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용촌동 미리미마을
일행은 증촌마을에서 북쪽방향으로 둑방길 따라 걸어 용촌동에 도착했다.
법정동인 용촌동은 동쪽에는 매노동이 있고, 서쪽에는 원정동, 남쪽에는 평촌동이 인접해 있다. 그리고 북쪽에는 봉곡동과 이웃해 있다. 현재 행정동은 기성동(杞城洞)이다.
미리미마을(미림리(美林里) 또는 용촌(龍村)마을 이라고도 함)은 시누리 서쪽으로 들 건너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용두처럼 생긴 바위가 있고, 뒷산을 용산(龍山)이라 부르는데 해발 133m의 낮은 산이다. 형상이 용이 누워 있는 것처럼 생겼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
용촌교쪽으로 걷다보니 용산좌안제라는 푯돌이 보였고 용촌교 근처에는 명주환씨공덕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지주였던 명주환씨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은 마을 사람들이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라고 한다.
용천교에서 바라본 미리미마을은 제일 먼저 느티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용촌동 느티나무는 300년이 되었다고 하고 우리 일행이 갔을 때 마을 분이 느티나무 주변을 청소하고 있었다. 미리미마을 입구에 있는 이 느티나무가 마을에서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용천정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니 먼저 흑석동산성이 있는 고무래봉이 눈에 들어왔다.
흑석동산성을 바라보며 조영연(울림이사) 선생님께 잠시 흑석동산성과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들었다.
흑석동산성은 밀암산성(密岩山城) 이라고도 하는데, 삼국사기를 비롯한 사서(史書)에는 '진현성(眞峴城)' 이란 명칭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즉, 백제가 나당연합군에게 멸망당한 이후 백제의 왕통을 회복하기 위해 모여든 백제부흥군의 활약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와 관련된 사료들을 살펴보면 진현성은 그 위치가 옛 진잠 부근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옛 진잠은 현재 대전광역시 서구에 해당된다. 진현성은 나당연합군과 백제부흥군과의 치열한 싸움터로 기록되어 있다. 나당군은 이 진현성을 함락시키고서야 '드디어 신라운량지로(新羅運糧之路)를 개통하였다.'고 하고 있음으로 보아 진현성이 전략적으로 중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록에는 진현성의 위치가 강과 접하여 높고 험준하다고 하였다. 이는 흑석동 산성의 입지 여건과 비슷한 면을 보이고 있어, 이 흑석동산성을 진현성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관산성, 사정성 등 큰 전투가 치러진 곳에는 말머리산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는 곳이 많은데 이는 실제 말(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마리->말 로 변형되어 무명용사들의 무덤이라고 해석해야 옳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용촌동에 있는 정방이(정뱅이) 마을은 흑석동산성에 소정방부대(당군)가 왔던 들이라는 의미의 지명으로 볼 수도 있다.
용촌동에서 백로도 만나고, 용촌정 근처에서는 아주까리(피마자)도 볼 수 있었다.
정방이마을로 가는 중에 새삼이 기생하고 있는 비수리도 보았다.
새삼은 덩굴성 기생식물인데 삼킬 듯이 퍼져나가 줄기가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기생하다가 더 이상 뺏을 양분이 없으면 다른 식물로 이동한다고 한다.
용촌동에서 야실마을로 향하는 길에서 쇠백로, 중대백로, 황로 등 4종류의 조류가 모여 있는 모습도 보였다. 두계천 보를 건너자 두계천 자전거도로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향하고 있는 야실마을은 두계천과 갑천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강사님께 들은 바가 있어 두계천이 나오자 야실마을이 가까워 졌나보다 싶어 반가웠다.