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에 이어 목련, 개나리, 벚꽃으로 이어지는 봄꽃들의 화려한 축제로 이제 봄이 깊어졌음을 실감한다. 아침 산책길 야산에서도 도심의 길가에서도 활짝 핀 봄꽃들의 화사함에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물오른 꽃봉오리가 하나둘 터지면서 우리 인간들의 마음도 함께 밝아지는 듯싶다. 꽃이 피고 나비와 벌들이 모이고... 이제 곧 신록이 세상을 푸르게 뒤덮는 동안 온갖 생명체들이 꿈틀거리며 세상으로 나오리라. 만물이 함께 어우러져 살고 지는 모습... 그것이 바로 자연의 이치다.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의 모습, 서로 다른 존재들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하나를 만들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봄을 맞이하면서 불완전한 우리들이 자연을 통해 배워야 하는 소중한 삶의 지혜인 듯싶다.
가슴 두근거리며 맞이하는 봄의 한가운데서 또 다른 설렘이 있으니 한 달 전부터 기다리던 산행... 민통선 안에 위치하여 쉽게 오를 수 없는 도솔산, 대암산 산행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이른 새벽 봄기운 가득한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며 님들이 기다리는 사당역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산 행 개 요
◈ 산행일자: 2008. 04. 06
◈ 산 행 지: 제4땅굴 견학, 도솔산(1,147.9m), 대암산(1,304m)
◈ 위 치: 강원도 양구군
◈ 산행코스:
◎ 제4땅굴(인제군 서화면 서희령 부근) 견학 (10:30-11:10)
◎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돌산령)/점심(11:35-12:00)-산행시작(12:00)-도솔산(12:25-12:30)-대암산 중간봉우리(14:20)-용늪(246호 천연보호구역)(14:40-14:50)-백두산부대 막사/식사(15:10-15:30)-팔랑리/산행종료(16:50)
◎ 백두회관(양구 죽곡리?) 휴식과 만찬 (17:20-18:55)
◈ 산행거리: 약 10km(추정)
◈ 참석인원: 41명
06시 30분 사당역, 오랜만에 만나는 님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차량에 오른다. 양재역, 방이역을 거치는 동안 환한 웃음이 차안을 가득 메운다. 오랜 산친구 솔누리 회원님들 그리고 산정산악회에서 함께 백두대간을 걸었던 님들과 몇몇 낯선 님들의 얼굴이 섞여 있지만 모두들 산행에 대한 기대감은 한결같다. 첫 만남이라 약간은 서로 서먹한 느낌도 있겠지만 늘 그렇듯 산이 있기에 곧 하나가 되리라 믿는다.
차량이 양구를 향해 달리는 동안 월인 회장님의 산행일정에 대한 설명에 이어 자운영님의 펀치볼(Punch Bowl, 해안면)의 내력과 대암산 정상부근의 고층습원인 용늪(246호 천연보호구역)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면서 가슴은 더욱 설렌다.
양구대교를 지나면서 헌병의 안내를 받으며 한참을 가던 차량은 어느새 453번 지방도를 따라 구불구불 가파른 오르막을 힘겹게 오른다. 귀가 멍멍해지고 까마득하게 뒤로 남겨지는 구불구불한 도로가 험준한 산세를 말해준다. 대우산과 도솔산을 잇는 능선을 가로지르는 돌산령을 넘어 펀치볼(Punch Bowl)로 알려진 거대한 고산분지인 해안면으로 내려선 차량은 다시 방향을 바꾸어 가칠봉(1242m) 북동쪽에 위치한 서희령 부근의 제4땅굴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제4땅굴 입구에서 안내장교로부터 땅굴 발견경위와 현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은 뒤 화차를 타고 지하갱도를 따라 내려간다. 어두컴컴한 갱도를 따라 군사분계선 직전까지 다가가 관람하는 순간 분단국의 아픔과 광기(狂氣) 어린 위정자가 만들어낸 기막힌 현실 앞에서 그저 가슴이 아려올 뿐이다. 관람이 끝나고 차량은 오던 길을 되돌아 다시 대우산-도솔산을 잇는 능선을 향해 오른다.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가 세워져 있는 고갯마루, 돌산령에서 차량이 멈추니 이곳이 바로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도솔산 산행초입이다.
6.25 전쟁 당시 ‘난공불락의 철옹성’ 도솔산 전투에서 있었던 해병대의 전적과 현 백두산부대에 대한 안내장교의 설명이 있고 곧이어 출발 전 다소 이른 점심을 시작한다. 잘 단장된 널찍한 공터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는 따스한 봄 햇살이 내리는 정오(正午) 무렵, ‘무적해병’ ‘忠靈碑’라고 새겨진 장승들이 늘어서있는 널찍한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나지막한 철조망 문을 들어서자 하얀 눈이 길을 뒤덮고 있다. 봄기운에 녹아내리는 눈으로 질퍽거리는 길... 까치발을 하고 내딛는 걸음걸음은 마냥 조심스럽기만 하다. 완만한 경사를 따라 시원스레 뻗어 오르던 넓은 길이 끝나고 도솔산을 향해 오르는 산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경사를 높인다. 간간이 키 작은 잡목이 보일뿐 사방으로 숲이 보이지 않는 것이 독특하다. 주위에는 아직도 전쟁 당시 묻힌 지뢰가 발견된다는 안내장교의 설명에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간간이 보이는 참호들은 새삼 전방의 분위기를 실감나게 하지만 오르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순간 북쪽으로 대우산(1,178.5m)을 거쳐 가칠봉(1,242m)으로 뻗어가는 시원스런 능선은 험준한 산세에 걸맞지 않게 부드러움을 느끼게 한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의 피로 얼룩졌던 저 피의 능선이 이제 그만 그 아픔을 딛고 평화의 능선으로 거듭나 따뜻한 봄날을 맞이하길 염원하면서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20여분 만에 뾰족한 탑이 세워진 도솔산 정상(12:25)에 이르고 잠시 사방을 둘러본다. 대우산, 가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우측으로 거대한 그릇 모양의 고산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펀치볼(해안면)의 모습이 참으로 평화롭게 다가온다. 한편 도솔산-대우산-가칠봉을 거쳐 북으로 달리는 저 도솔지맥의 마루금이 매봉(1,290m)을 지나 매자봉(1,144m)에 이르면, 설악의 대청봉(1,708m), 향로봉(1,287m), 무산(1,320m)을 거쳐 북진하는 동쪽의 백두대간과 합류하여 하나가 된 채 민족의 산, 금강산(1,638m)으로 뻗어 가는 장쾌한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거침없이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에 통일의 염원을 실어 보낸다. 함께 어우러져 사는 자연의 순리, 그 지혜로움에 순응하여 하루 빨리 이 땅에도 영구적인 평화가 안착되길 기원하면서...
도솔산에서 대암산 방향의 안부로 내려서는 길은 울툭불툭 암릉이 한동안 계속된다. 이어 대암산을 향해 오르는 길에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심설산행(深雪山行)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눈이 쌓여있다. 무릎까지 빠지는 길을 조심스레 오르는 동안 님들은 어느새 동심으로 빠져든다. 눈을 뭉쳐 던지며 짓궂게 장난을 걸기도 하고 눈길에 비스듬히 누운 채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순박한 동심의 세계를 즐기는 님들... 그 얼굴에 찾아든 환한 미소가 더없이 맑아 보인다.
언덕진 양지바른 곳에서는 눈 대신 수북이 쌓인 낙엽을 뚫고 노란 복수초가 군락을 지어 피어있고 애기앉은부채의 푸른 잎들이 봄 햇살을 듬뿍 받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아직은 겨울이 머물고 있지만 이곳에도 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눈길은 계속되고 점차 멀어져 가는 도솔산은 주변의 풍광에 한층 더 조화를 이루면서 아담하면서도 강인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한편 거대한 펀치볼(해안면)은 변함없는 모습으로 넓게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전방으로 펼쳐지는 대암산 중간봉우리의 웅장한 모습은 여전히 설경을 이루면서 겨울 산의 멋스러움을 자랑하고 있다.
크고 작은 안테나와 철탑들이 들어선 대암산 중간봉우리(해발 1,280 ~ 1,300m 정도 추정)(14:20)에 도착한 후 곧장 완만히 내려가는 넓은 길을 따라 남쪽 대암산(1,304m) 방향으로 이동한다. 막사를 지나 한참을 내려가면 안부에 위치한 고층습원 용늪(14:40)에 도착한다. 곧이어 안내장교의 설명이 있는 동안 용늪 주위를 둘러보지만 잔설이 남아있는 이곳은 봄기운 속에서도 아직은 겨울이 머무는 듯싶다.
용늪 보호를 위해 파견된 환경청 요원들이 보이고 이곳에서 더 이상 대암산으로 오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완연한 봄기운 속에서도 아직 겨울의 설경을 펼치는 대암산을 뒤로하고 막사(15:10)로 돌아오면 장병들의 정성어린 손길로 준비된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이 님들을 감동시킨다.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장병들, 우리가 그들을 위로해야 할 처지임에도 오히려 이처럼 생각지도 않은 따뜻한 환대를 받으니 참으로 미안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따끈따끈한 커피 한잔까지 받아들고는 연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식사를 마치고 서편으로 난 널찍한 군사도로를 따라 팔랑리로 하산(15:30)을 시작한다. 구불구불 이어져 내리는 길이 끝없이 계속되지만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걷는 님들의 발걸음은 마냥 즐거워 보인다. 길섶에는 복슬복슬 갯버들이 귀엽고 앙증맞게 꽃을 피우고 있고 예쁜 아가의 얼굴처럼 활짝 웃음 던지는 노랑제비꽃, 방울방울 소담스레 노랗게 꽃피운 생강나무들이 이어지면서 최전방 이곳에도 이제 봄이 왔음을 알린다.
님들과 오손 도손 담소를 나누면서 내려오는 발걸음이 어느덧 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곳(16:50)에 이르자 지금껏 안내를 맡아 수고한 군 장병들과 아쉬운 작별을 나눈다. 얼어붙은 동토(凍土), 북녘 땅에도 하루 빨리 따뜻한 봄이 찾아오길 간절히 기원하며 백두회관으로 향하는 차량에 오른다.
백두회관(죽곡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부대장과의 만찬이 벌어지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활짝 핀 웃음꽃이 님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힌다. ‘강한 친구 대한민국 육군’ 백두산부대의 무궁한 발전과 우리 님들의 끈끈한 산우애을 위하여 건배가 이어진다. 모두 함께 하나가 되어 가면서...
가을 즈음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의 마지막 봉우리라는 가칠봉 산행을 기약하면서 저녁 어스름이 찾아든 느지막한 시각(18:55)에 백두산부대와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귀경 길에 오른다.
자연 앞에서는 한갓 미물인 존재, 세상 속에서는 온갖 욕심으로 참된 자아(自我)를 잃어버리는 슬픈 존재, 그것이 우리의 실체인 듯싶다. 사상과 이념, 부와 명예, 권력... 수없이 많은 이유로 너와 나를 가르고 서로를 멀리하면서 늘 우리는 고통과 아픔을 생산한다. 서로 다르지만 더불어 사는 지혜, 함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더 큰 하나가 되는 슬기로움을 깨우쳐 주는 산, 그런 산이 있기에 가끔씩이라도 이렇듯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기쁨을 느낀다.
아직도 얼어붙은 동토(凍土)의 땅, 저 북녘에도 하루 빨리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길 염원하고 또한 산으로 인해 맺어진 님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오래도록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면서 오늘 즐거웠던 산행을 뜻있게 마무리한다.
힘든 산행을 성사시킨 월인 회장님,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풀피리 고문님 그리고 모든 집행부, 운영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다음달 지리산에서 다시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시고 늘 즐산, 안산하시길 기원합니다.
2008. 04. 06
도솔산, 대암산 산행을 마치고...
두레골(라이문도) 相金印佑
- 참고 자료 -
1. 도솔산 전투 :
(
양구사이버종합전시관 http://210.178.146.5/travel/travel_02_81.html )
2. 해안면(亥安面)의 유래 :
(
해안면 홈페이지 http://www.haean.net/home1/home.html )
먼 옛날 해안의 해자는 바다 해(海)자를 썼는데 그 당시 해안분지에는 뱀이 많아 주민들이 밖에 나가지 못할 정도로 뱀이 많았다 한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초 해안 주민이 시제를 지내면서 유명하신 스님 한분을 모시니 스님은 “뱀은 돼지와 상극이니 바다 해(海)자로 바꾸어 쓰면 되겠다.”고 일러주었다.
그 다음부터 주민들인 돼지 해(亥)자로 고치고 집집마다 돼지를 많이 길렀다고 한다. 그 후 신기하게도 뱀이 없어져서 주민들은 집밖 출입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록으로는 고려시대 이전에는 이 분지를 “번화”라고 불렀으며 그 후 “해안(海安)”으로 불렀다가 해안(亥安)으로 바뀌었다. 1885년(고종32년)에 해안면이 설치되기도 했다.
1956년 휴전 후 난민정착사업의 일환인 재건촌 조성으로 100세대씩 입주시키며 농민들의 개척에 의해 마을의 틀이 만들어졌다. 원래 동면 관할 아래 있었던 해안 출장소가 1983년 전국 행정구역조정에 따라 동면 북부를 승격시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6.25격전 중 해안을 바라본 종군기자가 완전한 분지형태인 이곳의 지형을 본따 야채를 소스와 섞을 때 쓰는 둥글고 큰 그릇인 “PUNCH BOWL"이라 부른데서 세계적으로는 펀치볼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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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봄의 향취에 젖고 오셨군요~~~ 행복한 시간이였겠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