다.
그 도반과 나는 대학 2학년 때인가 청담스님을 뵈오러 갔었다. 그 큰스님을 배알하기 위해 우리는 며칠 밤을 기다려서야 겨우 허락이 떨어져 조실 방문 앞 마루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한참만에 헛기침 소리와 함께 ‘어디서 왔는고?’ 하고 물음인지 야단인지 하는 산울음 소리가 쩌렁대었다.
황망해 있는 중에 그 도반이 대뜸 ‘온 곳이 어디 따로 있습니까? 다만 여기 있을 뿐입니다.’ 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자마자 와락! 방문이 열리며 ‘고얀놈’ 하면서 청담이 우리를 뚫어지게 내다 보았다. 독수리 눈같이 내리 꽂히는 눈도끼에 나는 움찔하여 고개도 들지 못했다.
다시 꽝하고 문이 닫히자, 우리는 밤새도록 그 자리에 그렇게 꿇어 앉아 있었다. 어디선가 호랑이의 장난인지 등어리로 흙가루가 홱홱 떨어지기도 하고 부엉이 울음 소리가 청승맞게 들리기도 했다. 새벽 3시 찬바람 속에 독경이 합창되어 나왔다. 그래도 우리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오줌 누러 잠깐씩 갔다 왔을 뿐이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우리는 밤낮으로 그렇게 앉았다. 배가 고팠다. 번갈아 가며 법당 뒤의 샘물만 바가지로 퍼마시고 그렇게 다시 앉았었다. 달마가 장강을 건너 하남의 숭산 소림사에서 9년 동안을 면벽 수도할 때였다. 신광(神光)이라는 애숭이가 찾아와서 동굴 밖에 서있기만 했다.
참다못한 달마가 구도하려면 참선을 통해 용맹정진해야 하거늘 그따위 결심으로는 안 된다고 쫓아버렸다. 신광은 갑자기 자기의 한쪽 팔을 칼로 베어 두부 자르듯 잘라버렸다. 그때서야 달마는 ‘구도에 이르는 길에는 몸은 한갓 고깃덩이에 불과하거늘 팔을 잘라버리는 것도 좋은 일이다’며 곁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였다.
“스님 저를 안심시켜 주십시오.”
“네 마음을 내놓아라. 안심시켜 주마!”
“아무리 찾아도 마음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설령 찾았다, 해도 그걸 어찌 마음이라 하겠느냐. 내 이미 너를 안심케 했음을 알겠느냐?”
“예에, 도는 본래 공(空)이라 합니다. 석가세존께서,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거울 또한 받침이 없는 것이라/ 본래가 물건이 아니거늘/ 어디에서 날아든 티끌인가.” (菩提本無樹 明亦非臺 本來無一物何處麗)
우습게도 우리는 달마와 혜가의 일화를 꿈꾸며 어떤 득도을 염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때 청담은 방 안에서 어떤 미친 년을 하나 끌어안고 누워 있었던 것이다. 문 틈으로 그 광경을 들여다보고 있던 도반은 청담도 별 것 아니군 하고 득의만만했던 농성 아닌 농성을 풀고 말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역시 우리의 지혜가 짧았던 것이다. 지해知解였지 지혜知慧가 아니었던 것이다.
더럽고 냄새나는 미친 년이지만 청담에게는 아름답게 친할 수 있는 미친美親 여자인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더럽지도 않고 냄새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한 여자가 아닌 남자 친구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청담은 미친 년의 사타구니를 다리에 끼고 자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다. 원효가 해골 바가지의 물을 마셨듯 세상일사는 생각하기에 달렸을 뿐이다.
“여보, 정신문화원에서 손님들이 오셨어요. 좀 나가보세요.”
나는 향냄새를 맡고있는 어머니의 얼굴사진을 지그시 지켜보면서 옛날 도반을 생각하다가 언뜻 아내의 근심스러운 소리에 얼른 일어섰다. 동생이 먼저 나갔는지 안 보인다. 정신문화원은 동생이 근무하던 직장이다. 동생은 그곳에서 국선도를 강의해 왔다.
정신문화원뿐이 아니고 동생은 중앙공무원 교육원, 경제기획원, 국방부 등에 강의를 나간다. 우리의 전통 기공술을 지도하는 것이다. 단군 때부터 비전되어 내려 오던 국선도가 최근에 와서 지식인 계층에서 선호되어 빠른 속도로 보급되고 있는 중이다.
동생과 나는 청산거사에게서 같이 수련 지도를 받았다. 청산은 몇 년 전에 한 번 속세에 내려오고는 지금도 산 속 어디엔가 숨어있다. 지리산이나 태백산 아마 그 쯤에서 더 높은 단계의 수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영안실 전체를 전세낸 것 같이 우리뿐이던 상가가 이튿날이 되자, 어느 대학생인가 죽었다며 떠들썩해졌다.
다소 울가망하던 장내가 따뜻해졌다. 상가는 역시 좀 떠들썩해야 위안이 되는가 보다. 명지대 강경 대군이 시위 현장에서 전경의 쇠파이프로 집단 구타를 당해 숨지자 전국이 분노로 들끓었다. 뒤이어 광주에서 박승희 양이 분신을 하고, 안동에서 김영균 군이, 성남에서 천세용 군이 불에 탔다. 대학생들의 죽음이 전국을 한바퀴 돈 셈이다.
그러자 다시 신촌에서 노동자 김기설 씨가 온몸에 신나를 끼얹고 역시 자살했다. 아침에 뉴스 보기가 두렵다. 또 어느 젊음이 희생될지 정국은 초긴장이다. 그래도 정부에선 내무장관 하나 바꿔놓고 날잡아 잡슈! 하고 앉아있을 뿐이다. 단 한 번의 죽음을, 단 한 번의 젊음을 이렇게 간단히 버릴 수 있을까.
물론 그 죽음은 결코 간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성냥을 긋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오랜 고뇌와 고통을 겪었을까. 신나를 끼얹으면서 먼저 어머니를, 식구들을, 그리고 애인이며 친구들을 분명히 떠올렸을 것이다. 성냥을 켤 때까지 또 얼마나 심난한 갈등을 반복했을 것인가. 그래도 그을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젊음과 이상은 얼마나 컸던 것일까.
살아서 욕되느니 죽어서 살아 있음을 그들은 정의와 양심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 죽음은 결코 죽지 않은 것이다. 다만 육체만 벗겨져 나가는 것이요, 혼백은 여전한 것이거늘. 그래서 장자는 자기 마누라가 죽자, 술을 마시면서 니나노 춤을 덩실덩실 추었던 것이 아닐까.
다만 조금 더 빨리 저 세상에 갈 뿐이거늘. 그리하여 또 다시 누군가의 육체에 붙어 다시금 윤회하거늘,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전부인 양 착각한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더 크고 넓거늘. 달마가 때가 되어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제자들을 불러 앉혔다. 자아, 이제 그 동안 깨달은 바를 말해 보아라!고 했다.
“문자에 집착하지 말 것이며 또한, 포기하는 일이 없이 구도를 한 방편으로 생각해야 됩니다.”
“네가 깨달은 것은 나의 껍질만 얻었구나.”
“부처의 나라를 기쁘게 본 것처럼 한 번 봄으로써 그치는 것입니다.”
“너는 내 살갗만 핥았구나. 쯧쯧……”
“땅 바람 물 불은 본래 공空이요, 눈 귀 코 혓바닥도 본래 빈 것이라. 어디에도 법은 없는 것입니다.”
“너는 내 뼈만 만졌구나. 허.”
마지막으로 혜가의 차례가 되었다. 혜가는 꼼짝 않고 서 있을 뿐이다. 달마는 무릎을 치며 혜가에게 의발을 전해주고 선종禪宗 제2조로 계승시켰다. 의발은 석가가 가섭에게 내려 주었던 법신法信이다. 서천인의 불법을 비로소 동방인인 혜가가 전수받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래불如來佛의 정법안을 이어받은 것이다.
달마도 수도 중에는 많은 갈등을 겪었다. 한 번은 긴 수도 끝에 눈꺼풀이 내려 앉아 벌려지지 않았다. 손으로 눈꺼풀을 뜯어내어 땅에 내던졌다. 그랬더니 눈꺼풀이 떨어진 곳에서 싱싱한 새싹이 나왔다. 같이 좌선하던 수도승들의 눈꺼풀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도승들은 그 싱싱한 새 순을 뜯어다 달여 먹었더니 새 살이 돋아나고 정신이 맑아졌다. 그래서 뒷사람들은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 나뭇잎을 뜯어다 달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차의 시작이라고 한다. 달마가 처음에 중국에 온 것은 양나라 대통 원년 그러니까, 서기 527년이 된다.
달마는 불법에 상당한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고 있던 양무제를 만난다. 양무제가 사원을 짓고 불법을 외고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전혀 어떤 보답을 위한 행위였던 것이다. 기복불교였던 것이다. 보시를 하는 것도 공이다. 그런데 그것이 보답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욕심을 일으키는 것이 된다. 시혜는 시혜로 잊어버려야 한다. 달마는 양무제와 인연이 아닌 줄 알고 다시 배를 타고 북위北魏로 갔다. 소림사少林寺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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