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백장미/송유창-진실의 내러티브(이상열 평론가 에세이스트 124호(2025.11-12, 317쪽) 월평)
제주 특전 훈련장에 도착하면서 글은 시작된다. 작가 송유창은 제대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옛 부대를 찾았다. 반겨주는 후배 지휘관을 만남으로 군 현역의 기억 안으로 들어간다. 그는 특전사 군인이었다. 정확히 말해 특전부대 지휘관이었다. 지금은 등단 수필가다. 수필 작가로서는 그의 정체가 낯설고, 한 생애 군인이었던 그로서는 수필가의 삶이 익숙하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감사했다.
경험한 세계 자체가 신선해서다. 범인(凡人)들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두 세계를 다 살아본 작가 송유창만이 쓸 수 있었던 글을 읽을 수 있어서다. 울림의 포인트는 둘이다. 그것은 희귀성과 진실성이다. 이보다 새로울 수 없다. 누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나. 수필의 텃밭은 자신이 경험한 세계다. 세상에는 다양한 경험 세계가 존재하지만, 오직 나만의 고유한 경험이 있다. 그것이 글의 재료가 된다면 그 글은 세상의 유일한 글이다.
우주에 올라가 보지 않는 자가 우주에 대해서 낱낱이 쓸 수 없고, 지옥의 끝에 내
려가 보지 않은 자가 스올의 경험을 진술할 수 없는 법이다. 상공 1.200피트의 공기, 온도, 순간의 공포, 누가 알겠는가. 작가 송유창 아니면 불가능한 희귀 경험이다. 희귀 경험은 그 자체로도 희귀수필이 되는 원리다. 이것만으로 이미 성공이다.
또 하나는 진실성이다. 수필 쓰기는 모든 글감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고 와 숙성하고 되새김질해서 외부로 드러내는 행위다. 오늘의 소재를 드러내는 방식은 어때야 하는가. 솔직함이다. 수필의 핵심적 성격은 작가의 체험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글감은 꾸미지 않아도 된다. 아니, 꾸밀수록 가치는 떨어진다. 글감 자체만으로 이미 높은 가치를 지녔으며, 독자는 작가에는 무한한 신뢰감을 느낀다.
그럼, 글의 재료가 작품이 되는 과정은 어떤가. 재료와 작품 사이에 화자의 기억이 존재한다. 그 기억의 장치가 작가의 진솔한 고백을 거쳐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송유창에게 기억은 어떤 의미일까. 기계가 아닌 이상 기억을 완벽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의 기억은 다르다. 어떤 기억 장치의 재생능력보다 선명하다. 하나뿐인 생명을 담보로 한 살아있는 경험들이기에 그 기억의 명료함은 절로 쏟아지는 진실의 내러티브다. 이런 보석과 같은 기억은 기록해야 한다. 기록 행위는 굉장한 마법이 있다. 기록하면서 다시 한번 그때를 회상하게 되고 ‘그때’가 ‘지금’으로 옮겨짐으로 그때의 실제는 다시 소생하는 것이다.
수천 피트 상공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를 보자. 산개 검사를 하고, 좌우 측을 경계하라. 낙하산 간 부딪혀 생길 안전사고의 예방 때문이다. 이어 동남풍이 5노트다. 무릎에 힘을 빼고 착륙을 준비하라! 30초도 안 되어 벌써 접지 걱정을
해야 한다. 엄습하는 공포, 기체 문 사이로 파고 들어오는 귀를 찢는 엔진음, 낙하 조장의 ‘문에 서! 뛰어!’ 외치는 소리, 이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가. 피가 돌고 세포 하나하나는 깨어나고, 몸은 그때를 기억하여 현재를 극복하려는 생명 모드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진실성은 글의 원재료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심리와 고백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고도의 공포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그의 솔직한 고백을 보자. 단지 장교라는 계급에 가려있을 뿐 병사들의 공포와 다르지 않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저 나서고 있을 뿐이다(…) 장수란 불난 집 안방에 앉아 있는 심정이거나, 침몰하는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마음 같은 것, 단지 부하 앞에서 용기를 내고 있을 뿐이다. 이 솔직함이 처연하고도 고귀하다. 지휘관이라고 감정이 없겠나. 두려움은 한 인간으로서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실존의 감정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했던 것이 신분의식, 자기 정체성이었다. 순간 ‘나는 누구인가’라는 답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공포를 극복해 내려는 한 인간의 초인의식이 그 어떤 감정보다 벅차게 다가온다. 제아무리 무지막지한 공포 속이라도, 지상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오직 창공에서만 느끼는 공포가 섞인 감정은 차라리 아름다움이다. 탄식을 자아내는 아름다움이 이런 게 아니겠는가. 여백의 체험이랄까. 넓은 대지 아래로 쏟아지는 빛들의 향연을 온몸을 던져 맞이하는 황홀함은 작가가 아니면 누가 알까. 이제야 알겠다.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마음, 동료와 대한 믿음, 뜨거운 조국애, 이런 것들이 버무려지면 아름다움이 생
성된다는 것을.
한 단계 더 나아가자. 수필의 재료가 어떻게 문학이 되는가의 고민이다.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재생해내는 것보다 현재에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기억의 흔적으로 남아 있던 본디의 이미지가 시간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언어로 재구성되고 재해석되는 일종의 문학적 사후성이 작용해야 한다. 아마도 그럴 것 같다. 경험이 특별할수록 사후성은 선명하고, 날 것 그대로의 감각이 남아 있었으리라. 맨몸으로 창공 속에서 느꼈을 자유와 공포, 생명과 죽음 사이에 홀로 존재했던 작가였다. 이런 작가에게 지난 기억보다, 그 어떤 생각보다 앞서서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생생한 그때의 감각이 아니겠는가. 최초의 경험(낙하)이 감각적인 발현(감각의 레이더망)을 거쳐 현재에 이르러 의미의 재구성(글쓰기)으로 연결되는 서사의 과정이 자연스러우면서 탄탄하다. 이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송유창의 「하늘의 백장미」는 역사, 전기적 문학으로 접근해 보아도 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수한 경험에서 창작된 작품은 작가의 창조물이며 시대의 반영물이라 그렇다. 따라서 작가가 겪은 실제 경험을 녹여낸 글쓰기는 자체로도 보존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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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은 문학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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