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으로 발령이 났다.
발령소식이 있던 날 오래된 지인들과 함께 순천 선암사를 둘러보고 봉우리 진 붉은 매화가 만개한 모습을 상상하며 내려오는 길에 미끄러져 넘어졌다. 움직일 수 없어 119를 불러 순천에 있는 정형외과로 갔다.119대원은 여자분이었는데, 무척 친절하였다.
능수능란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녀를 보며 '초심'이란 말이 떠올랐다.
발목뼈가 부러졌다고 하였다. 응급조치를 받고 춘천으로 향했다. 본디 학교일때문에 나만 먼저 올라오기로 한 것이었나 내가 다치는 바람에 일행들도 함께 오게되었다. 20여년 가까이 만나온 사이이지만 나때문에 밤늦게 운전을 하고 여행일정을 앞당겨올 때에는 참 많이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이번 여행은 나서기까지 고민이 많았다.학교업무를 마무리하려면 학교근무를 하여야하는데, 오래전부터 있었던 약속이었고 나 때문에 일정도 조정한 상태였다. 학교에 죄송한 마음은 있었지만 여행을 함께 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늘 선택의 순간에 직면한다.
그리고 내가 한 선택이 모여 나를 이루는 것이리라.
아픈마음으로 시작한 강릉에서의 생활.
2년동안 강릉에 내려가 있으면서 아침마다 출근길에 보았던 경포호수, 경포바닷가, 소나무 숲, 나에 대한 걱정으로 틈틈이 전화를 주셨던 분들,함께 근무하였던선생님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그리고 교장, 교감선생님 그 시간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매김하리라. 그리고 무엇보다 나보다 더 나를 더 생각해주는 친정어머니가 차려주셨던 밥상. 그 정성이 아픈 마음을 많이 어루만져주었다.
발목깁스를 하고 하루종일 집에 있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오랫만에 남편과 하루종일 함께하고 특별하게 무슨 일을 하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내게 편안함과 안도감을 준다. 남편은 집안 구석구석 청소도 다하고 목발을 집고 왔다갔다하는 나를 위하여 여러가지 애를 쓰고 있다. 우리 부부는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늘 바쁘게 지내서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내가 다치는 바람에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2월 13일에 병원에 입원하여 황반원공 눈 수술을 하여야한다. 나는 다소 겁이 없는편이지만 눈 수술은 겁이 난다. 교직생활 거의 처음으로 한달이상의 병가를 냈다. 발령 난 학교에도 3월 2주정도 병가를 내야한다.
강릉에서 춘천으로 발령 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이 행운에 감사하며 발목 부상, 눈 수술이 주는 불편함과 어려움은 기꺼이 감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간들을 거쳐 새학교에서의 새출발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설레임, 기쁨과 내가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가정에 충실한 마음(요리, 청소,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 서울생활하는 아들, 딸) 그리고 내가 해야하는 공부와 함께 하고자한다. 환한 봄. 꽃피는 봄이 마구마구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